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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고전/오디세이

오디세이 제3권

by 복 짓는 사람 2026. 10. 4.

 

제2권 읽기

 

제3권 텔레마코스, 필로스에서 네스토르를 만나다

 

 

아름다운 바다에서 떠오른 태양이 하늘 높이 올라가 필멸의 인간과 불멸의 신들에게 빛을 비추기 시작할 무렵, 텔레마코스 일행은 넬레우스의 도시 필로스에 도착했다. 당시 필로스 사람들은 바닷가에 모여 대지진을 일으키는 신, 포세이돈에게 검은 황소를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필로스 사람들은 오백여 명씩 아홉 무리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무리는 황소 아홉 마리씩을 바쳤다. 그들이 포세이돈을 위해 내장 고기를 먹고 넓적다리뼈를 숯불 위에서 굽고 있을 때, 텔레마코스와 그의 일행이 도착했다. 그들은 돛을 내리고 배를 닻으로 고정한 뒤 육지로 올라갔다. 아테나가 앞장서고 텔레마코스가 그 뒤를 따랐다.
잠시 후 아테나가 말했다.
“텔레마코스,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긴장할 필요가 없다. 네가 이 여행을 떠난 것은 네 아버지가 어디에서 죽었으며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니, 곧장 네스토르에게 가거라. 그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지 알아보자. 그에게 진실을 말해 달라고 간청해라.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 훌륭한 사람이니까.”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하지만 멘토르여, 제가 어떻게 네스토르에게 감히 다가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합니까? 저는 지체 높은 분과 길게 대화를 나눠본 경험도 없어, 저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 어른께 이것저것 여쭈어보기가 쑥스럽습니다.”
아테나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야. 몇 가지는 네 스스로 직감하게 될 것이고, 나머지는 신들께서 지혜를 더해주실 것이다. 나는 네가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신들이 너와 함께해 왔다고 확신한다.”
그녀는 곧 빠른 걸음으로 앞서갔고, 텔레마코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마침내 필로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그들은 네스토르가 아들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네스토르와 그의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어떤 이들은 고기 조각을 꼬챙이에 꿰고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그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보자 다가오더니 손을 잡고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네스토르의 아들 피시스트라토스도 곧바로 두 사람에게 차례로 손을 내밀어 맞이했고, 그들을 아버지 네스토르와 형제 트라시메데스 곁의 자리로 안내했다. 그들은 모래사장에 놓여 있는 부드러운 양가죽 위에 텔레마코스 일행을 앉혔다. 그런 다음 내장 고기를 나누어 주고 황금 잔에 포도주를 따라 아테나에게 먼저 건네면서 인사했다.
“손님, 저희와 함께 잔치를 나누게 되었으니 포세이돈왕께 기도부터 올리십시오. 기도를 마치고 음복하신 뒤에는 친구분에게도 잔을 넘겨주시길 바랍니다. 그분 역시 신을 향해 기도하는 분일 테니까요. 세상에 신의 은혜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 말입니다. 다만 나이가 저와 비슷해 보이니 어른께 먼저 잔을 올립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피시스트라토스는 아테나에게 잔을 건넸다. 아테나는 자신에게 먼저 잔을 건넨 것이 매우 적절하고 예의 바른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곧 포세이돈에게 진심으로 기도하기 시작했다.
“오, 대지를 둘러싸신 분이시여, 부디 당신께 기도하는 종들의 간청을 들어주소서. 무엇보다 먼저 네스토르와 그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내려주소서. 그리고 필로스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당신께 바치는 훌륭한 헤카톰베에 합당한 보답을 내려주소서. 마지막으로 텔레마코스와 제가 배를 타고 필로스까지 온 이 일이 좋은 결과를 얻게 해주소서.”
그녀가 이렇게 기도를 마치고 잔을 텔레마코스에게 건네자, 텔레마코스도 같은 방식으로 기도했다. 얼마 뒤 고기가 잘 구워져 꼬챙이에서 내려지자 고기를 써는 사람들이 모두에게 각자의 몫을 나누어 주었고, 그들은 모두 훌륭한 식사를 했다. 충분히 먹고 마시고 나자 게레네의 기사 네스토르가 입을 열었다.
