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권 알키노오스왕의 궁전에 가다
오디세우스는 숲에 남아 신에게 기도했다. 한편 나우시카는 도성을 향해 수레를 몰았다. 아버지의 집에 도착해 성문 앞에서 수레를 세우자, 신들처럼 아름다운 그녀의 오라버니들이 달려나와 노새를 수레에서 풀고 옷가지를 집 안으로 날라다 놓았다. 나우시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 그곳에서 늙은 하녀 에우리메두사가 그녀를 위해 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이 늙은 여인은 아페이라에서 배를 타고 끌려온 사람이었다. 알키노오스가 포세이돈의 백성인 파이아케스인들의 왕이 되어 백성들이 그를 신처럼 받들고 따랐을 때, 알키노오스왕에게 전리품으로 바쳐진 사람이었다. 에우리메두사는 나우시카의 유모로서, 나우시카의 방에 불을 피워 놓고 저녁 식사를 가져다주었다.
얼마 후 오디세우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도성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테나가 그의 주위에 짙은 안개를 드리웠다. 혹시 오만불손한 파이아케스인들이 그를 만나 무례하게 대하거나, 그가 누구인지 캐물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가 막 도성으로 들어서려 할 때, 아테나가 물동이를 든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그의 앞에 서자 오디세우스가 물었다.
“얘야, 내게 알키노오스왕의 궁전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겠느냐? 나는 불행한 처지에 놓인 떠돌이 나그네란다. 이곳 사람도, 이 나라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지.”
그러자 소녀로 변한 아테나가 말했다.
“예, 제가 나그네께서 찾으시는 왕의 집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알키노오스왕께서는 제 아버지의 집에서도 아주 가까운 곳에 사십니다. 제가 앞장서서 길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다만 가시는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마시고,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말며,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마십시오. 이곳 사람들은 낯선 이들을 몹시 꺼리며, 먼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이어서, 포세이돈의 은총을 받아 배를 타고 바다를 누빕니다. 그들의 배는 생각만큼이나 빠르게 미끄러져 가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바다 위를 달립니다.”
이 말을 마친 아테나는 앞장섰고 오디세우스는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파이아케스인들 가운데 그를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위대한 여신 아테나가 그를 가엾게 여기고 짙은 어둠의 안개로 감싸 숨겨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디세우스는 항구와 배,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과 도성의 높은 성벽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성벽 꼭대기에는 방책까지 둘러쳐져 있어 매우 웅장하고 인상적이었다. 마침내 왕의 궁전에 이르자 아테나가 말했다.
“나그네여, 당신이 찾는 집이 바로 이곳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여러 귀한 분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시고 곧장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낯선 사람이라도 용기 있는 사람이 자신의 뜻을 이루는 법이니까요. 먼저 왕비를 찾아가십시오. 그분의 이름은 아레테입니다. 왕비께서는 남편 알키노오스왕과 같은 혈통을 이어받은 분입니다. 두 분은 모두 포세이돈의 후손입니다. 포세이돈은 아름다운 여인 페리보이아와 나우시토오스를 낳았습니다. 페리보이아는 한때 거인족을 다스렸던 에우리메돈의 막내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우리메돈은 불행한 백성을 멸망시키고 자신도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포세이돈은 페리보이아와 동침했고, 그녀는 위대한 나우시토오스를 낳았습니다. 나우시토오스는 파이아케스인들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 렉세노르와 알키노오스가 있었고, 렉세노르는 신혼의 몸으로 아들을 남기지 못한 때에 아폴론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렉세노르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이가 바로 아레테였습니다. 알키노오스는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집안을 이끄는 모든 여인 가운데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존귀하게 대했습니다. 아레테 왕비께서는 지금도 자녀들과 알키노오스왕,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더없이 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왕비가 도성을 돌아다닐 때마다 마치 여신을 맞이하듯 인사를 올립니다. 왕비는 마음도 지혜롭고 품성도 훌륭한 분입니다. 또한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여인들이 있으면 그 남편들이 서로 다툼을 벌였을 때 화해하도록 도와주기도 하지요. 그러니 왕비의 마음을 먼저 얻으십시오. 그렇게만 하신다면 무사히 당신의 고향과 나라로 돌아가 고향에 있는 가족과 벗들을 만날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남긴 아테나는 스케리아를 떠나 바다 위로 날아갔다. 그녀는 마라톤과 아테네의 넓은 길을 지나 에렉테우스의 거처로 들어갔다.★
