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시리즈 1 제인 에어 6장>
헬렌 번스
다음 날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심지에 불을 붙인 작은 등불 아래에서 옷을 입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에는 세수를 할 수 없었다. 물주전자 속의 물이 모두 얼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날 저녁부터 날씨가 바뀌어 밤새 매서운 북동풍이 침실 창문의 틈새를 휘파람 소리처럼 파고들었다. 우리는 침대 속에서도 몸을 떨었고, 세숫대야와 물병 속의 물은 모두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한 시간 반이나 이어진 기도와 성경 읽기가 끝날 무렵에는 추위 때문에 거의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마침내 아침 식사 시간이 되었다. 다행히 이날의 죽은 타지 않았다. 먹을 만했지만, 양은 너무 적었다. 내 몫은 유난히 더 적어 보였다. 두 배쯤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4반 학생으로 등록되었고, 정식으로 수업과 과제를 받았다. 그때까지 나는 로우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저 지켜보는 사람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그 속에서 직접 생활하는 학생이 된 것이다.
암기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는 모든 수업이 길고 어렵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과목이 계속 바뀌는 바람에 정신도 없었다. 그래서 오후 세 시쯤, 스미스 선생님이 길이 2야드 정도 되는 모슬린 천과 바늘, 골무 등을 내게 건네며 교실 한쪽 조용한 구석에 앉아 가장자리를 감침질하라고 했을 때는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 시간에는 대부분의 학생도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 반만은 여전히 스캐처드 선생님 의자 주위에 둘러서서 영어 역사책을 읽고 있었다. 교실은 매우 조용했기 때문에 수업 내용은 물론,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읽는지, 스캐처드 선생님이 얼마나 꾸지람과 칭찬을 하는지 모두 또렷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 수업은 잉글랜드 역사였다. 나는 그 학생들 가운데 회랑에서 만났던 소녀를 발견했다. 수업이 시작될 때만 해도 그녀는 반의 맨 앞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발음을 조금 틀렸는지, 아니면 쉼표나 마침표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는지, 갑자기 맨 끝자리로 보내졌다. 하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 않는 자리로 밀려난 뒤에도 스캐처드 선생님은 끊임없이 그 소녀만을 지적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이런 말들을 퍼부었다.
“번스!”
이곳에서는 여자아이들도 다른 학교의 남자아이들처럼 모두 이름이 아니라 성으로 불렀다.
“번스, 신발 옆면으로 서 있잖아. 당장 발끝을 바르게 해.”
“번스, 턱을 너무 앞으로 내밀고 있어. 당장 집어넣어.”
“번스, 머리를 들라고 했지. 그런 자세로 내 앞에 서 있는 건 용납하지 않겠어.”
이와 같은 꾸중이 계속 이어졌다.
한 장을 두 번 읽고 나자 스캐처드 선생님은 책을 덮고 학생들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수업 내용은 찰스 1세 시대에 관한 부분이었다. 관세와 화물세, 선박세에 관한 질문이 여러 개 나왔는데, 대부분의 학생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이 번스에게만 가면 모든 어려움이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소녀는 수업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다. 나는 스캐처드 선생님이 이제는 그녀를 칭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갑자기 소리쳤다.
“이 더럽고 지저분한 애야! 오늘 아침 손도 안 닦았구나!”
번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침묵이 이상했다.
‘왜 손도 못 닦고 세수도 못 했는지 말하지 않는 거지? 물이 얼어 있었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스미스 선생님이 실타래를 잡아 달라고 하면서 내 주의를 돌렸다. 선생님은 실을 감는 동안 가끔 내게 말을 걸었다. 예전에 학교에 다녀 본 적이 있는지, 바느질이나 홈질, 뜨개질은 할 줄 아는지 등을 물었다. 그 때문에 나는 한동안 스캐처드 선생님 쪽을 살펴볼 수 없었다.