“이제 손님들이 식사를 마쳤으니 그들이 누구인지 물어보는 것이 좋겠군요. 그렇다면 두 나그네여, 그대들은 누구이며 어느 항구에서 배를 타고 왔습니까? 장사꾼들이오, 아니면 모든 사람을 적으로 삼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해적들이오?”
텔레마코스는 아테나의 격려에 힘입어 대담하게 대답했다.
“네레우스의 아들 네스토르여, 아카이아인의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께서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으셨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네리톤산 아래 이타카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온 이유는 공적인 일이 아니라 개인적인 일입니다. 저는 불행한 제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듣기 위해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당신과 함께 트로이성을 함락시켰다고 알려진 분입니다. 트로이에서 싸웠던 다른 영웅들이 어떤 운명을 맞았는지는 알고 있지만, 오디세우스에 대해서는 하늘이 생사조차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가 어디에서 죽었는지 증언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육지의 전투에서 전사하셨는지, 아니면 암피트리테의 파도 속에서 목숨을 잃으셨는지 그 누구도 전해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당신께서 제 아버지의 비참한 최후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다면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려 간청합니다. 당신께서 직접 두 눈으로 보았든, 아니면 다른 나그네에게 들었든 말씀해 주십시오. 그는 본래 고난을 겪도록 태어난 사람이었으니까요. 저를 불쌍히 여기신다면 말을 돌리지 마시고, 당신께서 본 것 그대로 말씀해 주십시오. 트로이인들에게 시달리던 시절, 용맹한 제 아버지 오디세우스가 말이나 행동으로 당신께 충직한 도움을 드린 적이 있다면, 부디 그 일을 기억하시어 저를 위해 모든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네스토르가 대답했다.
“젊은 친구여! 자네가 내 마음에 큰 슬픔의 시절을 불러내는구나. 용맹한 아카이아인들은 아킬레우스와 함께 바다에서 약탈전을 벌일 때도, 프리아모스왕의 거대한 도성 앞에서 싸울 때도 많은 고초를 겪었네. 그곳에서 우리의 가장 훌륭한 전사들이 모두 쓰러졌지. 아이아스, 아킬레우스, 신들과 견줄 만한 지혜를 지녔던 파트로클로스, 그리고 발이 몹시 빠르고 싸움에 용맹했던 내 사랑하는 아들 안틸로코스까지. 하지만 우리가 겪은 고난은 이것보다 훨씬 더 컸네. 그 모든 이야기를 인간의 입으로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나? 자네가 여기서 5~6년 동안 머물며 물어본다 해도, 아카이아인들이 겪은 모든 일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네.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자네가 먼저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테니.
우리는 무려 9년 동안 온갖 계략을 다 써 보았지만, 신들은 우리를 외면했네. 그 모든 세월 동안 자네 아버지와 지략을 견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정말 자네가 그의 아들이란 말인가?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야. 말투까지 그분과 똑같으니 말일세. 나이 차이가 그렇게나 많이 나는데도 이토록 똑같이 말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네. 그와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영에서도 회의에서도 한 번도 의견을 달리한 적이 없었네.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아르고스인들이 모든 일을 가장 잘 처리할 방법을 함께 의논했네. 그러나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도성을 함락시키고 신들의 뜻에 따라 뿔뿔이 흩어져 배를 타고 떠나려 했을 때, 제우스는 아르고스인들을 괴롭히기로 작정하셨지. 그들 모두가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제우스의 딸 아테나의 분노를 사서 많은 이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 아테나는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 사이에 다툼을 일으켰다네.
아트레우스의 두 아들은 회의를 소집했지만, 때가 좋지 않았지. 해는 이미 지고 있었고 아카이아인들은 술에 취해 있었으니까. 두 사람이 사람들을 불러 모은 이유를 설명했을 때, 메넬라오스는 당장 고향으로 항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러나 아가멤논은 이에 반대했지. 아테나의 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대규모의 희생 제사인 헤카톰베를 바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지. 어리석은 아가멤논은 자신이 아테나를 설득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어. 신들은 한 번 마음을 정하면 쉽게 뜻을 바꾸지 않으니까. 그렇게 두 사람이 거친 말을 주고받는 동안, 아카이아인들은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두 편으로 갈라졌지.
