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읽기 시리즈 1 제인 에어 4장>
리드 부인에게 맞서다
로이드 씨와 대화를 나누고, 그리고 앞서 베시와 애벗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병이 빨리 낫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곧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만 같아 나는 그 변화를 조용히 바라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 기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흘렀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내가 줄곧 마음속으로 바랐던 그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리드 부인은 때때로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좀처럼 말을 걸지는 않았다. 내가 병을 앓은 뒤로 부인은 이전보다도 더욱 분명하게 나와 자기 아이들 사이에 선을 그었다. 나 혼자 작은 벽장 같은 방에서 자게 했고, 식사도 혼자 하게 했으며, 하루 종일 보육실에만 있도록 했다. 반면 사촌들은 늘 응접실에서 지냈다. 그렇다고 해서 나를 학교에 보낼 것이라는 암시 같은 것도 전혀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리드 부인이 한지붕 아래 나를 오래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확신했다. 나를 바라보는 부인의 눈길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참기 어려운 뿌리박힌 혐오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자와 조지애나는 리드 부인이 시켰는지 나에겐 한마디 말도 걸지 않았다. 존은 나를 볼 때마다 혀를 볼 안으로 밀어 넣고 비웃는 표정을 지었는데, 한 번은 나를 혼내려 들기도 했다. 나는 즉시 맞섰다. 내 안의 깊은 분노와 절망적인 반항심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자 존은 더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는지 욕설을 퍼부으며 달아났고, 내가 자기 코피를 터뜨렸다고 소리쳤다.
사실 나는 주먹에 온 힘을 실어 존의 불쑥 튀어나온 코를 후려쳤다. 그 일 이후 내 눈빛이 그를 겁먹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기세를 몰아 제대로 혼내 주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존은 이미 어머니에게 달려가 있었다. 훌쩍거리며 “저 못된 제인 에어가 미친 고양이처럼 달려들었어요.” 하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리드 부인은 의외로 거칠게 존의 말을 막았다.
“존! 그 애 이야기는 내게 하지 말아라. 가까이 가지 말라고 내가 분명히 말했잖니. 그 아이는 상대할 가치조차 없어. 너나 네 누나들이 그 아이와 어울리는 것도 나는 원하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무슨 말을 하는지 미처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불쑥 외쳤다.
“쟤들이야말로 나와 어울릴 자격이 없어요!”
리드 부인은 다소 살집이 있었지만, 대담하고도 갑작스러운 내 말을 듣자 재빨리 계단을 뛰어올라왔다. 그녀는 회오리바람처럼 나를 붙잡아 보육실로 끌고 들어가더니, 침대 가장자리에 나를 거칠게 눌러 앉히고는 남은 하루 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한마디라도 입을 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단호한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리드 외삼촌이 살아 계셨다면 외숙모님에게 뭐라고 하셨을까요?”
그 말은 거의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혀가 스스로 말을 내뱉는 것 같았다. 내 안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대신 말하고 있는 듯했다.
“뭐라고?”
리드 부인은 낮게 중얼거렸다. 언제나 차갑고 침착하던 회색 눈동자가 순간 두려움 같은 빛으로 흔들렸다. 그녀는 내 팔에서 손을 떼고는, 내가 정말 아이인지 아니면 악령인지 분간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해 버린 셈이었다.
“리드 외삼촌은 하늘에 계셔서 외숙모님이 하는 일과 생각하는 것을 모두 보고 계세요. 우리 아빠와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그분들은 외숙모님이 날 하루 종일 가둬 두는 것도 알고, 내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도 다 알고 계세요.”
리드 부인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나를 있는 힘껏 흔들며 양쪽 따귀를 차례로 때린 뒤, 아무 말 없이 방을 나가 버렸다. 대신 베시가 들어와 거의 한 시간 동안 설교를 늘어놓았다. 내가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아이 가운데 가장 사악하고 타락한 아이라고 조금의 의심도 남지 않을 만큼 증명하려 애썼다. 나는 베시의 말을 절반쯤은 믿었다. 그때 내 가슴속에는 나쁜 감정들만이 거센 물결처럼 들끓고 있었기 때문이다.
