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테아가 그렇게 말하고 파도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배들이 늘어서 있는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지. 돌아가는 내내 내 마음은 근심으로 무거웠네. 배에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우리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해변에 자리를 잡았지.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다방면에서 가장 믿음직한 부하 셋을 데리고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하늘에 간절히 기도했다네. 그 사이 여신 이도테아는 바닷속에서 갓 벗겨낸 바다표범 가죽 네 장을 가져왔는데, 이는 그녀가 아버지를 속이는 데 사용하려는 것이었지. 그런 다음 그녀는 우리가 숨어 누울 구덩이 네 개를 파고는, 우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지. 우리가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녀는 우리를 차례로 구덩이에 눕히고는 각자의 몸 위에 바다표범 가죽을 덮어주었다네. 바다표범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그 잠복은 견디기 힘들었다네. 피할 수만 있다면 누가 바다표범과 함께 눕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이번에도 여신이 우리를 도와주었다네. 그녀는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묘안을 생각해냈지. 바로 각자의 콧구멍 아래에 암브로시아를 발라주는 것이었지. 그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바다표범 냄새를 완전히 덮어버렸다네.
우리는 아침 내내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지. 수백 마리의 바다표범들이 해변으로 올라와 햇볕을 쬐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정오가 되자 마침내 그 ‘바다의 노인’도 모습을 드러냈지. 그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바다표범들을 발견하자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수를 세기 시작했다네. 우리는 그가 센 첫 번째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는 우리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전혀 의심하지 않은 채 수를 다 세고 나자마자 잠자리에 들었지. 그때 우리는 함성을 지르며 그에게 달려들어 덮쳤다네. 그러자 그는 즉시 자신의 오래된 둔갑술을 부리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갈기가 무성한 사자로 변하더니, 갑자기 용, 표범, 멧돼지로 모습을 바꾸었지. 다음 순간에는 흐르는 물이 되었다가 곧바로 나무로 변하기도 했지. 하지만 우리는 그를 놓치지 않고 꽉 붙들고 있었다네. 마침내 그 교활한 노인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이렇게 말했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도대체 어떤 신이 그대와 공모하여 나를 붙잡으려 한 것이냐? 대체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대답했지.
‘노인이여, 당신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둘러댄다고 해서 얻을 것은 없을 겁니다. 내가 이 섬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 지냈는데도 이곳을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나는 점점 희망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게 말해주십시오. 모든 것을 아시는 신들 가운데 과연 어떤 신이 나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바다를 항해해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려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그가 말했다네.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고향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다면 배를 띄우기 전에 먼저 제우스와 다른 신들에게 제물을 바쳐야 해. 하늘이 내린 물줄기인 이집트의 강으로 다시 돌아가 하늘을 다스리는 불멸의 신들에게 성스러운 백 마리 소의 제사(헤카톰베)를 올리기 전까지는, 그대들은 친구들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운명이야. 그렇게 하고 나면 신들이 그대들이 항해를 마칠 수 있게 해줄 것이야.’
그 길고 끔찍한 항해를 거쳐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네. 그럼에도 나는 대답했지.
‘노인이시여, 당신께서 내게 명하신 일은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게 사실대로 말해주십시오. 네스토르와 내가 트로이를 떠날 때 뒤에 남겨 두었던 아카이아인들이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배 위에서, 혹은 전투가 끝난 뒤 전우들 사이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는지 말입니다.’
