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어떤 말로도 다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잠시 후 그가 말했다.
“또 하나 부탁해 보시오. 부탁을 받고 그것을 들어주는 것이 즐겁거든.”
이번에도 나는 부탁할 것을 이미 준비해 두고 있었다.
“페어팩스 부인께 당신의 뜻을 말씀드려 주세요. 어젯밤 현관에서 저와 함께 있는 모습을 부인께서 보셨는데, 정말 크게 놀라셨을 거예요. 제가 다시 부인을 만나기 전에 설명을 좀 해 주세요. 그렇게 훌륭한 분께 오해받으면 제 마음이 아파요.”
“방으로 가서 모자를 쓰고 오시오. 오늘 아침 당신을 밀코트에 데려갈 생각이오. 당신이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내가 노부인의 오해를 풀어 드리지.”
그가 대답했다. 그러고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제인, 페어팩스 부인은 당신이 사랑 때문에 세상의 평판쯤은 다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마 제가 제 분수와 당신의 신분을 잊었다고 생각하셨을 거예요.”
“신분이라고! 신분이라니!” 그가 힘주어 말했다.
“당신의 자리는 내 마음속에 있소. 그리고 지금이나 앞으로나 감히 당신을 모욕하려는 자들의 목 위에 있지. 자, 이제 갑시다.”
나는 곧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로체스터 씨가 페어팩스 부인의 응접실에서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서둘러 그곳으로 내려갔다. 노부인은 그날 아침의 성경 읽기, 곧 그날의 본문을 읽고 있던 중이었다. 성경은 펼쳐진 채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안경도 그 위에 얹혀 있었다. 로체스터 씨가 전한 소식 때문에 그녀의 독서는 중단되었고, 이제 완전히 잊힌 듯했다. 맞은편의 텅 빈 벽을 멍하니 바라보는 부인의 눈에는 크게 놀란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를 보자 부인은 정신을 차렸다.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몇 마디 축하의 말을 하려 했지만, 미소는 이내 사라졌고 말도 끝맺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부인은 안경을 접어 치우고, 성경을 덮은 뒤 의자를 식탁에서 뒤로 밀었다.
“너무 놀라서…” 그녀가 입을 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에어 선생님. 제가 정말 꿈을 꾼 건 아니겠지요? 가끔 혼자 앉아 있으면 깜빡 졸다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본 것처럼 착각할 때가 있거든요. 1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제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제 곁에 앉는 것처럼 느껴진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예전처럼 제 이름인 앨리스를 부르는 소리까지 들은 것 같았어요. 그러니 말해 보세요. 정말로 로체스터 씨가 당신에게 청혼한 것이 사실인가요? 절 보고 웃지는 마세요. 하지만 정말 5분쯤 전에 그분이 여기 들어와 한 달 안에 선생님이 자신의 아내가 될 거라고 말한 것 같았답니다.”
“저에게도 똑같이 말씀하셨어요.” 내가 대답했다.
“정말요? 그 말을 믿나요? 그리고 청혼을 받아들였나요?”
“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그분은 자존심이 강한 분이에요. 로체스터 집안 사람들은 모두 그랬죠. 게다가 적어도 그분의 아버지는 돈을 아주 중시하셨고요. 그분 역시 늘 신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당신과 결혼하려는 건가요?”
“그분은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녀는 내 모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녀의 눈빛을 보니 내게서는 이 수수께끼를 풀 만큼 강한 매력을 찾지 못했다는 눈치였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요.” 그녀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 사실이겠지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정말 모르겠어요. 이런 경우에는 신분과 재산이 비슷한 것이 대개 바람직하거든요. 게다가 두 분은 나이도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잖아요. 그분은 당신의 아버지뻘이나 다름없어요.”
“아니에요, 페어팩스 부인! 그분은 제 아버지와는 전혀 닮지 않았어요! 저희 둘을 함께 본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은 단 한 순간도 하지 않을 거예요. 로체스터 씨는 스물다섯 살인 어떤 남자들만큼 젊어 보이고, 실제로도 그만큼 젊은 분이에요.” 나는 발끈해서 말했다.
“정말 사랑해서 당신과 결혼하려는 걸까요?” 부인이 물었다.
부인의 차갑고 의심스러운 태도에 나는 너무 마음이 상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생님 마음을 아프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선생님은 너무 젊고, 남자라는 존재를 아직 너무 잘 몰라요. 그래서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었답니다.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잖아요. 이번 일도 저는 선생님이나 제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가 드러날까 봐 정말 걱정이에요.” 페어팩스 부인이 말했다.
