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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고전/오디세이아

오디세이아 제9권 1

by 복 짓는 사람 2026.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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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권 오디세우스가 키코네스족, 로토파고이족, 키클롭스족에 대해 이야기하다

 

오디세우스가 대답했다.
“알키노오스왕이여, 이처럼 신과 같은 목소리를 지닌 음유 시인의 노래를 들으니 참으로 좋습니다. 모든 백성이 함께 즐거워하고 손님들은 질서 있게 앉아 귀를 기울이며, 식탁에는 빵과 고기가 가득 차 있고, 술을 따르는 시종이 모든 사람의 잔에 술을 따라 채워 주는 것보다 더 즐겁고 좋은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이제 왕께서 제 고난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고, 그 고난에 얽힌 슬픈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려 하시니, 저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또 어떻게 이어 가서 끝맺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늘의 힘이 제게 너무나 가혹하게 닥쳐왔기 때문입니다.
먼저 제 이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제 이름을 알게 될 것이고, 제가 이 고난의 시기를 살아서 넘긴다면 비록 여러분과 멀리 떨어져 살지라도 언젠가 여러분을 내 손님으로 맞이할 수 있으니까요. 나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오디세우스입니다. 온갖 계략에 능한 사람으로 인간 세상에 이름을 떨쳤고, 그 명성은 하늘에까지 이르렀지요. 저는 이타카에 살고 있는데, 그곳에는 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네리톤이라는 높은 산이 있습니다. 그 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서로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 섬들이 있습니다. 둘리키온과 사메, 그리고 숲이 우거진 자킨토스가 그 섬들입니다. 이타카섬은 수평선에 납작하게 누워 해가 지는 서쪽을 향해 있고, 다른 섬들은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떨어져 있습니다. 이타카는 거칠고 험한 섬이지만, 용감한 사람들을 길러 내니 내 눈에는 이보다 더 사랑스러운 곳은 없습니다. 여신 칼립소가 나를 자신의 동굴에 붙잡아 두고 나와 결혼하기를 원했으며, 교활한 아이아이에의 여신 키르케 역시 나와 결혼하기를 원했지만, 두 여신 모두 내 마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자기 고향과 부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타국에서 제아무리 화려한 집에서 삶을 누린다 한들 아버지나 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법이지요. 이제 트로이에서 돌아오는 길에 제우스의 뜻으로 겪었던 수많은 위험한 모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가 트로이를 떠나 항해할 때, 바람은 먼저 우리를 이스마로스로 데려갔습니다. 그곳은 키코네스족의 성읍이었지요. 우리는 마을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칼로 베어 죽였습니다.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많은 전리품도 가져왔으며, 누구도 불평하지 않도록 우리끼리 공평하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나는 곧바로 그곳을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지만, 부하들은 어리석게도 내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물면서 많은 포도주를 마셨고, 바닷가에서 수많은 양과 소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동안 키코네스족은 내륙에 사는 다른 키코네스족에게 도움을 청했지요. 그들은 수가 더 많고 더 강했으며, 전쟁에도 훨씬 능했습니다. 상황에 따라 전차를 타고 싸울 수도 있었고, 걸어서 싸울 수도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들은 여름날의 잎사귀나 꽃잎처럼 빽빽하게 몰려왔습니다. 하늘의 뜻마저 등을 돌려 우리는 위기에 처했지요. 그들은 배 근처에 전열을 갖추었고, 양쪽 군대는 청동으로 끝을 씌운 창을 서로에게 겨누었습니다. 해가 높이 떠 있고 아직 아침이었을 때는 그들이 우리보다 수가 많았음에도 우리는 그들과 맞서 버텼습니다. 그러나 해가 기울어 사람들이 소에서 멍에를 풀어 줄 시간이 되자 키코네스족이 우리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배마다 여섯 명의 부하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을 데리고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는 슬픔을 가슴에 안고 그곳을 떠나 계속 항해했습니다. 동료들을 잃었지만 죽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우리는 키코네스족의 손에 목숨을 잃은 불운한 동료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세 번씩 부르고 나서야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때 제우스가 우리를 향해 북풍을 일으켰지요. 바람은 폭풍처럼 거세게 불어 땅과 하늘이 짙은 구름 속에 가려졌고, 하늘에서 밤이 갑자기 내려왔습니다. 강풍을 타고 배를 바람 앞에 내맡겨 달렸지만, 바람의 힘이 돛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지요. 