11월과 12월이 지나고 1월의 절반이 지나갔다. 게이츠헤드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즐겁게 보냈다. 선물을 주고받고, 성대한 식사와 저녁 파티가 열렸다. 물론 나는 제외다.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라고는 엘리자와 조지애나가 매일 곱게 차려입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두 사람은 얇은 모슬린 드레스에 진홍색 허리띠를 두르고, 머리를 정성껏 둥글게 말아 올린 채 응접실로 내려갔다. 나는 그들이 내려간 뒤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와 하프 소리를 들었고, 집사와 하인의 분주한 발걸음, 다과를 나를 때마다 유리잔과 도자기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 응접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새어 나오는 사람들의 웃음과 대화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구경도 지겨워지면 계단참을 떠나 조용하고 외로운 보육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다소 쓸쓸하기는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사람들 속에 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사람들 틈에 있어도 나는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사 숙녀들로 가득한 방에서 리드 부인의 무서운 눈초리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베시만 조금 더 다정하고 말벗이 되어 준다면 베시와 조용히 저녁을 보내는 편이 훨씬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베시는 어린 아가씨들의 옷을 다 입혀 주고 나면 대개 촛불을 들고 부엌이나 하녀들이 쓰는 방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러면 나는 인형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난롯불이 잦아들 때까지 앉아 있었다. 가끔 주위를 둘러보며 그 어두운 방에 나보다 더 무서운 것이 숨어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곤 했다. 불씨가 희미한 붉은빛만 남기면 나는 서둘러 옷을 벗었다. 엉킨 끈과 매듭을 힘껏 풀어 가며 침대로 기어들어가 추위와 어둠을 피했다.
나는 언제나 그 침대에 인형을 함께 데려갔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사랑할 만한 다른 대상이 전혀 없었던 나는, 색이 바래고 작은 허수아비처럼 초라한 그 나무 인형을 아끼고 사랑하는 데서 기쁨을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작은 장난감을 얼마나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스스로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나는 그 인형이 살아 있으며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반쯤은 믿고 있었다. 인형을 잠옷 속에 꼭 감싸안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따뜻하고 안전하게 인형이 내 곁에 누워 있으면 나도 비교적 행복했다. 그리고 그 인형도 나처럼 행복하리라고 믿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참으로 길게 느껴졌다. 나는 베시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리기만을 귀 기울여 기다렸다. 가끔 베시는 골무나 가위를 찾으러 올라오거나 내 야식이라며 작은 빵이나 치즈케이크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러면 내가 먹는 동안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다가 다 먹고 나면 이불을 잘 덮어 주었다. 그리고 두 번이나 내게 입을 맞추며 말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제인 아가씨.”
그렇게 다정할 때의 베시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예쁘며,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녀가 언제나 그렇게 상냥하고 다정하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괜히 나를 거칠게 밀치거나 꾸짖거나 이유 없이 이것저것 시키는 일이 너무 잦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베시는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아가씨였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손재주 좋게 해냈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솜씨도 매우 뛰어났다. 내가 어린 시절 베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내 마음에 남긴 깊은 인상을 보면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베시는 외모도 아름다웠다. 나는 베시를 검은 머리와 짙은 눈동자를 가진 늘씬하고 젊은 아가씨로 기억한다. 이목구비가 반듯했고 피부도 맑고 고왔다. 다만 변덕스럽고 성미가 급했으며,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츠헤드 저택에 있는 누구보다도 나는 그녀를 좋아했다.
1월 15일 아침 아홉 시쯤이었다. 베시는 아침 식사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있었고, 사촌들은 아직 어머니에게 불려 가지 않았다. 엘리자는 모자를 쓰고 따뜻한 정원용 외투를 입고 있었다. 엘리자는 닭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을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달걀을 하녀들에게 팔아 그 돈을 차곡차곡 모으는 일이었다.
엘리자는 장사 수완이 있었고 돈을 모으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그것은 달걀과 병아리를 파는 일에서만 드러난 것이 아니다. 꽃 뿌리나 씨앗, 삽목용 가지를 정원사에게 팔 때도 언제나 최대한 비싼 값을 받아 내려고 흥정을 벌였다. 리드 부인이 정원사에게 어린 아가씨가 팔고 싶어 하는 화단의 식물은 모두 사 주라고 지시해 두었기 때문이다. 엘리자는 돈을 벌 수 있다면 자기 머리카락까지도 팔았을 사람처럼 보였다.
앨리자는 번 돈을 처음에는 헝겊 조각이나 낡은 머리카락 말이 종이에 싸서 집 안 구석구석에 숨겨 두었다. 그러나 하녀가 그런 비밀 장소 몇 곳을 발견하는 바람에, 언젠가 소중한 재산을 모두 잃게 될까 두려워 그 돈을 어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 물론 그냥 맡긴 것은 아니었다. 무려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에 이르는 고리의 이자를 받는 조건이었다. 그녀는 석 달마다 그 이자를 꼬박꼬박 받아 냈고, 작은 장부에 수입과 지출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꼼꼼하게 기록해 두었다.
조지애나는 높은 걸상에 앉아 거울을 보며 머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락방 서랍에서 찾아낸 조화와 빛바랜 깃털을 곱슬머리 사이사이에 정성껏 꽂고 있었다.