이제 오디세우스는 알키노오스의 궁전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궁전의 문턱에 이르기 전에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생각했다. 궁전의 화려함이 태양이나 달처럼 눈부셨기 때문이었다. 양쪽 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청동으로 되어 있었고, 그 위의 장식 띠는 푸른 에나멜로 빛나고 있었다. 문은 황금으로 만들어져 은으로 된 기둥에 매달려 있었다. 그 기둥은 청동으로 된 바닥에서 솟아 있었다. 문 위의 가로대 역시 은으로 되어 있었고, 문고리는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황금 문 양쪽에는 황금과 은으로 만든 사냥개 조각상이 서 있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자신의 뛰어난 솜씨로 알키노오스왕의 궁전을 지키도록 특별히 만든 것들이었다. 그래서 이 사냥개들은 불멸하며 결코 늙지 않았다. 벽을 따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곳곳에 좌석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궁전의 여인들이 정성껏 짠 고운 천을 덮어 놓았다. 고귀한 파이아케스인들은 이곳에 앉아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어느 계절이든 먹을 것이 풍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받침대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젊은이들의 형상이 세워져 있었는데, 그들은 손에 불 밝힌 횃불을 들고 있어 밤에 식탁에 앉은 이들에게 빛을 비추었다.
이 집에는 시녀가 쉰 명이나 있었다. 어떤 시녀는 맷돌로 황금빛 곡식을 갈았고, 어떤 시녀는 베틀에서 베를 짜거나 앉아서 실을 잣고 있었다. 베틀의 북은 마치 사시나무 잎이 팔랑이는 것처럼 앞뒤로 오갔고, 그들이 짠 아마포는 어찌나 촘촘한지 기름조차 스며들지 않을 정도였다. 파이아케스인들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항해사인 것처럼, 이곳 여인들 역시 길쌈 솜씨에서는 다른 모든 이들을 뛰어넘었다. 아테나 여신이 온갖 유익한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그들 또한 지혜와 재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바깥뜰의 문을 나서면 사방이 담으로 둘러싸인 약 4에이커(약 5천 평) 크기의 넓은 정원이 있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가득했다. 배나무와 석류나무, 그리고 가장 맛있는 사과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탐스러운 무화과나무도 있었고, 무르익은 올리브나무도 있었다. 그곳의 열매는 일 년 내내 썩지도 않고 떨어져 없어지지도 않았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그러했다. 공기가 워낙 온화해서 묵은 열매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새 열매가 익었기 때문이다. 배나무에는 늘 배가 열리고,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열렸으며, 무화과나무에도 늘 무화과가 열렸다.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였다. 훌륭한 포도밭이 하나 있었는데, 그중 평평한 곳에서는 포도가 말라 건포도가 되어가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포도를 수확하고 있었다. 또 어떤 곳에서는 포도를 술통에 넣어 밟고 있었으며, 그보다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는 이제 막 꽃이 지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 포도송이들이 있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포도알의 빛깔이 막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정원의 가장 안쪽에는 아름답게 가꾸어진 꽃밭이 있었는데, 그곳의 꽃들은 일 년 내내 피어 있었다. 정원에는 두 개의 물줄기가 흘렀다. 하나는 정원 전체에 수로를 내어 물을 흘려보냈고, 다른 하나는 바깥뜰의 땅 밑으로 흘러 궁전까지 이어졌다. 도성의 사람들은 이 물에서 물을 길어 갔다. 이렇듯 알키노오스왕의 저택은 신들이 부여한 풍요와 화려함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에 잠시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충분히 살펴본 뒤 문턱을 넘어 궁전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파이아케스인들의 모든 우두머리들이 헤르메스에게 마지막 술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밤을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헤르메스에게 술을 바치는 의식을 치렀다. 오디세우스는 아테나가 감싸준 어둠의 장막에 여전히 모습을 숨긴 채 궁전의 뜰을 곧장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아레테 왕비와 알키노오스왕 앞에 이르렀다. 그는 왕비의 무릎에 두 손을 얹었다. 바로 그 순간 신비로운 어둠이 그에게서 걷히며 그의 모습이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났다. 그곳에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난 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놀라 말문을 잃었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곧바로 간청하기 시작했다.
