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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고전/오디세이아

오디세이아 제11권 2

by 복 짓는 사람 2026. 10. 14.

오디세이아 제11권 1

 

오디세우스가 이야기를 여기에서 끝내자, 손님들은 모두 넋을 잃은 채 말없이 지붕이 덮인 회랑에 앉아 있었다. 그러자 왕비 아레테가 그들에게 말했다.
“파이아케스인들이여,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키도 크고 잘생겼으며 총명하지 않은가? 그는 나의 손님이지만, 여러분 모두가 그를 후대하는 영예를 함께 나누고 있다. 그러니 서둘러 그를 떠나보내지 말고, 이토록 큰 곤경에 처한 사람에게 주는 선물도 인색하게 하지 마라. 하늘이 여러분 모두에게 큰 풍요를 내려주셨으니….”
그러자 그들 가운데 가장 나이 많은 사람 중 하나인 노장 에케네우스가 말했다.
“친구들이여, 우리의 존귀한 왕비께서 방금 하신 말씀은 이치에도 맞고 꼭 필요한 말입니다. 그러니 그 말씀을 따르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말로나 행동으로나 최종적인 결정은 결국 알키노오스왕에게 달려 있습니다.”
알키노오스가 외쳤다.
“내가 살아서 여전히 파이아케스인들을 다스리고 있는 한,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 우리의 손님이 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일까지만 우리와 함께 머무르도록 설득해야겠다. 그동안 내가 그에게 주려고 하는 선물을 모두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를 호송하는 일은 여러분 모두가 맡을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우두머리인 내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알키노오스왕이시여, 왕께서 저에게 꼬박 열두 달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가 왕의 고귀한 선물을 가득 싣고 떠나라고 명하신다면 저는 기꺼이 왕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제게도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제 백성에게 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니, 이타카로 돌아온 저를 보는 사람들 모두가 저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키노오스가 대답했다.
“오디세우스여, 그대를 본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대가 허풍쟁이나 사기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소. 세상에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 속내를 꿰뚫어 보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그대의 말에는 그대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게 하는 힘이 있소. 게다가 그대는 자신의 불행과 아르고스인들의 불행을 마치 노련한 음유 시인처럼 이야기해 주었소. 하지만 말해 주시오.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그대와 함께 트로이로 갔다가 그곳에서 죽은 강력한 영웅들을 만나 보았소? 아직 저녁 시간이 길게 남아 있고 잠자리에 들 때도 되지 않았으니, 계속해서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시오. 그대가 자신의 모험담을 계속 이야기해 준다면 나는 내일 아침까지라도 이곳에 앉아 들을 수 있소.”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알키노오스왕이시여,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고 잠자리에 들 때가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왕께서 그토록 원하시니, 트로이인들과 싸우다 전사한 것이 아니라 사악한 여인의 배신으로 귀환 길에 죽은 내 전우들의 더욱 슬픈 이야기를 들려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페르세포네가 여인들의 혼령을 사방으로 돌려보낸 뒤,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의 혼령이 아이기스토스의 집에서 함께 죽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슬프게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피를 맛보자마자 나를 알아보고, 몹시 흐느끼며 나를 껴안으려고 두 팔을 뻗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힘도 실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나 또한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가엾게 여겼지요. 내가 물었습니다.
‘아가멤논왕이시여, 어떻게 죽음을 맞으셨습니까? 포세이돈이 바다에 계실 때 왕을 향해 바람과 파도를 일으켰습니까, 아니면 육지에서 적들이 왕을 죽였습니까? 소 떼나 양 떼를 훔치다가 죽었습니까, 아니면 아내와 도시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적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오디세우스여, 라에르테스의 고귀한 아들이여, 나는 포세이돈이 일으킨 어떤 폭풍 속 바다에서 죽은 것이 아니오. 육지에서 적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도 아니오. 아이기스토스와 나의 사악한 아내가 함께 나를 죽였소. 아이기스토스는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잔치를 베푼 다음, 도살장에서 살찐 짐승을 잡듯 나를 가장 비참하게 난도질했소. 그때 내 주변에 있었던 내 부하들도 결혼식 아침 식사나 야외 잔치, 혹은 어느 위대한 귀족의 성대한 연회에 내놓을 양이나 돼지처럼 모조리 살해당했소. 