다시 자리에 앉았을 때는 스캐처드 선생님이 어떤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는 듣지 못했지만, 번스는 곧바로 교실을 나가 책을 보관하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녀는 한쪽 끝을 끈으로 묶은 잔가지 다발을 손에 들고 돌아왔다. 불길한 느낌을 주는 그 도구를 소녀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스캐처드 선생님께 내밀었다. 그리고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았는데도 조용히 앞치마를 풀어 내렸다. 그러자 스캐처드 선생님은 그 나뭇가지 다발로 그녀의 목덜미를 열두 차례나 매섭게 내리쳤다. 번스의 눈에서는 눈물이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나는 바느질을 멈추었다. 그 광경을 보자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무력한 분노 때문에 손가락이 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스의 사색에 잠긴 얼굴에는 평소의 표정과 마찬가지로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정말 고쳐 쓸 수 없는 아이로구나!”
스캐처드 선생님이 소리쳤다.
“너의 그 지저분한 버릇은 아무리 벌을 줘도 고쳐지지 않는구나. 회초리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번스는 순순히 따랐다.
번스가 책 보관실에서 나오는 모습을 나는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있었고, 야윈 뺨에는 눈물 한 방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저녁 놀이 시간은 로우드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오후 다섯 시에 먹은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은 배를 채워 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기운은 조금 되찾게 해 주었다. 하루 종일 이어지던 엄격한 규율도 그 시간만큼은 다소 느슨해졌다.
교실은 아침보다 훨씬 따뜻했다. 아직 촛불을 켜지 않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대신 난롯불을 조금 더 세게 피워 두었던 것이다. 황혼은 붉게 물들고 아이들은 소란스러운, 이 떠들썩한 분위기가 나에게 자유를 맛보게 해주었다.
스캐처드 선생님이 번스를 회초리로 때리는 모습을 본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교실의 긴 의자와 책상 사이, 웃고 떠드는 아이들 틈을 혼자 돌아다녔다. 함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창가를 지나칠 때면 가끔 블라인드를 들어 올려 밖을 내다보았다. 눈은 거세게 내리고 있었고, 벌써 창 아래쪽에는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창문에 귀를 가까이 대자 교실 안의 소란스러움 너머로 바깥에서 울부짖는 바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내가 따뜻한 가정과 다정한 부모님 곁에서 살다가 이곳에 왔다면 바로 이런 시간이 가장 그리움이 사무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바람 소리는 내 마음을 슬프게 했을 것이고, 이 낯설고 어수선한 분위기는 내 평안을 깨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달랐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이 이상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무모하고 들뜬 마음으로 나는 바람이 더욱 사납게 울부짖기를, 주변이 더욱 짙은 어둠에 잠기기를, 아이들의 소란이 더욱 커져 아예 아우성으로 변하기를 바랐다.
나는 긴 의자를 뛰어넘고 책상 밑을 기어 어떤 벽난로 앞으로 갔다. 높은 쇠 난간 곁에 무릎을 꿇고 있는 번스가 보였다. 그녀는 한 권의 책에 깊이 빠져 있었다. 주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전혀 모르는 듯, 희미하게 타오르는 숯불빛에 의지해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아직도 《라셀라스》를 읽고 있어?”
나는 그녀의 뒤에서 물었다.
“응. 방금 다 읽었어.”
그녀가 대답했다. 그리고 정말 5분쯤 뒤 그녀는 책을 덮었다. 나는 속으로 기뻤다.
‘이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구나.’ 생각하고 그녀 옆 바닥에 앉았다.
“번스 말고 이름은 뭐야?”
“헬렌.”
“여기서 먼 곳에서 왔어?”
“여기보다 훨씬 북쪽이야. 스코틀랜드 경계 가까운 곳에서 왔어.”
“언젠가는 다시 돌아갈 거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미래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잖아.”
“로우드를 떠나고 싶지 않아?”
“아니. 왜 떠나고 싶겠어? 난 교육을 받기 위해 이곳에 왔어. 그 목적을 이루기 전에는 떠나 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
“하지만 스캐처드 선생님은 너에게 너무 심하잖아.”