그날 밤 우리는 쉬면서 분노를 삭였지. 제우스가 우리에게 또 다른 재앙을 꾸미고 있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우리 가운데 일부는 배를 물에 띄우고 재물을 싣고 여자들을 태웠지. 나머지 절반 정도의 사람들은 아가멤논과 함께 남았지.
떠나기로 한 나머지 절반은 배에 올라 항해를 시작했지. 신들이 바다를 잔잔하게 해주셨기에 배들은 순조롭게 나아갔지. 테네도스에 도착한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신들에게 제사를 올렸지. 하지만 잔인한 제우스는 아직 우리가 귀향하도록 허락할 뜻이 없었어. 그래서 두 번째 내분을 일으키셨다네.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이끄는 일부 무리는 아가멤논과 화해하기 위해 뱃머리를 돌려 되돌아갔지. 그렇지만 나는 재앙이 닥쳐오는 것을 직감하고 나와 함께한 모든 배를 독려하여 급히 노를 저어 나아갔지. 티데우스의 아들 디오메데스와 그의 부하들도 나와 함께 계속 달아났지. 얼마 뒤 메넬라오스가 레스보스섬에서 우리와 합류했는데, 그때 우리는 어느 길로 항해할지를 고민했다네. 우리는 키오스섬의 바깥쪽으로 나아가 프시라섬을 왼쪽에 두고 갈 것인지, 아니면 키오스섬 안쪽으로 들어가 폭풍이 몰아치는 미마스 곶을 마주 보며 항해할 것인지 결정할 수가 없었지. 그래서 신들에게 길을 알려 달라고 간청했고, 신들은 우리가 위험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려면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에우보이아섬을 향해야 한다는 징조를 보여주셨네. 그래서 그대로 했지. 순풍이 불어 밤새 빠르게 항해할 수 있었지. 그리하여 게라에스토스에 도착했네. 그곳에서 우리는 거기까지 무사히 오게 해준 포세이돈에게 많은 제물을 바쳤지. 나흘 뒤에는 디오메데스와 그의 부하들이 아르고스에 배를 정박했네. 그러나 나는 계속해서 필로스로 향했지. 신들이 처음 나에게 순풍을 보내주신 날부터 바람은 한 번도 약해지지 않았네. 그러니 사랑하는 젊은 친구여, 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채 돌아온 셈일세. 누가 무사히 귀향했고 누가 목숨을 잃었는지도 알지 못하네. 하지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 내가 이 집에 돌아온 뒤 지금까지 전해 들은 소식은 숨김없이 자네에게 말해주겠네.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가 이끄는 미르미돈인들은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하네. 또 포이아스의 용맹한 아들 필록테테스도 무사히 돌아갔다고 하지. 그리고 이도메네우스는 바다에서 부하를 한 명도 잃지 않았으며, 전장에서 죽음을 피한 그의 모든 부하도 그와 함께 크레타로 무사히 돌아갔다고 하네.
자네가 세상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해도 아가멤논과 그가 맞은 비참한 최후에 대해서는 들어보았을 걸세.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죽었다는 이야기 말일세. 그러나 아이기스토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서운 대가를 치렀지. 보시게나. 사람이 아들을 남겨두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를. 오레스테스는 위대한 아버지를 배신하고 살해한 거짓된 자 아이기스토스를 죽였지. 자네 역시 키도 크고 보기에도 훤칠한 젊은이니 용기를 보여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도록 하게.”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네레우스의 아들 네스토르여, 아카이아인의 자랑이시여, 아카이아인들은 오레스테스를 칭송하고 오레스테스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훌륭하게 갚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저에게도 사악한 구혼자들의 오만함에 똑같이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내려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들은 저를 모욕하고 제 파멸을 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들께서는 저와 제 아버지에게 그런 행운을 마련해 두지 않으신 듯하니, 우리는 그저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습니다.”
네스토르가 말했다.
