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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고전/오디세이

오디세이 제13권 2

by 복 짓는 사람 2026. 10. 16.

제 13권 1 보기

 

바로 그때 오디세우스도 자신의 고향 땅에서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던 탓에 그곳을 알아보지 못했다. 게다가 제우스의 딸 아테나가 안개를 짙게 내리게 하여 그가 악한 구혼자들에게 복수하기 전까지는 아내나 백성, 친구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조치해 놓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오디세우스에게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길고 곧게 뻗은 길도, 항구도, 절벽도, 아름다운 나무들도 모두 변해 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자신의 고향 땅을 바라보다가 두 손바닥으로 넓적다리를 내리치며 절망에 찬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아아, 내가 또 어떤 자들이 사는 땅에 떨어졌단 말인가? 야만적이고 잔인한 자들인가, 아니면 나그네를 대접할 줄 아는 인자한 자들인가? 이 많은 보물을 어디에 두며,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차라리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에 그대로 머무르거나, 나를 환대하고 호송해 줄 다른 위대한 왕을 찾아갔어야 했다. 이 보물들을 둘 곳도 없고, 누군가 가져갈까 봐 이곳에 그대로 두고 떠날 수도 없구나. 파이아케스족의 지도자들은 진실하지 못했다. 나를 이타카로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엉뚱한 땅에 내던져 놓다니! 간청하는 자를 보호하시는 제우스께서 그들을 벌하시기를. 그분은 모든 사람을 굽어살피시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벌하시는 분이다. 우선 내 물건들의 수량을 세어보아 선원들이 가져간 것은 없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그는 아름다운 청동 솥들과 금, 그리고 옷가지들을 세어보았으나 하나도 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고향에 오지 못했다는 생각에 슬퍼하며 바닷가를 거닐며 자신의 가혹한 운명을 탄식했다. 그때 아테나 여신이 겉옷을 두 겹으로 두르고 고운 샌들을 신었으며 손에 창을 든 젊고 귀한 양치기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오디세우스는 그를 보고 기뻐하며 곧장 다가갔다.
“젊은이, 이 땅에서 내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당신이구려. 그러니 내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오. 내 무릎을 꿇고 신에게 기도하듯 청하니 내 보물들과 나를 좀 보호해 주시오. 실례지만 이곳이 어느 땅이며 어떤 백성들이 살고 있는지 사실대로 말해 주시오. 이곳은 섬이오, 아니면 대륙에 딸린 해안이오?”
아테나가 대답했다.
“나그네여, 이 땅이 어디인지 모른다니 당신은 매우 순박하거나 아주 먼 곳에서 온 모양이군요. 이곳은 동쪽과 서쪽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진 저명한 곳이랍니다. 지형이 험하여 말을 모는 수레가 다니기엔 적합하지 않으나, 섬의 크기에 비하면 결코 나쁜 땅이 아닙니다. 비와 이슬이 풍족하여 밀과 포도가 많이 자라고, 소와 염소를 키우기에 좋으며 온갖 나무가 무성하고 샘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러니 나그네여, ‘이타카’라는 이름은 이 아카이아 땅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는 트로이까지 알려져 있답니다.”
자신이 있는 곳이 고향 이타카라는 말을 듣고 오디세우스는 가슴이 기쁨으로 차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진실을 말하지 않고 특유의 간교함을 발휘하여 거짓 이야기를 꾸며대기 시작했다.
“바다 건너 크레타에 있을 때 이미 이타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이 보물들을 가지고 이곳에 닿게 되었군요. 자식들을 위해 고향에 더 많은 재산을 남겨두었으나, 크레타에서 가장 잘 달리는 이도메네우스의 아들 오르실로코스를 죽이고 도망치는 길입니다. 그자는 내가 트로이 벌판과 거친 파도 속에서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얻은 전리품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내가 트로이에서 그의 아버지를 섬기지 않고 독립된 지휘관으로 행동했다는 구실을 대면서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부하 한 명과 함께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시골에서 성읍으로 들어오던 그를 창으로 찔러 죽였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기에 아무도 우리를 보지 못했고, 내가 그를 죽인 사실도 소문나지 않았습니다. 