나는 베시가 돌아오기 전에 반드시 침대를 정리해 놓으라는 엄명을 받았기에 침대를 정돈하고 있었다. 요즘 베시는 나를 마치 보조 유모처럼 부리며 방을 치우게 하거나 의자의 먼지를 털게 했고, 여러 잔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이불을 가지런히 펴고 잠옷을 개어 놓은 뒤, 나는 창가 의자에 흩어져 있는 그림책과 인형의 집 가구들을 정리하려고 다가갔다. 그러자 조지애나가 갑자기 “내 장난감에 손대지 마!” 하고 소리질렀다. 그 작은 의자와 거울, 요정 나라에서나 쓸 법한 접시와 찻잔들은 모두 조지애나의 것이었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서리가 아름다운 꽃무늬를 그려 놓은 유리창에 입김을 불어 하얗게 만들었다. 유리의 일부를 닦아 바깥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창밖의 정원은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어 모든 것이 숨을 죽인 채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창에서는 문지기의 오두막과 마차가 드나드는 길이 보였다. 은백색 서리 무늬를 입김으로 충분히 녹여 밖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대문이 열리고 한 대의 마차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별다른 관심 없이 마차가 진입로를 따라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게이츠헤드에는 마차가 자주 드나들었지만, 그 안에 내가 반길 만한 손님이 타고 있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마차는 집 앞에 멈추었고, 초인종이 크게 울렸다. 새로 온 손님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곧 내 시선은 더 흥미로운 광경으로 옮겨갔다. 잎이 모두 떨어진 벚나무 가지 위로 작은 울새 한 마리가 날아와 배고픈 듯 지저귀고 있었다. 그 벚나무는 창 가까운 벽에 붙어 있는 나무였다.
탁자 위에는 내가 아침으로 먹다 남긴 빵과 우유가 있었다. 나는 빵을 조금 부스러뜨린 뒤, 창틀을 힘껏 밀어 올려 그 부스러기를 창밖에 놓아 주려 했다. 바로 그때 베시가 허둥지둥 보육실로 뛰어 올라왔다.
“제인 아가씨, 앞치마부터 벗으세요!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예요? 아침에 손과 얼굴은 씻었어요?”
나는 대답하기 전에 창을 한 번 더 힘껏 밀었다. 울새가 빵을 안전하게 먹을 수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창이 열렸다. 나는 빵 부스러기를 창틀 위에도 뿌리고 벚나무 가지 위에도 흩뿌린 뒤 창을 닫고 대답했다.
“아니, 방금 먼지 닦는 일을 끝냈어.”
“어쩜 그리 말을 안 들어요? 지금은 또 뭘 하고 있었어요? 얼굴이 새빨간 걸 보니 또 무슨 장난이라도 친 것 같네요. 창문은 왜 연 거예요?”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베시는 너무 바빠 내 설명을 들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그녀는 나를 세면대로 끌고 가더니 비누와 물, 거친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사정없이 문질러 씻겼다. 다행히 그 고역은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어 거친 솔로 머리를 빗겨 주고 앞치마를 벗긴 뒤 나를 계단 위까지 거의 떠밀다시피 데려가 말했다.
“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세요. 아침 식사실에서 찾으세요.”
누가 나를 찾는지 묻고 싶었다. 리드 부인이 거기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베시는 이미 보육실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거의 석 달 동안 한 번도 리드 부인 앞에 불려간 적이 없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보육실에만 갇혀 지낸 탓에 아침 식사실과 식당, 응접실은 이제 내게 감히 발을 들이기조차 두려운 장소가 되어 있었다.
나는 텅 빈 현관에 멈춰 섰다. 눈앞에는 아침 식사실 문이 있었지만, 겁에 질려 몸을 떨며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 시절의 나는 얼마나 소심한 아이였던가. 부당한 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보육실로 돌아가는 것도 두려웠고, 응접실로 들어가는 것도 두려웠다. 나는 10분이나 그 자리에서 불안과 망설임 속에 서 있었다.
그때 아침 식사실의 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제는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나를 찾는 걸까?’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양손으로 문손잡이를 돌렸다. 손잡이는 뻑뻑했지만, 곧 잘 돌아갔다.
‘방 안에는 리드 외숙모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깊이 인사한 뒤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내 눈앞에 보인 것은 검은 기둥이었다. 적어도 첫인상은 그랬다. 벽난로 앞 양탄자 위에 꼿꼿이 서 있는 검은 옷차림의 길고 마른 모습은 마치 검은 돌기둥 같았다. 그 꼭대기에 있는 엄숙한 얼굴은 기둥머리에 얹어 놓은 조각된 가면처럼 보였다.
리드 부인은 늘 앉던 벽난로 곁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부인은 손짓으로 나를 가까이 오게 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는 그 돌처럼 무표정한 낯선 사람에게 나를 소개하며 말했다.
“이 아이가 바로 제가 말씀드렸던 그 여자아이입니다.”