“왜요? 제가 괴물이기라도 한가요? 로체스터 씨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인가요?”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선생님은 아주 괜찮아요. 그리고 요즘은 훨씬 좋아졌고요. 로체스터 씨도 분명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는 늘 선생님이 그분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때로는 선생님 때문에 조금 걱정되기도 했어요. 그분이 선생님을 유난히 편애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심하라고 말해 주고 싶을 때도 있었죠. 하지만 잘못된 일이 있을 가능성조차 암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 생각은 선생님에게 충격을 주고, 어쩌면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게다가 선생님은 매우 신중하고, 정말 겸손하며 분별력 있는 사람이었기에 스스로를 잘 지킬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하지만 어젯밤에는… 집 안을 아무리 찾아도 선생님도, 로체스터 씨도 보이지 않아서 제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그러다가 밤 12시가 되어 선생님이 그분과 함께 들어오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그만하세요, 이제 그 이야기는 신경 쓰지 마세요.”
나는 조급하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
“모든 일이 잘 해결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결국에는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요. 하지만 제 말을 믿으세요. 당신은 아무리 조심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로체스터 씨와 거리를 두도록 노력하세요. 그분뿐 아니라 자신도 믿지 마세요. 그분처럼 높은 신분의 신사들은 가정 교사와 결혼하는 일이 흔하지 않답니다.”
부인이 말했다.
나는 정말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때 아델이 뛰어 들어왔다.
“저도 가게 해 주세요. 저도 밀코트에 가게 해 주세요! 로체스터 씨가 안 된다고 하세요. 새 마차에는 자리가 그렇게 많은데도요. 선생님,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해 주세요.” 아델이 졸랐다.
“그렇게 할게, 아델.”
나는 우울한 충고를 늘어놓는 페어팩스 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델과 함께 서둘러 나갔다.
마차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하인들이 마차를 현관 앞으로 끌고 오고 있었고, 로체스터 씨는 인도를 오가며 걷고 있었다. 파일럿도 그의 뒤를 따라 앞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델도 우리와 함께 가도 될까요, 로체스터 씨?”
“안 된다고 말했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지 않을 거요! 오직 당신만 데려가겠소.”
“로체스터 씨, 부탁이에요. 아델도 데려가 주세요. 그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럴 필요 없소. 그 아이가 있으면 방해가 될 테니까.”
그는 표정과 목소리 모두에서 매우 단호했다.
페어팩스 부인의 경고가 남긴 서늘함과 그녀의 의심이 찜찜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내가 품었던 희망에는 무언가 실체가 없는 듯하고, 확신할 수 없는 느낌이 스며들었다. 내가 로체스터 씨를 움직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반쯤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마차에 올라타도록 도와주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오? 얼굴에서 햇살이 모두 사라졌군. 정말 아델과 같이 가고 싶은 거요? 아델을 두고 가면 마음이 불편하오?” 그가 물었다.
“네, 로체스터 씨. 저는 아델이 함께 가는 편이 훨씬 좋아요.”
“아델! 얼른 모자 쓰고 오너라. 번개처럼 빨리 돌아오렴!”
그가 아델에게 외쳤다. 아델은 얼른 그의 말을 따랐다.
“생각해 보면, 잠깐 아침 시간을 방해받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겠지. 곧 당신의 생각과 대화,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평생 내 것으로 삼을 생각이니까.” 그가 말했다.
아델은 마차에 올라타자마자 자신을 데려가게 해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듯 내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아델을 자신의 맞은편 구석 자리로 밀어 넣었다. 아델은 그곳에서 내가 앉아 있는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는 너무 억압적이었다. 지금처럼 짜증이 난 상태의 그에게는 감히 무슨 말도 건네지 못했고, 무엇을 묻지도 못했다.
“아델을 제 쪽으로 보내 주세요. 로체스터 씨를 귀찮게 할 수도 있잖아요. 이쪽은 자리가 충분해요.” 내가 부탁했다.
그는 마치 무릎 위에 올려놓는 작은 강아지라도 넘겨주듯 아델을 내 쪽으로 건네주었다.
“그래도 나는 이 아이를 이제 학교에 보내야겠소.”
그가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고 있었다. 아델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마드모아젤(선생님) 없이 학교에 가야 하나요?”
“그래.” 그가 대답했다.
“완전히 마드모아젤 없이 말이야. 왜냐하면 나는 마드모아젤을 달나라로 데려갈 거거든. 그리고 그곳 화산 꼭대기들 사이에 있는 하얀 계곡 중 하나에서 동굴을 찾아낼 거야. 그러면 마드모아젤은 나와 함께, 오직 나와 함께 그곳에서 살게 될 거야.”