일을 마친 뒤 나는 시돈의 포니키아인들이 탄 배로 달려가 전리품의 일부를 주고 나를 필로스나 엘리스 땅으로 데려다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들은 나를 속일 생각이 없었으나 바람이 배를 다른 방향으로 몰아 밤중에 이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겨우 항구 안으로 들어왔고, 몹시 시장했으나 저녁 먹을 생각도 못 하고 해변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내가 피로에 지쳐 깊이 잠든 사이 선원들은 내 보물들을 꺼내어 모래밭에 누워 있는 내 곁에 두고 떠났습니다. 그들은 시돈으로 떠나갔고 나는 홀로 이 커다란 근심 속에 남겨졌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자 아테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몸을 다정하게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아름답고 위엄 있으며 지혜로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하여 말했다.
“신조차도 상대가 되어 겨룰 수 없을 만큼 온갖 교묘한 꾀에 능한 자여, 그대보다 더 간교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자가 과연 어디 있겠느냐? 대담하고 간계가 많으며 끊임없이 속임수를 쓰는 자여, 고향 땅으로 돌아온 지금에 와서도 그 버릇과 본능적인 거짓말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냐? 하지만 그만두자꾸나. 우리 둘 다 때로는 남을 속이는 데 능숙한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대는 인간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략가이자 웅변가이고, 나는 신들 중에서 지략과 기지에 있어 비할 데 없는 존재가 아니냐. 제우스의 딸인 나 아테나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 나는 언제나 그대 곁에서 온갖 고난을 겪을 때 그대를 지켜주었고, 파이아케스인들이 그대를 그토록 좋아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여신이다. 이제 나는 그대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파이아케스인들이 준 그 보물을 숨기는 일을 돕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고난들에 대해 말해주고 싶구나. 그대는 그 고난들을 감당해내야 한다. 하지만 그대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남자든 여자든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마라. 모든 것을 견뎌내고, 그 누구의 오만한 태도도 묵묵히 참아내도록 하라.”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여신이시여, 당신께서 수시로 모습을 바꾸시니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카이아인들이 트로이 앞에서 싸울 때 여신께서 내게 유독 인자하셨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프리아모스의 도성을 약탈하고 배에 오른 뒤 신들께서 우리를 흩어버리신 그날 이후로는, 여신께서 제 배에 찾아와 도움을 주신 기억이 없습니다. 저는 신들께서 저를 구해주실 때까지 병들고 슬픈 마음으로 방황해야 했습니다. 파이아케스인들의 도성에 이르러서야 여신께서 저를 격려하시며 도성 안으로 인도해 주셨지요. 이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간청하니 진실을 말씀해 주소서. 정말 제가 고향 이타카에 돌아온 것이 맞습니까? 저를 놀리시려고 거짓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이곳이 제 고향 땅입니까?”
아테나가 대답했다.
“그대는 언제나 그런 의심을 품는구나. 그렇기 때문에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그대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대는 너무나 명철하고 간교하며 지혜로우니까. 오랜 방랑 끝에 돌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당장 집으로 달려가 아내와 자식을 보려 했을 터이나, 그대는 오직 눈물로 세월을 보내며 밤낮으로 그대를 그리워하는 아내를 시험해 보기 전까지는 자식의 소식조차 물으려 하지 않는구나. 그러나 나는 그대가 모든 부하를 잃을지언정 무사히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염려하지 않았다. 다만 내 숙부인 포세이돈과 다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분은 자기 아들의 눈을 멀게 한 그대에게 깊은 분노를 품고 있으니까. 자, 이제 이 땅의 지형을 보여줄 터이니 믿어라. 이곳이 포르키스의 항구이고, 저것이 항구 끝에 서 있는 올리브나무다. 그 근처에 나이아데스 님프들의 신성한 동굴이 있다. 그대가 일찍이 많은 희생 제물을 바쳤던 그 둥근 천장의 동굴이다. 그리고 저 우거진 산이 바로 네리톤산이다.”
여신이 이렇게 말하자 안개가 걷히고 땅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자 오디세우스는 고향 땅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며 풍요로운 대지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님프들에게 기도하며 말했다.
