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쟁반이 치워지고, 페어팩스 부인이 구석에 앉아 뜨개질을 시작하자 로체스터 씨가 말했다.
“난롯가로 오시오.”
그동안 아델은 내 손을 잡고 방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콘솔 테이블과 장식장 위에 놓인 아름다운 책들과 장식품들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아델은 내 무릎 위에 앉으려 했지만, 그는 아델에게 파일럿과 놀라고 지시했다.
“이 집에 온 지 석 달 되었소?”
“네, 로체스터 씨.”
“어디에서 왔소?”
“○○○에 있는 로우드 학교에서 왔습니다.”
“아, 자선 학교였지. 거기에는 얼마나 있었소?”
“8년 있었습니다.”
“8년이라고! 참 오래도 버티셨군. 그런 곳이라면 4년만 지내도 웬만한 사람의 몸은 다 망가질 거라고 생각했소! 그래서 선생에게 어딘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분위기가 있었던 거군요. 어젯밤 헤이 레인에서 선생을 만났을 때는, 느닷없이 옛날 이야기가 떠올랐소. 선생이 내 말을 홀린 것이 아닌지 물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소. 부모님은 계시오?”
“안 계십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닐 테고. 기억은 나오?”
“아니요.”
“그럴 줄 알았소. 그럼 어젯밤 선생이 울타리에 앉아 그 사람들을 기다렸던 거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초록 옷을 입은 사람들 말이오. 어젯밤 같은 달 밝은 밤은 요정들이 나타나기에 딱 알맞은 밤이었지. 혹시 내가 당신네 요정들의 원무(圓舞)를 방해한 탓에, 선생이 길 위에 그 지독한 얼음을 깔아 내 말을 넘어뜨린 건 아니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초록 옷을 입은 요정들은 백 년 전에 모두 잉글랜드를 떠났습니다. 이제는 헤이 레인에서도, 그 주변 들판에서도 그들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름도, 수확의 계절도, 겨울의 달빛도, 다시는 그들의 흥겨운 잔치 위를 비추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페어팩스 부인은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눈썹을 치켜올린 채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우리를 바라보았다.
“부모가 없다고 하더라도 친척은 있겠지. 삼촌이나 이모, 고모, 숙모 같은 사람 말이오.”
로체스터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요. 제가 본 적 있는 친척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럼 집은?”
“집도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은 어디에 살고 있소?”
“형제자매도 없습니다.”
“그럼 누가 당신에게 이곳을 추천했소?”
“신문에 제가 광고를 냈고, 페어팩스 부인께서 제 광고에 답장을 보내셨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섭리 덕분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을 날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에어 선생은 제게는 더없이 소중한 벗이 되었고, 아델에게는 친절하고 세심한 선생님이 되어 주었답니다.”
이제야 대화의 흐름을 이해한 페어팩스 부인이 말했다.
“선생을 변호하려고 애쓰실 것 없습니다.” 로체스터 씨가 대꾸했다.
“칭찬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내 판단이 달라지지는 않소. 나는 직접 보고 판단하겠소. 이 사람은 처음부터 내 말을 넘어뜨리는 것으로 인사를 했으니까.”
“예?” 하고 페어팩스 부인이 놀라 되물었다.
“내가 발목을 삔 것도 선생 덕분이지.”
과부인 페어팩스 부인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에어 선생, 당신은 도시에서 살아 본 적이 있소?”
“없습니다.”
“사교 생활은 많이 해 보았소?”
“로우드 학교의 학생들과 선생님들 외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손필드 저택 사람들뿐입니다.”
“책은 많이 읽었소?”
“우연히 손에 들어온 책들만 읽었습니다. 그것도 많지는 않습니다. 학문적인 책은 더욱 아니고요.”
“선생은 마치 수녀처럼 살아왔군요. 분명 종교 교육도 철저히 받았겠지요. 듣자 하니 로우드 학교를 운영하는 브로클허스트는 목사라면서요?”