그 사람은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숱이 많은 눈썹 아래에서 반짝이는 회색 눈으로 나를 유심히 살펴본 뒤, 엄숙한 표정으로 낮고 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체구가 아주 작군요. 나이가 몇 살입니까?”
“열 살입니다.”
“벌써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는 믿기 어렵다는 듯 대답하며 몇 분 동안 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윽고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가씨, 이름이 무엇이지?”
“제인 에어입니다, 선생님.”
그 말을 하며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내게 그는 키가 매우 큰 신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주 작은 아이였다. 그의 이목구비는 큼직했고, 얼굴 생김새는 물론 몸의 모든 선까지도 딱딱하고 엄격해 보였다.
“좋아요, 제인 에어. 그럼 너는 착한 아이니?”
그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가 사는 이 집에서는 모두가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리드 부인이 나 대신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저으며 곧 덧붙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을 적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브로클허스트 씨.”
“정말 안타까운 일이군요! 그렇다면 이 아이와 이야기를 좀 나누어 봐야겠습니다.”
그는 꼿꼿이 서 있던 자세를 풀고 몸을 숙여 리드 부인 맞은편 안락의자에 앉았다.
“이리 오너라.”
나는 벽난로 앞 양탄자를 가로질러 걸어갔다. 그는 나를 자기 앞에 똑바로 세웠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얼굴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큰 코였는지! 입도 컸고, 앞으로 불쑥 나온 커다란 이도 눈에 띄었다.
“나쁜 아이를 보는 것만큼 슬픈 것도 없단다.”
그가 말을 시작했다.
“특히 나쁜 어린 여자아이라면 더욱 그렇지. 너는 악한 사람들이 죽은 뒤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니?”
“지옥으로 갑니다.”
나는 교리책에서 배운 대로 주저 없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지옥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겠구나? 말해 봐.”
“불이 가득한 구덩이입니다.”
“그 불구덩이에 떨어져 영원히 불타는 것이 좋으냐?”
“아닙니다, 선생님.”
“그런 일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어렵게 내놓은 대답은 그가 듣기에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이었을 것이었다.
“건강하게 지내고 죽지 않아야 합니다.”
“건강하게 지낸다고? 너보다 더 어린 아이들도 날마다 죽는다. 불과 하루이틀 전에도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를 내가 장례 치러 주었지. 아주 착한 아이였기에 그 영혼은 지금 하늘나라에 있을 거야. 하지만 네가 지금 죽는다면 너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는 매우 의심스럽구나.”
나는 그의 의심을 풀어 줄 만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양탄자 위에 단단히 버티고 선 그의 커다란 두 발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이나 멀리 달아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방금 그 한숨이 진심에서 나온 것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훌륭한 은인께 여러 번 걱정을 끼쳐 드린 일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기를 바란다.”
‘은인이라니, 은인이라니?’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두 리드 부인을 내 은인이라고 부르는구나. 만약 저 사람이 정말 은인이라면 은인이라는 존재는 참으로 불쾌한 것이 틀림없다.’
그는 계속해서 나를 심문하듯 물었다.
“아침저녁으로 기도는 하니?”
“네, 선생님.”
“성경은 읽니?”
“가끔 읽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읽니? 성경을 좋아하니?”
“저는 요한계시록이 좋고, 다니엘서, 창세기, 사무엘서, 출애굽기의 조금, 그리고 열왕기, 역대기, 욥기, 요나서의 몇 부분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시편도 좋아하겠구나?”
“아니요, 선생님.”
“아니라고? 오, 참으로 충격적이구나! 나에게는 너보다 어린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는 시편 여섯 편을 모두 암송한단다. 그리고 내가 그 아이에게 생강과자를 먹겠느냐, 아니면 시편 한 구절을 외우겠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지. ‘아, 시편을 외울래요! 천사들은 시편을 노래하잖아요. 저도 이 세상에서 작은 천사가 되고 싶어요.’라고. 그러면 나는 그 아이의 경건함에 대한 보상으로 생강과자를 두 개나 준단다.”
“시편은 재미가 없어요.”
내가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네 마음이 사악하다는 증거다. 너는 하나님께 네 마음을 바꾸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새롭고 깨끗한 마음을 주시고, 돌 같은 마음을 없애시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도록 말이다.”
나는 도대체 그 마음을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때 리드 부인이 끼어들어 나에게 앉으라고 말한 뒤, 대신 대화를 이어 나갔다.
“브로클허스트 씨, 제가 3주 전에 보낸 편지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아이는 제가 바라는 만큼의 품성과 성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만약 로우드 학교에서 이 아이를 받아 주신다면 교장과 선생님들께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지켜봐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의 가장 큰 결점인 거짓과 속임수를 부리는 버릇을 경계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인, 내가 네 앞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네가 브로클허스트 씨를 속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내가 리드 부인을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것도 당연했다. 그녀는 본래 사람의 마음에 잔인한 상처를 주는 사람이었다. 그녀 앞에서는 단 한 번도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아무리 순종하고, 아무리 그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애써도 돌아오는 것은 늘 방금 같은 말뿐이었다.
