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돼지치기와 소치기가 함께 회랑을 빠져나갔고, 오디세우스도 그들을 뒤따라갔다. 그들이 문과 바깥뜰을 벗어나자 오디세우스가 조용히 그들에게 말했다.
“소치기여, 그리고 돼지치기여, 내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서 말할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하나 있는데, 이제는 말하는 편이 좋을 것 같소. 만약 어떤 신이 갑자기 오디세우스를 이곳으로 다시 데려온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소? 구혼자들의 편에 서겠소, 아니면 오디세우스의 편에 서겠소?”
소치기가 대답했다.
“제우스 신이시여, 정말 그렇게 되게 해주소서. 어떤 신이 오디세우스를 다시 데려오기만 한다면, 내가 온 힘을 다해 그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될 거요.”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도 같은 뜻으로 모든 신에게 오디세우스가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두 사람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확실히 알게 된 오디세우스가 말했다.
“놀라지 마라. 내가 바로 오디세우스다. 나는 수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마침내 스무 해 만에 내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보기에 내 귀환을 기뻐하는 사람은 하인들 가운데 너희 둘뿐이다. 다른 누구도 내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을 듣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 너희 둘에게만 진실을 털어놓겠다. 하늘이 나를 도와 구혼자들을 내 손에 넘겨준다면, 너희 둘에게 각각 아내를 구해 주고, 내 집 가까이에 집과 땅도 마련해 주겠다. 그리고 너희는 나에게 형제와도 같은 사람이자 텔레마코스의 친구가 될 것이다. 이제 내가 정말 누구인지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겠다. 이것을 보아라. 내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의 아들들과 함께 파르나소스산에서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의 엄니에 찢긴 상처다.”
오디세우스는 이렇게 말하며 누더기를 걷어 올려 커다란 흉터를 드러냈다. 두 사람은 그 상처를 자세히 살펴본 뒤, 눈앞의 나그네가 진짜 주인임을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오디세우스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와 어깨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그들의 손과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누가 말리지 않았다면 그들의 눈물은 해가 저물 때까지도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디세우스가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울음을 그쳐라. 누군가 우리를 보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안으로 들어갈 때는 둘이 함께 들어가지 말고 한 사람씩 들어가라. 내가 먼저 들어갈 테니 너희는 잠시 뒤에 따라 들어오도록 해라. 그리고 이것을 우리끼리의 신호로 삼자. 구혼자들은 모두 내가 활과 화살통을 손에 넣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니 에우마이오스, 자네가 활을 옮겨서 내 손에 넘겨주고, 여자들에게는 자기들 방에서 문을 닫아 걸라고 일러라. 혹시 집 안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듯한 소리나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리더라도 여자들은 밖으로 나오지 말고, 하던 일을 계속하며 조용히 있으라고 해라. 그리고 필로이티오스, 너는 바깥뜰의 문을 단단히 닫고 즉시 굳게 걸어 잠가라.”
이렇게 말한 뒤 오디세우스는 집 안으로 돌아가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다시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하인도 차례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활은 에우리마코스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불가에 앉아 활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지만, 그래도 활시위를 걸 수 없었다. 그는 몹시 낙담한 나머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와 우리 모두를 생각하니 슬프도다. 결혼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 아프기는 하나 그것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이타카에도, 다른 곳에도 여자는 얼마든지 많으니까. 내가 가장 괴로운 것은 우리가 오디세우스보다 힘이 턱없이 약해서 그의 활조차 당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손들의 눈에까지 우리는 수치스러운 존재로 남게 될 것이다.”
안티노오스가 말했다.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을 거요, 에우리마코스. 당신도 알고 있지 않소. 오늘은 온 나라에서 아폴론의 축제를 여는 날이오. 이런 날에 누가 활을 당길 수 있겠소? 활은 일단 치워 둡시다. 도끼들도 그대로 두시오. 누가 와서 그것들을 훔쳐 갈 리도 없으니 말이오. 술 따르는 시종을 시켜 잔을 돌리게 하고,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실컷 마시도록 합시다. 그리고 내일은 멜란티오스에게 가장 좋은 염소들을 가져오라고 합시다. 그것으로 위대한 궁수 아폴론에게 넓적다리뼈를 바치고, 다시 활을 매어 봅시다. 그러면 승부를 낼 수 있을 것이오.”
다른 구혼자들도 모두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인들이 손님들의 손에 물을 부어 주었고, 시종들은 술과 물을 섞어 큰 혼합 그릇에 가득 채운 뒤 한 사람씩 돌렸다. 각자 신에게 술을 올리고 마음껏 술을 마셨다. 제사를 마치고 모두가 원하는 만큼 술을 마시고 나자, 오디세우스가 꾀를 내어 말했다.