그가 대답했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어찌 내게 그런 것을 묻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 편이 나을 거야.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분명 눈물이 앞을 가릴 테니까. 자네가 묻는 이들 중 많은 이가 죽어 사라졌지만, 여전히 살아남은 이들도 많지. 아카이아의 주요 장수들 가운데 귀환 도중 목숨을 잃은 이는 단 두 사람뿐이야. 전장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자네도 직접 겪었으니 알겠지. 세 번째 아카이아 지도자는 아직 바다 위에 있어. 살아는 있지만 귀환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 있지. 아이아스는 난파를 당했어. 포세이돈이 그를 기라이의 거대한 바위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지. 그럼에도 포세이돈은 그를 물 밖으로 무사히 빠져나오게 해주었어. 만약 오만한 말로 스스로 화를 자초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거센 아테나의 미움 속에서도 그는 죽음을 면할 수 있었을 거야. 그는 신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자신을 물에 빠뜨려 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 포세이돈은 그 거만한 말을 듣자마자 억센 두 손으로 삼지창을 움켜쥐고는 기라이의 바위를 두 동강 내버렸다네. 바위의 밑동은 제자리에 남았지만, 아이아스가 앉아 있던 윗부분은 바다로 곤두박질치며 그를 함께 삼켜버렸지. 그렇게 그는 바닷물을 들이키며 익사하고 말았어.’
그대의 형님 아가멤논과 그의 배들은 헤라 여신의 보호 덕분에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지. 하지만 말레아의 높은 곶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거센 돌풍이 불어닥쳐 아가멤논은 본의 아니게 다시 바다로 밀려나고 말았지. 그러다 결국 티에스테스가 살았던 곳이자 당시에는 아이기스토스가 머물고 있던 곶으로 떠밀려가게 되었지. 그러나 머지않아 신들이 바람의 방향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덕분에 그는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고향 땅을 밟은 아가멤논은 감격에 겨워 고향 흙에 입을 맞추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 당시 아이기스토스는 금 두 달란트를 주고 고용한 파수꾼을 항상 대기시켜 두고 있었지. 이 파수꾼은 아가멤논이 몰래 빠져나가 전쟁을 준비하지 못하도록 꼬박 1년 동안 감시를 계속하고 있었어. 그러다 아가멤논이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즉시 아이기스토스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아이기스토스는 곧바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지. 그는 가장 용맹한 전사 스무 명을 뽑아 회랑 한쪽에 매복시키고, 반대편에는 연회 자리를 마련했어. 그런 다음 전차와 기병을 보내 아가멤논을 연회에 초대했는데, 실상은 흉계를 품고 있었던 거야. 아이기스토스는 닥쳐올 운명을 전혀 의심하지 않는 아가멤논을 그곳으로 불러들였고, 연회가 끝난 뒤 마치 도살장에서 소를 잡듯 그를 살해했어. 아가멤논의 부하들도, 아이기스토스의 부하들도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고 모두 그 회랑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어.’
프로테우스가 그렇게 말하자 나는 비통한 심정에 잠겼다네. 그래서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지. 더 이상 살고 싶지도, 햇빛을 마주하고 싶지도 않은 심정이었네. 한참 동안 땅바닥을 뒹굴며 실컷 울고 나자 바다의 노인이 말했지.
‘아트레우스의 아들이여, 그렇게 비통하게 울며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울음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 아이기스토스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설령 오레스테스가 그를 먼저 처단했다 해도 그대의 손으로 장례를 치를 수는 있을 테니.’
그 말을 듣고 나는 슬픔 속에서도 위안을 얻으며 말했지.
‘그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알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언급했던 세 번째 사람에 대해서도 말해주십시오. 그는 아직 살아 있지만 바다에 갇혀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죽은 것입니까? 아무리 슬픈 소식이라도 좋으니 내게 말해주십시오.’
그가 대답했지.
‘세 번째 사람은 이타카에 사는 오디세우스야. 나는 그가 어느 섬의 님프, 칼립소의 거처에서 몹시 슬퍼하며 갇혀 지내는 모습을 보고 왔어. 그는 바다를 건너게 해줄 배도 선원도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지. 메넬라오스여, 그대의 운명은 이렇다. 그대는 아르고스에서 죽지 않을 것이며, 신들이 그대를 세상 끝에 있는 엘리시온 들판으로 데려갈 것이야. 그곳은 금발의 라다만티스가 다스리는 곳으로, 사람들은 세상 그 어디보다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지. 엘리시온에는 비도, 우박도, 눈도 내리지 않으며, 대신 오케아노스가 늘 바다에서 부드럽게 노래하는 서풍을 불어오게 하여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생기를 주지. 그대가 헬레네와 결혼하여 제우스의 사위가 되었기에 그러한 운명을 누리게 될 거야.’