“네, 로체스터 씨.”
“그렇다면 여학생들은 수도원의 수녀들이 영적 지도자를 떠받들듯 그를 숭배했겠군요.”
“아닙니다.”
“오! 저런! 아니라고요? 배워야 하는 수녀가 자기 신부를 숭배하지 않았다니! 불경하게 들리는군요.”
“저는 브로클허스트 씨를 싫어했습니다. 저만 그런 것도 아니었고요. 브로클허스트 씨는 가혹한 사람이었고, 거만하면서도 사사건건 간섭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우리 머리카락을 잘라 버렸고, 절약한다는 명목으로 질이 나쁜 바늘과 실을 사 주어서 제대로 바느질조차 하기 어렵게 했습니다.”
“그건 정말 잘못된 절약이었군요.”
대화의 요지를 다시 알아차린 페어팩스 부인이 말했다.
“그게 그 사람이 저지른 비리의 전부요?”
로체스터 씨가 물었다.
“학교 급식과 식료품을 혼자 관리하던 시절에는 우리를 굶기다시피 했습니다. 나중에 운영위원회가 생기기 전까지는요. 일주일에 한 번씩 지루하게 긴 훈계를 늘어놓았고, 저녁마다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읽어 주곤 했습니다. 그 책에는 갑작스러운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이야기들이 가득해서, 우리는 밤에 잠자리에 드는 것조차 두려워질 정도였습니다.”
“로우드 학교에는 몇 살 때 들어갔소?”
“열 살쯤이었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8년을 지냈으니, 지금은 열여덟 살이겠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셈법은 꽤 쓸모가 있군. 셈법을 몰랐으면 선생 나이를 짐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요. 선생은 얼굴 생김새와 표정이 잘 맞지 않아서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렵구려. 그럼 로우드에서는 무엇을 배웠소? 피아노는 칠 줄 아오?”
“조금 칩니다.”
“물론 그렇겠지. 다들 그렇게 대답하더군. 서재로 가시오. 아니, 원하신다면 말이오. 명령조로 말한 것은 이해해 주시오. 나는 늘 ‘이렇게 하시오.’라고 말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오. 새로 들어온 사람 하나 때문에 오랜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소. 자, 서재로 촛불 하나를 들고 가시오. 문은 열어 둔 채 피아노 앞에 앉아 한 곡 연주해 보시오.”
나는 그의 지시에 따라 서재로 갔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로체스터 씨가 소리쳤다.
“됐소! 당신 말대로 정말 조금 치는군. 다른 잉글랜드 학교 여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이오. 아마 몇몇보다는 조금 나을지 몰라도, 잘 친다고 할 정도는 아니오.”
나는 피아노 뚜껑을 닫고 다시 돌아왔다. 로체스터 씨는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 아델이 그림 몇 장을 보여 주면서 선생이 그린 것이라고 하더군요. 전부 혼자 그린 건 아니겠지요? 아마 스승이 도와주었겠죠?”
“아닙니다!”
나는 곧바로 끼어들어 말했다.
“아, 자존심이 상했군요. 좋소. 그 작품들이 정말 모두 당신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화집을 가져와 보시오. 하지만 확신이 없다면 섣불리 장담하지 마시오. 나는 여기저기 짜깁기한 작품쯤은 금방 알아보니까.”
“그렇다면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직접 판단해 주십시오.”
나는 서재에서 화집을 가져왔다.
“탁자 가까이 가져오시오.”
나는 탁자를 그의 소파 곁으로 밀어 놓았다. 아델과 페어팩스 부인도 그림을 보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너무 몰려들지는 마시오.”
로체스터 씨가 말했다.
“내가 다 보고 나면 한 장씩 받아 가시오. 하지만 얼굴을 내 코앞까지 들이밀지는 마시오.”