“위대한 렉세노르의 따님이신 아레테 왕비님, 저는 지금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왕비님께 간청드립니다. 왕비님의 남편이신 알키노오스왕께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손님들께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하늘이 당신들에게 오래도록 건강과 행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누리는 재산과 나라에서 받은 모든 명예를 자녀들에게 온전히 물려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디 제가 가능한 한 빨리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는 오랫동안 고난을 겪으며 가족, 친구들과도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한 뒤 난롯가의 재 속에 앉았다. 그러자 모두가 말 없이 그를 지켜보았다. 얼마 후, 파이아케스인들 가운데 나이가 많은 원로이자 말을 아주 잘하는 늙은 영웅 에케네오스가 솔직하고 분명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알키노오스왕이시여, 왕께서 이처럼 나그네를 난롯가의 재 속에 앉아 있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은 왕의 명예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제 왕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 나그네에게 일어나라고 하시고, 은으로 장식한 의자에 앉게 하십시오. 그리고 시종들에게 포도주와 물을 섞으라고 명하십시오. 선한 마음으로 보호를 청하는 모든 이들을 보호하시고 천둥을 다스리시는 제우스께 우리가 술을 올릴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집사에게도 명하여 집에 있는 것 가운데 무엇이든 나그네에게 차려주어 먹게 하십시오.”
알키노오스왕은 에케네오스의 말을 듣자 오디세우스의 손을 잡고 그를 난롯가에서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앉아 있던 가장 사랑하는 아들 라오다마스의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러자 한 시녀가 아름다운 황금 주전자에 물을 담아 가져와 은 대야에 부어 오디세우스가 손을 씻게 했다. 그리고 깨끗한 식탁을 그의 곁으로 끌어다 놓았다. 이어 계급이 높은 시종이 빵을 가져와 내놓고, 궁전에 있는 여러 좋은 음식들을 오디세우스 앞에 차려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셨다. 그러자 알키노오스왕이 한 시종에게 말했다.
“폰토노오스, 술을 섞어 한 잔씩 돌리도록 하라. 우리가 천둥을 다스리시는 제우스께 술을 올리도록 하자. 그분께서는 선한 마음으로 보호를 청하는 모든 이들을 지켜주시는 분이시다.”
폰토노오스는 포도주와 물을 섞어 모든 사람에게 잔을 돌린 뒤 신에게 술을 올리게 했다. 그들이 술을 올리고 각자 원하는 만큼 마시고 나자, 알키노오스왕이 입을 열었다.