“명망 높은 왕비의 구혼자들이여, 제 생각을 좀 말씀드리겠습니다. 특히, 조금 전 사리에 맞는 말씀을 해주신 에우리마코스와 안티노오스께 청합니다. 지금은 활쏘기를 멈추고 이 일을 신들의 뜻에 맡기십시오. 내일 아침, 하늘이 누구에게 승리를 허락할지 지켜보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게 그 활을 한번 내어 주십시오. 여기 있는 여러분 앞에서 내 손에 아직 힘이 남아 있는지, 여행과 오랜 세월의 고난 때문에 예전의 힘을 모두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이 말에 구혼자들은 모두 몹시 화를 냈다. 늙은 나그네가 정말 활시위를 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자 안티노오스가 사납게 꾸짖으며 말했다.
“이 가련한 인간아, 네 몸에는 분별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구나. 너보다 신분이 높은 우리와 함께 식사하면서 우리와 똑같은 양의 음식을 대접받고, 우리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에게는 과분한 일이다. 우리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허락받은 거지나 이방인은 아무도 없었다. 포도주가 너를 망쳐 놓은 모양이구나. 포도주를 지나치게 마시는 자들은 누구나 그렇게 된다. 포도주 때문에 켄타우로스 에우리티온도 미쳐 버린 적이 있었지. 그는 라피타이족 가운데서 페이리토오스와 함께 지내고 있을 때 술에 취했다. 술기운이 머리에 오르자 그는 이성을 잃고 페이리토오스의 집에서 못된 짓을 저질렀지. 그러자 그곳에 모여 있던 영웅들이 분노하여 그의 귀와 코를 잘라 버렸다. 그리고 그를 문밖으로 끌어내 집에서 내쫓았다. 그는 정신을 잃은 채 떠났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한 대가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했지. 그 일로 인간과 켄타우로스 사이에는 전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전적으로 그가 술에 취해 자초한 일이었지. 너도 마찬가지다. 만일 네가 이 활을 당겨 시위를 걸려고 한다면, 여기 있는 누구에게서도 자비를 기대하지 마라. 우리는 당장 너를 에케토스왕에게 보내 버릴 것이다. 그는 자기 앞에 나타나는 자라면 누구든 죽이는 인간이다. 너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너보다 젊은 사람들과 시비 붙지 말고 조용히 술이나 처먹도록 해라.”
그러자 페넬로페가 그에게 말했다.
“안티노오스, 이 집에 찾아온 손님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 낯선 이가 오디세우스의 강력한 활에 시위를 걸 만큼 힘이 세다 한들 설마 그가 나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서 아내로 삼겠습니까? 저 사람도 그런 생각을 품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그 일을 걱정하여 잔치를 망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에우리마코스가 대답했다.
“페넬로페 왕비님, 저희는 이 사람이 왕비님을 데리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데 있습니다. 아카이아인 가운데 비천한 자들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우리를 헐뜯으며 이런 말을 퍼뜨릴까 두려운 것입니다.
‘저 구혼자들이라는 자들은 참으로 형편없는 인간들이구나. 용맹한 남자의 아내에게 구혼하면서도, 그 남자의 활 하나 제대로 당기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집에 굴러들어온 거지 같은 떠돌이 하나가 단번에 활을 당기고 화살을 쏘아 쇠붙이 고리들을 관통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큰 수치가 될 것입니다.”
페넬로페가 대답했다.
“에우리마코스여, 위대한 지도자의 재산을 끊임없이 먹어 치우고 그의 집안을 욕되게 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당신 말대로 수군댄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 낯선 이는 몸집도 크고 힘도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자신은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에게 활을 주어 정말 활시위를 걸 수 있는지 직접 보도록 합시다. 내 장담하건대, 아폴론께서 그에게 활시위를 거는 영광을 허락하신다면 나는 반드시 그에게 튼튼한 망토와 튜닉, 개와 도둑을 물리칠 창과 날카로운 칼도 내어 주겠소. 게다가 신발도 마련해 주고, 그가 가고 싶어 하는 곳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해주겠소.”
그러자 텔레마코스가 말했다.
“어머니, 이타카에서도, 엘리스 맞은편에 있는 섬들에서도, 누군가에게 이 활을 줄지 말지 결정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저뿐입니다. 누구도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습니다. 설령 제가 이 낯선 이에게 활을 아예 선물로 주기로 마음먹는다 해도, 누구도 저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어머니는 집 안으로 들어가셔서 평소 하시던 일을 하십시오. 베틀을 돌보고, 실 잣는 가락을 챙기고, 시녀들을 보살피십시오. 활을 다루는 일은 남자의 일이고, 무엇보다도 제 일입니다. 이 집의 주인은 바로 저이기 때문입니다.”