그는 그림과 스케치를 한 장 한 장 천천히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중 세 장은 따로 옆에 놓고, 나머지는 다 본 뒤 한쪽으로 밀어 버렸다.
“페어팩스 부인, 이것들은 저쪽 탁자로 가져가서 아델과 함께 보십시오.”
그리고 나를 흘낏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은 다시 자리에 앉아보시오. 이 그림들은 모두 같은 사람의 손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것은 알겠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오?”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들을 그릴 시간이 있었소? 이 정도 작품이라면 상당한 시간과 깊은 생각이 필요했을 텐데.”
“로우드 학교에서 보낸 마지막 두 번의 방학 동안 그렸습니다. 그때는 달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
“본보기로 삼은 그림은 어디서 구했소?”
“제 머릿속에서요.”
“지금 당신 어깨 위에 달려 있는 그 머리 말이오?”
“네, 로체스터 씨.”
“그 머릿속에는 이런 것이 더 들어 있소?”
“아마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는 그림들을 다시 눈앞에 펼쳐 놓고 번갈아 가며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 그림들은 결코 대단한 걸작은 아니었다. 그림의 소재들은 내 마음속에 아주 선명하게 떠오른 것들이었다. 실제로 붓을 들기 전, 나는 그것들을 마음의 눈으로 보았고, 그 모습을 강렬하고 생생하게 그렸다. 그러나 내 손은 상상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결국 완성된 그림들은 내가 마음속에서 그려 보았던 모습의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림들은 모두 수채화였다.
첫 번째 그림은,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낮고 검푸르게 밀려드는 구름을 그린 것이었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온통 어둠에 잠겨 있고, 가까운 바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앞쪽에는 육지가 전혀 없었으므로, 가장 가까운 거센 파도마저도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오직 한 줄기 빛만이 반쯤 물에 잠긴 돛대를 비추고 있었다. 그 위에는 크고 검은 가마우지가 앉아 있었는데, 날개에는 하얀 포말이 흩뿌려져 있었다. 새의 부리에는 보석이 박힌 황금 팔찌가 물려 있었다. 나는 팔레트에서 낼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색으로 그 보석을 칠했고, 붓끝으로 표현할 수 있는 한 가장 눈부시게 빛나도록 묘사했다.
새와 돛대 아래, 초록빛 바닷속에서는 익사한 시신 하나가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뚜렷이 드러난 것은 희고 아름다운 팔 하나뿐이었다. 그 팔에서 방금 그 황금 팔찌가 물살에 씻겨 나갔거나 찢겨 떨어진 듯했다.
두 번째 그림은, 전경에 희미한 언덕 봉우리 하나만 보였다. 풀과 몇 장의 나뭇잎은 바람을 맞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 너머에는 황혼 무렵처럼 짙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늘 속으로 한 여인의 상반신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어둡고 부드러운 색조를 섞어 그 모습을 그렸다. 희미한 이마에는 별 하나가 왕관처럼 빛나고 있었고, 그 아래의 얼굴은 엷은 안개를 통해 보는 듯 아련하게 드러났다. 눈동자는 검고도 거칠게 빛났으며, 머리카락은 폭풍이나 번개가 갈라놓은 빛 없는 먹구름처럼 길게 흩날리고 있었다.
목에는 달빛 같은 창백한 빛이 비쳤고, 그 은은한 광채는 엷은 구름 띠에도 스며 있었다. 그것은 마치 저녁별이 인간의 형상을 빌려 나타난 환영 같았다.
세 번째 그림은, 북극의 겨울 하늘을 꿰뚫고 솟은 거대한 빙산의 봉우리를 그린 것이었다. 수평선에는 오로라가 빽빽하게 늘어서 창끝 같은 희미한 빛을 하늘로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 풍경 앞쪽에는 거대한 머리 하나가 빙산에 기대어 기울어져 있었다. 이마 아래에서 가늘고 긴 두 손이 아래 얼굴을 검은 베일로 가렸다. 뼈처럼 새하얗고 핏기 없는 이마와, 절망으로 얼어붙은 유리 같은 공허함만을 담은 눈 하나만이 드러나 있었다.