그런 비난을 낯선 사람 앞에서 듣게 되자 내 가슴은 깊이 찔린 듯 아팠다. 나는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막 시작되려는 내 새로운 삶에서조차 희망을 지워 버리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녀가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마다 사람들의 냉대와 미움을 미리 뿌려 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브로클허스트 씨의 눈에는 나는 이미 교활하고 해로운 아이로 변해 버렸다. 그런데 내가 그 억울함을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었겠는가.
‘아무것도 없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터져 나오려는 흐느낌을 억눌렀다. 그리고 고통의 무력한 흔적인 눈물을 황급히 닦아 냈다.
“속이는 버릇은 어린아이에게 매우 슬픈 결점입니다. 그것은 거짓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모두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호수에서 대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리드 부인. 이 아이는 잘 지켜보겠습니다. 템플 교장과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브로클허스트 씨가 말했다.
“저는 이 아이가 앞으로 처하게 될 처지에 걸맞게 교육받기를 바랍니다.”
나의 은인은 말을 이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고, 언제나 겸손하게 자라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방학이 되어도, 허락만 해 주신다면 언제나 로우드에서 지내게 하고 싶습니다.”
“아주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부인.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덕목이며, 특히 로우드 학생들에게는 더욱 필요한 미덕입니다.”
브로클허스트 씨가 대답했다.
“그래서 저는 그 아이들에게 겸손을 길러 주는 데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들 마음속의 세속적인 자만심을 가장 효과적으로 꺾을 방법을 연구해 왔습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 제 노력이 성공하고 있다는 매우 흐뭇한 증거를 하나 보았습니다. 제 둘째 딸 오거스타가 어머니를 따라 학교에 다녀온 뒤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빠, 로우드 학교 아이들은 모두 정말 조용하고 수수해 보여요. 머리는 귀 뒤로 단정히 빗어 넘기고, 긴 앞치마를 입고, 드레스 바깥에는 작은 리넨 주머니를 달고 있었어요. 꼭 가난한 집 아이들 같았어요. 그리고 제 옷이랑 엄마 옷을 마치 비단옷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바라보더라고요.’ 하고요.”
“바로 그런 모습이 제가 가장 바라는 것입니다.”
리드 부인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잉글랜드 전역을 뒤져도 제인 에어 같은 아이에게 이보다 더 알맞은 교육 방침을 찾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브로클허스트 씨. 저는 모든 일에서 일관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인, 일관성은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의무입니다. 그리고 로우드 학교의 모든 운영은 그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검소한 음식, 소박한 옷차림, 꾸밈없는 생활 환경, 그리고 강인하고 부지런한 생활 습관, 이것이 우리 학교와 학생들의 일상입니다.”
“아주 훌륭합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이 아이를 로우드 학교 학생으로 받아들여 장차 이 아이의 처지와 운명에 걸맞게 교육해 주실 것이라 믿어도 되겠지요?”
“물론입니다, 부인. 이 아이는 선택받은 식물들을 기르는 묘목장에 심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헤아릴 수 없이 큰 은혜에 감사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가능한 한 빨리 보내겠습니다, 브로클허스트 씨. 사실 이 아이를 돌보는 책임은 제게 너무나도 큰 짐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부인. 그럼 이제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저는 한두 주 안에 브로클허스트 저택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친한 벗인 부주교께서 그전에는 떠나도록 허락하지 않으시는군요. 템플 교장에게 새 학생이 갈 것이라고 미리 알려 두겠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받아들이는 데 아무 어려움도 없을 것입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브로클허스트 씨. 부인과 브로클허스트 양, 그리고 오거스타와 시어도어, 브로턴 브로클허스트 도련님께도 제 안부를 전해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인.”
그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가씨, 여기 《어린이를 위한 지침서》라는 책이 있단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도록 해라. 특히 ‘거짓말과 속임수에 빠졌던 나쁜 아이 마사 G의 무시무시하고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이야기를 잘 읽어 보아라.”
그 말을 마친 브로클허스트 씨는 얇은 표지로 제본된 작은 책자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마차를 부르기 위해 벨을 울린 뒤 집을 떠났다.
이제 방에는 리드 부인과 나만 남았다.
몇 분 동안 침묵이 흘렀다.