“젊은 친구여, 그대의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나는구나. 그대의 어머니에게 수많은 구혼자가 들끓어 그대를 괴롭히고 재산을 탕진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네. 그대는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는가, 아니면 신의 뜻이나 백성들의 민심이 그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가? 오디세우스가 결국에는 돌아와 혼자서든 아카이아인들의 힘을 빌려서든 저 간악한 무리에게 엄중한 벌을 내릴지 누가 알겠나? 아테나 여신은 트로이 전선에서 오디세우스를 어여삐 여기셨네. 신이 인간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총애하는 것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네. 만약 그처럼 여신께서 그대 또한 사랑해 주시고 보살펴 주신다면 그 구혼자들 중 상당수는 구혼은커녕 제 목숨을 보존하기도 바쁠 것이네.”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그런 일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런 행운을 바란다는 것은 너무 큰 욕심입니다. 감히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신들께서 원하신다고 해도 제게 그런 행운이 찾아올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자 아테나가 말했다.
“텔레마코스여,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신께서 구하고자 하신다면 그 손길은 아주 멀리까지라도 미치는 법이다. 내가 만약 오디세우스라면 비록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온갖 고초를 겪는다 해도 무사히 집에 이를 수만 있다면 고난을 감수할 것이다. 조급히 돌아왔다가 아가멤논처럼 아내와 아이기스토스의 흉계에 목숨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하지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니 인간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오면 신들조차 아무리 아끼는 인간이라 해도 죽음에서 건져낼 수는 없는 법이다.”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멘토르님, 이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올 가능성은 없습니다. 신들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아버지를 멸망시키기로 뜻을 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네스토르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3대에 걸쳐 왕좌를 지켜오셨으니 신과 같은 지혜를 지니신 분입니다. 그러니 네스토르여, 사실대로 말해 주십시오. 아가멤논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죽게 되었습니까? 그때 메넬라오스는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어찌하여 비열한 아이기스토스가 자신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인 아가멤논을 죽일 수 있었습니까? 메넬라오스가 아카이아의 아르고스를 떠나 다른 곳으로 항해하는 틈을 타 아이기스토스가 대담하게 아가멤논을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까?”
네스토르가 대답했다.
“사실대로 말해 주지. 자네도 이미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하고 있겠지만 말일세. 메넬라오스가 트로이에서 돌아왔을 때 아이기스토스가 아직 살아서 그의 집에 있었다면, 그가 죽은 뒤에 결코 무덤을 쌓아 주는 일은 없었을 걸세. 아이기스토스는 도성 밖으로 내던져져 개와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고, 그의 죽음을 애도해 주는 여자도 한 명 없었을 것이네. 그가 저지른 짓은 너무나 큰 악행이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때 트로이에서 힘껏 싸우고 있었고, 아이기스토스는 아르고스 한복판에서 편안하게 지내며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끊임없이 감언이설을 늘어놓았지. 처음에는 클리타임네스트라도 그의 사악한 음모에 전혀 응하지 않았네. 본래 마음씨가 선한 여인이었기 때문이지. 게다가 그녀 곁에는 음유 시인이 한 사람 있었는데,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떠나면서 그 시인에게 아내를 잘 지키라고 엄중히 명령해 두었지. 그러나 신들이 그녀의 파멸을 작정하게 되자, 아이기스토스는 그 음유 시인을 외딴섬으로 끌고 가서 까마귀와 갈매기들의 먹이가 되도록 버려 두었네. 그후 그녀는 제 발로 아이기스토스의 집으로 갔지. 성공을 거둔 아이기스토스는 신들께 수많은 번제물을 바치고 신전을 비단과 금으로 장식하며 승리를 자축했네.
한편 메넬라오스와 나는 서로 사이좋게 트로이를 떠나 고향으로 향하고 있었지. 우리가 아테네의 곶인 수니온에 이르렀을 때, 아폴론 신께서 고통 없는 화살을 쏘아 메넬라오스의 조타수인 프론티스를 죽이셨네. 그는 거친 풍랑 속에서도 키를 잡는 데 최고의 실력을 갖춘 자였는데, 키를 잡은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지. 메넬라오스는 마음이 급했으나 전우의 시신을 거두고 장례를 치르기 위해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네.