“파이아케스인들의 원로들이며 도시의 지도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그대들은 이미 저녁을 먹었으니 이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드시오. 내일 아침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원로들을 불러 손님을 위한 희생 제물을 올리고 성대한 연회를 베풀겠소.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이 나그네를 어떻게 집으로 돌려보낼 것인지 의논하겠소. 고향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아무런 고생이나 불편을 겪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해를 입지 않도록 우리가 잘 보살펴야 하오. 하지만 일단 고향에 도착하고 나면, 그 뒤로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타고난 운명을 좋든 나쁘든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어쩌면 이 나그네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멸의 신일지도 모르오. 그렇다면 신들은 지금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관례를 깨는 셈이 되는군요. 지금까지 신들은 그들에게 백 마리의 희생 제물을 바칠 때면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셨소. 우리와 한 식구처럼 연회에 함께 앉으셨지. 또 어떤 외로운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신들 가운데 하나를 만난다 해도 신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으셨소. 우리 파이아케스인들은 키클롭스나 야만스러운 거인족만큼이나 신들과 가까운 혈족이기 때문이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알키노오스왕이시여, 부디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는 몸도 마음도 불멸의 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여러분 가운데 가장 큰 고난을 겪은 사람들과 가장 비슷한 처지에 있습니다. 하늘이 제게 겪게 한 온갖 고난을 모두 말씀드린다면, 왕께서는 제가 그들보다도 훨씬 불행하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에게 저녁 식사를 하게 해주십시오. 배고픔이라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것이어서, 아무리 큰 고난을 겪고 있어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도록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몹시 괴롭지만, 제 배는 그래도 먹고 마시라고 재촉합니다. 모든 슬픔을 잠시 잊고 오직 제 배를 다시 채우는 일에만 마음을 쓰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왕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하십시오. 날이 밝는 대로 제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다시 한번 제 재산과 제 종들, 그리고 제 집안의 모든 영화를 볼 수만 있다면, 그 뒤에는 기꺼이 죽음을 맞이해도 좋습니다.”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그의 말을 옳다고 여겼고, 합당한 말을 했으니 그를 고향까지 호송해주기로 뜻을 모았다. 그들은 술을 올리는 의식을 마치고 각자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신 뒤 모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었다. 오디세우스만은 회랑에 남아 아레테 왕비와 알키노오스왕과 함께 있었고, 시종들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식탁의 물건들을 치우고 있었다.
아레테 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왕비는 오디세우스가 입고 있는 셔츠와 망토, 그리고 좋은 옷들이 자신과 자신의 시녀들이 직접 만든 것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왕비가 말했다.
“나그네여,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리고 당신에게 이 옷을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이곳에 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왕비님, 제가 겪은 불행을 처음부터 모두 말씀드리려면 이야기가 아주 길어질 것입니다. 하늘의 손길이 제게 너무도 무겁게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왕비님께서 물으신 것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다 멀리 떨어진 곳에 오기기아라고 불리는 섬이 하나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틀라스의 딸인 영리하고 강력한 여신 칼립소가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인간이든 신이든 이웃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운명은 저를 그 여신의 난롯가로 데려갔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쓸쓸한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제우스께서 벼락으로 제 배를 내리쳐 바다 한가운데서 산산이 부수셨기 때문입니다. 용감했던 제 전우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배의 용골에 매달려 9일 동안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습니다. 마침내 10일째 되는 날 밤이 어두워졌을 때 신들이 저를 위대한 여신 칼립소가 사는 오기기아섬으로 데려갔습니다. 칼립소는 저를 거두어 주었고 더없이 친절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저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어 결코 늙지 않게 해주겠다고까지 했지만,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칼립소와 꼬박 7년을 함께 지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제게 준 좋은 옷은 제 눈물로 흠뻑 적셨습니다. 그러다가 8년째 되었을 때, 칼립소는 스스로 저를 떠나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제우스께서 그렇게 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변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제게 뗏목을 만들게 하고, 빵과 포도주를 넉넉하게 실어주었습니다. 좋은 옷도 마련해주었으며, 따뜻한 순풍까지 보내주었습니다. 저는 17일 동안 바다를 항해했습니다. 그리고 18일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왕비님의 땅에 있는 산들의 윤곽이 처음으로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고난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포세이돈께서 제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으셨습니다. 제게 거센 폭풍을 일으켜 바다는 무서울 정도로 높이 솟아올랐고, 저는 더 이상 뗏목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거센 폭풍에 뗏목은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저는 물속에서 헤엄쳐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바람과 해류가 저를 해안까지 밀어왔지만, 저는 그곳에서 육지로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그곳은 상륙하기 힘든 곳이었고, 파도가 저를 바위를 향해 내리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쳤습니다. 그러다가 강 하나에 이르렀습니다. 그곳이 육지에 오르기에 가장 적합해 보였습니다. 바위도 없었고 바람도 막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물 밖으로 나와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강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온몸을 나뭇잎으로 덮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제게 아주 깊은 잠을 내려주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저는 그 나뭇잎 사이에서 깊이 잠들어 다음 날 오후까지 계속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때 저는 왕비님의 따님과 그 시녀들이 해변에서 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왕비님의 따님은 마치 여신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놀라울 만큼 마음씨가 훌륭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흔히 생각이 짧다고 여겨지기 마련인데, 그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게 빵과 포도주를 넉넉히 주었고, 강에서 몸을 씻게 한 뒤, 지금 제가 입고 있는 옷까지 주었습니다. 왕비님, 고통스러운 일이기는 했지만, 이제 왕비님께서 궁금해하신 것에 대해서는 모든 진실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알키노오스왕이 말했다.
