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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고전/오디세이아

오디세이아 제5권 2

by 복 짓는 사람 2026.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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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자 두 사람은 동굴 깊은 곳으로 들어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장미빛 손가락을 가진 아침의 여신 에오스가 찾아오자, 오디세우스는 겉옷과 망토를 입었고, 여신은 얇고 아름다운 하얀 옷을 입은 뒤 허리에 황금 띠를 두르고 머리에는 베일을 썼다. 여신은 즉시 오디세우스의 출발을 돕기 시작했다. 양날이 날카롭게 서고 올리브나무 자루가 튼튼하게 박힌 큰 청동 도끼와 잘 다듬어진 자귀를 그에게 주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를 섬의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하늘 높이 솟은 오리나무와 포플러나무,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나무들은 햇볕에 잘 말라 있었기에 배를 만들어 물에 띄우기에 알맞았다. 칼립소가 나무 위치를 알려주고 돌아가자,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스무 그루의 나무를 베어 내고 자귀로 매끄럽게 다듬은 뒤 자를 대어 솜씨 좋게 각을 잡았다. 그 사이 칼립소가 송곳을 가져다주자 나무들에 구멍을 뚫고 목재들을 나무못과 쇠못으로 견고하게 연결했다. 오디세우스는 숙련된 조선공이 큰 배의 바닥을 짜듯 널찍하게 뗏목의 틀을 잡고, 늑골 위에 갑판을 얹은 뒤 둘레에 난간을 둘렀다. 돛대와 활대, 그리고 방향을 잡을 키도 만들었다. 파도를 막기 위해 버드나무 가지로 뗏목 둘레에 울타리를 치고 그 위에 나무를 빽빽하게 쌓았다. 칼립소가 가져다준 아마포로 돛도 훌륭하게 만들어 달고, 밧줄과 줄을 당겨 고정시켰다. 마지막으로 지렛대를 이용해 뗏목을 바다로 밀어 넣었다.
그는 나흘 만에 모든 일을 끝냈다. 닷새째 되는 날, 칼립소는 오디세우스를 씻겨 깨끗한 옷을 입힌 뒤 섬에서 떠나보냈다. 그녀는 검은 포도주가 가득 든 염소 가죽 자루 하나와 그보다 더 큰 물 자루 하나를 주었다. 또 먹을 것을 가득 담은 자루도 건네주었고, 질 좋은 고기도 넉넉하게 마련해 주었다. 칼립소는 그에게 순하고 따뜻한 순풍까지 불어주었다. 오디세우스는 기쁜 마음으로 돛을 펼쳤고, 키를 능숙하게 조종하며 뗏목을 몰았다.
그는 눈을 한순간도 감지 않았다. 밤에도 눈을 부릅뜨고 플레이아데스와 늦게 지는 목동자리의 별, 그리고 사람들이 큰곰자리라고도 부르는 곰자리를 지켜보았다. 곰자리는 오리온자리를 향한 채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다른 별들과 달리 오케아노스의 물속으로 지지 않는 별자리였다. 칼립소가 곰자리를 항상 왼쪽에 두고 항해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바다를 건너고 또 건넌 끝에 열여덟째 날이 되었을 무렵, 마침내 멀리서 방패처럼 수평선 위로 파이아케스인의 땅에 있는 산들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에티오피아에서 돌아오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솔리미 산맥에서 멀리 항해 중인 오디세우스를 발견했다. 포세이돈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이럴 수가! 내가 에티오피아에 가 있는 동안 신들이 오디세우스의 운명을 바꾸었단 말인가? 벌써 파이아케스 땅 가까이 가다니. 그곳에 다다르면 그자는 시련에서 벗어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벗어나게 두지는 않겠다. 앞으로 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할 거야!”
포세이돈은 먹구름을 모으고 삼지창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다에 휘저어 모든 바람을 사납게 일으켰다. 순식간에 땅과 바다와 하늘이 온통 먹구름에 뒤덮였고, 하늘은 밤처럼 어두워졌다. 동풍과 남풍, 북풍과 서풍이 한꺼번에 오디세우스에게 몰아쳤다. 무시무시한 파도가 일어나자 오디세우스는 절망에 빠졌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혼잣말을 했다.