리드 부인은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무렵 리드 부인의 나이는 서른여섯이나 서른일곱쯤 되었을 것이다. 부인은 체격이 튼튼하고 어깨가 넓었으며 팔다리도 단단했다. 키는 크지 않았지만 몸집이 제법 있었고, 그렇다고 뚱뚱한 편은 아니었다. 얼굴은 다소 컸으며, 특히 아래턱이 크고 단단하게 발달해 있었다. 이마는 낮았고 턱은 크고 앞으로 나와 있었다. 입과 코는 반듯한 편이었지만, 옅은 눈썹 아래 빛나는 눈에서는 자비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피부는 짙고 윤기가 없었으며 머리카락은 거의 아마빛 금발에 가까웠다. 그녀는 매우 건강해서 병에는 좀처럼 걸리지 않았다. 집안 살림을 빈틈없이 꾸려 나가는 유능한 안주인이었고, 하인들과 소작인들을 잘 관리했다. 다만 자식들만은 가끔 권위를 거스르며 그녀를 비웃곤 했다. 그녀는 옷도 품위 있게 입었고, 좋은 옷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당당한 몸가짐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리드 부인의 안락의자에서 몇 걸음 떨어진 낮은 의자에 앉아 그녀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얼굴 구석구석도 눈여겨보았다. 내 손에는 거짓말쟁이 아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다룬 작은 책이 들려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씨는 그것을 나에게 본보기로 읽으라고 주고 갔다.
방금 일어난 일, 리드 부인이 브로클허스트 씨 앞에서 나에 대해 했던 말들,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모든 내용은 아직도 생생하고 쓰라리게 내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귀로 들은 만큼이나 마음으로도 예민하게 느꼈고, 내 안에서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점점 끓어올랐다.
리드 부인은 바느질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내 눈과 마주쳤고, 손가락도 동시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방에서 나가거라. 보육실로 돌아가.”
그녀는 명령하듯 말했다.
내 눈빛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몹시 화가 난 것을 억누르는 목소리였다. 나는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다시 돌아왔다. 창가까지 걸어갔다가 방을 가로질러 그녀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나는 반드시 말해야 했다. 내가 너무도 심하게 짓밟혔기에 반드시 맞서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내게는 저 강한 적에게 되받아칠 힘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있는 힘을 모두 모아 마침내 거칠지만 단호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저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에요. 제가 정말 거짓말쟁이라면 외숙모님을 사랑한다고 말했겠죠. 하지만 저는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외숙모님을 사랑하지 않아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외숙모님이 싫어요. 존 리드만 빼고요. 그리고 이 거짓말쟁이에 관한 책은 저 대신 조지애나에게 주세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바로 그 아이니까요.”
리드 부인의 두 손은 여전히 바느질감 위에 멈춰 있었다. 그녀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길은 한순간도 흔들리지 않은 채 나를 싸늘하게 응시했다.
“더 할 말이 남았니?”
그녀는 아이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나이 든 적수에게 말하듯 차갑고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 그 눈빛과 그 목소리는 내 안에 있던 모든 반감을 다시 들끓게 만들었다. 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떨리고 있었고, 걷잡을 수 없는 격정에 사로잡힌 채 말을 이었다.
“외숙모님이 제 친척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에요. 살아 있는 동안 다시는 당신을 외숙모라고 부르지 않을 거예요. 제가 어른이 되어도 당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고, 누군가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저를 어떻게 대했는지 묻는다면, 당신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말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이 저를 너무나 잔인하게 학대했다고 그대로 이야기할 거예요.”
“제인 에어!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감히요? 그게 진실이니까요. 외숙모님은 제가 아무런 감정도 없는 줄 아시잖아요. 사랑이나 친절 하나 없이도 살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는 살 수 없어요. 외숙모님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조금도 없어요. 저를 붉은 방으로 거칠고 난폭하게 밀어 넣고 문을 잠갔던 일을 죽는 날까지 기억할 거예요. 저는 너무 괴로웠어요. 숨이 막힐 만큼 두려워하면서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리드 외숙모님!’ 하고 울부짖었잖아요. 그런데도 외숙모님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어요. 게다가 그 벌은 외숙모님의 못된 아들이 아무 이유도 없이 저를 때리고 넘어뜨렸기 때문에 제가 받은 것이었어요. 앞으로 누가 저에게 묻기만 하면 저는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모두 이야기할 거예요. 사람들은 외숙모님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외숙모님은 나쁜 사람이에요. 인정머리도 없는 사람이에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바로 외숙모님이에요!”
그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내 영혼은 전에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이상한 자유와 승리감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묶고 있던 보이지 않는 사슬이 산산이 끊어지고,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자유를 향해 몸을 던져 빠져나온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은 결코 착각이 아니었다.
리드 부인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바느질감은 무릎에서 미끄러져 떨어졌고, 그녀는 두 손을 들어 올린 채 몸을 앞뒤로 흔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얼굴까지 일그러져 있었다.
“제인, 네가 오해를 하고 있구나. 대체 무슨 일이니? 왜 그렇게 심하게 떨고 있어? 물이라도 한 잔 마시겠니?”
“아니요, 리드 외숙모님.”
