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곳에서 7년을 머물렀소. 이집트인들이 모두 내게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에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소. 그런데 8년이 다 되어 갈 무렵, 한 페니키아인이 찾아왔소. 그는 교활한 악당으로, 이미 온갖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었소. 이자는 나를 꾀어 자신의 집과 재산이 있는 페니키아로 함께 가자고 했소. 나는 그곳에서 꼬박 열두 달을 머물렀소.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 다시 같은 계절이 돌아왔을 때, 그는 나를 리비아로 향하는 배에 태웠소. 겉으로는 그곳까지 화물을 함께 운반하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나를 노예로 팔아 그 값을 차지하려는 속셈이었소. 나는 그의 의도를 의심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그와 함께 배에 올랐소.
배는 거센 북풍을 타고 빠르게 나아가 크레타와 리비아 사이의 바다에 이르렀소. 그런데 그곳에서 제우스는 그들의 파멸을 결정했소. 크레타에서 충분히 멀리 벗어나 바다와 하늘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제우스는 우리 배 위에 검은 구름을 드리웠고 그 아래 바다는 어둡게 만들었소. 그러자 제우스가 번개를 내리쳤소. 배는 빙글빙글 돌았고, 번개가 배를 때리자 배 안은 불과 유황으로 가득 찼소. 사람들은 모두 바다로 떨어졌소. 그들은 배 주위를 바닷물에 떠다니는 갈매기 떼처럼 떠돌았소. 그러나 신은 곧 그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마저 빼앗았소.
내가 절망에 빠졌을 때 제우스께서 배의 돛대를 내 손에 쥐어주셨고, 나는 돛대를 잡고 폭풍 속을 떠돌았소. 아홉 날 동안 바다를 떠돌았소. 열 번째 밤이 어두워졌을 때, 거대한 파도가 나를 테스프로티아 해안으로 밀어 올렸소. 그곳의 왕 페이돈이 나를 대가 없이 대접해주었소. 추위와 피로로 거의 죽어가던 나를 그의 아들이 발견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 옷을 입혀 주었소.
그곳에서 나는 오디세우스의 소식을 들었소. 왕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집에 머물며 환대를 받았다고 말해주었소. 왕은 오디세우스가 모아둔 금과 세공한 철 등 수많은 보물을 보여주었는데, 페이돈왕의 집에 남겨둔 것만으로도 10대손까지 먹여 살릴 만큼 풍족했소. 그러나 오디세우스 본인은 신의 뜻을 묻고자 도도나의 신성한 떡갈나무로 떠났다고 했소. 고향 이타카로 돌아갈 때 당당하게 입성할지 아니면 비밀리에 돌아갈지 알아보기 위해서라고 했소. 또한 왕은 배와 선원들이 준비되어 그를 고향으로 모실 것이라고 내 앞에서 신께 술을 올리며 맹세했소. 그러나 왕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기 전에 나를 먼저 보냈소. 마침 밀이 많이 나는 섬인 둘리키온으로 떠나는 테스프로티아 배가 있었기에, 왕은 선원들에게 나를 아카스토스왕에게 안전하게 모시라고 당부했소.
그런데 그 선원들이 나를 극도의 불행에 빠뜨릴 음모를 꾸몄소. 배가 육지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그들은 나를 노예로 팔기로 모의했소. 그들은 내가 입고 있던 셔츠와 망토를 벗기고,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낡고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대신 입혔소. 그리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 이타카의 경작지에 이르자, 그들은 나를 배 안에 굵은 밧줄로 단단히 묶어 두고 해변으로 나가 저녁을 먹었소. 하지만 신들이 곧 내 결박을 풀어 주었소. 나는 누더기를 머리 위로 뒤집어쓴 다음 키를 타고 바다로 미끄러져 내려갔소. 그 후 힘차게 헤엄쳐 그들과 멀어진 뒤 육지로 올라와 울창한 숲속에 몸을 숨겼소. 그들은 내가 달아난 것에 몹시 화가 나서 사방을 찾아다녔지만, 마침내 더 찾아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배로 돌아갔소. 신들은 이렇게 손쉽게 나를 숨겨 준 뒤, 이처럼 훌륭한 사람의 집으로 인도해주셨으니, 나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닌 모양이오.”
이에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불쌍하고 불행한 나그네여, 그대가 들려준 불행한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지만, 오디세우스에 관한 그 부분만큼은 옳지 않소. 그대가 아무리 말해도 나는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오. 그대 같은 분이 왜 그런 거짓말을 하려 하오? 나는 내 주인의 귀향에 대해 잘 알고 있소. 신들은 하나같이 그를 미워하는 것이 틀림없소. 그렇지 않았다면 트로이에서 죽게 했거나 전우들 품에서 숨을 거두게 하셨을 것이오. 그랬다면 아카이아인들이 무덤을 세워주고 그의 아들이 명성을 물려받았을 터인데, 지금은 폭풍이 그분을 어디론가 채어가 버렸소.