“그럼 먹을 게 없잖아요. 로체스터 씨는 마드모아젤을 굶기게 될 거예요.” 아델이 말했다.
“아침저녁으로 그녀를 위해 만나★를 모아 올 거야. 달의 평원과 언덕은 만나로 하얗게 덮여 있단다, 아델.”
“마드모아젤은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할 텐데요. 불은 어떻게 피울 거예요?”
“달의 산에서는 불이 솟아오른단다. 그녀가 추워하면 내가 그녀를 산꼭대기로 데려가서 분화구 가장자리에 눕혀 줄 거야.”
“오, 마드모아젤은 거기서 정말 힘들겠어요. 아주 불편할 거예요! 그리고 옷은요? 옷이 낡아 버리면 어떻게 새 옷을 구하죠?”
로체스터 씨는 난처한 척했다.
“흠! 아델, 네 생각은 어떠니? 방법을 생각해 내도록 머리를 좀 굴려 보렴. 흰 구름이나 분홍 구름으로 드레스를 만들면 어떨까? 그리고 무지개로는 꽤 예쁜 스카프를 만들 수도 있겠지.” 그가 말했다.
아델은 잠시 생각한 뒤 결론을 내렸다.
“마드모아젤은 지금 모습 그대로 있는 편이 훨씬 나아요. 게다가 달에서 로체스터 씨하고만 살면 지겨워질 거예요. 제가 마드모아젤이라면 로체스터 씨와 함께 가는 데 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예요.”
“선생님은 이미 동의했단다. 약속했는걸.”
“하지만 로체스터 씨는 선생님을 거기로 데려갈 수 없어요. 달로 가는 길은 없잖아요. 전부 공기뿐이고, 로체스터 씨도 선생님도 날 수 없어요.”
“아델, 저 들판을 보렴.”
우리는 이제 손필드의 문을 지나 밖으로 나와 있었다. 마차는 밀코트로 향하는 매끄러운 길 위를 가볍게 달리고 있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풍이 지나간 뒤라 먼지는 가라앉아 있었고, 양옆의 낮은 울타리와 높이 솟은 큰 나무들은 비를 맞고 되살아난 듯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아델, 저 들판에서 있었던 일이야. 약 2주 전 어느 날 저녁이었지. 네가 과수원 목초지에서 내가 건초 만드는 일을 도와주었던 바로 그날 저녁이었어. 나는 풀을 긁어모으느라 지쳐 있었기 때문에 길가의 돌계단에 앉아 쉬고 있었지. 그리고 그때 작은 책과 연필을 꺼내 오래전에 내게 닥쳤던 불행과 앞으로 찾아올 행복한 날들에 대한 소망을 쓰기 시작했어.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주 빠르게 계속 쓰고 있었지. 그런데 그때 무언가가 길을 따라 올라오더니 내게서 두 야드쯤 떨어진 곳에 멈추었어.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지. 그것은 머리에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베일을 쓴 작은 존재였지. 나는 손짓해서 내게 가까이 오라고 했고, 그것은 곧 내 무릎 앞에 섰어. 나는 그것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그것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나는 그 눈을 읽었고, 그것도 내 눈을 읽었지. 그리고 우리는 말 없는 대화를 나누었지. 그때 요정이 ‘나는 요정이며 요정의 나라(엘프랜드)에서 왔어요. 내 임무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에요. 당신은 나와 함께 평범한 세상을 떠나 외딴곳으로 가야 해요. 예를 들면, 달 같은 곳으로요.’라고 말했어. 그러면서 헤이 언덕 위로 떠오르는 초승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어. 요정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설화석고★ 동굴과 은빛 계곡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지. 나는 가고 싶다고 말했어. 하지만 네가 나에게 했던 것처럼 나에게는 날아갈 날개가 없다는 것을 그 요정에게 얘기했어. 그랬더니 요정이 ‘아,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했어. ‘여기 모든 어려움을 없애 줄 부적이 있어요.’ 하면서 예쁜 금반지를 내밀었지. ‘이 반지를 내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 주세요. 그러면 나는 당신 것이 되고, 당신은 내 것이 될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지구를 떠나 저곳에 우리만의 천국을 만들 거예요.’라고 말했지. 그 요정은 다시 달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어. 아델! 그 반지는 지금 내 바지 주머니 안에 있단다. 물론 지금은 파운드 금화인 척 변장하고 있지만 말이야. 하지만 곧 다시 반지로 바꿀 생각이야.”
“그런데 선생님이 그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저는 요정에는 관심 없어요. 로체스터 씨는 선생님을 달로 데려가겠다고 하셨잖아요?”
