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시리즈 1 제인 에어 8장>
템플 선생님
30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섯 시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수업은 끝났고, 학생들은 모두 저녁 차를 마시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나는 용기를 내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바깥은 이미 짙은 황혼에 잠겨 있었다. 나는 구석으로 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까지 나를 버티게 해 주었던 주문 같은 힘이 풀리고 이내 슬픔이 나를 덮쳤다. 그 슬픔은 너무도 거대하여 나는 바닥에 엎어졌다. 그제야 꾸역꾸역 눈물이 솟아났다. 헬렌 번스도, 나를 위로해 주는 그 누구도 없었다. 홀로 남겨진 나는 완전한 절망에 빠졌고, 눈물은 마룻바닥을 흠뻑 적셨다.
나는 로우드 학교에서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많은 친구를 사귀고, 존중과 사랑도 받고 싶었다. 실제로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바로 그날 아침에는 반에서 가장 앞자리에 오를 만큼 성적이 올라 밀러 선생님은 나를 크게 칭찬했다. 템플 선생님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두 달만 더 지금처럼 노력하면 그림도 가르쳐 주고 프랑스어도 배우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게다가 친구들과도 잘 지냈다. 또래 아이들은 나를 동등한 친구로 대해 주었고, 누구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다시 짓밟히고 꺾인 처지가 되었다. 과연 다시 일어설 수 있기나 할까?
“ 절대로 못 할 거야! ”
이런 생각이 들자 차라리 죽고만 싶었다. 흐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심정을 토해내고 있을 때 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헬렌 번스였다. 꺼져 가는 난롯불이 길고 텅 빈 방을 걸어오는 헬렌의 모습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헬렌은 내 몫의 커피와 빵을 가져왔다.
“자, 뭐라도 좀 먹어.”
나는 그것들을 밀어냈다. 지금 상태에서는 빵 한 조각이나 커피 한 모금만 삼켜도 목이 막혀 버릴 것만 같았다. 헬렌은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도저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어 계속 큰 소리로 울었다.
헬렌은 내 옆 바닥에 앉아 두 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그 위에 머리를 갖다 놓았다. 그리고 마치 인디언처럼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나였다.
“헬렌, 왜 모두가 거짓말쟁이라고 믿는 내 곁에 있는 거야?”
“모두라고, 제인? 너를 그렇게 부르는 걸 들은 사람은 겨우 80명뿐이야. 그런데 세상에는 수억 명의 사람이 있어.”
“그 수억 명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아는 80명이 모두 나를 경멸하는데.”
“제인, 그건 오해야. 아마 이 학교에서 너를 경멸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야. 오히려 많은 친구들이 너를 무척 불쌍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확실해.”
“브로클허스트 씨가 그렇게 말했는데도?”
“브로클허스트 씨는 신이 아니야. 게다가 사람들에게 존경받거나 사랑받는 사람도 아니지. 이 학교에서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그 사람은 호감을 사는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까. 만약 그 사람이 너를 특별히 총애했다면 오히려 너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적이 생겼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달라. 대부분의 사람은 용기만 있다면 너를 위로하고 싶어 할 거야.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하루이틀 정도는 너를 차갑게 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따뜻한 감정이 숨어 있어. 네가 계속 성실하게 행동한다면 잠시 억눌려 있던 그 마음을 머지않아 분명하게 드러낼 거야. 게다가, 제인….”
헬렌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무슨 말인데, 헬렌?”
나는 헬렌의 손을 잡았다. 헬렌은 차가운 내 손가락을 따뜻하게 해 주려고 부드럽게 문질러 주며 말을 이었다.
“설령 온 세상이 너를 미워하고 모두가 너를 악한 사람이라고 믿는다 해도, 네 양심이 너를 옳다고 인정하고 죄가 없다고 말해 준다면 너는 결코 친구가 없는 사람이 아니야.”
“아니, 나도 나 자신을 좋게 생각해야 한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외롭고 미움받는 건 견딜 수 없어, 헬렌. 생각해 봐. 만약 너나 템플 선생님, 또는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얻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팔뼈 하나쯤 부러뜨리는 고통도 견딜 수 있어. 황소에게 들이받혀도 좋고, 발길질하는 말 발굽에 걷어차여도 괜찮아.”