그가 말을 마치고 파도 속으로 사라지자, 나는 동료들과 함께 배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네. 돌아가는 내 마음은 근심으로 무거웠지. 배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기에 우리는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해변에서 밤을 보냈다네.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모습을 드러내자, 우리는 배를 물가로 끌어내리고 돛대와 돛을 배 안에 실었지. 그런 다음 우리도 배에 올라 노 젓는 자리에 앉아 노를 저어 푸른 바다를 갈랐다네. 나는 다시금 하늘이 내린 물줄기인 이집트 강에 배들을 정박시키고, 신들을 달래기 위해 정성을 다해 성대한 헤카톰베를 바쳤다네. 그렇게 신들의 노여움을 푼 뒤, 나는 아가멤논의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그를 기리는 무덤을 쌓았지. 그 후 신들께서 순풍을 보내주신 덕분에 나는 순조롭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네.
이제 그대에게 이르건대, 여기 십여 일만 더 머무르게나. 그러면 내가 그대가 떠나는 길을 기꺼이 배웅하겠네. 그대에게 훌륭한 전차 한 대와 말 세 마리를 선물로 내어주겠네. 또한 아름다운 술잔도 하나 주지. 그대가 살아 있는 동안 불멸의 신들께 술을 올릴 때마다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네.”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아트레우스의 아드님이시여, 더 머물라고 권하지는 마십시오. 저는 이곳에서 일 년을 더 지내도 좋을 만큼 즐겁습니다. 당신과의 대화가 너무나 유쾌해서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필로스에 남겨둔 제 일행이 이미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머무느라 그들과 떨어져 있게 되었습니다. 선물을 주시겠다면 말보다는 귀한 그릇을 주셨으면 합니다. 이타카로 말을 가져가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당신의 마구간을 장식하도록 그 말들을 남겨두겠습니다. 당신의 왕국에는 연꽃과 메도우스위트, 밀과 보리, 그리고 하얗고 풍성한 이삭을 맺는 귀리가 잘 자라는 평지가 많으니까요. 반면 이타카에는 탁 트인 들판이나 경마장이 없습니다. 그곳은 말보다는 염소를 기르기에 더 알맞은 땅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점 때문에 이타카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 섬 중에는 말이 달리기 좋은 평지가 별로 없는데, 이타카는 그중에서도 가장 평지가 드문 곳이지요.”
메넬라오스는 미소를 지으며 텔레마코스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감싸 쥐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말을 들어 보니 그대가 훌륭한 가문 출신임이 분명하네. 내 집에서 가장 훌륭하고 값진 그릇을 내어줌으로써 그대와 기꺼이 물건을 교환하겠네. 그 그릇은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직접 만든 혼합주용 그릇으로, 테두리에는 금이 상감되어 있고 본체는 순은으로 되어 있네. 시돈의 왕 페이디모스가 내게 준 것인데, 내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를 방문했다가 받은 물건이지. 그것을 그대에게 선물로 주겠네.”
그들이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이 왕의 저택으로 계속 모여들었다. 그들은 양과 포도주를 가져왔고, 아내들은 그들이 가져갈 빵을 미리 챙겨주었다. 사람들은 안마당에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한편 이타카의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집 앞 평평한 마당에서 원반을 던지거나 창으로 표적을 맞히며 놀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예전처럼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구혼자들의 우두머리이자 가장 앞장섰던 안티노오스와 에우리마코스가 함께 앉아 있을 때, 프로니오스의 아들 노에몬이 다가와 안티노오스에게 말했다.
