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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장

by 행만이99 2026. 7. 19.

<AI가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시리즈 1 제인 에어 2장>

 

붉은 방

 

나는 끌려가는 내내 발악했다. 이렇게 악을 쓰기는 처음이었다. 그 때문에 원래부터 나를 안 좋아하던 베시와 애벗이 나를 더욱 질 나쁜 아이로 보았다.
사실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프랑스식 표현을 빌리자면 잠시나마 ‘나 자신에서 벗어난 상태’였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순간의 반항으로 예상치 못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절망 속에서도 반항하는 노예들처럼 끝까지 맞서겠다는 마음으로 버텼다.
“애벗, 팔을 붙잡아 주세요. 제인 아가씨!  완전히 미친 고양이 같잖아요. 창피한 줄 아세요, 정말 창피한 줄 아셔야 해요!”
유모 베시가 외쳤다.
“제인 아가씨, 은인의 아드님이신 젊은 도련님을 때리다니 이게 무슨 끔찍한 짓이에요! 아가씨의 어린 주인님이시잖아요.”
“주인님이라고? 그 애가 어떻게 내 주인이야? 내가 하인이야?”
“아니, 하인보다도 못해요. 하인은 먹고 재워주는 만큼 일이라도 하죠. 제인 아가씨는 먹여 주고 재워 줘도 아무 일도 하지 않잖아요. 자, 거기 앉아서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그때쯤 그들은 리드 부인이 가리킨 방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 작은 의자 위에 거칠게 앉혀 놓았다. 나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두 사람은 동시에 나를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가만히 앉아 있지 않으면 묶어 버리겠어요.”
베시가 말했다.
“애벗, 가터★ 좀 빌려 주세요. 내 것은 금세 끊어 버릴 테니까.”
애벗은 튼실한 다리에서 가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나를 묶으려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또 다른 모욕감과 충격에 조금 전까지의 격한 흥분을 가라앉힐 수밖에 없었다.
“벗지 마! 가만히 있을게.”
나는 외쳤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나는 두 손으로 의자를 꽉 붙잡고 꼼짝하지 않았다.
“진작 그랬어야죠.”
베시가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정말 진정된 것을 확인하자 그녀는 나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이어 베시와 애벗은 두 팔을 가슴에 낀 채 서서는 어둡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내가 정말 제정신인지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제인 아가씨가 이렇게 행동한 건 처음이에요.”
마침내 베시가 애벗을 돌아보며 말했다.
“원래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어.”
애벗이 대답했다.
“전부터 마님께도 제인 아가씨에 대한 내 생각을 여러 번 말씀드렸고, 마님도 내 말이 맞는다고 하셨어.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속으로는 딴생각을 품는 아이야. 저 나이에 저렇게 속을 감추는 아이는 처음 봤어.”

베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인 아가씨, 아가씨는 리드 부인께 큰 은혜를 입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부인께서 아가씨를 돌봐주고 계시잖아요. 만약 부인께서 아가씨를 내쫓으신다면 아가씨는 구빈원★에 갈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처음 듣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세상을 기억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남에게 의지해 살아간다는 비난은 내 귀에 희미한 노랫가락처럼 되풀이되어 들려왔다. 그것은 몹시 괴롭고 마음을 짓눌렀지만, 어린 나에게는 그 뜻이 반쯤밖에 이해되지 않았다.
애벗도 거들었다.
“그리고 다른 아가씨, 도련님과 같은 처지라고 생각해서도 안 돼요. 마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아가씨를 함께 키워 주시는 것뿐이에요. 다른 아가씨들과 도련님은 앞으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겠지만, 아가씨는 아무것도 받지 못할 거예요. 그러니 아가씨의 처지를 알고 겸손해야 해요. 그리고 다른 자제분들에게도 잘 보여야 해요.”
“우리가 하는 말은 모두 아가씨를 위한 말이에요.”
베시가 이번에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착하고 도움이 되는 아이가 되려고 노력하세요. 그러면 계속 이 집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계속 고집 부리고 버릇없이 군다면 마님께서 아가씨를 내보내실 거예요. 제가 장담해요.”
“게다가….”
애벗이 말을 이었다.
“하느님께서도 아가씨에게 벌주실 거예요. 아가씨가 성질을 계속 부리면 벼락을 내려 죽이실지도 몰라요. 그때는 어디로 갈 것 같아요? ··· 가자, 베시, 제인 아가씨를 그냥 두자꾸나. ··· 난 아무리 많은 돈을 준대도 제인 아가씨 같은 마음을 갖고 싶진 않아요. 제인 아가씨, 혼자 있게 되면 꼭 기도하세요. 회개하지 않으면 굴뚝으로 무서운 것이 내려와 아가씨를 잡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두 사람은 방을 나가며 문을 닫고 밖에서 자물쇠를 잠갔다.