그래서 난파할까 두려워 돛을 내리고,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육지 쪽으로 향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틀 밤낮을 고된 노동과 마음의 괴로움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사흘째 아침이 되자 다시 돛대를 세우고 돛을 올린 뒤 바람과 키잡이에게 배를 맡겨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말레아 곶을 돌아갈 때 북풍과 해류가 앞길을 가로막아 키테라섬 근처로 항로를 벗어나게 하지만 않았어도, 그때 모두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아흐레 동안 그곳에서 거센 바람에 떠밀려 바다를 헤맸습니다. 열흘째 날이 되어서야 우리는 로토스 열매를 먹고 사는 로토파고이족의 땅에 닿았지요. 우리는 신선한 물을 길으려고 그곳에 상륙했고, 선원들은 배와 가까운 해변에서 한낮의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나는 그곳 사람들이 어떤 이들인지 알아보기 위해 부하 두 명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이끌도록 또 한 사람을 붙여 주었지요. 그들은 곧 출발하여 로토파고이족 사이를 정찰했습니다. 로토파고이족은 그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로토스 열매를 먹게 했지요. 그 열매는 너무나 달콤하고 맛있어서 그것을 먹은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잊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부하들은 우리에게 알리러 오지 않았지요. 그저 그곳에 머물면서 로토파고이족과 함께 로토스 열매를 먹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몹시 슬피 울며 애원하는데도 억지로 배까지 끌고 와 노 밑에 단단히 묶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당장 배에 오르라고 명령했습니다. 혹시라도 그들 가운데 누군가 로토스 열매를 맛보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을 잃을까 두려웠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배에 올라타 자리를 잡았고, 회색 바다를 향해 힘껏 노를 저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떠나서도 줄곧 큰 고난을 겪으며 항해하다가, 마침내 법도 없고 인정도 없는 키클롭스족의 땅에 이르렀습니다. 키클롭스족은 밭을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리지도 않으며 신의 섭리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아무런 경작도 하지 않은 채 저절로 자라는 밀과 보리와 포도를 먹고 사는데, 야생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는 햇볕과 비가 길러 주는 대로 자라 그들에게 포도주를 내어 줍니다. 그들에게는 법도 없고 백성의 집회도 없습니다. 그들은 높은 산꼭대기의 동굴에서 살아가며, 저마다 자기 가족의 주인이자 지배자이고, 이웃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의 항구 앞바다에는 숲이 우거지고 비옥한 섬이 하나 있었지요. 키클롭스족의 땅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멀지도 않습니다. 그 섬에는 야생 염소가 아주 많이 번식하고 있으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방해받는 일도 없습니다. 사냥꾼들은 숲이나 험준한 산비탈에서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사냥하기 마련이지만, 그곳에는 가지 않았지요. 그 땅은 밭으로 일궈지지도 않고 가축이 풀을 뜯어 먹지도 않았지요. 해마다 씨 뿌리지 않은 황무지로 남아 염소들 외에는 아무런 생명체도 살지 않았지요.
키클롭스족에게는 배도 없고, 배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가진 이들처럼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오가거나 바다를 건너 서로의 나라로 항해할 수 없었지요. 만일 그들에게 배가 있었다면 그 섬에 사람들을 이주시켰을 것입니다. 그 섬은 땅이 아주 좋아서 계절마다 온갖 것을 풍성하게 내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곳은 초원이 바닷가까지 이어져 있는데, 물이 풍부하고 기름진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포도 농사도 아주 잘 되는 땅이었습니다. 밭을 갈 수 있는 평평한 땅도 있고, 토양이 깊어 해마다 수확할 때면 풍성한 결실을 거둘 수 있는 곳이었지요. 좋은 항구도 하나 있는데, 밧줄로 배를 매어 둘 필요도 없고 닻을 내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배를 해변에 올려놓고 바람이 다시 알맞게 불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항구 안쪽에는 동굴에서 맑은 샘물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포플러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밤이 너무 어두워 어떤 신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어 주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요. 짙은 안개가 우리 배 주위를 온통 뒤덮고 있었고, 달도 두꺼운 구름 뒤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섬을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었으며, 해안 가까이 왔음을 알려 줄 파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우리는 이미 육지에 닿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배를 해변에 올려놓고 돛을 내린 뒤, 육지로 올라가 날이 밝을 때까지 해변에서 밤을 새웠습니다.
