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읽기 시리즈 1 제인 에어 14장>
솔직한 대화
그 뒤 며칠 동안 로체스터 씨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는 아침에는 사업과 관련된 일로 몹시 바쁜 듯했고, 오후가 되면 밀코트나 인근에 사는 손님들이 찾아와 때때로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발목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말을 탈 수 있게 되자 자주 말을 타고 외출했다. 아마도 찾아왔던 사람들의 방문에 답례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고는 대개 밤늦게야 돌아왔다.
그 기간에는 아델조차도 잘 부르지 않았다. 나 역시 그와 마주칠 기회라고는 복도나 계단, 또는 갤러리에서 우연히 스치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럴 때면 그는 가끔 거만하고 냉담한 태도로 나를 지나치며 멀리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차가운 시선 한 번으로 끝냈다. 어떤 때는 신사다운 상냥함을 보이며 미소를 짓고 정중하게 인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의 변덕스러운 기분이 나를 불쾌하게 하지는 않았다. 그의 기분 변화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는 손님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해 놓고 내 화집을 가져오라고 했다. 아마도 그 안의 그림들을 손님들에게 보여 주려 했던 것 같았다. 이후 손님들은 밀코트에서 열리는 공공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떠났다고 페어팩스 부인이 알려주었다. 그날 밤은 비바람이 심하고 날씨가 몹시 궂어서 로체스터 씨는 그들과 함께 나가지 않았다.
손님들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벨이 울렸다. 나와 아델에게 아래층으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나는 아델의 머리를 빗겨 단정히 손질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늘 그렇듯 퀘이커 교도 같은 단정한 차림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너무 몸에 꼭 맞고 수수한 옷차림이었고, 단정하게 땋은 머리까지 흐트러질 틈이 없었으므로 따로 손볼 것도 없었다.
우리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델은 혹시 그 작은 선물 상자가 드디어 도착했는지 궁금해했다. 그 상자는 착오가 생기는 바람에 여태 도착이 늦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델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식당에 들어서자 탁자 위에는 작은 종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아델은 본능적으로 그것이 자신의 것임을 알아보았다.
“내 상자예요! 내 상자예요!”
아델은 프랑스어로 외치며 상자를 향해 달려갔다.
“그래, 드디어 네 상자가 왔구나. 진정한 파리의 아가씨답게 저 구석으로 가져가서 실컷 배를 갈라 보렴.”
벽난로 곁의 커다란 안락의자 깊숙이 몸을 묻고 앉아 있던 로체스터 씨가 낮고 다소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명심하렴. 배를 갈라 보는 과정에 대해 일일이 나에게 설명하지도 말고, 안에서 무엇이 나왔는지도 보고하지 마라. 수술은 조용히 끝내도록 해. 얌전히 있어라, 얘야. 알겠니?”
하지만 아델은 그런 주의를 들을 필요도 없어 보였다. 이미 보물을 안고 소파로 물러나더니 뚜껑을 묶고 있는 끈을 푸느라 여념이 없었다. 마침내 끈을 풀고, 은빛이 감도는 얇은 포장지를 몇 겹 걷어 내자 아델은 프랑스어로 이렇게 외쳤다.
“오, 하늘이시여! 정말 아름다워요!”
그러고는 황홀한 감탄 속에 완전히 넋을 잃은 채 상자 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에어 선생도 거기 있소?”
그때 로체스터 씨가 반쯤 몸을 일으켜, 내가 아직 서 있는 문 쪽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 좋아요! 이리 앞으로 오시오. 여기 앉으시오.”
그는 자기 옆으로 의자를 하나 끌어당겼다.