관자놀이 위, 휘감긴 검은 터번 사이로 구름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하얀 불꽃 고리가 빛나고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섬뜩한 빛깔의 반짝임이 있었다. 그 창백한 초승달 모양은 ‘왕관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그것이 감싸고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형상’이었다.
“이 그림들을 그릴 때 행복했소?”
잠시 뒤 로체스터 씨가 물었다.
“네, 로체스터 씨. 저는 그림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행복했습니다. 이 그림들을 그리는 동안 저는 지금껏 맛본 것 가운데 가장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대단한 말은 아니군. 선생 이야기대로라면 그동안 누린 기쁨이 워낙 적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기묘한 색채를 섞고 배치하는 동안에는 아마도 예술가만의 꿈속 세상에 살고 있었겠지. 하루에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소?”
“방학이라 다른 할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또 정오부터 밤까지 계속 그렸습니다. 한여름의 긴 낮이 마음껏 몰두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그처럼 열정을 다해 애쓴 결과에 만족했소?”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의 이상과 제 손으로 완성한 작품 사이의 차이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매번 제가 상상한 것은, 제 능력으로는 끝내 구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전혀는 아니오. 당신 생각의 그림자는 붙잡았소. 하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을 거요. 아마도 그것을 완전한 형상으로 구현할 만한 화가의 기교와 지식이 아직 부족했겠지. 하지만 이 그림들은 학교를 갓 나온 젊은 아가씨의 작품치고는 매우 독특하오.
무엇보다 그 발상 자체에 요정 같은 상상력이 있소. 저 저녁별 속의 눈은 분명 꿈에서 본 것이겠지. 어떻게 저 눈을 그렇게 또렷하면서도 전혀 눈부시지 않게 그릴 수 있었소? 위에 떠 있는 별빛이 그 눈빛을 눌러 버리고 있소. 그런데 그 깊고 엄숙한 눈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 거요? 또, 바람 그리는 법을 누가 가르쳐 주었소? 저 하늘에도, 저 언덕 위에도 거센 바람이 불고 있지 않소. 그리고 라트모스★는 어디서 본 것이오? 저건 분명 라트모스니까. 자, 이제 그림은 가져가도 좋소!”
나는 겨우 화집의 끈을 묶었을 뿐인데, 그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아홉 시로군. 에어 선생, 아델을 이렇게 늦게까지 깨어 있게 두다니 대체 무얼 하고 있소? 아이를 데리고 침대로 가시오.”
아델은 방을 나가기 전에 로체스터 씨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다. 그는 아델의 표현을 받아 주기는 했지만, 그다지 반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어쩌면 파일럿이 반응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고, 오히려 그보다도 덜 기뻐하는 듯했다.
“그럼 모두 안녕히 주무시오.”
그는 손을 문 쪽으로 가볍게 내저으며 말했다. 그 몸짓에는 이제는 지쳤으니 물러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페어팩스 부인은 뜨개질감을 정리했고, 나는 화집을 챙겼다. 우리는 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고, 그는 차갑게 고개만 한 번 끄덕여 답했다.
우리는 방을 나왔다. 아델을 재운 뒤 페어팩스 부인의 방으로 돌아오자 나는 물었다.
“페어팩스 부인, 전에 로체스터 씨는 특별히 괴팍한 분은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글쎄요, 그런가요?”
“제 생각에는, 기분이 너무 자주 바뀌고, 말과 행동도 몹시 돌발적인 분 같아요.”
“맞아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그분의 그런 태도에 너무 익숙해서 이제는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게다가 성격에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참아드려야지요.”
“왜요?”