“심하다고? 전혀. 그분은 엄격하실 뿐이야. 내 단점을 싫어하시는 거지.”
“내가 네 입장이었다면 선생님을 싫어했을 거야. 분명히 맞섰을 거고. 회초리로 때리려 했다면 빼앗아서 눈앞에서 두 동강 내 버렸을 거야.”
“아마 너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을 거야. 설령 그랬다면 브로클허스트 씨가 널 학교에서 쫓아내겠지. 그러면 너를 돌봐 주는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이 될 거야. 잠깐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편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게다가 성경에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갚으라고 가르치잖아.”
헬렌은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회초리를 맞고 교실 한가운데서 벌을 서는 건 너무 창피한 일이잖아. 게다가 너는 나보다 훨씬 큰데도. 난 너보다 훨씬 어려도 절대 그렇게는 못 견딜 것 같아.”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견디는 것이 우리의 의무야. 운명으로 감당해야 하는 일을 두고 ‘난 못 견디겠어.’라고 말하는 건 약하고 어리석은 일이란다.”
헬렌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놀라운 마음으로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녀가 말하는 인내의 도리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자신을 벌한 사람에게조차 너그러움을 보이는 그녀의 태도는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헬렌 번스는 내가 볼 수 없는 어떤 빛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녀가 옳고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성경 속 총독 벨릭스★가 사도 바울의 말을 듣고도 “나중에 다시 부르겠다.”며 미뤘던 것처럼, 나 역시 그 문제를 훗날 생각하기로 미루어 두었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
“헬렌, 아까 네게도 단점이 있다고 했잖아. 그게 뭔데? 내 눈에는 넌 정말 좋은 아이처럼만 보이는데.”
“그럼 나한테 한 가지를 배워.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법을 말이야. 스캐처드 선생님 말씀처럼 나는 정말 칠칠맞지 못하고 정리정돈을 못 하는 아이야. 물건을 제자리에 잘 두지도 못하고, 두더라도 그대로 유지하지도 못해. 늘 덜렁거리고, 규칙도 자주 잊어버려. 공부해야 할 시간에도 책을 읽고, 무슨 일이든 체계적으로 하는 법이 없어. 그리고 가끔은 너처럼 ‘이렇게 규칙에 맞춰 사는 건 정말 못 견디겠어.’ 하고 말하기도 하지. 이런 점들은 모두 스캐처드 선생님을 화나게 해. 그분은 원래 아주 깔끔하고, 시간을 잘 지키고, 무엇이든 정확한 분이니까.”
“게다가 성격도 까다롭고 무섭잖아.”
내가 말하자 헬렌 번스는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템플 선생님도 스캐처드 선생님처럼 너에게 엄격해?”
내가 템플 선생님의 이름을 꺼내자 헬렌의 진지한 얼굴 위로 부드러운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템플 선생님은 정말 선하신 분이야. 학교에서 가장 말썽 많은 아이에게조차 엄하게 대하는 걸 힘들어하셔. 선생님도 내 잘못을 보시지만, 언제나 부드럽게 타일러 주셔. 그리고 내가 조금이라도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하면 아낌없이 칭찬해 주시지. 그런데 내 성격이 얼마나 부족한지 보여 주는 가장 큰 증거는, 그렇게 온화하고 이성적인 충고조차 내 잘못을 고치게 만들지는 못한다는 거야. 또 선생님의 칭찬은 정말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지만, 그것만으로는 늘 꾸준히 조심하고 성실하게 행동하도록 나를 이끌지는 못해.”
“이상하네. 조심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나는 말했다.
“너에게는 전혀 어렵지 않을 거야. 오늘 아침 수업 시간에 널 봤거든. 넌 정말 집중해서 듣고 있었어. 밀러 선생님이 설명하고 질문하는 동안 네 마음은 한 번도 다른 데로 가지 않았지. 하지만 난 달라. 내 생각은 늘 이리저리 떠돌아다녀. 스캐처드 선생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어느새 선생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돼. 그러면 나는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태에 빠져. 가끔은 내가 노섬벌랜드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 우리 집 근처 딥든을 흐르는 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거든. 그러다가 내 차례가 되어 대답해야 할 때가 되면 누군가 나를 깨워야 해. 상상 속 시냇물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느라 수업은 하나도 듣지 못했으니까, 당연히 대답도 할 수 없는 거지.”