“쉿, 제인! 너는 사람들의 사랑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구나. 너는 너무 충동적이고, 감정이 너무 격해. 너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불어넣으신 절대자의 손길은, 연약한 너나 나약한 인간들 외에도 너를 위해 다른 것들을 마련해 두셨어. 이 지구 외에도, 인간 세상 말고도 보이지 않는 세계, 영혼들의 나라가 있어. 그 세계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지. 그 영들은 우리를 지키라는 사명을 받아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 설령 우리가 고통과 수치 속에서 죽어 간다 해도, 사방에서 멸시를 받고 증오에 짓눌린다 해도, 천사들은 우리의 고통을 보고 우리의 결백을 알아줄 거야. 물론 우리가 정말 결백하다면 말이지. 그리고 나는 브로클허스트 씨가 리드 부인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 그 비난에 대해서는 네가 결백하다는 것을 알아. 너의 뜨거운 눈빛과 맑은 이마에서 진실한 마음을 읽을 수 있어.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만을 기다리셨다가 우리에게 완전한 상을 내려 주실 거야. 그런데도 절망에 짓눌려 쓰러질 거니? 삶은 너무도 짧고, 죽음은 행복과 영광으로 들어가는 너무도 확실한 문인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헬렌은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지만, 헬렌이 가져다준 그 평온함 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슬픔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헬렌이 말을 마친 뒤 숨을 조금 가쁘게 쉬며 짧게 기침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잠시나마 내 슬픔을 잊고 막연한 걱정에 사로잡혔다. 헬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헬렌도 나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고, 우리는 말없이 함께 앉아 쉬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한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하늘을 뒤덮고 있던 먹구름을 걷어내 달이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창가로 쏟아져 들어온 달빛은 우리와 다가오는 사람을 환히 비추었고, 우리는 그 사람이 템플 선생님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보았다.
“제인 에어, 너를 찾았단다.”
템플 선생님이 말했다.
“내 방으로 함께 가자. 헬렌 번스도 같이 가자꾸나.”
우리는 선생님을 따라갔다. 복잡하게 이어진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 안에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였다.
템플 선생님은 벽난로 한쪽에 놓인 낮은 안락의자에 헬렌 번스를 앉혔다. 선생님도 다른 의자에 앉은 뒤 나를 곁으로 불러 세웠다.
“이제 좀 진정됐니?”
선생님은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다시 물었다.
“울 만큼 다 울었니?”
“아마 영영 다 울지는 못할 것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는 억울한 누명을 썼어요. 그런데 이제 선생님도, 다른 모든 분도 저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실 테니까요.”
“우리는 네가 보여주는 모습 그대로 판단할 거야. 앞으로도 착한 아이답게 행동한다면 우리 모두는 그렇게 믿을 거야.”
“정말 그럴까요, 템플 선생님?”
“그럼.”
선생님은 내 어깨를 다정히 감싸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브로클허스트 씨가 너의 후견인이라고 말한 그 부인은 누구니?”
“리드 부인이에요. 돌아가신 제 외삼촌의 아내예요. 외삼촌이 돌아가시면서 저를 그분에게 맡기셨어요.”
“그렇다면 그분이 원해서 너를 입양한 것은 아니었구나?”
“네, 선생님. 그분은 저를 맡게 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하인들에게 여러 번 들은 이야기로는, 외삼촌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리드 부인에게 저를 끝까지 돌보겠다는 약속을 받으셨대요.”
“좋아, 제인. 너도 알다시피, 아니 내가 알려 주마.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혐의를 받으면 언제나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준단다. 너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을 받았으니 이제 나에게 네 입장에서 최대한 사실대로 설명해 보렴. 기억나는 사실만 말하고, 없는 이야기를 덧붙이지도 부풀리지도 말고.”
나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최대한 침착하고, 최대한 정확하게 말하겠다고.