그대는 수많은 사람이 대규모 전투에서 죽거나 일대일로 싸우다 죽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처럼 참혹하게 쓰러지는 모습을 본 적은 없을 것이오. 그 회랑에는 혼합주를 담는 큰 그릇과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바닥은 우리의 피로 흥건했소.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내 곁에서 프리아모스의 딸 카산드라를 죽일 때 카산드라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었소. 나는 칼이 몸에 박힌 채 땅에 쓰러져 죽어가면서 그 살인자 같은 년을 죽이려고 두 손을 치켜들었소. 그러나 그년은 내 손길을 피해 달아났소. 내가 죽어가는 순간에도 내 입을 닫아주거나 눈을 감겨 주려 하지 않았소. 그런 끔찍한 죄를 저지른 여인만큼 잔인하고 뻔뻔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오. 자기 남편을 죽이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오! 나는 아이들과 하인들이 나를 기쁘게 맞아주리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소. 그녀의 흉악한 범죄는 그녀 자신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모든 여인에게, 심지어 착한 여인들에게까지 수치를 가져다줄 것이오.’
그러자 내가 말했습니다.
‘제우스는 참으로 아트레우스 가문의 여인들이 꾸미는 간계 때문에 그 가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미워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헬레네 때문에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클리타임네스트라가 그대가 떠나 있는 동안 그대를 해칠 음모를 꾸민 모양입니다.’
그러자 아가멤논이 말을 이었습니다.
‘그러니 명심하시오. 자신의 아내라고 해서 지나치게 가까이하지 말도록 하시오. 그대가 잘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아내에게 털어놓지 마시오. 일부만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그대 가슴속에 간직하시오. 물론 오디세우스여, 그대의 아내가 그대를 죽일 가능성은 거의 없소. 페넬로페는 매우 훌륭한 여인이며 천성도 선하오. 우리가 트로이로 떠날 때 그녀는 젖먹이를 품에 안은 어린 신부였소. 그 아이는 틀림없이 훌륭한 성인으로 자랐을 것이고★1 , 아버지와 아들이 마땅히 그래야 하듯 기쁘게 재회하여 서로를 껴안겠지. 그러나 나의 사악한 아내는 내가 내 아들을 바라보는 기쁨조차 누리지 못하게 했소. 내가 아들을 만나기도 전에 나를 죽였지. 오디세우스, 이것만은 말해야겠소. 내 말을 마음 깊이 새겨두시오. 이타카로 배를 몰고 갈 때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고 몰래 들어가도록 하시오. 내가 몸소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여자를 믿을 수가 없구려. 이제 내게 한 가지를 말해 주시오.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내 아들 오레스테스에 관한 소식을 조금이라도 들었다면 알려줄 수 있겠소? 오르코메노스에 있소, 필로스에 있소, 아니면 메넬라오스와 함께 스파르타에 있소? 나는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내가 말했습니다.
‘아가멤논이여, 왜 내게 묻습니까? 그대의 아들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는 일을 두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앉아 슬프게 울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킬레우스의 혼령이 보였습니다. 그는 파트로클로스와 안틸로코스, 그리고 펠레우스의 아들 다음으로 모든 다나오스인 가운데 가장 뛰어나고 훌륭했던 아이아스와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아이아코스의 날랜 후손인 아킬레우스는 나를 알아보고 애처롭게 말했지요.
‘오디세우스여, 라에르테스의 고귀한 아들이여, 이번에는 또 무슨 대담한 일을 하려고 하데스의 집으로 내려와 우리 어리석은 죽은 자들,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껍데기뿐인 망령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오?’
그러자 내가 말했지요.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여, 아카이아인들의 으뜸가는 전사여, 나는 테이레시아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타카로 돌아갈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소. 나는 아직 아카이아 땅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고 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도 못했으며, 줄곧 고난을 겪어왔소. 아킬레우스여, 그대만큼 운이 좋았던 사람은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오. 살아 있을 때 우리 아르고스인들은 모두 그대를 숭배했고, 지금 이곳에 와서는 죽은 자들 가운데 위대한 왕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말이오. 그러니 죽었다고 해서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마시오.’
아킬레우스가 대답했습니다.
‘죽음을 너무 미화하지 마시오. 나는 죽은 자들 가운데 왕 중의 왕이 되느니, 차라리 가난한 사람의 집에서 품삯을 받는 하인으로 살더라도 지상에 있는 편이 낫소. 내 아들에 관한 소식을 알려주시오. 그 아이가 전쟁터에 나가 훌륭한 전사가 되었소, 아니면 그렇지 않소? 그리고 아버지 펠레우스에 대해서도 들은 것이 있으면 말해주시오. 그가 아직도 미르미돈족을 다스리고 있소, 아니면 이제 늙어 팔다리에 힘이 빠졌다는 이유로 행여 헬라스와 프티아 전역에서 사람들의 업신여김을 받고 있소? 내가 트로이 평원에서 가장 용맹한 적들을 죽였던 그때와 같은 힘을 가지고, 대낮의 빛 아래에서 아버지 곁에 설 수만 있다면 좋겠소. 그때의 내가 되어 잠시라도 아버지의 집에 갈 수만 있다면, 아버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그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자는 누구든 곧 그 일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었을 텐데 말이오.’