그 뒤 메넬라오스 역시 다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게 되어 말레아 곶에 이르렀을 때, 제우스께서는 그에게 재앙을 내려 거센 바람을 불게 하셨고 산더미 같은 파도를 일으키셨지. 그곳에서 그는 함대를 둘로 나누어, 절반은 이아르다노스 강물 주변 퀴도니아인들이 살고 있는 크레타로 보냈지. 고르티스라 불리는 곳에서 바다 쪽으로 불쑥 솟아오른 높은 곶이 있었는데, 남풍이 불어오면 파이스토스에 이르는 해안 전체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도 파이스토스 뒤쪽 해안은 작은 곶이 큰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 안전했지. 이 함대는 암초로 밀려들어 배가 파선했으나 선원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 나머지 다섯 척의 배는 바람과 파도에 밀려 이집트로 흘러갔고, 메넬라오스는 언어가 다른 그곳 이방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금과 재물을 모았지.
한편 이곳 고향에서는 아이기스토스가 악행을 꾸미고 있었지. 그는 아가멤논을 죽인 뒤 7년 동안 미케네를 다스렸고, 백성들은 그의 지배에 복종했네. 그러나 8년째 되던 해에 오레스테스가 아테네에서 돌아와 아버지를 죽인 아이기스토스를 처단했지. 그리고 아르고스의 백성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어머니와 비열한 아이기스토스의 장례 의식을 치렀네. 바로 그날 메넬라오스도 배에 실을 수 있는 만큼의 보물을 가득 싣고 돌아왔지.
그러니 내 말을 듣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너무 오래 방랑하지 말고, 위험한 무리에게 그대의 재산을 맡겨두지도 말게. 그들은 그대의 재산을 탕진해 그대의 여정을 헛수고로 만들 것이네. 그렇지만 메넬라오스만은 꼭 찾아가 보게. 그는 바람에 밀려 상상 이상으로 멀리 떠내려갔다가 최근에야 겨우 살아 돌아왔다네. 새조차 날아서 건널 수 없을 만큼 넓고 무서운 바다를 일 년 내내 건너온 것이지. 그대의 선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서 그를 찾아가 보게 만약 육로로 가고 싶다면 전차와 말을 내어주고, 내 아들들이 메넬라오스가 살고 있는 라케다이몬까지 호위해 주도록 하겠네. 그는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니 진실만 청하면 거짓 없이 알려줄 것이네.”
네스토르가 말을 마칠 무렵 해가 지고 어둠이 짙어지자 아테네가 말했다.
“왕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모두 옳습니다. 이제 제물로 바친 짐승의 혀를 자르게 하고 포도주를 섞어 포세이돈과 다른 불멸의 신들께 음복 기도를 올린 뒤 잠자리에 듭시다. 이제 잘 시간입니다. 신성한 축제 자리에서 너무 늦게까지 머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우스의 딸이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그대로 따랐다. 하인들이 손님들의 손에 물을 부어 씻게 했고, 시종들은 큰 그릇에 포도주와 물을 섞어 채운 뒤 신에게 바칠 술을 따라서 각자에게 잔을 돌렸다. 그런 다음 그들은 제물로 바친 짐승의 혀를 불속에 던져 넣고는 일어서서 술을 올리는 의식을 행했다. 제사를 마치고 각자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신 뒤, 아테나와 텔레마코스는 배로 돌아가 자려 했으나 네스토르가 곧바로 그들을 붙잡았다.
“하늘과 불멸의 신들께서 결코 그런 일이 없게 하시기를….”
그가 외쳤다.
“어찌 내 집을 두고 배에서 잠을 청하려 하는가? 내가 그토록 가난하여 덮을 이불이나 옷가지도 부족하고 손님들을 편히 재울 잠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가? 내게는 깔개와 외투가 넉넉한데, 내 옛 친구 오디세우스의 아들을 배 갑판 위에서 자게 둘 수는 없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물론이고, 내 뒤를 잇는 아들들 역시 나처럼 늘 손님을 환대할 것이오.”