무슨 말을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몇 분 동안 차분히 생각한 뒤, 나는 내 슬픈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주었다. 감정이 소진되어 그 이야기를 할 때 내 말투는 평소보다 훨씬 차분했다. 또한 원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는 헬렌의 충고가 있었기에 평소와 달리 분노와 독설을 거의 담지 않았다. 그렇게 절제되고 담담하게 이야기하니 오히려 더욱 믿음직스럽게 들렸다. 이야기를 이어 갈수록 템플 선생님이 내 말을 온전히 믿고 계신다는 것을 나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가 발작을 일으켰을 때 찾아왔던 약제사 로이드 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게 되었다. 나는 그 끔찍했던 붉은 방 사건을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그 일을 이야기할 때면 내 감정은 언제나 걷잡을 수 없이 격해지곤 했다. 리드 부인이 용서를 빌며 애원하는 나를 냉정하게 뿌리치고, 다시 한 번 그 어둡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방에 가두었을 때의 그 공포, 내 심장을 움켜쥐었던 그 경련 같은 고통은, 시간이 흘러도 기억 속에서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모두 마치자 템플 선생님은 잠시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로이드 씨를 조금 알고 있단다. 그분께 편지를 써 보마. 그분의 이야기와 네 말이 일치한다면, 너는 모든 사람 앞에서 누명을 벗게 될 거야. 하지만 제인,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너는 이미 결백하단다.”
선생님은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계속 나를 곁에 서 있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무척 행복했다. 선생님의 얼굴과 옷차림, 단정한 장신구 몇 점, 하얗고 넓은 이마, 윤기 나는 곱슬머리, 빛나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기뻤다.
선생님은 이어 헬렌 번스를 향해 말씀하셨다.
“헬렌, 오늘 저녁은 어떠니? 오늘은 기침을 많이 했니?”
“어제보다는 조금 덜 한 것 같아요, 선생님.”
“가슴 통증은?”
“조금 나아졌어요.”
템플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헬렌의 손을 잡고 맥을 짚어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의자에 앉는 순간 아주 낮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은 몇 분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은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너희 둘은 내 손님이란다. 손님답게 대접해야겠구나.”
선생님이 벨을 울리자 곧 하녀가 들어왔다.
“바버라, 나는 아직 차를 마시지 않았어. 차 쟁반을 가져오고, 이 두 숙녀의 찻잔도 함께 준비해 주렴.”
곧 차 쟁반이 들어왔다. 벽난로 곁의 작은 둥근 탁자 위에 놓인 고운 자기 찻잔과 반짝이는 찻주전자는 내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의 향기와 갓 구운 토스트 냄새는 또 얼마나 향기로웠던가!
하지만 곧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배가 고파지기 시작한 참이었는데, 토스트가 조금밖에 없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템플 선생님도 그것을 알아차렸다.
“바버라, 빵과 버터를 조금 더 가져올 수 없겠니? 셋이 먹기에는 부족하구나.”
바버라는 밖으로 나갔다가 곧 돌아왔다.
“선생님, 하든 부인께서 평소 분량대로 이미 보내셨다고 하십니다.”
참고로 하든 부인은 이 학교의 생활 관리인이었다. 부인은 브로클허스트 씨와 꼭 닮은 사람이었는데, 고래수염처럼 단단한 심지와 냉혹한 쇠붙이를 반씩 섞어 만든 사람 같았다.
“그래, 알겠다.”
템플 선생님은 담담히 대답했다.
“그럼 어쩔 수 없이 있는 것으로 먹어야겠구나.”
바버라가 나가자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행히도 오늘만큼은 부족한 것을 내가 채워 줄 수 있단다.”
선생님은 헬렌과 나를 탁자로 불러 각각에게 차 한 잔과 아주 얇지만 맛있는 토스트 한 조각씩을 내주었다. 그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의 자물쇠를 열고 종이에 싸인 꾸러미 하나를 꺼냈다. 종이를 풀자 제법 큼직한 씨앗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원래는 이걸 조금씩 잘라 너희가 가져가도록 주려고 했단다. 하지만 토스트가 너무 적으니 지금 먹는 게 좋겠구나.”
그러시고는 조금도 아끼지 않고 넉넉한 손길로 케이크를 썰어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마치 신들의 음식인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맛보는 듯한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그 만찬에서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는 진심으로 흐뭇해하시는 템플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였다. 선생님은 아낌없이 내어준 맛있는 음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맛있게 먹는 우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차를 다 마시고 쟁반을 치운 뒤, 템플 선생님은 다시 우리를 벽난로 앞으로 불렀다. 우리는 선생님을 가운데 두고 양옆에 앉았다. 그리고 선생님과 헬렌 사이에 오간 대화를 듣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는 참으로 큰 특권이었다.