“아아, 내 운명은 이제 어찌 될 것인가! 칼립소가 바다에서 큰 시련을 겪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모두 맞았구나.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고 풍랑이 사방에서 밀려드니 이제 나는 죽은 목숨이다. 트로이 땅에서 아트레우스의 아들들을 위해 싸우다 전사한 다나오스 영웅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복된 자들인가!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두고 트로이인들과 격전을 벌이던 그날 나도 죽었더라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르고 아카이아인들이 내 이름을 기렸을 텐데…. 이제는 아무도 모르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한 파도가 뗏목을 덮쳤고, 뗏목은 곤두박질쳤다. 오디세우스는 키를 놓치고 바다로 튕겨 나갔다. 강렬한 폭풍에 돛대가 부러지고 돛과 활대가 바다로 떨어졌다. 칼립소가 준 옷이 물을 잔뜩 먹어 오디세우스는 한참 동안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다가, 겨우 머리를 내밀고 입안 가득 들어찬 쓴 바닷물을 뱉어냈다. 그런데도 그는 뗏목을 놓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헤엄쳐 올라타 죽음을 면했다. 거센 파도는 가을바람에 민들레 홀씨가 도로 위에서 뒹굴듯 뗏목을 이러저리 던지며 공돌이를 하는 듯했다.
이 광경을 카드모스의 딸이자 바다의 여신이 된 이노가 지켜보았다. 이노는 원래 필멸의 인간이었지만, 훗날 바다의 여신 레우코테아로 승격된 존재였다. 오디세우스를 불쌍히 여긴 여신은 갈매기처럼 수면 위로 올라와 뗏목 위에 앉아 말했다.
“불쌍한 이여, 포세이돈이 어찌 이리도 당신에게 분노하는 것인가요? 하지만 그가 아무리 사납게 굴어도 당신을 죽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당신은 분별 있는 사람이니 내 말을 들으세요. 옷을 벗어던지고 뗏목은 바람이 부는 대로 내버려 두세요. 그리고 파이아케스인의 땅을 향해 헤엄쳐 가세요. 그곳에서는 당신에게 더 나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이 신비한 베일을 가슴에 두르세요. 이것을 두르고 있는 한 어떤 해도 입지 않을 것입니다. 육지에 닿거든 즉시 이 베일을 벗어 바다 멀리 던져버리고 그곳을 떠나세요.”
이노는 오디세우스에게 베일을 건네주고는 다시 갈매기처럼 어두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오디세우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절망에 빠져 혼잣말을 했다.
“아아, 또 어떤 신이 나를 파멸시키려고 뗏목을 버리라고 유혹하는 것인가? 해안이 아직 멀어 보이니 지금은 저 말을 따르지 않겠다. 뗏목이 버텨주는 한 어떻게든 붙잡고 있으리라. 그러다 파도에 뗏목이 부서지면 그때 헤엄치겠다. 그 수밖에 없다.”
그가 망설이고 있을 때, 포세이돈이 산더미 같은 거대한 파도를 보내 뗏목을 때렸다. 뗏목은 거센 돌풍에 날아가는 겨처럼 산산조각이 났다. 오디세우스는 겨우 나무토막 하나에 말을 타듯 올라타 칼립소가 준 옷을 벗어던지고, 이노의 베일을 가슴에 묶은 뒤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포세이돈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어디 그 꼴로 파이아케스인들을 만날 때까지 바다를 헤엄쳐 보아라. 내가 너를 쉽게 놓아 주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포세이돈은 채찍을 휘둘러 아이가이에 있는 자신의 궁전으로 향했다. 아테나는 오디세우스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여신은 북풍을 제외한 모든 바람의 길을 막아 파도를 잠잠하게 만들고,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파이아케스 땅에 다다를 수 있도록 센 북풍을 불게 했다. 오디세우스는 이틀 밤낮을 바다 위에서 떠돌며 죽음의 공포와 싸웠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바람이 잦아들고 바다가 바람 한 점 없이 평온해졌다. 오디세우스는 너울을 타고 몸을 높이 들어 올리면서 앞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육지와 나무들을 발견했다. 병마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신들의 은혜로 기적처럼 회복했을 때 자식들이 기뻐하듯, 오디세우스 역시 육지를 발견하고 온 힘을 다해 헤엄쳤다. 그러나 해안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위에 부딪히는 무시무시한 굉음이 들려왔다. 모든 것이 물보라에 휩싸여 있었다. 그곳에는 배가 정박할 항구도, 어떤 피난처도 없었다. 눈앞에는 곶과 낮게 솟은 바위들, 그리고 절벽들만 이어져 있었다.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다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는 절망에 빠져 혼잣말을 했다.