그러자 아테나가 대답했다.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텔레마코스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하는 것이 훨씬 좋겠습니다. 텔레마코스는 당신과 함께 돌아가 댁에서 잠을 청할 것입니다. 다만 저는 선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배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그들 중 나이 든 사람은 저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텔레마코스와 또래인 젊은이들로 우정 때문에 이 항해에 동참한 이들입니다. 그러니 저는 배로 돌아가 잠을 청하겠나이다. 또한 내일 아침에는 내가 오래전부터 받아야 할 큰돈이 있는 카우코니아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 보아야 합니다. 이제 텔레마코스는 당신의 손님이니 전차에 태워 라케다이몬으로 보내주십시오. 아드님 중 한 분을 동행하게 하시고 가장 훌륭하고 발 빠른 말들을 내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테나는 이렇게 말한 뒤 독수리의 모습으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네스토르는 크게 놀라 텔레마코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신들께서 친히 보살펴 주시는 것을 보니 그대는 먼 훗날 위대한 영웅이 될 것이 분명하네. 저분은 하늘에 거하시는 신들 중에서도 그대의 용맹한 아버지를 그토록 아끼셨던 제우스의 위엄 있는 딸, 트리토게네이아(아테나) 여신이 틀림없네.”
그는 계속해서 기도했다.
“거룩하신 여왕이시여, 저와 내 아내, 그리고 자식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소서. 그 보답으로 한 번도 멍에를 멘 적 없는 이마가 넓은 일 년 된 암송아지를 바치겠나이다. 뿔에 금칠을 하여 여신께 제물로 바치겠나이다.”
그렇게 기도하자 아테나는 그의 기도를 들었다.
네스토르는 아들들과 사위들을 거느리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들이 집에 도착하여 긴 의자와 자리를 잡자, 그는 달콤한 포도주가 든 항아리를 열었다. 그 포도주는 집을 관리하는 여인이 항아리의 뚜껑을 열었을 때 이미 11년이나 숙성된 것이었다. 네스토르는 포도주를 섞으면서 제우스의 딸이자 아이기스(방패)를 든 아테나를 위해 여러 차례 기도하고 술을 바치는 의식을 올렸다. 그런 다음 모두 신께 술을 올리고 각자 원하는 만큼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지만, 네스토르는 텔레마코스를 입구 문 위쪽에 있는 방에서 피시스트라토스와 함께 자게 했다. 피시스트라토스는 네스토르의 남은 아들 가운데 유일하게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었다. 네스토르 자신은 집 안쪽 방에서 왕비인 아내와 나란히 누워 잠을 잤다.


장미빛 손가락을 가진 아침의 아이, 새벽의 여신이 나타나자 네스토르는 침상에서 일어나 궁전 앞에 있는 하얗고 잘 다듬어진 대리석 의자에 앉았다. 예전에는 신과 같은 지혜를 가졌던 넬레우스가 앉던 자리였으나, 그는 이미 죽어 하데스의 집으로 떠났기에 이제는 네스토르가 왕권을 상징하는 홀을 들고 백성의 수호자로서 그 자리에 앉았다. 방에서 나온 그의 아들, 에케프론, 스트라티오스, 페르세우스, 아레토스, 트라시메데스가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여섯째 아들인 피시스트라토스도 함께했다. 그들은 텔레마코스가 다가오자 자신들 곁에 앉혔다. 네스토르가 아들들에게 말했다.
“아들들아, 내가 명하는 대로 서둘러 움직여라. 어제 축제 때 내 눈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신 위대한 아테나 여신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자 한다. 한 사람은 들판으로 가서 목동에게 암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 즉시 끌고 오게 하여라. 다른 한 사람은 텔레마코스의 배로 가서 배를 지킬 두 사람만 남겨두고 모든 선원을 이 집으로 초대하여라. 또 한 사람은 금세공인 라에르케우스를 불러와 암송아지의 뿔에 금칠을 하게 하여라. 나머지는 모두 이곳에 남아 시녀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 앉을 자리와 번제에 쓸 땔나무, 그리고 맑은 샘물을 가져오게 하라.”