템플 선생님은 언제나 평온한 분위기를 풍겼고, 몸가짐에는 위엄이 있었으며, 말씀은 세련되고 품위가 넘쳤다. 그래서 선생님 앞에서는 지나치게 열정적이거나 흥분하거나 조급한 태도를 보일 수가 없었다. 선생님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고, 그 감정이 기쁨마저도 절제하게 만들었다. 그날 밤의 나 역시 그런 마음이었다.
그러나 헬렌 번스는 달랐다. 나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는 헬렌을 보며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따뜻한 저녁 식사와 활활 타오르는 벽난로, 사랑하는 선생님의 다정함과 친절 때문이었을까,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헬렌의 특별한 정신세계가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힘을 일깨운 것 같았다. 그 힘은 서서히 깨어나 타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 힘은 그녀의 두 뺨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헬렌의 얼굴은 언제나 창백하고 핏기가 없었는데, 그날 밤에는 두 뺨이 환하고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힘은 그녀의 눈동자 속에서도 빛났다. 갑자기 생기를 띤 그 눈은 템플 선생님의 눈보다도 더욱 특별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그 아름다움은 눈동자 색이나 긴 속눈썹, 잘 다듬어진 눈썹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의미와 생동감,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광채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이었다. 마침내 헬렌의 영혼은 입술 위에 머물렀고, 어디에서 솟아나는지 알 수 없는 말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열네 살 소녀의 마음이 그토록 순수하고 충만하며 뜨거운 웅변을 품을 만큼 넓고 강할 수 있을까?
잊을 수 없는 그날 밤, 헬렌의 말이 바로 그러했다.
헬렌의 영혼은, 어떤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다 이루지 못할 삶을,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모두 살아내려고 서둘러 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래전의 나라들과 지나간 시대들, 머나먼 이국의 풍경들, 이미 밝혀졌거나 아직 추측만 하고 있는 자연의 신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 책 이야기도 했다. 두 사람이 읽은 책이 얼마나 많던지!
그들의 지식은 또 얼마나 풍부했던가!
게다가 선생님과 헬렌은 프랑스의 작가들과 프랑스 이름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내 놀라움이 절정에 이른 것은 템플 선생님이 헬렌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였다.
“아버지가 가르쳐 주신 라틴어를 틈틈이 복습하니?”
그리고 선생님은 선반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헬렌에게 주며 베르길리우스★의 한 페이지를 읽고 해석해 보라고 했다. 헬렌은 곧바로 그대로 했다. 헬렌이 라틴어 원문을 또렷하게 읽어 내려갈 때마다 내 마음속 존경심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헬렌이 겨우 다 읽었을 즈음, 취침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더 이상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템플 선생님은 우리 둘을 모두 끌어안으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축복하시길 바란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그러나 선생님은 나보다 헬렌을 조금 더 오래 안고 있었다. 헬렌을 놓아줄 때 더 애틋해했다. 그리고 방을 나설 때도 헬렌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헬렌을 위해 다시 한 번 슬픈 한숨을 내쉬었고, 뺨에 맺힌 눈물을 조용히 닦아냈다.
침실에 도착하니 스캐처드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서랍을 검사하고 있었는데, 마침 헬렌 번스의 서랍을 꺼내 놓고 검사하는 중이었다. 우리는 들어서자마자 벼락 같은 꾸중을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단정하지 못하게 접어 둔 옷가지 여섯 개를 어깨에 핀으로 꽂아서 달고 다녀야 한다는 벌도 받았다.
헬렌은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정말 엉망이었어. 정리하려고 했는데… 그만 잊어버렸어.”
다음 날 아침, 스캐처드 선생님은 두꺼운 종이판에 ‘지저분한 아이’라는 글씨를 큼직하게 써서 마치 부적처럼 헬렌의 넓고 온화하며 총명한 이마에 둘러매었다. 헬렌은 저녁이 될 때까지 그것을 묵묵히 달고 있었다. 원망도 하지 않고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자신이 받아야 할 마땅한 벌이라고 여겼다.
