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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21-2장

by 행만이99 2026.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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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저녁 식사 종이 울렸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휙 돌아서 가 버렸다. 그날 나는 그를 다시 보지 못했고, 다음 날 아침에는 그가 일어나기도 전에 집을 떠났다.

 

5월 1일 오후 다섯 시쯤 게이츠헤드의 문지기 집에 도착했다. 저택으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그곳에 들렀다.
집 안은 매우 깨끗하고 단정했다. 장식용 창문에는 작은 흰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고, 바닥은 티 하나 없이 말끔했다. 벽난로와 화덕 도구들은 반짝반짝 윤이 났으며, 불길도 맑고 환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베시는 벽난로 앞에 앉아 막내 아기를 안고 있었고, 로버트와 그의 여동생은 방 한쪽에서 조용히 놀고 있었다.
“오셨군요! 역시 오실 줄 알았어요!”
내가 들어서자 베시가 반갑게 외쳤다.
“그래, 베시.”
나는 그녀에게 입을 맞춘 뒤 말했다.
“늦지 않았기를 바라. 리드 부인은 어때? 아직 살아 계셔?”
“네, 살아 계세요. 그리고 전보다 정신도 더 맑고 의식도 또렷해지셨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앞으로 한두 주 정도는 더 버티실 수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되실 것 같지는 않다고 하셨어요.”
“최근에도 내 이야기를 하셨어?”
“오늘 아침에도 아가씨 이야기를 하시면서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주무시고 계세요. 아니, 제가 저택에서 내려오기 10분 전까지만 해도 주무시고 계셨어요. 오후에는 늘 혼수상태처럼 깊이 잠들어 계시다가 여섯 시나 일곱 시쯤 깨어나세요. 아가씨, 여기서 한 시간쯤 쉬었다가 저와 함께 올라가요.”

 

그때 로버트가 들어왔다. 베시는 잠든 아기를 요람에 눕혀 놓고 로버트를 맞았다. 그러고는 내게 모자를 벗고 차 한잔을 마시라고 권했다. 내 얼굴이 몹시 창백하고 지쳐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린 시절 그녀가 내 옷을 벗겨 주던 때처럼, 이번에도 아무 말 없이 여행용 겉옷을 벗기는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베시가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자 옛날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녀는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 쟁반에 놓고, 빵에 버터를 발라 썰고, 티케이크를 굽는가 하면, 그 틈틈이 어린 로버트나 제인을 돌보며 타일렀다. 마치 오래전 나에게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베시는 여전히 빠른 걸음걸이와 고운 용모를 간직하고 있었고, 성급한 성격 또한 예전 그대로였다.

 

차가 준비되자 나는 식탁으로 가려 했다. 그러나 베시는 예전처럼 단호한 목소리로 그대로 앉아 있으라고 했다. 벽난로 곁에서 차를 마셔야 한다며 작은 둥근 탁자를 가져다 놓고, 찻잔과 토스트 한 접시를 내 앞에 차려 주었다. 마치 어린 시절, 아이 방 의자에 나를 앉혀 두고 몰래 챙겨 온 맛있는 간식을 건네주던 때와 똑같았다. 나도 예전처럼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베시는 손필드 저택에서 내가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주인은 어떤 사람인지 물었다. 내가 그 집에는 안주인이 아니라 주인만 있다고 하자, 그분은 좋은 신사인지, 내가 그를 좋아하는지 다시 물었다. 나는 그가 다소 못생긴 편이지만 진정한 신사이며,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 때문에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얼마 전 저택에 머물렀던 화려한 손님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시는 그런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그것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베시는 내 모자와 여행용 소지품을 다시 챙겨 주었고, 나와 함께 문지기 집을 나와 저택으로 향했다.

