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권 2 보기
안티노오스가 대답했다.
“텔레마코스, 그 무슨 오만한 소리요? 모든 구혼자가 내가 주는 만큼만 주어도 석 달 동안은 거지가 다시 이곳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식탁 아래에서 고운 발을 올려놓고 있던 발판을 끌어내어 오디세우스에게 던지려는 듯이 집어 들었다. 반면 다른 구혼자들은 모두 오디세우스에게 무엇인가를 주어 오디세우스의 자루는 빵과 고기로 가득 찼다. 오디세우스는 구혼자들이 준 것을 가지고 문턱으로 돌아가 먹으려 했다. 하지만 먼저 안티노오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나리, 제게 무엇인가를 주십시오. 설마 여기서 가장 가난한 분은 아니시겠지요. 보아하니 그대는 우두머리이며, 이들 가운데서도 으뜸가는 분인 듯합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더 후하게 베풀어야 마땅합니다. 그렇게 하신다면 제가 그대의 후한 마음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겠습니다.
나 역시 한때는 부유한 사람이었고 훌륭한 집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무엇을 원하든 많이 베풀었습니다. 하인도 수없이 거느리고 있었고, 풍족하게 살며 부유한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면 무엇이든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우스께서는 그것을 모두 빼앗아 가셨습니다. 제우스께서는 나를 떠돌아다니는 약탈자들과 함께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긴 항해였고, 나는 그 일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나는 아이깁토스강에 배를 세워 두고 부하들에게 배 곁을 지키며 경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높은 곳마다 정찰병을 보내 사방을 살펴보게 했습니다. 하지만 부하들은 내 명령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이집트 땅을 약탈했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곧 도성에도 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날이 밝자 사람들은 전쟁의 함성을 듣고 들판으로 몰려나왔고, 평원은 기병과 보병, 햇빛에 번쩍이는 갑옷으로 가득 찼습니다. 제우스께서는 내 부하들에게 공포를 불어넣으셨고, 부하들은 더 이상 적과 맞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은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을 죽이고 나머지는 사로잡아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나는 이집트인들에게 붙잡힌 뒤, 마침 그들을 찾아온 한 사람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는 키프로스에서 큰 세력을 가진 이아소스의 아들 데메토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를 키프로스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온갖 불행을 겪은 끝에 지금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안티노오스가 말했다.
“대체 어떤 신이 저녁 식사 시간에 저런 성가신 존재를 보냈단 말인가? 당장 뜰 밖으로 나가라. 그렇지 않으면 네 건방지고 끈질긴 구걸에 대한 대가로 다시 한번 너에게 이집트와 키프로스를 맛보게 해주겠다. 너는 구걸했고, 사람들은 너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주변에 재물이 넘쳐나니 남의 재산으로 후하게 구는 것은 쉬운 일이지.”
이에 오디세우스는 돌아서서 자리를 뜨며 말했다.
“당신은 겉모습은 훌륭하지만 품행은 그렇지 못하구려. 당신은 당신 집에서도 가난한 자에게 소금 한 꼬집도 아까워할 사람입니다. 남의 집의 풍족함 속에서도 빵 한 조각조차 줄 마음을 먹지 못하니 말입니다.”
이 말에 안티노오스는 매우 화가 나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너는 이곳을 나가기 전에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 말을 하며 그는 발받침 의자를 던져 오디세우스의 오른쪽 어깨뼈 위쪽을 맞췄다. 오디세우스는 바위처럼 단단히 서서 그 충격에 흔들리지도 않았고, 다만 침묵 속에서 머리를 흔들며 복수를 다짐했다. 오디세우스는 문턱으로 돌아가 잘 채워진 자루를 발밑에 놓고 앉았다. 그리고 구혼자들을 향해 말했다.
“페넬로페 왕비의 구혼자들이여, 내 말을 들어 주시오. 지금 내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한마디하겠소. 사람이 자신의 재산이나 양이나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맞는 것이라면 아픔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 법이라오. 하지만 안티노오스는, 그저 툭하면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는 이 가련한 배를 채우려던 나를 때렸소. 가난한 자에게도 신들과 복수의 신들이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간청하오. 안티노오스가 결혼하기도 전에 불행한 최후를 맞게 해주시기를 바라오.”
그 말을 듣고 안티노오스가 소리쳤다.
“거기 그대로 앉아서 조용히 음식을 처먹든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꺼져라! 더 지껄인다면 네 팔다리를 묶어 뜰 밖으로 질질 끌어내어 하인들을 시켜 산 채로 가죽을 벗겨버릴 테니….”
다른 구혼자들은 이 일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그중 한 젊은이가 말했다.
“안티노오스여, 그 가엾은 떠돌이 나그네를 때린 것은 잘못이오. 만약 그가 신이라면 자네에게 큰 화가 미칠지도 모르오. 신들은 이방인으로 변장하고 세상을 돌아다니며 누가 악한 짓을 하고 누가 의롭게 사는지 살피곤 하니까요.”
구혼자들이 이렇게 말했지만, 안티노오스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한편 텔레마코스는 자기 아버지가 맞은 일에 몹시 분노했다.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말없이 고개를 흔들며 복수할 일을 마음속에 깊이 새겼다. 페넬로페는 거지 나그네가 연회가 벌어지는 회랑에서 맞았다는 말을 듣고 시녀들 앞에서 말했다.
“아폴론께서 안티노오스에게 그가 했던 방법대로 내려치시기를 바라노라.”
그러자 유모 에우리클레이아가 대답했다.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구혼자들 중 누구 하나도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페넬로페가 말했다.