“안티노오스, 텔레마코스가 필로스에서 언제 돌아오는지 혹시 아시오? 내 배를 그가 타고 갔는데, 나도 엘리스로 건너가야 해서 그 배가 필요하오. 엘리스에 암말 열두 마리와 아직 길들이지 않은 한 살배기 노새 새끼들이 있는데, 그중 한 마리를 데려와 길들여 볼까 하거든.”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텔레마코스가 넬레우스의 도성(필로스)으로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저 텔레마코스가 농장 어딘가에 나가 양 떼나 돼지 치는 사람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티노오스가 물었다.
“언제 떠났소? 사실대로 말해 보시오. 그리고 어떤 청년들을 데리고 갔소? 자유민이었소, 아니면 그가 부리는 종들이었소? 그가 종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었을 테니까 말이오. 또 한 가지, 그가 부탁해서 자발적으로 배를 빌려준 것이오, 아니면 당신 허락 없이 가져간 것이오?”
“내가 빌려주었소.” 노에몬이 대답했다.
“그만한 신분의 사람이 곤란한 처지라며 부탁하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었겠소?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소. 그와 함께 간 이들은 우리 마을 최고의 청년들이었고, 멘토르인지, 혹은 멘토르와 똑같이 생긴 신인지 선장으로 배에 오르는 것을 보았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구려. 어제 아침에만 해도 여기서 멘토르를 보았는데, 그가 필로스로 떠나고 있었다니 말이오.”
노에몬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갔으나 안티노오스와 에우리마코스는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놀이를 멈추고 자신들 곁에 와서 앉으라고 했다. 그들이 다가오자 안티노오스가 분노에 차서 말했다. 그의 마음은 격노로 검게 물들었고 눈에서는 불길이 튀는 듯했다.
“이런, 텔레마코스의 항해는 정말 심각한 문제로군. 우리는 그 일이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 했지만, 그 젊은이는 우리를 따돌리고 정예 선원들까지 데리고 떠나버렸어. 머지않아 우리에게 골칫거리가 될 거야. 그가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 제우스께서 그를 데려가셨으면 좋겠군. 그러니 내게 선원 스무 명을 태울 배를 한 척 마련해 주시오. 내가 이타카와 사모스섬 사이의 해협에서 텔레마코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할 테니. 그러면 그는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러 떠났던 그 날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이들도 그의 말에 찬성했다. 그들은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구혼자들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페넬로페가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종 메돈이 바깥뜰에서 그들이 안에서 모의하는 내용을 엿듣고는 페넬로페에게 알리러 갔기 때문이다. 메돈이 페넬로페의 방 문턱을 넘어서자 그녀가 물었다.
“메돈, 구혼자들이 무슨 일로 너를 여기까지 보낸 것이냐? 하녀들에게 주인님의 일을 내버려 두고 자기들의 저녁 식사부터 준비하라고 하려는 것이냐? 이제부터는 이곳에서든 어디에서든 저들이 더 이상 청혼도 하지 말고 잔치도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너희 모두가 내 아들의 재산을 얼마나 낭비하고 있는지 보아라. 너희가 어렸을 때 너희 아버지들이 너희에게 말씀해 주지 않았느냐? 훌륭한 오디세우스가 그들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를 말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함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거칠게 말하지 않았다. 왕이라면 때로는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들어 하면서 또 다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누구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너희가 이토록 못된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이 세상에는 더 이상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구나.”
그러자 메돈이 말했다.
“마님, 일이 그것으로 끝이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들은 훨씬 더 끔찍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하늘이 그들의 음모를 막아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들은 텔레마코스가 필로스와 라케다이몬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를 죽이려고 합니다. 도련님이 그곳에 간 것은 아버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지요.”
그러자 페넬로페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서 입을 열 수조차 없었다. 마침내 그녀가 말했다.
“내 아들은 왜 나를 두고 떠난 것일까? 무슨 일로 저 넓은 바다 위를 달리는 말처럼 떠난 것이냐? 자기 이름을 이어 갈 후사 하나 남기지 않고 죽고 싶은 것인가?”