 

거의 9년 전에도 나는 바로 이 길을 베시와 함께 걸어 내려왔었다. 그때는 축축하고 안개 낀 1월의 차가운 아침이었다. 나는 절망과 원망으로 가득 찬 마음을 안고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처럼, 멀고도 낯선 로우드 학교라는 차가운 피난처를 향해 길을 떠났었다.
그리고 지금, 그 증오했던 지붕이 다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의 일은 여전히 불확실했고, 내 마음도 아직은 아팠다. 나는 여전히 세상을 떠도는 나그네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과 내 능력을 훨씬 더 굳게 믿고 있었고, 타인에게 억눌릴 것이라는 두려움도 예전처럼 나를 짓누르지는 않았다. 내가 겪었던 부당한 상처는 이제 완전히 아물었고, 마음속 원한의 불꽃도 이미 꺼져 있었다.
“먼저 아침 식사실로 들어가세요.”
홀을 지나 베시가 앞장서며 말했다.
“아가씨들이 거기 계실 거예요.”
잠시 뒤 나는 그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의 가구들은 내가 처음 브로클허스트 씨를 만났던 그날 아침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가 서 있었던 바로 그 양탄자가 여전히 벽난로 앞을 덮고 있었다. 책장을 바라보니 세 번째 선반에는 토마스 뷰익의 《영국 조류사》 두 권이 예전 그대로 꽂혀 있었고, 그 위 선반에는 《걸리버 여행기》와 《아라비안 나이트》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변한 것은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내 앞에는 두 젊은 숙녀가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매우 키가 컸다. 거의 잉그램 양만큼 컸으며, 몹시 마르고 누런 안색에 엄격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금욕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곧게 떨어지는 검은 모직 원피스, 빳빳하게 풀 먹인 리넨 칼라, 관자놀이에서 뒤로 단정히 넘긴 머리, 그리고 흑단 묵주와 십자가 장식은 마치 수녀를 연상시켰다. 그녀는 엘리자였다. 하지만 길고 핏기 없는 얼굴에서는 어린 시절의 모습과 닮은 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조지애나는 내가 기억하는 열한 살의 날씬하고 요정 같은 소녀는 아니었다. 지금의 그녀는 한창 살이 올라 통통한 아가씨가 되어 있었다. 밀랍 인형처럼 희고 고운 피부에 반듯하고 아름다운 이목구비, 나른한 푸른 눈, 노란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 역시 검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 옷의 디자인은 언니와는 전혀 달랐다. 훨씬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맵시 있는 옷차림이었고, 그녀에게 매우 잘 어울렸다. 언니의 옷이 지나치게 청교도적인 인상을 주었다면 조지애나의 옷은 세련되고 우아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자매는 저마다 하나씩은 어머니를 닮아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언니는 회갈색 수정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눈빛을 닮았고, 혈색 좋고 풍만한 동생은 턱과 턱선의 윤곽을 물려받았다.
내가 다가가자 두 자매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맞이했고, 둘 다 나를 ‘에어 양’이라고 불렀다. 엘리자는 미소도 없이 짧고 딱딱한 목소리로 인사한 뒤 곧바로 다시 자리에 앉아 벽난로만 바라보며,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인 양 행동했다.
조지애나는 “안녕?”이라는 인사에 여행은 어땠는지, 날씨는 어떤지와 같은 의례적인 말을 몇 마디 덧붙였다. 그러나 그녀의 말투는 느릿느릿 힘이 없었고,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곁눈질로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잿빛 메리노 외투의 주름을 살펴보기도 하고, 수수한 보닛의 소박한 장식을 한참 바라보기도 했다.

 

젊은 아가씨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를 우스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거드름 피우는 눈빛, 차가운 태도, 무심한 말투만으로도 그 감정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으며, 노골적으로 무례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깔보는 마음을 분명히 전달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비웃음이, 드러난 것이든 감춰진 것이든, 예전처럼 내 마음을 흔들지는 못했다.
한 사람의 철저한 무관심과 다른 한 사람의 반쯤 비꼬는 친절 속에서 나는 놀라울 만큼 마음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엘리자는 더 이상 나를 위축시키지 못했고, 조지애나도 내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했다.