“나이아스 님프들이여, 제우스의 딸들이여, 나는 이제 다시는 그대들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사랑과 존경을 담아 그대들에게 인사를 드립니다. 제우스의 두려운 딸들께서 내게 생명을 허락하시고 내 아들을 성년이 되도록 이끌어 주신다면, 예전처럼 그대들에게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아테나가 대답했다.
“용기를 내라. 그런 일은 걱정하지 마라. 그보다는 당장 그대의 물건들을 동굴 안에 넣어 두는 일부터 하자. 저 동굴이라면 아주 안전할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살펴보자.”
그러고 나서 그녀는 동굴 안으로 내려가 가장 안전하게 숨길 곳을 찾았고,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인들이 그에게 준 금과 청동과 값진 옷가지들을 모두 가져왔다. 여신과 오디세우스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숨겼고, 아테나는 동굴 입구에 돌 하나를 가져다 놓았다. 그런 다음 둘은 커다란 올리브나무 뿌리 곁에 앉아 사악한 구혼자들을 어떻게 몰락시킬 것인지 의논했다.
아테나가 말했다.
“라에르테스의 고귀한 아들 오디세우스여, 지난 3년 동안 그대의 저택을 차지하고 아내에게 구혼하며 선물을 보낸 저 오만한 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대의 아내는 그대가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다리며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유혹하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으나, 속마음은 그와 완전히 다르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여신이시여, 당신께서 때맞추어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저 역시 아가멤논처럼 내 집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뻔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복수해야 할지 조언을 주소서. 우리가 트로이의 아름다운 관을 벗겼던 그날처럼 내 곁에 서서 용기를 북돋아 주소서. 여신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300명의 적과도 능히 싸우겠나이다.”
아테나가 말했다.
“내가 반드시 그대 곁을 지킬 것이니 염려 마라. 그대의 재산을 탕진하던 저자들은 바닥에 피와 뇌수를 흩뿌리게 될 것이다. 우선 아무도 그대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변장시키겠다. 그대의 피부를 주름지게 만들고, 금빛 머리카락은 없애버리며, 보는 이마다 불쾌감을 느낄 더러운 누더기를 입히겠다. 그대의 빛나는 눈을 흐릿하게 하여 구혼자들과 아내, 그리고 남겨두고 떠난 아들의 눈에 아주 흉측하게 보이도록 만들겠다. 그러면 먼저 그대의 돼지들을 지키는 돼지치기(에우마이오스)에게 가라. 그는 언제나 그대에게 충성스러웠으며 페넬로페와 그대의 아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자이다. 그는 아레투사 샘 근처 ‘까마귀 바위’ 곁에서 돼지들에게 도토리와 맑은 물을 먹이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 머물며 사정을 탐색하라. 그동안 나는 스파르타로 가서 메넬라오스 곁에 있는 그대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려오겠다. 그 아이는 그대가 살아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곳으로 떠났다.”
오디세우스가 물었다.
“여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면서 어찌하여 그 아이에게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 아이마저 바다를 떠돌며 고생하게 만드시려는 것입니까?”
아테나가 대답했다.
“그 아이 일은 너무 염려하지 마라. 내가 그 아이의 명성을 위해 그곳으로 보낸 것이다. 그 아이는 메넬라오스의 저택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대접받으며 잘 지내고 있다. 구혼자들이 배를 타고 매복하여 텔레마코스가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를 살해하려 노리고 있으나, 그들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대의 재산을 삼키던 자들이 먼저 무덤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아테나가 지팡이로 오디세우스를 치자, 그의 몸 전체가 주름지고 금빛 머리카락이 빠졌으며 살집이 오그라들었다. 본래 매우 아름다웠던 눈도 흐릿하게 만들었다. 옷은 연기에 그을리고 찢어진 더러운 누더기로 변했다. 여신은 그 위에 손질하지 않은 사슴 가죽을 걸쳐주고 손에는 지팡이와 끈이 달린 구멍 뚫린 자루를 쥐어 주었다. 둘은 계획을 세운 뒤 헤어졌고, 여신은 텔레마코스를 데리러 라케다이몬(스파르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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