“유모,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모두 싫구나. 그들은 모두 악한 짓만 일삼으니. 그중에서 안티노오스는 죽음의 어둠만큼이나 싫구나. 가엾고 불행한 떠돌이 나그네가 순전히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자루에 먹을 것을 넣어주는데도 안티노오스는 발판으로 그의 오른쪽 어깨뼈를 치지 않았느냐.”
페넬로페는 자기 방에 앉아 시녀들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오디세우스는 식사를 하고 있었다. 페넬로페는 돼지치기를 불러 말했다.
“에우마이오스여, 가서 그 나그네에게 이리 오라고 전하거라. 내가 그를 만나 몇 가지 물어보고 싶다. 그는 여러 곳을 여행한 것 같으니, 불행한 내 남편에 대해 무엇인가 보거나 들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자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마님, 만약 저 아카이아인들이 잠시만 조용히 해준다면, 마님께서도 그의 모험담에 푹 빠지실 것입니다. 그는 배에서 도망쳐 나온 뒤 제 오두막에 처음으로 당도하여 사흘 밤낮을 저와 함께 지냈는데, 아직도 그가 겪은 불행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했으니까요. 설령 온 세상에서 신의 은총을 받은 가장 뛰어난 음유 시인이 있어 청중의 넋을 잃게 만든다 해도, 제 오두막에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던 저만큼이나 깊이 매료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자기 가문과 오디세우스의 가문 사이에 오래된 우정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온갖 불행에 시달리며 이곳저곳을 떠돌다 왔는데, 원래는 미노스의 후손들이 사는 크레타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아울러 오디세우스가 살아 있으며 테스프로티아인들 곁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가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귀향하는 중이라고도 했습니다.”
페넬로페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를 이리 불러오너라. 나도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구나. 구혼자들이야 집 안에서든 밖에서든 마음대로 즐기게 내버려 두어라. 그들에게는 걱정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의 집에는 곡식과 포도주가 그대로 남아 있고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인들뿐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날마다 우리 집에 죽치고 앉아 우리의 소와 양과 살진 염소를 제사에 바치며 잔치를 벌이고,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포도주를 마시는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무모한 낭비를 견딜 수 있는 재산은 없다. 이것은 우리를 지켜 줄 오디세우스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와 그의 아들이 복수할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고 있을 때 텔레마코스가 아주 크게 재채기를 하여 온 집 안에 그 소리가 울렸다. 페넬로페는 그 소리를 듣고 웃으며 에우마이오스에게 말했다.
“가서 그 나그네를 불러오너라. 내가 말하고 있을 때 내 아들이 재채기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이것은 틀림없이 모든 구혼자가 죽임을 당하고 그들 가운데 누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뜻이다. 그 나그네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에게 좋은 튜닉과 망토를 내리겠다.”
에우마이오스는 이 말을 듣자 곧장 오디세우스에게 가서 말했다.
“나그네여, 내 주인이자 텔레마코스의 어머니이신 페넬로페께서 그대를 부르셨소. 그분은 몹시 슬퍼하고 계시지만, 남편에 관해 그대가 들려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듣고 싶어 하시오. 그리고 그대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대에게 튜닉과 망토를 주겠다고 하셨소. 그것들이 바로 지금 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아니오? 빵이야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려는 사람들에게 얻으면 배불리 드실 수 있을 테니까 말이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나는 왕비님께 엄연한 사실만을 말하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에 관한 일을 모두 알고 있으며, 그와 함께 고난을 겪기도 했소. 하지만 이 잔인한 구혼자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두렵소. 그들의 오만함과 무례함은 하늘에까지 닿을 정도요. 게다가 조금 전 내가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어떤 자가 나를 때려 몹시 아프게 했소. 그런데 텔레마코스도, 다른 누구도 나를 변호해 주지 않았소. 그러니 왕비님께 인내하며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내 옷이 너무 얇고 낡았으니, 불 가까이에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하시오. 그대도 내 옷이 어떤지 알고 있지 않소? 내가 처음 그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때부터 줄곧 보아 왔으니 말이오. 그러면 내게 남편의 귀환에 관해 물어볼 수 있을 것이오.”
돼지치기는 이 말을 듣고 돌아갔다. 페넬로페는 에우마이오스가 문턱을 넘어오는 것을 보고 말했다.
“왜 그를 데려오지 않았느냐, 에우마이오스? 누군가가 그를 부당하게 대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냐, 아니면 아예 집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냐? 거지는 체면을 차려서는 안 된다.”
그러자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그 나그네는 아주 분별이 있는 사람입니다. 구혼자들을 피하고 있을 뿐이며, 다른 누구라도 그랬을 법합니다. 그는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마님께서도 그를 단둘이 만나시는 편이 훨씬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원하시는 대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으실 것입니다.”
페넬로페가 대답했다.
“그 사람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구나. 그가 말한 대로 하는 것이 좋겠다. 이 세상 어디에도 이자들처럼 가증스러운 사람들은 없으니 말이다.”
페넬로페가 말을 마치자 에우마이오스는 모든 일을 설명했으므로 구혼자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텔레마코스에게 다가가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
“젊은 주인님, 이제 저는 돼지들에게 돌아가 주인님의 재산과 제 일을 돌보겠습니다.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주인님께서 살피십시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몸을 조심하여 위험을 피하십시오. 주인님을 노리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 전에 제우스께서 그들을 불행한 최후로 이끌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텔레마코스가 대답했다.
“좋소. 저녁 식사를 마쳤거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우리가 제사에 바칠 희생 제물을 가지고 이리 오시오. 나머지는 신들과 내가 알아서 하겠소.”
이에 에우마이오스는 자리에 앉아 식사를 마친 뒤 다시 돼지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한편 구혼자들은 어느덧 저녁이 가까워지자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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