“한편으로는 그게 타고난 성품이기 때문이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 천성은 어쩔 수 없잖아요. 또 한편으로는 분명 마음을 괴롭히는 고통스러운 생각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무슨 일이지요?”
“우선은 집안일 때문이죠.”
“하지만 지금은 가족이 없잖아요.”
“지금은 그렇지만 예전에는 있었어요. 적어도 가까운 친척들은 있었지요. 몇 해 전에 형님을 잃으셨답니다.”
“형님을요?”
“그래요. 지금의 로체스터 씨가 이 재산을 물려받은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한 9년쯤 되었지요.”
“9년이면 꽤 긴 시간인데, 형님을 아주 각별히 사랑하셔서 아직도 그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시는 건가요?”
“글쎄요, 아마 아닐 거예요. 두 분 사이에는 몇 가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형님인 롤런드 로체스터 씨는 동생에게 그다지 좋은 형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께 동생에 대한 편견을 심어 드렸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돈을 무척 중시하는 분이었고, 가문의 재산을 하나로 모아 유지하고 싶어 하셨지요. 형제끼리 재산을 나누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어요. 한편 동생 에드워드 씨도 가문의 명성에 걸맞은 부를 갖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동생이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몇 가지 공정하지 못한 조치가 있었어요. 결국 그것이 큰 불행을 불러왔답니다.
아버지와 형님은 로체스터 씨를 부유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명분으로 일을 꾸몄어요. 그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저도 분명히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로체스터 씨의 자존심에 그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일을 도저히 참아 낼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요. 그분은 남을 쉽게 용서하는 성품이 아니에요. 결국 가족과 절연했고, 그 뒤로 여러 해 동안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며 살아왔죠.
유언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난 형님의 죽음으로 손필드 저택의 주인이 된 이후에도, 그분이 손필드에서 보름 이상 계속 머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사실, 그분이 이 오래된 집을 피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왜 이곳을 피하시는 걸까요?”
“아마 이 집이 음산하다고 느끼시는 게 아닐까요?”
부인이 대답을 얼버무리는 듯했다.
좀 더 분명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페어팩스 부인은 로체스터 씨가 겪은 시련의 원인과 성격에 대해 더 자세히 말할 수 없었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자신도 그 일은 거의 알지 못하며,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 역시 대부분 짐작에 불과하다고 거듭 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그 이야기를 묻지 않기를 분명히 바라고 있었다. 나 역시 더 묻지 않았다.
★라트모스(Latmos): 튀르키예 서남부에 있는 베슈파르마크 산맥의 고대 그리스식 이름. 여기서 이 이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교정 후기
이 장에서는 어떻게 수정했는지 몇 가지 올려 봅니다.
8년이라고! 당신은 참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군.
▶ 8년이라고! 참 오래도 버티셨군요.
그럼 어젯밤 당신이 그 오르내림 계단에 앉아 기다리던 사람들은 누구였소?
▶ 그럼 어젯밤 선생이 울타리 계단에 앉아 그 사람들을 기다렸던 거요?
보다시피 이럴 때 산수는 꽤 쓸모가 있군. 그 도움이 없었다면 선생 나이를 짐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요.
▶ 이럴 때 셈법은 꽤 쓸모가 있군요. 셈법을 몰랐으면 선생 나이를 짐작하기도 쉽지 않았을 거요.
그가 그렇게 그림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독자 여러분께 그 그림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야기해 두겠다. 다만 먼저 말해 두자면, 그것들은 결코 대단한 걸작은 아니었다.
▶ (삭제) 그 그림들은 결코 대단한 걸작은 아니었다.
그래서 에드워드 씨가 성인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위해 몇 가지 일이 추진되었는데, 그것이 결코 공정한 일이 아니었고 결국 커다란 불행을 불러왔답니다.
▶ 그래서 동생이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돼서 몇 가지 공정하지 못한 조치가 있었어요. 결국 그것이 큰 불행을 불러왔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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