 

붉은 방은 네모반듯한 방이었다. 아무도 그곳에서 잠을 자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전혀 사용하지 않는 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이츠헤드 저택에 손님이 한꺼번에 많이 찾아와 모든 방을 다 사용해야 하는 특별한 경우에만 예외였다. 그 방은 저택 안에서도 가장 크고 위엄 있는 침실 가운데 하나였다.
방 한가운데에는 육중한 마호가니 기둥이 받치고 있는 침대가 놓여 있는데, 짙은 붉은색 다마스크 비단 커튼이 드리워져 있어 마치 성막처럼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커다란 창문 두 개는 언제나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같은 붉은색 천으로 만든 장식 커튼과 늘어진 휘장이 반쯤 가려져 있었다.
카펫도 붉은색이었고, 침대 발치의 탁자에는 진홍빛 천이 덮여 있었다. 벽은 은은한 황갈색 바탕에 연분홍빛이 살짝 감돌았으며, 옷장과 화장대, 의자들은 모두 윤이 흐르는 짙은 빛깔의 오래된 마호가니 가구였다.
이처럼 짙은 색조로 둘러싸인 방 안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침대 위에 높이 포개어진 하얀 매트리스와 베개들이었다. 눈처럼 새하얀 마르세유식 침대보가 덮여 있어 더욱 희게 빛났다. 그에 못지않게 두드러진 것은 침대 머리맡 가까이에 놓인 커다란 안락의자였다. 그것 역시 새하얗고 푹신한 쿠션으로 덮여 있으며, 앞에는 발받침까지 놓여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것이 마치 창백한 왕좌처럼 보였다.

이 방은 거의 불을 지피지 않았기 때문에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이들이 지내는 방과 부엌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고요했고, 거의 아무도 드나들지 않아 엄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토요일이면 하녀 한 사람만이 거울과 가구 위에 한 주 동안 쌓인 고요한 먼지를 닦으러 들어왔고, 리드 부인도 아주 드문드문 이 방을 찾았다.


부인은 옷장 속 비밀 서랍을 열어 그 안에 보관된 여러 장의 양피지 문서와 보석함, 그리고 세상을 떠난 남편의 초상화를 살펴보곤 했다. 바로 이 부분이 붉은 방의 비밀이자, 이토록 웅장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리드 씨가 세상을 떠난 지는 아홉 해가 되었다. 그는 바로 이 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고, 이곳에 시신이 안치되었다. 그리고 장의사들이 그의 관을 이 방에서 운구해 간 뒤로 이 방은 마치 슬픔으로 성스럽게 봉인된 듯 누구도 쉽게 들어오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베시와 매정한 애벗이 나를 꼼짝 못 하게 앉혀 둔 자리는 대리석 벽난로 곁의 낮은 오토만 의자였다. 내 앞에는 침대가 우뚝 놓여 있었고, 오른쪽에는 높고 검은 마호가니 옷장이 서 있었다. 윤이 나는 문짝에는 희미하고 부서진 빛이 어른거리며 반사되고 있었다. 왼쪽에는 두꺼운 커튼에 가려진 창문이 있었고, 그 사이에 놓인 커다란 전신 거울은 침대와 방의 텅 빈 장엄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문이 정말 잠겼는지 궁금했다. 조금 움직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문을 확인하러 갔다. 하지만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정말로 잠겨 있었다. 어떤 감옥도 이보다 더 단단하게 사람을 가둘 수는 없었다.
다시 의자로 돌아오려면 거울 앞을 지나야 했다. 나는 홀린 듯 무심코 깊은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신비로운 공간 속의 모든 것은 실제보다 더욱 차갑고 어둡게 보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작은 형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과 희미하게 어둠 속에서 드러나는 두 팔, 그리고 고요한 정적 속에서 공포에 반짝이는 눈동자만이 움직이고 있는 그 모습은, 정말 살아 있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것이 베시가 밤마다 들려주던 이야기 속의 작은 요정이나 장난꾸러기 악령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고사리 숲이 우거진 황무지의 외딴 골짜기에서 나타나, 길을 잃은 나그네 앞에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는 그 신비한 존재들 말이다.