내가 대답했지요.
‘당신의 아버지 펠레우스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소. 하지만 그대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 대해서라면 모두 말해줄 수 있소. 나는 아카이아인들과 함께 내 배로 그를 스키로스에서 데려왔소. 트로이 앞에서 전쟁을 위한 회의를 열 때면 그는 언제나 가장 먼저 입을 열었고, 그의 판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소. 네스토르와 나를 제외하면 그보다 나은 사람은 없었소. 전투가 트로이 평원에서 벌어졌을 때도 그는 결코 자기 부하들 가운데 머물러 있지 않고 언제나 훨씬 앞쪽으로 달려나갔으며, 누구보다도 용맹했소. 그는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소. 아르고스인들의 편에서 싸우다가 그가 죽인 사람들을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에서도 텔레포스의 아들인 용맹한 영웅 에우리필로스를 어떻게 죽였는지만 말하겠소. 내가 본 사람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멤논이었는데, 그다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바로 에우리필로스였소. 그 밖에도 많은 케테이아인들이 한 여인이 받은 뇌물★2 때문에 그의 손에 쓰러졌소.
에페우스가 만든 목마 안으로 아르고스인들 가운데 가장 용맹한 자들이 모두 들어가고, 목마의 문을 열 것인지 닫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을 때의 일이오. 다른 다나오스인의 지도자들과 으뜸가는 자들이 모두 목마 안에서 눈물을 훔치고 온몸을 떨고 있었지만, 네오프톨레모스만큼은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뺨의 눈물을 닦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소. 그는 줄곧 내게 목마에서 뛰쳐나가자고 재촉했지. 한 손으로는 칼자루를 움켜쥐고, 다른 손에는 청동으로 덧댄 창을 들고 적을 향해 분노를 내뿜었소.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도시를 약탈하고 나자 그는 전리품 가운데서도 훌륭한 몫을 차지하여 배에 올랐소. 전쟁의 운명이 그러하듯이, 던져진 창에 맞지도 않았고 가까이에서 싸우다가 상처를 입지도 않았소. 전쟁의 신 아레스가 불러일으키는 분노와 광란은 참으로 운에 달린 일이란 것을 알았소.’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킬레우스의 혼령은 아스포델★3로 뒤덮인 초원을 가로질러 성큼성큼 걸어갔으며, 내가 그의 아들의 용맹함에 대해 한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다른 죽은 자들의 혼령들도 내 곁에 서서 저마다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지요. 그러나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의 혼령만은 홀로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두고 벌인 다툼에서 내가 승리한 것에 화를 품고 있었지요. 그 갑옷은 테티스가 상으로 내놓은 것이었고, 트로이 포로들과 아테나가 그때 심판을 맡았습니다. 내가 그런 경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 일로 인해 아르고스인들 가운데 아킬레우스의 아들에 이어 키와 용맹에서 으뜸이었던 아이아스가 목숨을 잃었지요. 내가 그를 보았을 때 나는 그를 달래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아스여, 죽은 뒤에도 그 일을 잊거나 용서할 수 없는가? 그 끔찍한 갑옷에 대한 판결이 아직도 그대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가? 그대 같은 든든한 방패와 같은 전사를 잃은 대가를 우리 아르고스인들은 너무나 혹독하게 치렀다네. 우리는 그대를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를 애도한 것만큼이나 깊이 슬퍼했네. 이 모든 일의 책임은 다나오스인들을 미워하신 제우스의 악의에 있다고밖에 볼 수밖에 없네. 바로 그 악의 때문에 제우스께서 그대의 파멸을 꾀하신 것이네. 그러니 이리로 와서 그대의 성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내가 들려줄 이야기를 들어주시게.’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에레보스(저승 세계)와 다른 혼령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서 가버렸습니다. 나는 그가 그렇게 화를 내고 있더라도 어떻게든 말하게 하거나 계속 말을 걸었을 것이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 보고 싶은 다른 자들이 아직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다음 나는 제우스의 아들 미노스를 보았습니다. 그는 손에 황금 홀을 들고 앉아 죽은 자들을 심판하고 있었습니다. 혼령들은 하데스의 넓은 궁전에 그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서, 그가 그들에게 어떤 판결을 내리는지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아스포델로 뒤덮인 초원에서 거대한 오리온을 보았습니다. 그는 산에서 자신이 죽인 들짐승들의 혼령을 몰고 있었으며, 손에는 청동으로 된 큰 몽둥이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듯한 몽둥이였습니다. 그리고 가이아의 아들 티티오스가 평원에 누워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의 몸은 무려 9에이커(약 36,000㎡)에 이르는 땅을 뒤덮고 있었습니다. 그의 양쪽에는 독수리 두 마리가 앉아 그의 간을 부리로 쪼아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손으로 그것들을 쫓아내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가 퓌토로 가는 길에 파노페우스를 지나가던 제우스의 애인 레토를 범했기 때문이었지요.