페넬로페는 놀라며 집 안으로 돌아갔고, 아들의 말을 가슴에 새겼다. 그녀는 시녀들과 함께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슬퍼했다. 그러자 아테나가 그녀의 눈꺼풀 위로 달콤한 잠을 내려 주었다.
한편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는 활을 집어 들고 오디세우스에게 가져가려 했다. 그러자 구혼자들이 사방에서 그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그 활을 어디로 가져가려는 것이냐? 제정신이 아니구나! 아폴론과 다른 신들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면, 네가 기르던 사냥개들이 너를 조용한 곳으로 끌고 가서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에우마이오스는 모두가 한꺼번에 고함을 질러 대자 겁을 먹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활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회랑 건너편에 있던 텔레마코스가 그를 향해 소리치며 위협했다.
“에우마이오스, 저들이 뭐라고 하든 활을 가져오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아직 젊지만 돌로 쳐서 그대를 시골로 쫓아낼 것이오. 나와 그대가 싸운다면 내가 더 강하다는 것은 분명하니까. 내가 그대보다 강한 만큼만이라도 이 집에 있는 다른 구혼자들보다 내가 더 강했더라면 저들 가운데 음모를 꾸미는 몇몇은 곧 병들고 후회하며 이 집에서 쫓겨났을 것이오.”
텔레마코스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크게 웃었다. 덕분에 그들은 텔레마코스에 대해서도 한결 기분이 풀렸다. 그러자 에우마이오스는 활을 가져와 오디세우스의 손에 건네주었다. 그 일을 마친 뒤 에우마이오스는 에우리클레이아를 따로 불러 말했다.
“에우리클레이아, 텔레마코스께서 여자들이 있는 방의 문을 닫아 걸라고 하셨소. 혹시 집 안에서 사람들이 싸우는 듯한 소리나 소란이 들리더라도 여자들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소. 하던 일을 계속하며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무르라 하셨소.”
에우리클레이아는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그리고 여자들이 있는 방의 문을 모두 닫아 걸었다. 한편 필로이티오스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밖으로 나가 바깥뜰의 문을 단단히 잠갔다. 문간에는 파피루스 섬유로 만든 배의 밧줄 하나가 있었는데, 그는 그것으로 문을 단단히 묶어 놓은 뒤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의 시선은 활을 손에 쥔 오디세우스에게 향해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활을 이리저리 돌려 가며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자신이 없는 동안 벌레들이 활의 양쪽 뿔을 갉아먹지는 않았는지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그러자 구혼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옆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늙은이는 활을 꽤나 잘 아는 사람처럼 보이는군. 저런 활을 집에 하나 가지고 있든가, 아니면 하나 만들 작정인가 보군. 늙은 떠돌이치고는 활을 만지는 손길이 제법 능숙하군.”
다른 사람이 말했다.
“활 만지는 솜씨가 능숙하다고 한들,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저런 활의 시위를 맬 수 있겠소?”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활을 집어 들고 구석구석 살펴본 뒤, 마치 숙련된 음유 시인이 새로 만든 수금에 줄을 거는 것처럼 아주 쉽게 활시위를 걸었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활시위를 튕겨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했다. 그러자 활시위가 그의 손끝에서 제비가 지저귀는 듯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구혼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바로 그 순간, 제우스가 큰 천둥을 울렸는데, 그것은 신이 보내는 징조였다. 오디세우스는 그 소리가 교활한 크로노스의 아들이신 제우스께서 자신에게 보내신 징조임을 알아차리고 속으로 기뻐했다.
오디세우스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화살 하나를 집었다. 아카이아인이 곧 맛보게 될 화살들은 모두 화살통 안에 있었지만, 그 화살 하나만은 밖에 나와 있었다. 그는 화살을 활의 가운데에 걸치고, 자리에 앉은 채로 화살의 오늬와 시위를 몸쪽으로 당겼다. 목표를 정확히 겨눈 그는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첫 번째 도끼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모든 도끼의 자루 구멍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리고 마지막 도끼를 지나 바깥뜰까지 날아갔다. 그러자 오디세우스가 텔레마코스를 향해 말했다.
“텔레마코스, 그대의 손님이 그대를 부끄럽게 하지는 않았구려. 내가 겨눈 곳을 빗나가지 않았고, 활시위를 거는 데에도 오래 걸리지 않았소. 나는 아직 힘이 남아 있소. 구혼자들이 나를 비웃던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강하오. 자, 이제는 아카이아인들이 날이 저물기 전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연회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가 되었소.”
오디세우스가 이렇게 말하면서 눈썹으로 신호를 보내자 텔레마코스는 곧바로 칼을 허리에 차고 창을 움켜쥔 채 아버지 곁에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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