“나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소. 나이 많은 독신인 내게는 조잘대는 아이들과 관련된 즐거운 추억이 없기 때문이지. 어린애와 단둘이 마주 앉아 저녁 한때를 보내야 한다면 견딜 수 없을 거요. 그 의자를 더 뒤로 빼지 마시오, 에어 선생. 내가 놓아둔 바로 그 자리에 앉으시오. …아니, 원하신다면 말이오. 이런 예의 차리는 말투는 정말 어렵군! 나는 자꾸 잊어버린단 말이오. 그렇다고 해서 순박한 노부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오.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노부인을 생각해야겠군.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되지. 그분은 페어팩스 집안 사람이거나, 적어도 그 집안에 시집온 분이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들 하지 않소.”
그는 종을 울려 사람을 보내 페어팩스 부인을 초대했다. 부인은 곧 뜨개질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좋은 저녁이에요, 부인. 한 가지 자비를 베풀어주시길 부탁드리려고 불렀습니다. 내가 아델에게 선물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더니,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아 터질 지경입니다. 아델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말상대가 되어 주십시오. 아마 부인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 가운데 가장 자비로운 일이 될 겁니다.”
과연 아델은 페어팩스 부인을 보자마자 소파로 불러 앉히더니, 곧바로 상자 속에 들어 있던 도자기 인형과 상아 장난감, 밀랍 인형들을 그녀의 무릎 위에 잔뜩 쏟아 놓았다. 신이 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서툰 영어로 이것저것 설명하고 감탄을 쏟아 놓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훌륭한 주인 노릇은 다 했군. 손님들이 서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련해 주었으니, 이제 나는 내 즐거움을 찾을 자유가 생겼소. 에어 선생, 의자를 조금만 더 앞으로 당기시오. 아직도 너무 멀리 있소. 이 편안한 의자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당신이 잘 보이지 않는군. 그런데 나는 이 자세를 바꾸고 싶지 않소.”
로체스터 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따랐다. 사실은 조금 더 안 보이는 곳에 그대로 있고 싶었지만, 로체스터 씨는 너무도 단호하게 명령하는 사람이어서 곧바로 따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앞서 말했듯 식당에 있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켜 두었던 샹들리에가 방 안을 축제처럼 환하게 밝히고 있었고, 커다란 벽난로의 불길은 붉고도 선명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보라색 커튼은 높은 창문과 그보다도 더 높은 아치형 벽을 풍성하게 가리며 드리워져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간간이 들려오는 것은 아델의 나지막한 수다뿐이었다. 그리고 대화가 잠시 끊길 때마다 겨울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 정적을 채워 주었다.
비단 무늬 천을 씌운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로체스터 씨는 내가 전에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전처럼 그렇게 엄격하지도 않았고, 훨씬 덜 침울해 보였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 있었고, 눈빛도 반짝였다. 그것이 술기운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랬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아침의 차갑고 딱딱한 태도에 비하면 훨씬 마음이 열려 있었고, 다정했으며, 또한 조금은 자기 기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험상궂은 인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큼직한 머리를 안락의자의 불룩한 등받이에 기댄 채 앉아 있었고, 벽난로의 불빛이 화강암을 깎아 만든 듯한 그의 굵직한 이목구비와 크고 짙은 눈동자를 비추고 있었다.
그의 눈은 크고 검었으며, 매우 아름다운 눈이었다. 그리고 그 깊은 곳에는 때때로 어떤 변화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부드러움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런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무엇인가는 분명 담겨 있었다.
그는 2분쯤 벽난로의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몸을 돌리는 바람에 내 시선이 그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는 것을 들키고 말았다.
“에어 선생, 나를 유심히 살피고 있군.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오?”
그가 물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이 있었더라면, 아마도 적당히 모호하고 예의 바른 대답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처 의식하기도 전에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아니요, 로체스터 씨.”
“아! 참나! 정말 별난 구석이 있으시군. 당신에게서는 작은 수녀 수련생 같은 분위기가 나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대개는 눈을 카펫에 내리깔고 있는 모습을 보면 고풍스럽고, 조용하고, 진지하고, 순진해 보이지. 물론 방금처럼 내 얼굴을 꿰뚫어 보듯 바라볼 때는 예외지만 말이오. 그런데 누가 질문을 하거나 대답할 수밖에 없는 말을 하면, 당신은 급하게 단도직입적인 대답을 툭 던져 버리지. 무례하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퉁명스럽기는 하지. 도대체 지금 한 대답이 무슨 뜻이오?”