또한 턱까지 차오르는 호수 속에 서 있는 탄탈로스의 끔찍한 운명도 보았습니다. 그는 갈증을 참지 못해 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결코 물에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불쌍한 자가 몸을 굽혀 물을 마시려 할 때마다 물이 말라 사라져버렸고, 그 자리에는 하늘의 악의로 바싹 메마른 땅만 남았습니다. 게다가 그의 머리 위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열매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배, 석류, 사과, 달콤한 무화과와 즙이 많은 올리브가 열려 있었지만, 불쌍한 자가 손을 뻗어 그 열매를 따려 할 때마다 바람이 나뭇가지를 구름 쪽으로 휙 밀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나는 끝없는 일을 하고 있는 시시포스도 보았습니다. 그는 양손으로 엄청나게 큰 바위를 들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손과 발을 모두 사용해 그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려고 애썼지만, 언제나 반대편으로 바위를 굴려 넘기기 직전에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가차 없는 바위가 우르릉 소리를 내며 다시 평원으로 굴러떨어졌습니다. 그러면 그는 다시 언덕 위로 바위를 밀어올리기 시작했고, 온몸에서는 땀이 흘러내렸으며 등 뒤로는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다음 나는 위대한 헤라클레스를 보았지만, 그것은 그의 환영에 불과했습니다. 헤라클레스 자신은 지금도 불멸의 신들과 함께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그가 제우스와 헤라의 딸인 아름다운 헤베를 아내로 맞았기 때문이지요. 혼령들은 겁에 질린 새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니듯 헤라클레스 환영 주위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맨몸에 활을 들고 화살을 시위에 걸친 채 밤처럼 검은 모습으로 서서, 언제라도 활을 겨눌 듯 사방을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가슴에는 놀라울 만큼 아름답게 장식된 황금 허리띠가 둘러져 있었는데, 허리띠 위에는 눈을 번뜩이는 곰과 멧돼지와 사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과 전투와 죽음의 모습도 새겨져 있었지요. 그 허리띠를 만든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다시는 그와 같은 것을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헤라클레스는 나를 보자마자 알아보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가엾은 오디세우스여, 고귀한 라에르테스의 아들이여, 그대도 내가 살아 있을 때 겪었던 것과 똑같은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가? 나는 제우스의 아들이었지만 끝없는 고난을 겪어야 했네. 나보다 훨씬 못한 자, 비열한 인간의 노예가 되어 온갖 고된 일을 해야 했지. 제우스는 한때 나에게 지옥의 사나운 개를 데려오라고 명령했네. 아버지는 이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네. 그러나 나는 헤르메스와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하데스에서 그 개를 끌어내어 그에게 데려다주었지.’
이렇게 말한 뒤 헤라클레스는 다시 하데스의 궁전으로 내려갔습니다. 나는 혹시 또 다른 위대한 망자들이 내게 다가올지 몰라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렀습니다. 나에게는 아직도 보고 싶은 망자들이 더 있었습니다. 신들의 영광스러운 자식들인 테세우스와 페이리토스도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수천 명의 망령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어 끔찍한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혹시라도 페르세포네가 하데스의 궁전에서 그 무시무시한 괴물 고르곤의 머리를 보낼까 봐 겁에 질리고 말았지요. 그래서 서둘러 배로 돌아가 부하들에게 즉시 밧줄을 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배에 올라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배는 오케아노스강의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노를 저어야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순풍이 불어왔습니다.

 

★1오디세우스의 항해 중 이 시점에 텔레마코스의 나이는 11살에서 12살 사이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번역자 각주)

★2 한 여인이 받은 뇌물: 에우리필로스의 어머니 아스티오케는 아들 에우리필로스를 트로이 전쟁에 내보내는 대가로 프리아모스왕에게 황금 포도나무 장식품을 선물로 받고 아들을 설득시켜 전쟁에 참여하게 했다. 결국 전쟁에 나가기 싫었던 아들 에우리필로스는 어머니의 설득으로 참전했다가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에게 죽는다.

★3 아스포델: 고대 그리스에서 잘 알려진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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