나는 얼른 다시 의자로 돌아와 앉았다.
그 순간 내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공포가 완전히 나를 지배한 것은 아니었다. 내 피는 아직 뜨거웠다. 반항하는 이 노예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는 두려움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눈앞의 음산한 분위기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속을 휘저으며 솟아나는 과거의 생각들을 억눌러야만 했다. 존 리드가 휘둘렀던 온갖 폭력과 횡포, 그의 누나들의 오만한 무관심, 리드 부인의 노골적인 혐오, 하인들의 편견이 모두 흐린 우물 바닥에서 검은 침전물이 떠오르듯 내 혼란스러운 마음속으로 하나둘 떠올랐다.
왜 나는 언제나 고통받아야 했을까, 왜 늘 윽박지름을 당하고 비난받고 끝없이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을까, 왜 나는 아무리 애써도 누구의 마음에도 들 수 없었을까, 왜 사랑받고 호의를 얻으려는 내 노력은 언제나 헛수고였을까?


고집 세고 이기적인 엘리자는 오히려 대접을 받았다. 조지애나도 마찬가지다. 조지애나는 버릇없이 자라 심술궂고 독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거만하게 행동했지만,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관용을 얻어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장밋빛 뺨과 황금빛 곱슬머리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모든 잘못을 용서하게 하는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존에게는 누구도 맞서지 않았고, 벌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 죽이고 어린 병아리들을 죽였다. 개를 양떼에게 풀어놓고, 온실의 포도송이를 모조리 따 먹고, 화초 온실에서 가장 귀한 꽃봉오리들을 꺾었지만,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어머니를 ‘늙은 여자’라고 부르며 무례하게 대하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검은 피부를 가졌다고 놀리며 욕을 퍼붓기도 했다. 어머니의 말을 대놓고 무시하는 일도 잦았고, 값비싼 비단옷을 찢어 망쳐 놓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어머니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다.

반면 나는 작은 잘못 하나도 감히 저지를 수 없었다. 맡은 일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아침부터 점심까지, 점심부터 밤까지 사람들은 나를 말썽꾸러기, 성가신 아이, 심술궂은 아이, 음흉한 아이라고 불렀다.

 

존에게 맞아서 넘어질 때 입은 상처 때문에 머리가 아직도 욱신거렸고, 피도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존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때린 일을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무지막지한 폭력을 막기 위해 맞서 싸웠다는 이유만으로 모두의 비난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억울해! 정말 말도 안 돼!”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내 이성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잠시나마 또렷하게 깨어나 이렇게 외쳤다. 동시에 들끓던 내 의지는 이 견딜 수 없는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한 괴상한 방법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집을 뛰쳐나가는 것, 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시는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대로 죽어 버리는 것까지 생각했다.