아침의 아이,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나타나자 우리는 섬 곳곳을 둘러보며 감탄했습니다. 그러자 제우스의 딸들인 님프들이 야생 염소들을 몰아내어 우리에게 저녁 식사로 먹을 고기를 마련하게 해 주었지요. 우리는 배에서 창과 활과 화살을 가져와 세 무리로 나뉘어 염소를 사냥하기 시작했지요. 신께서 우리에게 아주 훌륭한 사냥감을 내려 준 것입니다. 나는 열두 척의 배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배마다 염소를 아홉 마리씩 얻었고, 내 배만 열 마리를 얻었지요.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먹고 마시며 배불리 즐겼습니다. 포도주도 많이 남아 있었지요. 우리가 키코네스족의 마을을 약탈할 때 각자 여러 항아리에 가득 담아 가져왔던 포도주가 아직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잔치를 벌이면서도 가까이에 있는 키클롭스족의 땅을 계속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짚을 태우는 불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지요. 그들의 목소리와 양과 염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오자 우리는 해변에 자리를 잡고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용감한 전우들이여, 나머지는 모두 여기에 남아 있어라. 내가 배를 타고 가서 저 사람들을 직접 살펴보겠다. 저들이 문명도 예의도 모르는 야만인인지, 아니면 손님을 환대할 줄 알고 인정이 있는 사람들인지 알아보고 오겠다.”
나는 배에 올라탔고, 부하들에게도 배에 올라 계류용 밧줄을 풀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배에 자리를 잡고 회색 바다를 향해 힘껏 노를 저었지요. 그곳은 멀지 않았지요. 우리는 바닷가 절벽의 비탈면에 월계수나무가 드리워진 커다란 동굴을 보았지요. 그곳은 수많은 양과 염소를 기르기에 알맞은 곳이었고, 동굴 밖에는 땅에 박아 세운 돌과 소나무와 참나무로 높이 담을 두른 큰 뜰도 있었지요.
그곳은 거대한 괴물의 거처였습니다. 마침 괴물은 집을 비우고 양 떼를 돌보러 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았고, 법이나 규율을 무시하는 무법자의 삶을 살고 있었지요. 끔찍한 괴물이었으며 인간과는 전혀 닮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높은 산꼭대기에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험준한 바위산처럼 보였습니다.
나는 부하들에게 배를 해변으로 끌어올린 뒤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가장 용감한 열두 명만 나와 함께 가도록 했지요. 나 역시 에우안테스의 아들 마론에게서 받은 달콤하고 검은 포도주가 든 염소 가죽 부대를 하나 가져갔지요. 마론은 이스마로스의 수호신 아폴론의 사제였으며, 숲이 우거진 신전 경내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성읍을 약탈할 때 그를 존중하여 마론과 그의 아내, 아이까지 살려 주었더니, 그는 내게 매우 귀중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순금 일곱 달란트와 은으로 만든 잔 하나, 그리고 물을 섞지 않은 달콤한 포도주 열두 항아리를 주었지요. 그 포도주는 가장 뛰어난 향과 맛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포도주에 대해서는 집안의 남자도 여자도 알지 못했고, 마론과 그의 아내, 그리고 집안일을 돌보는 하녀 한 사람만 알고 있었습니다. 마론이 그 포도주를 마실 때는 물 스무 잔에 포도주 한 잔을 섞었지요. 그런데도 그것을 섞는 잔에서 풍겨 나오는 향기가 너무나 황홀하여 도저히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였지요. 나는 그 포도주를 커다란 가죽 부대에 가득 담고, 먹을 양식이 든 자루도 하나 챙겨 갔습니다. 사나운 야만인을 상대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런 자는 힘이 대단할 뿐 아니라 올바른 도리나 법 따위도 전혀 존중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곧 그의 동굴에 도착했지만, 그는 양 떼를 몰고 밖에 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았지요. 치즈를 놓아두는 선반에는 치즈가 가득했고, 우리에 다 넣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어린 양과 새끼 염소도 있었지요. 그것들은 무리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먼저 조금 자란 녀석들, 그다음 조금 더 어린 양들, 마지막으로 아주 어린 녀석들이 모두 따로 격리되어 있었지요. 젖을 짜는 곳에는 우유를 짜 담는 온갖 항아리와 대접과 들통이 있었는데, 모두 유청이 흘러 넘치고 있었지요. 이 모습을 본 부하들은 먼저 치즈 몇 개를 훔쳐 배로 가져가게 해 달라고 내게 간청했지요. 그런 다음 다시 돌아와 어린 양과 새끼 염소들을 몰아 배에 싣고 떠나자고 하더군요.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지요. 동굴의 주인을 직접 만나면 그가 우리에게 선물을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막상 그를 만나고 보니, 불쌍한 내 부하들은 그를 상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불을 피우고 치즈 가운데 일부를 제물로 바쳤으며, 나머지는 먹었습니다. 그리고 키클롭스가 양 떼를 몰고 돌아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키클롭스가 돌아왔을 때 그는 저녁에 불을 피울 마른 장작을 엄청나게 많이 가져왔습니다. 그것을 동굴 바닥에 내던졌는데, 어찌나 소리가 크던지 우리는 겁에 질려 동굴 가장 안쪽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젖을 짤 암양과 암염소들을 안으로 들여보냈지요. 숫양과 숫염소는 우리 밖에 남겨 두었지요. 그런 다음 그는 동굴 입구에 거대한 돌 하나를 굴려 막았습니다. 얼마나 큰 돌이었는지 힘센 소가 끄는 네 바퀴 수레 스물두 대로도 입구에서 그 돌을 치울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일을 마친 그는 자리에 앉아 차례차례 암양과 암염소의 젖을 짰습니다. 그런 다음 각각의 새끼에게 젖을 물리게 했습니다. 그는 젖의 절반을 응고시켜 버드나무 채반에 담아 따로 두었고, 나머지 절반은 대접에 부어 저녁 식사 때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자 그는 불을 피웠지요. 그러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말했습니다.