“로체스터 씨, 제가 너무 솔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외모에 관한 질문에는 즉석에서 대답하기 어렵다고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아름다움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든지… 그런 식으로 말씀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런 대답은 할 필요 없었소. 아름다움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니! 그러니까 방금 저지른 무례를 누그러뜨린답시고 나를 달래고 기분 좋게 만들려는 척하면서 슬쩍 내 귀 밑에 작은 칼을 꽂는 셈이군! 어디 계속해 보시오. 내게 무슨 흠이 있다는 거요? 다른 사람들처럼 팔다리도 멀쩡하고, 얼굴 생김새도 다 갖추고 있지 않소?”
“로체스터 씨, 처음 드린 대답은 없던 일로 해 주십시오. 일부러 날카롭게 받아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실수였을 뿐입니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하지만 그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할 거요. 자, 내 외모가 어떤지 말해보시오. 내 이마는 마음에 들지 않소?”
그는 이마를 가로질러 드리워져 있던 검은 물결 같은 머리카락을 뒤로 젖혔다. 그 아래에는 지적인 능력을 충분히 드러낼 만큼 넓고 단단한 이마가 나타났지만, 관상학에서 말하는 자비심을 나타내는 부분은 뜻밖에도 움푹 패어 있었다.
“자, 선생, 내가 바보 같소?”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로체스터 씨는 박애주의자이신가요?’라고 되묻는다면 저를 무례하다고 생각하시겠지요?”
“또 그러는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척하면서 또 한 번 허를 찌르는군. 내가 아이들과 노부인들을 상대하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이겠지.(이런 말은 조용히 해야겠지만!) 아니오, 선생, 나는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하는 박애주의자는 아니오. 하지만 양심은 가지고 있소.”
그는 관상학에서 양심을 나타낸다고 하는 머리의 돌출된 부분을 가리켰다. 다행히도 그 부분은 그의 머리에서 꽤 두드러져 있었고, 실제로 머리 윗부분을 상당히 넓어 보이게 했다.
“게다가 한때는 거칠기는 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소. 당신 또래였을 때 나는 감수성이 풍부한 젊은이였지. 아직 날개도 펴지 못한 아이들, 돌봐주는 이 없는 사람들, 불운한 사람들에게 마음이 많이 기울었소. 하지만 그 뒤로 운명은 나를 사정없이 두들겨 팼소. 주먹으로 반죽하듯 내 삶을 짓이겨 놓았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고무공처럼 단단하고 질긴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오. 그래도 아직 여기저기 몇 군데는 틈이 남아 있고, 이 단단한 덩어리 한가운데에는 아직도 감각이 살아 있는 부분이 좀 남아 있소. 자, 그렇다면 내게도 아직 희망이 있는 것 아니오?”
“무슨 희망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지막에는 이 고무공 같은 인간이 다시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될 희망 말이오.”
‘확실히 술을 너무 많이 마셨군.’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기이한 질문에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정말 다시 예전의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에어 선생, 몹시 당황한 표정이군. 내가 잘생기지 않은 것처럼 당신도 예쁘지는 않지만, 당황한 표정은 꽤 잘 어울리오. 게다가 내게도 그 편이 좋소. 당신의 그 꿰뚫어 보는 눈이 내 얼굴을 들여다보는 대신 양탄자에 수놓인 털실 꽃무늬를 바라보게 되니까. 그러니 계속 그렇게 당황해 있으시오. 오늘 밤 나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소.”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대리석 벽난로 선반에 한쪽 팔을 기대고 섰다. 그 자세에서는 얼굴뿐 아니라 체격도 또렷이 드러났다. 그의 가슴은 팔다리 길이에 비해 거의 불균형할 만큼 넓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못생긴 남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세에는 꾸밈없는 자부심이 배어 있었고, 태도에는 여유가 넘쳤으며, 자신의 외모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모습이 있었다. 또한 타고난 자질이든 후천적으로 얻은 능력이든, 자신의 다른 장점들이 외모의 부족함을 충분히 보완해 줄 것이라는 오만할 만큼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보는 사람도 그의 외모에는 신경 쓰지 않게 되었고, 막연하게나마 그 자신감을 믿게 되었다.