“제인, 원하는 게 뭐야? 나는 정말 너와 잘 지내고 싶었단다.”
“아니잖아요. 외숙모님은 브로클허스트 씨에게 제가 행실이 나쁘고 거짓말을 잘하는 아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로우드 학교에 가면 외숙모님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모두에게 이야기할 거예요.”
“제인, 너는 아직 그런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아이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 법이란다.”
“거짓말은 제 잘못이 아니에요!”
나는 날카로운 비명처럼 외쳤다.
“하지만 네 감정이 너무 격정적이라는 건 인정해야 해. 자, 이제 착한 아이처럼 보육실로 돌아가!”
“저는 외숙모님의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그리고 당하고만 있지도 않을 거예요. 리드 외숙모님, 저를 어서 학교로 보내 주세요. 저는 이 집에서 사는 것이 너무 싫어요.”
“그래, 곧 학교로 보내 버려야겠구나.”
리드 부인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바느질감을 챙겨 들고 황급히 방을 나갔다.
방에는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승리자였다.
그날의 싸움은 내가 지금까지 치른 싸움 가운데 가장 치열한 것이었고, 내가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다. 나는 조금 전까지 브로클허스트 씨가 서 있던 벽난로 앞 양탄자 위에 그대로 서서, 승리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고요함을 음미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고 의기양양했지만, 맥박의 가쁜 요동이 가라앉는 것만큼이나 이 격렬한 쾌감도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아이가, 나이 든 어른과 싸우며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거침없이 분출하고 나면 뒤이어 회한의 고통과 차가운 반동을 겪게 되는 법이다. 내가 리드 부인을 비난하고 위협할 때 내 마음은 마치 활활 타오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붙은 황무지의 능선과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불길이 죽은 뒤 검게 그을리고 파괴된 그 능선은, 삼십 분 동안의 침묵 속에서 내 행동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리고 미워하면서도 미움을 받는 내 처지가 얼마나 쓸쓸한 것인지를 깨달았던 그때의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풍경이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복수의 맛을 보았다. 그것은 향기로운 포도주처럼 처음 삼킬 때는 따뜻하고 짜릿했으나 뒤이어 입안에 남는 맛은 금속처럼 쓰고 부식성 있어 마치 독을 마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꺼이 리드 부인에게 가서 용서를 빌고 싶었지만, 나는 경험으로도, 또 본능으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그녀는 나를 두 배의 경멸로 밀어낼 것이고, 그러면 내 안의 거칠고 사나운 감정은 다시금 들끓게 될 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런 격한 말 대신 다른 능력을 쓰고 싶었다. 어두운 분노보다 덜 악마 같은 감정을 키울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나는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였다. 자리에 앉아 읽어 보려 애썼지만, 내용은 조금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재미있게 읽던 이야기였는데, 오늘은 내 생각이 책장과 나 사이를 가득 메워 버려 문장의 뜻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침 식사실의 유리문을 열었다.
관목숲은 아주 고요했다. 태양도 바람도 없이 검은 서리가 온 정원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원피스 치맛자락으로 머리와 팔을 감싸고, 숲속에서도 아주 외진 곳으로 산책을 나갔다. 하지만 고요한 나무들, 떨어지는 솔방울, 지난 바람에 무더기로 쓸려와 이제는 함께 딱딱하게 굳어버린 적갈색 낙엽 등 가을의 얼어붙은 흔적들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울타리 문에 기대어 양 한 마리조차 풀을 뜯지 않는 텅 빈 들판을 바라보았다. 짧은 풀은 서리에 시들어 희끄무레하게 변해 있었다.
날씨는 몹시 흐렸다. 눈이 내릴 듯 잔뜩 내려앉은 잿빛 하늘이 온 세상을 덮고 있었고, 때때로 눈송이가 흩날려 얼어붙은 길과 서리 내린 들판 위에 내려앉았지만 녹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도 불쌍한 아이가 되어 혼잣말을 되풀이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바로 그때,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인 아가씨! 어디 있어요? 점심 먹으러 오세요!”
베시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곧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이 오솔길을 따라 가까워졌다.
“이 말 안 듣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부르는데 왜 안 오고 그래요?”
베시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 내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생각들과 비교하면, 베시의 존재는 무척 밝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약간 퉁명스럽기는 했지만 말이다.
사실 리드 부인과 전투를 치른 뒤라, 하녀가 잠깐 내는 화 따위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베시의 젊고 명랑한 마음에 기대어 쉬고 싶었다. 나는 그저 두 팔로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
“베시, 제발 잔소리하지 마.”
그렇게 솔직하고 거리낌없이 애정을 표현한 것은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행동이 베시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베시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제인 아가씨는 참 이상한 아이예요. 작고 떠돌아다니는 외로운 아이 같아요. 곧 학교에 간다면서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불쌍한 베시를 떠나는 게 슬프지 않겠어요?”