“나그네들이여, 그대들은 누구인가? 어디에서 항해해 왔는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가, 아니면 약탈자로 바다를 떠돌며 모든 사람을 적으로 삼고 모든 사람과 맞서는 자들인가?”
우리는 그의 우렁찬 목소리와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고 정신을 잃을 만큼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나는 간신히 대답했지요.
“우리는 트로이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카이아인들입니다. 그러나 제우스의 뜻과 거센 날씨 때문에 항로를 크게 벗어나 이곳까지 떠밀려 왔습니다. 우리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이 이끄는 사람들입니다. 아가멤논은 거대한 도성을 함락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일로 온 세상에 끝없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에게 손님으로서의 환대를 베풀어 주시고, 나그네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선물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부디 신들의 분노를 두려워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그대에게 보호를 청하는 사람들이며, 제우스께서는 모든 신분 있는 나그네를 자신의 보호 아래 두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보호를 청하는 사람들과 곤경에 빠진 이방인들을 보살피는 신입니다.”
그러자 그는 내게 조금도 자비 없이 대답했습니다.
“나그네여, 그대는 어리석은 자이거나 이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로군. 나에게 신들을 두려워하거나 그들의 분노를 피하라고 말하다니! 우리 키클롭스족은 제우스나 그대들이 말하는 다른 축복받은 신들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들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이지. 내가 내키지 않는 한 제우스를 두려워해서 그대나 그대의 동료들을 살려두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대들이 이곳에 상륙했을 때 배를 어디에 정박시켰는지 말해 보라. 곶 너머에 매어 두었느냐, 아니면 육지에서 곧장 떨어진 곳에 배를 대었느냐?”
그는 나를 떠보려고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그의 속셈에 넘어갈 만큼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거짓말로 대답했지요.
“포세이돈께서 내 배를 그대 땅 저편 끝에 있는 바위로 몰아가 난파시켰습니다. 우리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 바위로 떠밀려 갔습니다. 하지만 나와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왔습니다.”
그 잔인한 자는 내게 한마디 대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손을 뻗어 내 부하 두 명을 한꺼번에 움켜잡더니 강아지를 내동댕이치듯 바닥에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들의 뇌수가 땅에 흩어졌고, 땅은 피로 젖었지요. 그러고는 그들의 몸을 사지째 찢어 갈기갈기 뜯어 먹었습니다. 야생의 사자처럼 살과 뼈와 골수와 내장까지 모조리 게걸스럽게 삼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 울면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밖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지요. 키클롭스는 인간의 살과 생우유로 거대한 배를 채우고 나서 양들 사이에 몸을 길게 뻗고 잠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칼집에서 칼을 뽑아 그의 배 속 깊숙이 찔러 넣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모두가 틀림없이 죽게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괴물이 동굴 입구에 막아 놓은 그 거대한 돌을 우리가 도저히 옮길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흐느끼고 한숨을 쉬며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거인은 다시 불을 피우고 염소와 암양의 젖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짠 다음, 각각의 새끼에게 젖을 물렸습니다. 모든 일을 마치자 그는 다시 내 부하 두 명을 움켜잡아 아침 식사로 먹기 시작했지요. 이윽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동굴 입구의 돌을 굴려 치우고 양들을 밖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그 돌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는데, 마치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에 뚜껑을 덮는 것처럼 아주 쉽게 그 일을 해치웠습니다. 그는 양들을 산으로 몰아가면서 ‘쉬쉬’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는 어떻게 복수하여 내 명예를 회복할지 궁리하기 시작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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