“오늘 밤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소.”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당신을 불렀소. 벽난로와 샹들리에만을 벗으로 삼기에는 뭔가 채워지지 않았소. 파일럿도 마찬가지요. 셋 다 말을 할 수 없으니까. 아델은 조금 낫지만 그래도 한참 어리고 페어팩스 부인도 마찬가지요. 하지만 당신은 마음만 먹으면 내 상대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처음 당신을 이 아래층으로 불렀던 그날 저녁, 당신은 나를 꽤 궁금하게 만들었소. 그 뒤로는 거의 잊고 있었지. 다른 생각들이 당신에 대한 인상을 내 머릿속에서 밀어냈으니까. 하지만 오늘 밤만은 마음을 편히 먹기로 했소.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떨쳐 버리고, 즐거운 것들을 다시 떠올리기로 했지. 지금은 당신의 속마음을 끌어내 보고 싶소. 당신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으니, 이야기해 보시오.”
나는 대답하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순순히 따르거나 기분 좋게 응하는 미소는 아니었다.
“말해 보시오.” 그가 재촉했다.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무엇이든 좋소. 주제도,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할지도 모두 당신에게 맡기겠소.”
그래도 나는 그대로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공연히 지껄여 주기를 바란다면 사람을 잘못 보신 거예요.’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에어 선생, 말이 없군.”
나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몸을 약간 내 쪽으로 기울이더니 재빠르게 한 번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고집을 부리는군. 게다가 화도 났고. 아, 그럴 만도 하지. 내가 부탁을 너무 터무니없고 무례하게 했군. 에어 선생, 사과하겠소. 사실 나는 당신을 아랫사람처럼 대하고 싶지 않소. 아니….”
그는 말을 고쳐 말했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당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고 한 백 년쯤 앞선 경험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면 이래라 저래라 해도 되는 것 아니오? 그 정도는 정당하다고 보고, 그러고 싶소. 아델이라면 '계속 그렇게 할 거야'라고 고집했겠지. 오직 경험 많은 연장자로서 당신에게 잠시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오. 선생이 한 가지 생각에만 매달려 녹슨 못처럼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내 생각을 잠시 다른 데로 돌려 주었으면 하오.”
그는 굳이 설명을 덧붙였고, 거의 사과에 가까운 말까지 했다. 나는 그의 그런 배려를 무심히 넘길 수 없었고, 그렇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로체스터 씨를 즐겁게 해 드릴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정말 기꺼이요. 하지만 제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에 로체스터 씨께서 흥미를 느끼실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저에게 질문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대답하겠습니다.”
“좋소. 그럼 우선, 내가 조금 권위적이고 퉁명스럽고, 때로는 요구가 많은 태도를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하오? 내게 그렇게 행동할 권리가 있다고 말이오. 이유는 이미 말했듯이, 나는 당신의 아버지가 되어도 될 만큼 나이가 많고,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과 부딪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세상의 절반쯤을 돌아다녔소. 반면 당신은 한 집에서 한정된 사람들과 조용히 살아왔으니 말이오.”
“로체스터 씨 마음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건 대답이 아니오. 아니, 아주 회피적인 대답이라 오히려 매우 짜증 나는 대답이지. 분명하게 말해 보시오.”