그 음울한 오후, 내 영혼은 얼마나 큰 혼란 속에 있었던가!
머릿속은 온통 소용돌이쳤고, 가슴속은 반란이라도 일어난 듯 들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치열한 마음속 싸움은 얼마나 깊은 어둠과 무지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던가. 나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에 끝내 답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 이유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게이츠헤드 저택에서 조화를 깨뜨리는 존재였다. 그 집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리드 부인이나 그녀의 아이들, 그녀에게 충성하는 하인들과도 나는 조금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로서는 자기들과 마음을 나눌 수도 없는 존재를 애정을 가지고 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과 기질도 재능도 성향도 다른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이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하고, 즐거움을 더해 주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였다. 더구나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분노를 품고 있었고, 그들의 판단을 경멸하는 마음까지 지니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들이 달가워할 리 없었다.
나는 안다. 만약 내가 의지할 곳도 친구도 없는 처지라 할지라도 명랑하고 활기차며 걱정 없이 뛰노는 예쁜 아이였다면, 조금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졌더라도 리드 부인은 나를 훨씬 더 너그럽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녀의 아이들도 나를 형제처럼 더욱 따뜻하게 대해 주었을 것이고, 하인들 역시 나를 아이들 사이에서 생기는 모든 잘못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붉은 방에서는 낮의 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시각은 네 시를 넘겼고, 잔뜩 흐린 오후는 음산한 땅거미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계단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고, 저택 뒤 숲에서는 바람이 길게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점점 돌처럼 차가워졌고, 마침내 용기마저 사라져 갔다. 평소 늘 나를 짓눌러 왔던 굴욕감과 자기 의심, 그리고 버림받은 듯한 깊은 우울이, 조금 전까지 타오르던 분노의 마지막 불씨 위로 축축한 재처럼 내려앉았다.

모든 사람이 내가 나쁜 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방금 나는 스스로 굶어 죽겠다는 생각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분명 죄악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도 될 사람일까?
게이츠헤드 교회 제단 아래 있는 지하 납골실이 과연 내가 가야 할 곳일까?


예전에 나는 리드 씨가 바로 그 납골실에 묻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자연스레 그의 모습도 마음속에 되살아났고, 나는 점점 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는 리드 씨를 직접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내 어머니의 오빠, 곧 나의 친외삼촌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부모를 모두 잃은 갓난아기였던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길러 준 사람도,  임종을 앞두고 리드 부인으로부터 나를 친자식처럼 키우고 돌보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사람도 리드 씨였다. 아마 리드 부인은 자신이 그 약속을 지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성품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자기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란 어렵지 않았을까?
사랑할 수도 없는 낯선 아이에게 부모 노릇을 해야 한다는 무거운 약속에 얽매여 산다는 것은 그녀에게 분명 몹시 성가시고 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가족들 사이에 성격도 기질도 전혀 맞지 않는 이방인이 영원히 끼어들어 함께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더욱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만약 리드 씨가 살아 계셨다면 그는 분명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을 것이라고.


나는 하얀 침대와 그 위로 보이는 어두운 벽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이따금 홀린 듯 희미하게 빛나는 거울 쪽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죽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유언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무덤에서조차 평안을 얻지 못하고, 맹세를 어긴 사람을 벌하고 억울한 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리드 씨의 영혼도, 조카인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견디지 못해 교회 지하 납골실에서든 저승의 알 수 없는 세계에서든 나와서 이 방으로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흐느낌을 멈추었다. 너무 슬퍼하는 모습을 보였다가 초자연적인 목소리가 들려와 나를 위로하거나, 어둠 속에서 후광을 두른 얼굴 하나가 신비로운 연민을 품고 내 위로 몸을 굽히며 나타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머리로만 생각하면 위안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너무나도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그런 상상을 떨쳐 버리려 애썼다. 침착해지려고 몸부림쳤다.
눈을 가리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고개를 치켜든 채 어두운 방 안을 용감하게 둘러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벽 위에 한 줄기 빛이 번쩍 스쳤다.
‘저게 뭘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 블라인드 틈으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 걸까?’
아니었다. 달빛이라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그 빛은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빛은 천천히 천장 쪽으로 미끄러져 올라가더니 내 머리 위에서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것은 잔디밭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누군가의 등불에서 나오는 불빛일 거라고 쉽게 짐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나는 잔뜩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었고, 극도의 긴장으로 신경이 몹시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재빠르게 스쳐 가는 빛을 저승에서 찾아온 어떤 존재를 알리는 신호라고 믿고 말았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머리는 불이 난 듯 뜨거워졌다. 귀에는 마치 거대한 날개가 허공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언가가 바로 내 곁에 다가온 것만 같았다. 가슴이 짓눌리고 숨이 막혔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문을 향해 달려가 자물쇠를 미친 듯이 흔들며 열려고 애썼다. 그때 복도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곧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고, 문이 열리면서 베시와 애벗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제인 아가씨, 어디 아파요?”
베시가 물었다.
“세상에, 좀 전의 끔찍한 비명은 뭐였어요? 등골이 오싹했잖아요!”
애벗이 질색하며 외쳤다.
“여기서 내보내 주세요! 저를 방으로 보내주세요!”
나는 울부짖듯 외쳤다.
“왜 그래요? 어디 다쳤어요? 뭘 본 거예요?”
베시가 다시 물었다.
“아… 빛을 봤어요. 유령이 나타날 줄 알았어요.”
나는 어느새 베시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녀도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제인 아가씨가 일부러 소리를 지른 거예요? 게다가 비명을 질렀어요! 정말 크게 다쳤다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아가씨는 우리를 모두 여기로 불러들이려고 소리를 지른 거예요. 아가씨의 못된 꾀는 내가 다 알고 있다니까요.”