그러자 모두 저마다 맡은 일을 하러 서둘러 떠났다. 들판에서는 암송아지가 끌려왔고, 텔레마코스의 선원들도 배에서 왔다. 금세공인은 금을 다룰 때 쓰는 모루와 망치, 집게를 가지고 왔으며, 아테나 여신도 친히 제물을 받으러 왔다. 네스토르가 금을 내어주자 세공사는 여신이 그 아름다움에 기뻐할 수 있도록 암송아지의 뿔에 금을 입혔다. 이어 스트라티오스와 에케프론이 암송아지의 뿔을 잡고 끌고 들어왔다. 아레토스는 집에 있는 꽃무늬가 새겨진 물병에 물을 떠 오고, 다른 손에는 보릿가루를 담은 바구니를 들고 왔다. 건장한 트라시메데스는 암송아지를 내리칠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곁에 서 있었고, 페르세우스는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네스토르는 손을 씻고 보릿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아테나에게 여러 차례 기도를 올리고, 암송아지의 머리에서 자른 털 한 움큼을 잘라 불 속에 던졌다. 기도를 마치고 보릿가루를 뿌리자 트라시메데스가 도끼를 내리쳤다. 송아지 목덜미 밑의 힘줄을 끊어 놓는 일격을 가하자 암송아지가 쓰러졌다. 네스토르의 딸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그의 기품 있는 아내 에우리디케(클리메노스의 맏딸)가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그들이 암송아지의 머리를 땅에서 들어 올리자 피시스트라토스가 목을 베었다. 피가 다 빠지고 송아지가 완전히 죽자, 그들은 고기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먼저 넓적다리뼈를 절차에 따라 잘라내어 두 겹의 기름으로 감싼 다음, 그 위에 날고기 조각을 올려놓았다. 네스토르는 그것을 장작불 위에 올리고 포도주를 부었으며, 젊은이들은 다섯 갈래로 된 꼬챙이를 손에 들고 그의 곁에 서 있었다. 넓적다리 부분이 다 익자 내장을 맛본 뒤에는, 나머지 고기를 잘게 잘라 꼬챙이에 꿰어 불 위에서 구웠다.
한편 네스토르의 막내딸, 아름다운 폴리카스테는 텔레마코스의 몸을 씻겨 주었다. 몸을 씻긴 뒤 향기로운 기름을 바르고, 아름다운 망토와 속옷을 입혀 주었다. 목욕을 마친 텔레마코스는 네스토르 곁에 가서 자리를 잡았는데, 그의 모습은 마치 신처럼 보였다.
고기가 다 익자 그들은 꼬챙이에서 고기를 빼내어 식사를 시작했다. 충직한 시종들이 그들을 시중들며 황금 잔에 포도주를 계속 따라 주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마시자 네스토르가 말했다.
“아들들아, 텔레마코스가 곧 떠날 수 있도록 말들을 전차에 매어라.”
그가 이렇게 말하자 아들들은 그대로 따랐다. 재빠른 말들을 전차에 매었고, 집안일을 맡은 하인은 왕족의 아들에게 어울릴 만한 빵과 포도주, 맛있는 음식을 여행길 양식으로 챙겨 주었다. 텔레마코스는 전차에 올라탔고, 피시스트라토스는 고삐를 잡고 그의 곁에 앉았다. 그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몰았고, 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높은 필로스의 성채를 뒤로 한 채 탁 트인 벌판을 향해 힘차게 달려갔다.

말들은 목에 멍에를 멘 채 하루 종일 달렸고, 마침내 해가 지고 온 땅에 어둠이 깔렸다. 그들은 페라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오르틸로코스의 아들이며 알페이오스의 손자인 디오클레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디오클레스는 그들을 따뜻하게 대접했다.
장미빛 손가락을 가진 아침의 아이, 새벽의 여신이 다시 나타나자 그들은 다시 말에 멍에를 씌우고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성문을 지나 전차를 몰았다. 피시스트라토스가 채찍을 휘두르자 말들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달려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탁 트인 들판의 곡식밭에 이르렀고, 마침내 여행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들의 준마가 그들을 목적지까지 잘 실어다 주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 온 땅에 어둠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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