나는 돼지들과 함께 외따로 살고 있으며, 페넬로페 왕비님이 소식을 듣고 나를 부르지 않는 한 성읍으로 나가지 않소. 성읍에 가도 사람들은 왕의 부재를 슬퍼하는 이나 그 재산을 공짜로 먹어 치우며 기뻐하는 이나 할 것 없이 둘러앉아 이것저것 물어볼 뿐이오. 나는 예전에 아이톨리아인에게 속은 뒤로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소. 그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쳐 내 오두막까지 왔고, 나는 그에게 친절을 베풀었소. 그는 자신이 크레타에서 이도메네우스와 함께 있는 오디세우스를 보았으며, 폭풍에 상한 배를 수리하고 있다고 했소. 그리고 그분이 여름이나 가을쯤 많은 재물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라 했지. 그러니 불쌍한 노인이여, 운명이 당신을 내 집으로 이끌었으니 헛된 희망으로 나를 기쁘게 하려 하지 마시오. 내가 당신을 대접하는 것은 소식 때문이 아니라, 나그네를 보호하는 신이신 제우스를 두려워하고 당신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에서일 뿐이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그대는 참으로 믿음이 부족하구려. 맹세까지 했건만 믿지 않으니 내기를 걸겠소. 신들을 증인으로 삼읍시다. 만약 그대의 주인이 돌아오거든 내게 좋은 망토와 셔츠를 내어주고 내가 가고자 하는 둘리키온으로 보내주시오. 하지만 내가 말한 대로 그분이 돌아오지 않거든, 하인들을 시켜 나를 저 절벽 아래로 던져버리시오. 다른 떠돌이들이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경고가 되게 말이오.”
그러자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내가 당신을 집에 맞아들여 대접한 뒤 죽인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소? 지금은 물론 훗날에도 나를 욕할 것이오. 또 그러고 나서 어떻게 신들께 기도를 올릴 수 있겠소? 마침 저녁 때가 되었으니 내가 부리는 아이들이 돌아오는 대로 맛있는 저녁을 준비합시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돼지치기들이 돼지 떼를 몰고 돌아왔고, 돼지들은 우리로 들어가며 시끌벅적하게 소리를 질렀다. 에우마이오스가 돼지치기들에게 소리쳤다.
“가장 좋은 돼지를 끌어오너라. 나그네를 위해 희생 제물로 바치고 우리도 함께 먹자꾸나. 우리는 그동안 돼지를 기르느라 온갖 고생을 다 했는데, 정작 우리 수고의 결실은 다른 자들이 거둬가고 있으니 말이야.”
에우마이오스는 이렇게 말하고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이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다섯 살짜리 훌륭한 수퇘지를 끌고 와 제단 앞에 세웠다. 에우마이오스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이었기에 신들을 잊지 않았다. 그는 가장 먼저 돼지의 얼굴에서 털을 조금 잘라 불 속에 던지면서 모든 신들에게 오디세우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다음 장작을 패면서 따로 남겨 두었던 참나무 몽둥이로 돼지를 내리쳐 기절시켰다. 그러자 다른 이들이 돼지를 잡아 불에 그슬렸다. 이어서 그들은 돼지를 토막 내었고, 에우마이오스는 먼저 각 관절에서 날것의 고기를 조금씩 잘라 비계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보릿가루를 뿌리고 숯불 위에 올려놓았다. 나머지 고기는 잘게 잘라 꼬챙이에 꿰고 다 익을 때까지 구웠다. 다 익자 꼬챙이에서 빼내어 고기 올려놓는 판 위에 한데 쌓았다. 매우 공평한 사람이었던 돼지치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몫을 나누어 주었다. 그는 고기를 일곱 몫으로 나누었다. 그 가운데 한 몫은 마이아의 아들 헤르메스와 님프들을 위해 따로 떼어 놓고 그들에게 기도했다. 나머지 몫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는 특별한 존경의 표시로 등심 부분을 세로로 길게 잘라내어 오디세우스에게 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이를 매우 기뻐했다.
“에우마이오스여, 그대가 나처럼 버림받은 나그네에게 이처럼 존경을 보여 주었으니, 제우스께서도 내가 받은 만큼 그대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라오.”
이에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음식을 즐겁게 드시오. 신께서는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시지요.”