 

사실 내게는 그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지난 몇 달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그들이 결코 불러일으킬 수 없는 훨씬 강렬한 감정들이 요동쳤다. 그들이 줄 수 있는 어떤 상처나 기쁨보다도 훨씬 깊고 예리한 고통과 행복을 이미 경험한 뒤였기에, 그들의 거만한 태도는 이제 좋든 나쁘든 내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리드 부인은 어때?”
나는 이내 조지애나를 차분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내가 직접 말을 건 것이 뜻밖의 무례라도 되는 듯 몸을 꼿꼿이 세웠다.
“리드 부인이라고? 아, 어머니 말하는구나. 많이 편찮으시지. 오늘 밤에는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위층에 올라가 내가 왔다고만 전해 주면 고맙겠어.”
조지애나는 거의 깜짝 놀라며 푸른 눈을 크게 떴다.
“외숙모께서 특별히 나를 만나 보고 싶어 하신다고 해서 왔어. 그걸 알면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미루고 싶지 않았어.”
“어머니는 저녁에는 방해받는 것을 싫어해.” 엘리자가 말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권하지 않았지만 모자와 장갑을 벗었다.
“베시를 잠깐 만나봐야겠어. 아마 부엌에 있을 테니, 오늘 밤 외숙모께서 나를 만나실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할게”
나는 밖으로 나가 베시를 찾아 심부름을 부탁한 뒤, 그다음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처리하기로 했다. 예전의 나는 언제나 거만한 사람들 앞에서는 움츠러드는 버릇이 있었다. 오늘 같은 대접을 받았다면, 불과 1년 전의 나라면 아마 다음 날 아침 곧장 게이츠헤드를 떠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사실을 한순간에 깨달았다. 나는 외숙모를 만나기 위해 백 마일이나 되는 길을 달려왔다. 그러니 외숙모가 회복되거나, 아니면 세상을 떠날 때까지는 이곳에 머물러야 했다. 사촌 자매들의 자존심이나 어리석은 행동은 한쪽으로 치워 두고, 그것들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가정부를 불러 방 하나를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아마 한두 주 정도 이곳에 머물게 될 것 같다고 말한 뒤, 내 여행 가방을 방으로 옮겨 달라고 했다. 나도 곧 그 방으로 올라갔고, 계단참에서 베시와 마주쳤다.
“부인께서 깨어나셨어요.” 베시가 말했다.
“아가씨가 오셨다고 말씀드렸어요. 자, 따라오세요. 아가씨를 알아보실지 모르겠네요.”
나는 예전처럼 베시의 안내가 없어도 그 낯익은 방을 찾아갈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벌을 받거나 꾸중을 들을 때마다 수도 없이 불려 들어갔던 방이었다.

 

나는 베시보다 앞서 서둘러 가서 조용히 문을 열었다.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으므로 탁자 위에는 갓을 씌운 등이 켜져 있었다. 예전 그대로 호박색 휘장이 드리워진 커다란 네 기둥 침대가 있었고, 화장대와 안락의자도 그대로였다. 그리고 내가 하지도 않은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라며 수없이 무릎을 꿇게 했던 작은 발받침도 여전히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나는 방 한구석을 바라보았다. 한때 나를 공포에 떨게 했던 회초리가 아직도 그곳에 숨어 있다가, 마치 장난꾸러기 요정처럼 불쑥 튀어나와 떨리는 손바닥이나 움츠러든 목을 후려칠 것만 같았다.
나는 침대로 다가가 휘장을 젖히고 높이 쌓인 베개 위로 몸을 숙였다.
리드 부인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그 익숙한 얼굴을 간절히 찾았다.
시간이 흐르면 복수심은 가라앉고, 분노와 증오의 충동도 잠잠해진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쓰라린 원망과 미움 속에서 이 여인을 떠났지만, 지금 그녀에게 돌아온 내 마음에는 오직 그녀의 큰 고통에 대한 연민과, 지난 모든 상처를 잊고 용서하며 화해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만이 남아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여전히 엄격했고, 냉혹했다. 어떤 감정으로도 누그러질 줄 모르는 그 특유의 눈빛도, 약간 치켜 올라간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눈썹도 그대로였다. 그 눈썹이 얼마나 자주 나를 향해 위협과 증오를 드리웠던가. 그리고 지금 그 매서운 선을 바라보는 순간, 어린 시절의 공포와 슬픔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럼에도 나는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제인 에어냐?”
“네, 외숙모님. 몸은 좀 어떠세요?”
나는 한때 다시는 그녀를 외숙모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 맹세를 잊고 어기는 것이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이불 밖으로 나와 있던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만약 그녀가 내 손을 다정하게 한 번만 잡아 주었더라면,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좀처럼 감동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은 쉽게 누그러지지 않으며, 타고난 반감도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리드 부인은 내 손을 빼내더니 얼굴을 나에게서 돌리고는 “오늘 밤은 덥구나.” 하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나를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생각과 감정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변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부드러움도 스며들지 않고 눈물로도 녹지 않는 그 돌같이 굳은 눈빛은, 그녀가 끝까지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믿기로 마음먹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그녀에게 관대한 기쁨을 주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굴욕만 안겨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팠고, 이어 분노가 치밀었다. 마침내 그녀의 성품과 의지에도 굴하지 않고, 내가 그녀를 이겨 내겠다고 마음먹었다.