“로체스터 씨께서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다거나 세상을 더 많이 경험하셨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명령할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월하다고 주장하실 수 있는지는 그 시간과 경험을 어떻게 활용하셨는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흥! 대답이 단호하군. 하지만 그 의견은 받아들일 수 없소. 왜냐하면 내 경우에는 그 시간이든 경험이든 그다지 잘 활용했다고 할 수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잘못 활용했다고 해야 할 테니까. 좋소, 그럼 그 이야기는 접어 두고, 적어도 내가 가끔 명령조로 말하더라도 그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화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소?”
나는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로체스터 씨는 정말 별난 분이야. 내가 자신의 명령을 듣는 대가로 매년 30파운드의 급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모양이니까.’
“그 미소는 좋소.”
그는 내 표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즉시 말했다.
“하지만 말도 해 보시오.”
“저는, 대부분의 고용주라면 급여를 받는 사람이 자기 명령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지 아닌지 굳이 물어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급여를 받는 사람이라! 뭐라고? 당신은 내게 급여를 받는 사람이었지? 아, 그렇군! 급여를 깜빡 잊고 있었소! 그렇다면 돈을 받고 일한다는 그 이유만으로, 내가 당신에게 조금 윽박지르더라도 괜찮겠소?”
“아니요,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닙니다. 다만 로체스터 씨께서 정말로 그 사실을 잊고 계셨고, 또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지내는지를 신경 쓰신다는 점 때문에 저는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예의상 쓰는 형식적인 말이나 관례적인 표현을 많이 생략하더라도, 그것을 무례함으로 여기지 않겠소?”
“네, 로체스터 씨.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과 무례한 것은 결코 혼동하지 않습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것을 저는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례한 것은 자유로운 사람이라면, 설령 급여를 받는다고 해도 결코 참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유로운 사람들도 급여만 받는다면 웬만한 일은 다 참아 내오. 그러니 그런 일반론은 그만두시오.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해선 너무 모르니까. 하지만 당신의 대답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악수를 청하고 싶을 정도로 공감하오. 물론 그 말이 완전히 맞아서가 아니오. 그 말을 하는 태도 때문이오. 당신의 태도는 솔직하고 진심이 담겨 있었소. 그런 태도는 좀처럼 보기 어렵지. 오히려 솔직하게 말하면 대개 돌아오는 것은 꾸며낸 태도이거나 냉담함이거나, 아니면 상대의 뜻을 거칠고 어리석게 오해하는 반응뿐이지. 갓 학교를 나온 어린 가정 교사 삼천 명 가운데 방금 당신처럼 대답하는 사람은 셋도 안 될 거요.
그렇다고 당신을 칭찬하려는 것은 아니오. 당신이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본성을 가졌다면, 그것은 당신의 공이 아니라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니까. 게다가 내가 지금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직 당신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으니, 당신도 결국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소. 당신에게도 얼마 안 되는 장점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참기 어려운 결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
‘당신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요.’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마치 그 눈빛을 읽기라도 한 듯, 내가 입 밖으로 말한 것처럼 그 의미에 대답했다.
“그렇소 그렇소, 당신 말이 맞소. 나에게도 결점은 아주 많소. 그건 나도 알고 있고, 변명하고 싶은 생각도 없소. 정말이오. 하나님도 아시겠지만, 나는 남에게 그런 말할 처지가 못 되오. 내 가슴속에는 반성해야 할 삶과 수많은 행적이 있고, 하나의 인생이 있소. 비웃음과 비난을 퍼부으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해야 마땅하지.
나는 스물한 살 때 잘못된 길에 들어섰소. 아니, 내 잘못의 절반쯤은 불운과 역경 탓도 있으니 정확히 말하면 그 길로 떠밀렸다고 해야겠군. 그 이후로 나는 한 번도 올바른 길을 되찾지 못했소. 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었소. 당신처럼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었고, 더 지혜로운 사람, 거의 흠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단 말이오.
나는 당신이 부럽소. 당신의 평온한 마음도, 깨끗한 양심도, 더럽혀지지 않은 기억도. 어린 아가씨, 얼룩 하나 없고 오염되지 않은 기억이 귀한 보물이고, 그것은 끝없이 맑은 위안을 주는 샘과도 같다고 생각하지 않소?”