그는 첫 고기를 신들에게 바친 뒤 포도주를 올리고, 잔을 오디세우스의 손에 건넨 뒤 자신의 몫을 먹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하인 메사울리오스가 빵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 메사울리오스는 에우마이오스가 주인이 없는 동안 페넬로페나 라에르테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돈으로 타피오스인들에게서 사들인 종이었다. 모두가 차려진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배가 부르자 메사울리오스가 빵 바구니를 거둬갔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저녁을 먹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덧 밤이 깊어지자 폭풍우가 몰아치고 달빛조차 없어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비는 쉴 새 없이 쏟아졌고, 습기를 머금은 서풍이 거세게 불어왔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주던 에우마이오스가 과연 자신의 망토를 벗어 줄지, 아니면 부리는 자들 중 한 명에게 시켜 망토를 가져다주게 할지 한번 시험해 보기로 했다.
“에우마이오스, 그리고 여기 있는 그대들도 내 말을 좀 들어보게나. 기도를 마친 뒤에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술기운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세. 술은 현명한 사람조차 노래를 부르게 만들지. 낄낄거리며 춤을 추게 하고,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을 말들을 내뱉게도 하니까. 하지만 이미 말을 꺼냈으니 계속하겠네. 우리가 트로이성 앞에서 매복 작전을 펼쳤을 때처럼 내가 여전히 젊고 힘이 넘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메넬라오스와 오디세우스가 지휘관이었지만, 두 사람의 뜻에 따라 나 또한 지휘를 맡았었지. 우리가 성벽 가까이 다가갔을 때, 우리는 갑옷을 입은 채 몸을 낮추고 늪지대 주변에 무성하게 자란 갈대와 덤불 속에 숨어 있었네. 북풍이 불어오며 날씨가 얼어붙기 시작했지. 눈은 서리처럼 잘고 가늘게 내렸고, 우리 방패 위에는 하얀 서리가 두껍게 내려앉았네. 다른 이들은 모두 망토와 속옷을 갖춰 입고 방패를 어깨에 두른 채 꽤 편안하게 잠들었지만, 나는 추위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망토를 두고 온 탓에 셔츠와 방패만 걸친 채 나왔다네. 밤이 깊어 별들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 나는 곁에 있던 오디세우스를 팔꿈치로 툭 쳤고, 그는 즉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네. 내가 말했다네.
‘오디세우스여, 추워 죽겠소. 겉옷도 없이 셔츠만 입고 왔으니 내가 미쳤었나 보오.’
용감한 만큼이나 꾀가 많았던 오디세우스는 곧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지.
‘조용히 있어라. 다른 사람들이 듣겠구나.’
그러고는 팔꿈치로 몸을 지탱하며 머리를 들어 올리고 말했지.
‘전우들이여, 잠든 사이 하늘에서 온 꿈을 꾸었다. 우리는 배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누군가 내려가서 아가멤논에게 지금 당장 더 많은 병사를 보내 달라고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자 안드라에몬의 아들 토아스가 자신의 망토를 벗어 던지고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지. 그래서 나는 그 망토를 차지하고 그 안에 편안하게 누워 아침까지 있었지. 아, 내가 그때처럼 아직 젊고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그랬다면 자네들 같은 돼지치기 중 누군가가 호의로, 혹은 용맹한 전사에 대한 존경심으로 내게 망토를 내주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옷차림이 남루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긴다오.”
그러자 에우마이오스가 대답했다.
“노인이여, 그대는 훌륭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당장 오늘 밤은 옷이나 나그네가 필요한 다른 것도 부족함 없이 대접하겠소. 하지만 내일 아침에는 다시 당신의 더러운 누더기를 입어야 할 것이오. 이곳에는 여벌의 망토나 셔츠가 많지 않고, 사람마다 하나씩밖에 없소. 오디세우스의 아들이 돌아오면 그가 그대에게 망토와 셔츠를 모두 줄 것이며, 그대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보내줄 것이오.”
이렇게 말한 뒤 그는 일어나 불 앞에 오디세우스가 누울 자리를 마련했다. 염소 가죽과 양가죽을 땅에 깔아 침상을 만들었다. 오디세우스가 그 위에 누우니, 에우마이오스는 특별히 날씨가 몹시 나빠질 때 갈아입으려고 간직해 두었던 크고 두꺼운 망토를 가져와 그를 덮어 주었다. 이렇게 오디세우스는 누워 잠들었고 부리는 청년들도 곁에서 잤다. 그러나 에우마이오스는 돼지들과 떨어져 잠들고 싶지 않아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디세우스는 주인이 없는 동안 자신의 재산을 정성껏 돌보는 그의 모습에 깊이 감동했다. 에우마이오스는 어깨에 칼을 메고, 바람을 막아줄 두꺼운 겉옷을 입었으며, 큰 염소 가죽을 둘렀다. 그리고 도둑이나 개들을 막기 위해 창을 손에 쥐었다. 이렇게 장비를 갖춘 그는 북풍을 막아주는 바위 그늘 아래 돼지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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