“베시는 나를 신경 쓰지 않잖아. 늘 나만 혼내면서.”
“그건 아가씨가 너무 별나고 겁이 많고 수줍음을 타는 아이여서 그래요. 좀 더 대담해져야 해요.”
“그래서 더 많이 맞으라는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하지만 사람들이 아가씨를 함부로 대하는 건 사실이에요. 지난주에 엄마가 저를 보러 왔다가 그러셨어요. 자기 딸이라면 절대로 아가씨 같은 처지에 두고 싶지 않다고요. 자, 이제 들어가요. 좋은 소식이 있어요.”
베시는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은데, 베시.”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절 바라보는 거예요? 그래도 들어 보세요. 오늘 오후에 리드 부인과 아가씨들, 그리고 존 도련님 모두 차를 마시러 외출하세요. 그러니까 오늘은 아가씨가 저와 함께 차를 마실 거예요. 제가 요리사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작은 케이크도 구워 달라고 할게요. 그리고 함께 서랍도 정리해요. 곧 여행 가방을 싸야 하거든요. 부인께서 하루나 이틀 안에 아가씨를 게이츠헤드에서 떠나보낼 생각이세요. 그러니까 가지고 갈 장난감은 아가씨가 직접 골라도 돼요.”
“베시, 내가 떠날 때까지는 다시는 야단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좋아요, 약속할게요. 하지만 아가씨도 정말 착한 아이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더는 절 무서워하지도 말고요. 내가 가끔 목소리를 조금 세게 낸다고 깜짝깜짝 놀라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정말 속상하거든요.”
“이제는 베시가 무섭지 않을 것 같아. 베시에게는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그리고 곧 무서워해야 할 다른 사람들이 새로 생길 테니까.”
“그 사람들을 무서워하면 그 사람들도 아가씨를 싫어하게 될 거예요.”
“베시가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난 아가씨를 싫어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아가씨를 더 좋아하는걸요.”
“티도 안 내면서.”
“참 말 잘하는 꼬맹이 같으니라고! 완전히 말투가 달라졌네요. 무엇이 아가씨를 이렇게 대담하고 억척스럽게 만들었을까요?”
베시는 웃으며 말했다.
“곧 베시와 헤어질 테니까. 그리고 또…….”
나는 리드 부인과 있었던 일을 말하려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럼 정말 나를 떠나는 게 기쁜 거예요?”
베시가 물었다.
“아니야, 베시. 지금은 오히려 조금 슬퍼.”
“지금은? 오히려 조금? 우리 아가씨는 어쩜 이리 덤덤하게 말씀하실까! 내가 지금 뽀뽀해 달라고 해도 안 해주겠군요. 차라리 안 하겠다고 말하겠죠.”
베시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해 줄 거야. 고개를 숙여 봐.”
베시가 몸을 숙였다.
우리는 서로를 꼭 안았고, 나는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채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오후는 평화롭고 화목하게 흘러갔다.
저녁이 되자 베시는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가장 매혹적인 이야기 몇 개를 들려주고, 가장 감미로운 노래들을 불러 주었다. 나 같은 아이의 삶에도 마침내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교정 후기
다시 읽어 보니 수정할 것이 또 보이네요. 몇 번을 보며 수정해야 겠습니다. 아래는 다시 수정한 내용입니다.
자기 코를 부러뜨렸다고 악을 썼다.
▶ 자기 코피를 터뜨렸다고 악을 썼다.
♣ 원문에 burst his nose라고 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코를 부러뜨렸다로 번역했다가 '코피를 터뜨렸다'로 수정했습니다. burst가 터뜨리다, 파열하다 등의 뜻이 있어서 코를 파열하는 것은 코피를 터뜨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인 에어가 존의 코를 쳤다고 코가 부러질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코피가 터지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눕지도 않을 거예요.
▶ 그리고 당하고만 있지도 않을 거예요.
♣ 첫 번역에서 lie down을 번역기에서 번역해주는 대로 '눕다'로 해석해 놓았네요. 문맥상 '눕다'는 의미는 너무 뜬금 없어서 찾아보니 lie down이 '굴복하다'는 뜻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당하다'라는 표현으로 수정했습니다. 어린애가 굴복하다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말 같아서 비슷한 다른 말로 수정해 놓았습니다.
♣ 브로클허스트 홀, 게이츠헤드 홀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때 Hall은 우리가 말하는 홀의 의미도 있지만, '저택'이란 의미도 있어서 여기서 모두 '저택'으로 수정했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이었습니다. 다시 검토하니 보이네요.
AI 번역은 이처럼 곳곳에 다양한 오류가 교묘하게 숨어 있기 때문에 꼼꼼하게 확인하고 교차 검증하면서 수정하는 작업이 무척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