“그런데 오늘 오후에는 정말 잘 대답했잖아.”
“그건 우연이었어. 오늘 읽은 내용이 내 흥미를 끌었거든. 오늘 오후에는 딥든을 꿈꾸는 대신, 올바르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이 어떻게 찰스 1세처럼 때로는 그렇게 불공평하고 어리석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이 왕권만을 고집하며 더 멀리 내다보지 못했다는 게 참 안타까웠어. 만약 조금만 더 앞을 내다보고, 사람들이 말하는 시대정신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도 난 찰스왕을 좋아해, 존경하기도 하고. 불쌍하게 처형당한 그 왕을 진심으로 안타깝게 생각해. 정말 나쁜 사람들은 그의 적들이었어. 그들은 흘려서는 안 될 피를 흘렸잖아. 도대체 어떻게 감히 왕을 죽일 수 있었을까?”
이쯤 되자 헬렌은 거의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자기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찰스 1세에 관한 역사 지식이 거의 없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그녀의 생각을 내 수준으로 끌어왔다.
“그럼 템플 선생님 수업 시간에도 그렇게 딴생각을 해?”
“아니. 적어도 그런 일은 거의 없어. 템플 선생님은 늘 내가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거든. 선생님의 말씀은 내게 아주 아름답게 들리고, 가르쳐 주시는 내용도 대부분 내가 알고 싶어 하던 것들이야.”
“그럼 템플 선생님 앞에서는 착한 학생이네?”
“그렇다고 봐야겠네. 특별히 애쓰는 건 아니야. 그냥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이끄는 대로 따를 뿐이야.”
“아니, 그건 충분히 훌륭한 거야. 너는 너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해 주잖아. 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만약 사람들이 잔인하고 부당한 사람에게도 언제나 친절하고 순종만 한다면, 나쁜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만 살게 될 거야.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테고, 그러면 절대 달라지지 않을 거야. 오히려 더 나빠지겠지. 누군가 이유도 없이 우리를 때린다면 더 세게 되갚아 줘야 해.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할 만큼 말이야.”
헬렌은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조금 더 자라면 생각이 달라지길 바라. 넌 아직 세상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하지만 난 이렇게 느껴, 헬렌. 아무리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려고 애써도 끝까지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나도 미워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부당하게 벌을 주는 사람에게는 맞서야 해. 그것은,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사랑하고 벌을 받아 마땅할 때 순순히 벌을 받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야.”
“그런 생각은 이교도나 미개한 부족들의 신념이지. 하지만 그리스도인과 문명 사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왜? 이해가 안 돼.”
“미움을 가장 잘 이기는 것은 폭력이 아니고, 상처를 가장 확실하게 치유하는 것도 복수가 아니야.”
“그럼 뭔데?”
“신약성경을 읽어 봐.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말씀하셨고 어떻게 행동하셨는지를 살펴봐. 그분의 말씀을 삶의 규범으로 삼고, 그분의 행동을 본보기로 삼아야 해.”
“그분은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며 모욕하는 자에게 선을 행하라.’고 하셨지.”
“그렇다면 나는 리드 부인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건 도저히 할 수 없어. 그리고 그 아들 존을 축복해야 한다니, 그건 더더욱 불가능해.”
이번에는 헬렌 번스가 내게 설명해 달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내 방식대로 지금까지 겪어 온 고통과 원한을 모두 털어놓았다. 흥분하면 신랄하고 거칠어지는 나는, 조금도 꾸미거나 누그러뜨리지 않고 느끼는 그대로를 말했다. 헬렌은 끝까지 차분히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그녀가 무언가 의견을 말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드 부인은 인정머리 없고 나쁜 사람이 아니야?”
나는 조급하게 물었다.