“선생님이 바로 그 요정이란다.”
그가 신비로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러자 나는 아델에게 그의 농담은 신경 쓰지 말라고 말했다. 아델은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로체스터 씨를 ‘진짜 거짓말쟁이’라고 하면서 그의 ‘요정 이야기’는 전혀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정 같은 건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절대로 그에게 나타나지도 않을 것이고, 반지를 주지도 않을 것이며, 달에서 함께 살자고 하지도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밀코트에서 보낸 시간은 피곤한 시간이었다. 로체스터 씨는 나를 어느 비단 가게로 데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드레스 여섯 벌을 고르라고 명령했다. 나는 그 일이 싫었다. 나중에 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지금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힘을 주어 속삭이며 계속 부탁한 끝에, 여섯 벌을 두 벌로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두 벌조차도 자신이 직접 고르겠다고 고집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시선이 화려한 옷감들을 노려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가장 눈부신 자수정 색깔의 고급 실크와, 아주 화려한 분홍색 새틴을 골랐다. 나는 다시 조용히 속삭였다.
“차라리 저에게 금으로 만든 드레스와 은으로 만든 모자를 사 주시는 편이 낫겠어요. 로체스터 씨가 고르신 옷은 저는 절대로 입지 못할 거예요.”
그는 돌처럼 고집이 셌다. 하지만 무척 힘들게 그를 설득해서 차분한 검은색 새틴과 진주빛 회색 실크로 바꾸게 했다.
“당장은 괜찮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당신을 화단처럼 반짝이는 모습으로 만들고 말겠소.” 그가 말했다.
나는 비단 가게에서 나오게 된 것이 기뻤고, 그다음에는 보석 가게에서도 나오게 되어 기뻤다. 그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사 줄수록 더욱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치 모욕을 당하는 듯한 불편함과 굴욕감 때문이었다. 우리가 다시 마차에 올라탔을 때, 나는 지치고 열이 오른 듯한 상태로 몸을 기대었다. 그때 급박한 사건들이 너무 빠르게 이어지는 바람에 완전히 잊고 있었던 일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내 삼촌 존 에어가 리드 부인에게 보낸 편지였다.
삼촌은 나를 입양하고 자신의 유산 상속자로 삼으려 했었다.
‘정말 조금이라도 내 힘으로 쓸 수 있는 재산이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할까. 로체스터 씨가 나를 인형처럼 치장하는 것을, 혹은 매일 황금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앉아 있는 두 번째 다나에★처럼 사는 것을 나는 견딜 수 없어. 집에 돌아가는 즉시 마데이라로 편지를 보내야겠어. 존 삼촌에게 내가 결혼할 예정이고, 누구와 결혼하는지 알려야 해. 언젠가 내가 로체스터 씨의 재산에 보탬이 될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지금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 좀 더 견디기 쉬울 텐데….’ 나는 생각했다.
나는 이 생각으로 조금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날 바로 그 일을 실행했다. 그 덕분에 다시 한번 내 주인이자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마주볼 용기를 냈다.
★ 만나: 성경에 나오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비한 음식
★ 설화석고: 대리석처럼 희고 매끄러우며 반투명한 돌
★ 다나에: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의 딸. 신탁에서 “다나에의 아들이 할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예언을 하자, 아버지는 이를 두려워해 다나에를 청동 방에 가두어 남자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제우스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황금빛 비의 모습으로 방 안에 들어가 다나에와 관계를 맺어 영웅 페르세우스를 낳았다.
다음 장(24-3장) 보기
교정 후기
페어팩스 부인의 놀란 얼굴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사람의 생각은 다 비슷한가 봅니다. 편견이나 고정관념까지도요.
재닛, 페어팩스 부인은 당신이 세상을 몽땅 버렸고, 그것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하셨을까?
▶ 제인, 페어팩스 부인은 당신이 사랑 때문에 세상의 평판쯤은 다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분처럼 높은 신분의 신사들은 가정 교사와 결혼하는 일이 익숙하지 않답니다.
▶ 그분처럼 높은 신분의 신사들은 가정 교사와 결혼하는 일이 흔하지 않답니다.
나는 우울한 충고를 늘어놓는 페어팩스 부인을 떠나는 것이 오히려 기뻐서, 아델과 함께 서둘러 나갔다.
▶ 나는 우울한 충고를 늘어놓는 페어팩스 부인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아델과 함께 서둘러 나갔다.
페어팩스 부인의 경고가 남긴 차가운 기운과 그녀의 의심이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 페어팩스 부인의 경고가 남긴 서늘함과 그녀의 의심이 찜찜하게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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