“아아, 제우스께서 내가 모든 희망을 포기했을 때 마침내 육지를 보여주셨으나 내릴 곳이 없구나! 해안은 온통 바위투성이고 거센 파도가 들이치고 있다. 바위는 미끄럽고 바다에서 거의 수직으로 솟아 있다. 바로 그 밑에는 물이 깊어 발 디딜 곳이 없어 기어오를 수도 없다. 내가 물에서 빠져나오려는 순간 거대한 파도가 나를 들어올려 바위에 내동댕이친다면 어찌하겠는가? 육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끔찍한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백사장을 찾아 멀리 돌다가는 다시 허리케인이 나를 바다로 휩쓸어갈지도 모른다. 게다가 하늘이 거대한 바다 괴물을 보내 나를 공격할 수도 있다. 암피트리테★는 그런 괴물들을 수도 없이 길러낸다고 하지 않는가. 무엇보다 포세이돈이 나에게 몹시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망설이는 순간, 거대한 파도가 그를 바위로 내동댕이쳤다. 아테나가 지혜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바위에 부딪혀 뼈도 추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바위를 양손으로 붙잡고 신음하며 견뎌냈다. 파도가 쓸려 나갈 때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나, 다시 밀려드는 파도가 그를 바닷속으로 끌어당겼다. 마치 문어를 바위에서 떼어낼 때 빨판이 찢어지며 바위 조각이 함께 딸려가듯 바위는 오디세우스의 억센 손가락 가죽을 찢어놓았다. 불쌍한 오디세우스는 아테나 여신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했더라면, 비록 운명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더라도 분명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는 파도가 크게 부딪히는 곳을 피해 바다 쪽으로 다시 헤엄쳐 나왔다. 그는 계속 해안을 바라보며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있는지 살폈다. 파도를 비스듬히 받아낼 수 있는 곶이나 모래톱 같은 곳이 있는지도 찾아보았다. 얼마쯤 헤엄치자 마침내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입구에 다다랐다. 그는 그곳이 바위가 없고 바람을 막아줄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했다. 강물의 흐름을 느끼며 속으로 기도했다.
“이 강을 다스리시는 신이시여, 누구신지는 모르오나 포세이돈의 분노를 피해 찾아온 저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길 잃은 자는 신에게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나니, 이 고통 속에서 당신의 물줄기에 엎드려 자비를 청하나이다.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위대한 신이시여. 저는 당신께 도움을 청하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강의 신은 흐름을 멈추고 파도를 잠잠하게 만들어 그를 무사히 강 입구로 인도해 주었다. 뭍에 다다른 오디세우스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몸은 부어 올랐고 입과 코에서는 바닷물이 뿜어져 나왔으며, 숨도 쉬지 못한 채 기절해 버렸다.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그는 가슴에 맸던 이노의 베일을 풀어서 흘러가는 강물에 던졌다. 그러자 파도가 베일을 실어가 이노가 두 손으로 받아갔다. 오디세우스는 강가를 벗어나 갈대가 무성한 곳에 몸을 누이고, 풍요로운 대지에 입을 맞추었다.
“아아, 이제 내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모든 일이 결국 어떻게 끝나게 될 것인가?”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했다.
“이 강가에서 밤을 지새우자니 지칠 대로 지친 몸이 매서운 추위와 습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것 같고, 산으로 올라가 숲속에 누워 잠들자니 추위를 피하고 편안하게 밤을 보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야수들의 먹이가 될까 두렵구나.”
고심 끝에 그는 물가에서 멀지 않은 높은 언덕 위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한 그루의 밑동에서 두 줄기의 가지가 뻗어 있는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하나는 접붙이지 않은 어린 가지였고, 다른 하나는 접붙인 가지였다. 두 가지가 워낙 촘촘하게 서로 얽혀 자라고 있어서, 아무리 거센 돌풍이 불어도 그 사이로 뚫고 들어올 수 없었고, 햇빛도 그 틈으로 들어오지 못했으며, 빗물조차 스며들 수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그 아래로 기어들어가 누울 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죽은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혹독한 겨울이라 해도 두세 사람이 몸을 덮고 잘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는 이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 그리고 그곳에 몸을 눕히고 나뭇잎을 사방에서 끌어모아 몸을 덮었다. 마치 인가와 멀리 떨어진 외딴 시골에서 불씨를 보존하기 위해 재 속에 숯불을 묻어두듯, 오디세우스는 낙엽 속으로 몸을 파묻었다. 그러자 아테나 여신이 그의 눈에 달콤한 잠을 내려주어 눈꺼풀을 감겼고, 그간의 모든 고통과 시련을 잊고 깊은 잠에 들게 해주었다.

 

★ 암피트리테: 바다의 여신이자 포세이돈의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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