 

어린 시절처럼 눈물이 차올랐지만, 억지로 삼켰다. 침대 머리맡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은 뒤, 베개 위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외숙모님께서 저를 부르셨다고 해서 왔습니다. 한동안 이곳에 머물 생각입니다.”
“그래, 내 딸들은 만나 보았느냐?”
“네.”
“내 마음에 두고 있는 몇 가지 일들을 너한테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너더러 머물라고 했다고 그 애들에게 전하렴. 하지만 오늘 밤은 너무 늦었구나.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구나. 분명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 어디 보자…”
흔들리는 눈빛과 달라진 말투는 한때 건강하고 강인했던 그녀의 몸과 정신이 얼마나 크게 무너졌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녀는 불편한 듯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그런데 내가 팔꿈치를 이불 모서리에 올려놓고 있어서 이불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곧바로 짜증을 냈다.
“똑바로 앉아라!” 그녀가 말했다.
“이불을 붙잡고 있지 말고. 귀찮게 하지 마라. 너… 제인 에어가 맞느냐?”
“네, 제가 제인 에어에요.”
“나는 그 아이 때문에 남들이 믿지 못할 만큼 많은 고생을 했다. 그런 짐을 내 손에 떠맡기다니! 게다가 그 아이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성격에, 툭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사람의 행동을 끊임없이 살피며 지켜보는 이상한 버릇까지 있었어. 한번은 미친 사람이나 악마 같은 목소리로 나에게 대들기도 했다. 그런 말과 그런 눈빛을 보인 아이는 본 적이 없어. 나는 그 아이를 집에서 내보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로우드에서는 그 아이를 어떻게 했지? 거기에는 열병이 돌아 학생들이 많이 죽었다더군. 그런데 그 아이는 죽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죽었다고 말했지. 차라리 죽기를 바랐어!”
“참 이상한 바람이시네요, 리드 부인. 왜 그토록 그 아이를 미워하셨나요?”
“나는 원래 너의 어미부터 싫었다. 내 남편의 하나뿐인 여동생이었고, 남편은 네 엄마를 무척 아꼈지. 신분이 낮은 사람과 결혼했을 때 가족들이 내쫓으려 하자 남편만은 끝까지 반대했어. 그리고 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바보처럼 엉엉 울기까지 했다. 남편은 그 아기를 데려오라고 했지. 나는 차라리 유모에게 맡기고 양육비만 보내자고 간청했는데도 말이야. 처음 너를 본 순간부터 싫었다. 병약하고, 칭얼대고, 늘 시무룩한 아이였거든. 밤새도록 요람에서 울어 댔지만, 다른 아이들처럼 힘차게 우는 것이 아니라 훌쩍거리며 신음만 했지. 남편은 너를 불쌍히 여겼다. 자기 친딸인 것처럼 안아 주고 보살펴 주었어. 아니, 같은 나이였던 자기 아이들보다도 더 관심을 기울였지. 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 거지 같은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 애를 도저히 좋아할 수 없었어. 싫은 기색을 보이면 남편은 오히려 아이들을 꾸짖었다. 남편은 마지막 병상에서도 너를 계속 자기 곁으로 데려오게 했고, 죽기 한 시간 전에는 너를 끝까지 돌보겠다고 내게 맹세까지 시켰다. 차라리 구빈원에서 데려온 거지 아이를 맡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원래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 존은 아버지를 조금도 닮지 않았고, 나는 그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존은 나와 내 오빠들을 닮았어. 완전히 깁슨 집안 사람이지.
아, 제발 돈을 보내 달라는 편지로 나를 그만 괴롭혔으면 좋겠다. 줄 돈도 없단다. 우리 집은 점점 가난해지고 있어. 하인도 절반은 내보내야 하고, 저택 일부를 폐쇄하거나 세를 놓아야 할 형편이야.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수입의 3분의 2가 이자를 갚는 데 들어가고 있어. 존은 도박을 너무 심하게 하고, 번번이 돈을 잃는다. 불쌍한 아이! 사기꾼들에게 둘러싸여 있지. 존은 완전히 타락해 버렸다. 그 아이 얼굴은 너무도 흉측해졌어.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야.”
그녀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가는 것이 좋겠어.”
나는 침대 반대편에 서 있던 베시에게 말했다.
“그러시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 하지만 부인께서는 저녁만 되면 늘 이렇게 말씀하세요. 아침이 되면 훨씬 차분해지십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 마!” 리드 부인이 외쳤다.
“아직 할 말이 하나 더 있다. 존이 나를 협박한다. 끊임없이 자기 죽음이나 내 죽음을 들먹이며 나를 위협해. 그리고 나는 가끔 꿈에서 그 애가 목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거나, 얼굴이 새까맣게 부어오른 채 죽어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정말 이상한 처지에 놓여 버렸어. 걱정거리가 너무 많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돈은 대체 어디서 마련해야 한단 말이냐?”
베시는 리드 부인에게 진정제를 먹도록 권했고, 어렵게나마 약을 먹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드 부인은 한결 차분해졌고, 곧 꾸벅꾸벅 조는 상태에 빠졌다. 나는 그제야 방을 나왔다.