오후 수업이 끝난 뒤 스캐처드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나는 곧장 헬렌에게 달려갔다. 나는 그 종이판을 힘껏 떼어 내어 불 속에 던져 버렸다. 헬렌은 결코 품지 않았을 분노가 하루 종일 내 가슴속에서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굵고 뜨거운 눈물이 끊임없이 내 뺨을 타고 흘렀다. 헬렌이 그렇게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이, 내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큰 아픔이었다.
이 사건이 있은 지 약 일주일 뒤, 로이드 씨에게 편지를 보냈던 템플 선생님은 마침내 답장을 받았다. 그 답장에는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템플 선생님은 전교생을 모두 모아 놓고 이렇게 발표했다.
“브로클허스트 씨가 제인 에어에게 몰아세운 일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제인은 억울하게 그런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선생님들은 차례로 내게 다가와 악수를 하고 입을 맞추어 주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기쁨이 담긴 작은 탄성이 잔잔하게 퍼져 나갔다.
나는 무거운 짐을 덜어내고 그날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부지런히 노력했고, 그 성과는 노력한 만큼 따라왔다.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력도 꾸준한 연습 덕분에 점점 향상되었다. 공부를 계속할수록 머리도 더욱 명석해졌다. 몇 주가 지나자 나는 상급반으로 진급했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프랑스어와 그림을 배우게 되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상상 속에서 차려 먹곤 하던 바르메사이드의 만찬★도 떠올리지 않았다. 평소라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구운 감자나 하얀 빵, 갓 짜낸 우유를 마음속으로 그려 보며 허기를 달랬을 텐데, 그날 밤에는 어둠 속에 떠오르는 이상적인 그림들을 감상하며 마음껏 행복에 젖었다. 그 그림들은 모두 내 손으로 직접 그린 작품들이었다. 연필로 자유롭게 그려 낸 집과 나무들, 그림 같은 바위와 폐허, 카위프★의 풍경화에 나올 법한 소 떼, 아직 피어나지 않은 장미 위를 맴도는 나비들의 아름다운 모습, 잘 익은 체리를 쪼아 먹는 새들, 어린 담쟁이덩굴에 둘러싸인 굴뚝새 둥지와 그 안의 진주 같은 알들….
나는 그런 그림들을 마음속으로 하나하나 감상했다.
또 그날 피에로 선생님이 보여 준 짧은 프랑스어 이야기를 언젠가는 막힘없이 술술 번역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상상 속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다.
솔로몬의 말은 참으로 옳다.
“사랑이 있는 곳의 나물 한 그릇이, 미움이 함께하는 살진 소고기보다 낫다.”
아무리 궁핍한 생활이 따르는 로우드 학교라 할지라도 매일 풍족했던 게이츠헤드와 결코 바꾸고 싶지 않았다.
★ 베르길리우스: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최고의 시인으로, 서양 문학사에서 호메로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시인으로 평가받는다.
★ 바르메사이드의 만찬: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음식을 상상으로 즐기는 허황된 잔치, 또는 헛된 희망으로 배를 채우는 일을 뜻하는 관용적 표현. 《천일야화》에 나오는 바르메사이드라는 부자 귀족이 거지를 초대해 놓고 음식은 내놓지 않고 말로만 음식을 차려준 것에서 유래되었다.
★ 카위프: 네덜란드의 풍경 화가
교정 후기
템플 선생님 같은 사람을 인생에서 단 한 사람만 만나도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 사람을 등대 삼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제인 에어는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사건이 있은지 일주일쯤 뒤, 템플 선생님은 로이드 씨에게 편지를 보냈고, 그의 답장을 받았다. 그의 답변을 보니 그가 한 말은 내 이야기가 사실임을 뒷받침해주는 것이었다. 학생 전체를 모은 템플 선생님은 제인 에어에 대한 혐의에 대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모든 비난에서 자신이 완전히 면제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어 기쁘다고 발표했다.
▶ 이 사건이 있은 지 약 일주일 뒤, 로이드 씨에게 편지를 보냈던 템플 선생님은 마침내 답장을 받았다. 그 답장에는 내가 들려준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템플 선생님은 전교생을 모두 모아 놓고 이렇게 발표했다.
“브로클허스트 씨가 제인 에어에게 몰아세운 일들을 조사한 결과,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제인은 억울하게 그런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알리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 원문에는 설명하는 글로 되어 있으나 중요한 내용을 대화문으로 작성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