메돈이 대답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신이 그를 부추겼는지, 아니면 스스로 아버지의 생사를 알기 위해 떠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메돈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페넬로페는 극심한 슬픔에 빠진 채 홀로 남았다. 집 안에는 앉을 자리가 많았지만, 그녀는 그 어디에도 앉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바닥에 몸을 내던지고 울음을 터뜨릴 뿐이었다. 그러자 집 안의 시녀들이 나이 든 사람이나 젊은 사람이나 모두 그녀 주위로 몰려들어 함께 울기 시작했다. 마침내 슬픔이 극에 달하자 그녀가 외쳤다.
“여봐라, 하늘은 내 나이의 그 어떤 여인보다도 더 큰 고통으로 나를 시험하려 하시는구나. 나는 용맹하고 사자 같은 심장을 지닌 남편을 잃었다. 그는 세상 모든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고 헬라스와 아르고스 전역에 그 명성이 자자했던 사람이었지. 그런데 이제 내 사랑하는 아들마저 말 한마디 없이 집을 떠나 바람과 파도에 내맡겨진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이 철없는 것들아, 너희 모두 그 아이가 떠나는 때를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무도 내 잠자리로 찾아와 그 사실을 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았더구나. 만약 그 아이가 이런 항해를 하려 한다는 걸 내가 알았더라면, 아무리 고집을 부렸어도 그만두게 했거나, 아니면 나를 죽이고 떠나게 했을 것이다. 너희 중 몇몇은 가서 늙은 돌리우스를 불러오너라. 그는 내가 결혼할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분으로, 우리 집 정원사지. 그에게 가서 당장 내 시아버지 라에르테스를 찾아가 이 모든 일을 알리라고 전해라. 그분이라면 오디세우스의 가문을 몰살하려는 자들에 맞서 사람들의 동정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묘안을 찾아내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자 다정한 늙은 유모 에우리클레이아가 말했다.
“마님, 저를 죽이셔도 좋고 살리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진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모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도련님이 필요로 하는 빵과 포도주도 모두 마련해 주었습니다. 다만 도련님은 제게 엄숙히 맹세하라고 했습니다. 마님께서 직접 물으시거나, 도련님이 떠났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기 전까지는 열흘이나 열이틀 동안 아무것도 말씀드리지 말라고요. 울어서 마님의 아름다운 얼굴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으신 다음, 시녀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 아테나께 기도하십시오. 아이기스(방패)를 드는 제우스의 딸이신 아테나께서 도와주시면, 도련님이 죽음의 아가리 속에 있다 해도 구해 내실 수 있습니다. 라에르테스께는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이미 충분히 큰 근심을 안고 계십니다. 게다가 아르케이시오스 아들의 가문을 신들이 그토록 미워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뒤를 이을 아들이 하나쯤은 남아 이 집과 사방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들판을 물려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페넬로페는 울음을 그쳤고, 에우리클레이아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페넬로페는 얼굴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시녀들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으깬 보리를 바구니에 담아 아테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우스의 딸이시며 아이기스를 드신 분, 지치지 않으시는 여신이시여, 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오디세우스가 이곳에 있을 때 양이나 암소의 기름진 넓적다리뼈를 불에 태워 당신께 바친 적이 있다면 지금 그것을 기억하시어 제 편에 서 주시고, 사랑하는 제 아들을 이 구혼자들의 악행에서 구해 주소서.”
그녀가 소리 내어 울며 기도하자 여신이 그 기도를 들었다. 그사이 구혼자들은 지붕이 덮인 회랑에서 떠들썩하게 떠들고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왕비께서 우리 중 누군가와 혼인할 준비를 하고 계시는군. 자기 아들이 죽을 운명에 처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야.”
그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자 안티노오스가 말했다.
“친구들이여, 큰 소리로 떠들지 마시오. 혹시라도 안으로 소리가 새어 들어갈지 모르니. 자, 우리 모두 뜻을 모은 그 일을 조용히 실행에 옮깁시다.”