 

 

다음 장(21-3장) 보기

 

1장부터 보기

 

 

교정 후기

 

제인 에어가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성장해서 돌아왔네요. 그런데도 게이츠헤드의 사람들은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리드 부인은 제인 에어를 왜 찾았을까요? 

 

그녀는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 쟁반을 차리고 빵에 버터를 발라 썰고, 티케이크를 굽는가 하면, 그 틈틈이 어린 로버트나 제인에게 가볍게 등을 툭 치거나 슬쩍 밀며 타이르곤 했다.

▶그녀는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 쟁반에 놓고, 빵에 버터를 발라 썰고, 티케이크를 굽는가 하면, 그 틈틈이 어린 로버트나 제인을 돌보며 타일렀다.

 

자매는 저마다 어머니를 꼭 닮은 점 하나씩만 물려받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언니는 어머니의 회갈색 케언곰(Cairngorm) 보석처럼 차가운 눈빛을 닮았고, 혈색 좋고 풍만한 동생은 어머니의 턱과 턱선의 윤곽을 물려받았다. 다만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는 했지만, 그 턱선은 그렇지 않았다면 관능적이고 풍만해 보였을 얼굴에 설명하기 어려운 냉혹함을 여전히 더해 주고 있었다.

▶자매는 저마다 어머니를 꼭 닮은 점 하나씩만 물려받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 언니는 회갈색 수정처럼 단단하고 차가운 눈빛을 닮았고, 혈색 좋고 풍만한 동생은 턱과 턱선의 윤곽을 물려받았다. (다음 문장 삭제)

 

젊은 숙녀들은 상대를 우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고도 알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젊은 아가씨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상대를 우스운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외숙모께서 특별히 나를 보고 싶어하신다고 해서 왔어. 저를 보고 싶어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 뜻을 꼭 필요한 시간 이상 미루고 싶지 않습니다.

▶ 외숙모께서 특별히 나를 보고 싶어하신다고 해서 왔어. 그걸 알면서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미루고 싶지 않았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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