“로체스터 씨께서 열여덟 살이셨을 때는 어떠셨나요?”
“그때는 아무 문제도 없었소. 맑고 건강했지. 배 밑바닥의 더러운 물이 흘러들어와 썩은 웅덩이로 변해 버린 적도 없었소. 열여덟 살의 나는 당신과 다를 바 없었소. 정말 당신과 같았단 말이오.
자연은 나를 대단히 선한 사람, 더 나은 부류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으나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그렇지 못하오. 당신은 ‘저는 그렇게는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겠지. 적어도 당신 눈에서 그렇게 읽었소. 조심하시오. 당신 눈이 무슨 말을 하는지 말이오. 나는 그 눈의 언어를 아주 재빨리 읽어 내니까.
그러니 내 말을 믿으시오. 나는 악인은 아니오. 적어도 나를 그런 극악한 인간으로 생각하지는 마시오. 이렇게 된 것은 내 천성 때문이라기보다 상황 때문이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소. 나는 그저 진부하고 평범한 죄인일 뿐이오. 돈은 많고 가치 없는 사람들이 삶에 자극을 주겠다며 빠지는 하찮고 시시한 방탕에 이미 너무도 익숙해진 사람이란 말이오.
내가 이런 이야기를 당신에게 털어놓는 것이 놀랍소?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당신은 종종 원치 않는데도 사람들의 비밀을 듣게 될 것이오. 사람들은 나처럼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이오. 당신은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란 것을 말이오.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자신의 경솔함을 비웃거나 악의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타고난 공감력으로 들어 준다는 것도 느끼게 될 거요. 그 공감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오히려 더욱 큰 위로와 용기를 주게 되지.”
“어떻게 그런 것을 아시죠? 어떻게 그런 것까지 짐작하실 수 있나요?”
“나는 잘 알고 있소. 그래서 지금도 마치 일기에 내 생각을 적듯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오. 당신은 아마 말하겠지. ‘상황에 굴복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라고. 맞소. 그래야 했소.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소. 운명이 나를 부당하게 대했을 때, 나는 침착함을 지킬 만큼 현명하지 못했소. 절망했고, 그 뒤에는 타락했지. 이제는 어떤 어리석고 타락한 인간이 천박한 음담패설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때도 내가 그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고 위로할 수가 없소. 결국 그와 내가 같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단 말이오. 끝까지 굳건히 버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느님도 아시겠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오! 에어 선생, 잘못을 저지르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는 후회를 두려워하시오. 후회는 인생의 독이니까.”
교정 후기
로체스터 씨가 말을 막하는 것 같은데,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요?
제멋대로인 것 같은데, 사실은 제인의 눈빛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있네요. 그건 애정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죠. 그래서 막 들이대는 말도 전혀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웃음이 납니다.
자, 나를 평가해 보시오.
▶ 자, 내 외모가 어떤지 말해보시오.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다만 스무 살의 나이 차이와 백 년쯤 앞선 경험에서 비롯되는 정도의 우위만을 인정받고 싶소. 그 정도는 정당한 것이며, 나는 그것을 고수하오.
▶ 정확히 말하면, 나는 당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고 한 백 년쯤 앞선 경험을 갖고 있으니 이 정도면 이래라 저래라 해도 되는 것 아니오? 그 정도는 정당하다고 보고, 그러고 싶소.
물론 내용이 완전히 정확해서는 아니오.
▶ 물론 그 말이 완전히 맞아서가 아니오.
나는 남에게 너무 엄격할 처지가 아니오.
▶ 나는 남에게 그런 말할 처지가 못 되오.
그러니 이웃들에게 비웃음과 비난을 퍼붓기보다는 그것들을 내 자신에게 돌려야 마땅하지.
▶ 비웃음과 비난을 퍼부으려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해야 마땅하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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