“나그네여, 내 딸이 잘못한 일이 있었구려. 그대가 처음으로 도움을 청한 사람이 내 딸이었다면, 어째서 시녀들과 함께 곧장 그대를 내 집으로 데려오지 않았단 말인가?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부디 왕께서는 따님을 꾸짖지 마십시오. 따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따님은 저에게 시녀들과 함께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혹시 왕께서 저를 보시고 불쾌하게 여기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때로는 조금 의심을 품기도 하고 예민해지기도 하는 법입니다.”
알키노오스왕이 대답했다.
“나그네여, 나는 아무 이유 없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오. 무엇이든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늘 더 나은 법이지. 하지만 아버지 제우스와 아테나, 아폴론께 맹세하건대, 이제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 직접 보았고, 그대가 나와 얼마나 생각이 비슷한지도 알게 되었으니, 나는 그대가 이곳에 머물러 내 딸과 혼인하고 내 사위가 되었으면 좋겠소. 그대가 이곳에 머무르겠다면 집과 토지도 마련해 주겠소. 하지만 그대가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그대를 이곳에 붙잡아 두지는 않을 것이오. 그대가 확신할 수 있도록 내일 당장 그대를 고향으로 호송하는 일을 처리하겠소. 그대는 원한다면 여행하는 내내 잠을 자도 좋소. 우리 사람들이 잔잔한 바다를 가로질러 그대를 고향까지 데려다줄 것이오. 아니면 그대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다주겠소. 그곳이 에우보이아보다 훨씬 먼 곳이라 해도 말이오. 노란 머리의 라다만티우스를 모시고 가이아의 아들 티티오스를 보러 갔던 내 백성들은 에우보이아가 세상에서 가장 먼 곳이라고 말하더군. 그런데도 그들은 아무런 고생 없이 하루 만에 그곳까지 항해하고 다시 돌아왔다고 하오. 그대는 우리의 배가 다른 모든 배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그리고 우리 뱃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한 노잡이들인지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오.”
오디세우스는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소리 내어 기도했다.
“아버지 제우스시여, 알키노오스왕께서 말씀하신 모든 일을 그대로 이루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왕께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명성을 얻으실 것이며, 저 역시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레테 왕비는 시녀들에게 성문 위에 있는 방에 침상을 마련하라고 명했다. 질 좋은 붉은 깔개를 깔고, 그 위에는 담요를 펼치고, 오디세우스가 몸을 덮을 수 있도록 모직 망토도 마련하게 했다. 시녀들은 횃불을 손에 들고 밖으로 나갔다. 침상을 모두 마련한 뒤 오디세우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나그네여, 일어나십시오. 저희와 함께 가시지요. 침상이 준비되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기 위해 그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오디세우스는 떠들썩한 성문 위쪽 방에 마련된 침상에서 잠들었다. 한편 알키노오스왕은 궁전 안쪽에서 아내인 아레테 왕비를 곁에 두고 누워 잠을 청했다.
★작가는 마라톤이 아테네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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