“분명 너에게 친절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건 부인이 너의 성격을 싫어하기 때문이야. 마치 스캐처드 선생님이 내 성격을 싫어하는 것처럼. 그런데 너는 부인이 너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구나. 부인의 부당한 말과 행동이 네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알겠어. 나는 누군가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그런 식으로 오래 마음에 새겨 두지는 않아. 네가 그곳에서의 가혹함과 그것 때문에 생긴 격렬한 감정을 함께 잊으려고 노력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지지 않을까? 미움만 품고 살거나 자신이 당한 억울함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보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
우리는 누구나 완벽하지 않아. 언젠가 이 썩어 없어질 육신을 벗어던질 때가 올 거야. 그때가 되면 비천함과 죄도 이 무거운 육체와 함께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오직 영혼의 불꽃만 남을 거야. 창조주께서 피조물에게 생명을 불어넣으실 때처럼 순수한 빛과 사유의 원리 말이야. 그 영혼은 왔던 곳으로 돌아갈 거야. 어쩌면 인간보다 더 높은 존재에게로 돌아가거나, 영광스러운 여러 단계를 거쳐 인간의 영혼에서 천사의 빛나는 존재로 승화될지도 몰라. 설마 창조주가 그 반대로 인간에서 악마로 타락하도록 내버려 두시겠어? 아니야. 나는 그렇게 믿지 않아.
나는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어. 아무도 내게 가르쳐 준 적 없고, 그래서 좀처럼 입 밖에 내지도 않지만, 나는 그 믿음을 사랑하고 굳게 붙들고 있어. 그 믿음은 모든 존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야. 또 영원을 공포와 끝없는 심연이 아니라 평안한 안식처이자 위대한 집으로 만들어 주니까. 그리고 그런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 죄를 지은 사람과 그의 죄를 분명히 구별할 수 있어. 죄는 진심으로 미워하면서도 죄인은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지. 그런 믿음 덕분에 복수심이 내 마음을 갉아먹지 않고, 타락한 모습을 보아도 절망하지 않으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완전히 짓눌리지 않아. 나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한 채 마지막을 바라보며 살아가.”
언제나 약간 숙여져 있던 헬렌의 머리는 그 말을 마치자 더욱 깊이 아래로 기울어졌다. 헬렌의 표정을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나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 속에 잠기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허락되지 않았다. 곧바로 몸집이 크고 거친 한 반장이 다가와 컴벌랜드 지방 특유의 억센 억양으로 소리쳤다.
“헬렌 번스! 당장 서랍 정리하고 바느질감도 잘 개지 않으면 스캐처드 선생님께 와서 보시라고 이를 거야!”
명상에 잠겨 있던 헬렌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러나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반장의 지시에 따랐다.
★ 벨릭스: 유대 지방을 다시리던 로마 총독으로, 특히 사도 바울의 재판과 관련하여 잘 알려진 인물이다. 사도 바울이 체포되어 왔을 때 천부장 루시아가 오면 판결하겠다며 즉시 판결을 내리지 않고 연기했다.
교정 후기
헬렌 번스는 어린데도 매우 어른스럽습니다. 지나치다고 생각들 정도로요. 부당한 대우에 반항하지 않고 종교적 힘으로 삭이고 승화해내는 힘이 대단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차라리 제인 에어처럼 힘들면 힘들다고 대드는 것이 현실에서는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물론 종교적 깊이가 대단하신 분들은 또 다르게 말씀하실 수도 있겠지만요.
재검토하며 다시 수정한 사항입니다. 자꾸 이런 게 보이네요.
북동풍이 침실 창문의 틈새를 휘파람처럼 파고들었다.
▶ 북동풍이 침실 창문의 틈새를 휘파람을 불며 파고 들었다.
아마도 휘파람소리처럼 들리는 바람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여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오늘 아침 손톱도 안 닦았구나!
▶ 오늘 아침 손도 안 닦았구나!
원문에는 nails라도 되어 있지만, 손톱을 닦는 것이 손을 닦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손으로 바꾸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