안티노오스는 스무 명의 사내를 뽑아 배가 있는 바닷가로 내려갔다. 그들은 배를 물에 띄우고 돛대와 돛을 배 안으로 옮겨 실었으며, 가죽 끈으로 노를 노걸이에 단단히 묶고는 하얀 돛을 높이 펼쳤다. 그동안 충직한 하인들은 그들의 무기를 가져다주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배를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정박시키고 다시 육지로 올라와 저녁 식사를 한 뒤, 밤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페넬로페는 위층 자신의 방에 누워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용감한 아들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기를, 사악한 구혼자들에게 제압당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사냥꾼들에게 사방이 포위되어 덫에 걸린 암사자처럼, 그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마침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아무런 생각도 움직임도 없었다.
그때 아테나는 또 다른 일을 생각해 내었다. 이카리오스의 딸이자 페라에 살던 에우멜로스의 아내, 즉 페넬로페의 동생인 이프티메의 모습을 한 환영을 만들어 냈다. 아테나는 그 환영에게 오디세우스의 집으로 가서 페넬로페가 더 이상 울지 않게 하라고 명했다. 이에 환영은 문을 당길 때 쓰는 끈이 통과하는 구멍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와 그녀의 머리 위를 맴돌며 이렇게 말했다.
“페넬로페 언니, 잠들어 있네. 평온하게 사는 신들께서 언니가 그토록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으실 거야. 언니의 아들은 신들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으니, 머지않아 언니 곁으로 돌아올 거야.”
꿈의 문턱에서 달콤한 잠에 빠져 있던 페넬로페가 대답했다.
“동생아, 어찌하여 여기까지 왔니? 너는 좀처럼 이곳에 오지 않잖니? 하지만 워낙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그렇다면 이제 내가 울음을 그치고, 나를 괴롭히는 온갖 슬픈 생각도 떨쳐 버려야 한다는 말이니? 나는 용감하고 사자처럼 굳센 남편을 잃었어. 세상에 있을 수 있는 온갖 좋은 덕목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고, 그 이름은 헬라스와 중부 아르고스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지. 그런데 이제 사랑하는 아들마저 배를 타고 떠나 버렸어. 세상 물정에 익숙하지도 않고, 거친 일을 겪어 본 적도 없으며, 사람들 속을 돌아다니는 데에도 익숙하지 않은 철없는 아이인데 말이야. 나는 남편보다도 아들이 더 걱정돼. 아들이 낯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또 바다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온몸이 떨릴 지경이야. 내 아들에게는 적이 너무 많아. 그 적들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며 벼르고 있어.”
그러자 환영이 말했다.
“용기를 내, 언니. 그렇게 두려워하지 마. 텔레마코스와 함께 간 사람 가운데에는 많은 이들이 곁에 두고 싶어 할 만큼 든든한 존재가 한 명 있어. 바로 아테나야. 언니에게 연민을 품고 있는 것도 아테나이며, 언니에게 이 말을 전하도록 나를 보낸 것도 아테나야.”
그러자 페넬로페가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신이거나 신의 명을 받고 이곳에 온 것이라면, 또 다른 불행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게 말해 줘. 그는 아직 살아 있니, 아니면 이미 죽어 하데스의 집에 가 있니?”
그러자 환영이 말했다.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확실히 말해 줄 수는 없으니, 그런 대화는 부질없어.”
그 후 환영은 그녀가 들어왔던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하지만 꿈이 워낙 생생했던 탓에 페넬로페는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한결 개운했고 위로받은 마음이었다.
한편 구혼자들은 배에 올라타 바다를 가로질러 항해하면서 텔레마코스를 죽일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타카와 사모스 사이의 항로 한가운데에는 아스테리스라는 작은 바위섬이 하나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섬인데, 양쪽에 각각 배를 댈 수 있는 항구가 하나씩 있었다. 그래서 아카이아인들은 그곳에 몸을 숨기고 매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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