애벗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무슨 소란이냐?”
엄하고 단호한 목소리가 복도에서 들려왔다.
리드 부인이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애벗, 베시! 내가 분명히 제인 에어는 내가 올 때까지 붉은 방에 그대로 두라고 말했을 텐데?”
“제인 아가씨가 너무 크게 비명을 질러서요, 부인.”
베시가 조심스럽게 변명했다.
“베시, 그 아이를 놓아라. 제인, 베시의 손을 놔!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여기서 나갈 수 없어. 나는 특히 아이들이 남을 속이는 것을 무척 싫어해. 그런 잔꾀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내 의무야. 그러니 너는 이제 한 시간 더 이 방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완전히 순종하고 조용히 있을 때만 너를 내보내 줄 거야.”
“외숙모님, 제발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더는 못 참겠어요. 다른 벌이라면 무엇이든 받을게요! 여기에 있으면 저는 죽고 말 거예요. 제발….”
“조용히 해라!”
리드 부인이 냉정하게 말을 끊었다.
“그런 난폭한 행동은 정말 보기 역겹구나.”
부인은 분명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나는 나이답지 않게 연기를 잘하는 아이였다. 그녀는 나를, 독기 어린 감정으로 가득 차 있고 비열한 심성을 지녔으며 위험할 만큼 교활한 속임수까지 갖춘 아이로 굳게 믿고 있었다.
베시와 애벗이 물러난 뒤에도 나는 거의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리드 부인은 나의 미친 듯한 절규와 흐느낌에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나를 거칠게 방 안으로 밀어 넣고는 아무 말도 없이 문을 잠가 버렸다.
나는 리드 부인의 치맛자락이 복도를 스쳐 멀어져 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도 발작 같은 것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그 뒤의 일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의식이 사라지면서 그날의 끔찍한 장면도 함께 막을 내렸다.

 

★ 가터: 양말 또는 소매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착용하는 고무 밴드. 무릎이나 소매 양쪽에 버클이 달려 있어 조이도록 되어 있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유행했다.

★ 구빈원: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수용해 먹여주고 재워주던 국가 복지 시설

 

3장 보기

 

1장부터 보기

 

교정 후기

 

▶ 글을 읽다 보니 어려운 단어나 상징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간간이 나와서 각주를 달아 보았습니다. 원문에는 각주가 없지만, 내용을 보다 깊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사전을 찾거나 AI 검색을 통해 각주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유모인 베시와 하녀인 애벗의 말투를 많이 수정했습니다. 하녀와 제인의 관계는 연장자와 어린아이일 수 있지만, 주종 관계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인에게 '아가씨'라고 호칭하고 높임말을 쓰는 것으로 수정했습니다. 처음 번역기를 돌렸더니 AI가 하녀와 제인, 유모와 하녀 사이의 관계를 혼동했는지 모두 반말로 번역해주어서 서열 정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베시와 애벗도 베시는 젊은 여성으로 애벗은 중년 여성으로 보고 서열 정리를 했습니다. 

 

▶ 리드 부인의 호칭도 AI가 많이 혼동했습니다. 이모, 고모, 숙모, 외숙모로 다양하게 번역해 주더군요. 여기서는 제인 에어 어머니의 오빠 부인, 즉 외삼촌의 부인이므로 '외숙모'가 맞습니다. 그래서 제인 에어가 리드 부인을 부를 때 '외숙모'로 통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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