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시리즈 1 제인 에어 7장>
시련의 시작
로우드에서 보낸 첫 학기는 내게 한 시대처럼 길게 느껴졌다.
물론 황금시대는 아니었다. 새로운 규칙과 낯선 일상에 적응하기 위해 힘겹게 애써야 했던 고된 시간이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나를 더 괴롭혔다. 물론 육체적인 고생 또한 힘들었다.
1월과 2월, 그리고 3월의 며칠 동안 눈이 깊이 쌓였고, 눈이 녹은 뒤에는 길이 거의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질척거렸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갈 때를 제외하고는 정원 담장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좁은 정원 안에서조차 우리는 매일 한 시간씩 반드시 바깥 공기를 쐬어야 했다.
옷은 혹독한 추위를 막아 주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장화도 없었기 때문에 눈이 신발 속으로 스며들어 녹아버리곤 했다. 장갑도 없어서 손은 감각을 잃을 만큼 얼어붙었고, 동상으로 붓고 갈라졌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발이 벌겋게 부어오르던 저녁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가렵고 쓰라렸던 고통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리고 아침이면 부어오르고 헐어 굳어버린 발가락을 신발 속에 억지로 밀어 넣어야 했던 고통도 잊을 수 없다.
음식이 너무 적은 것도 매우 괴로웠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의 왕성한 식욕을 생각하면 우리가 받는 음식은 연약한 몸을 겨우 유지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영양 부족은 특히 어린 학생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 주었다. 늘 굶주려 있던 나이 많은 상급생들은 기회만 되면 어린아이들을 달래거나 협박해서 음식을 빼앗아 먹었다.
나 역시 저녁 차 시간에 나오는 귀한 갈색 빵 한 조각을 두 사람과 나누어 먹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다른 아이에게는 내 커피 반 잔을 내어주곤 했다. 그리고 남은 것을 삼킬 때면 배고픔 때문에 흘러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겨울의 일요일은 특히 더 음울했다. 우리는 후원자인 브로클허스트 씨가 설교를 맡은 브로클브리지 교회까지 두 마일을 걸어가야 했다. 추위에 떨며 출발했고, 교회에 도착하면 더욱 추웠다. 오전 예배가 끝날 무렵이면 몸이 거의 마비될 지경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학교로 돌아오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오전과 오후 예배 사이에 차갑게 식은 고기와 빵을 주었는데, 그것마저도 평소 식사와 마찬가지로 양이 너무 적었다.
오후 예배가 끝난 뒤에는 언덕이 이어진 탁 트인 길을 따라 학교로 돌아왔다. 북쪽의 눈 덮인 산등성이를 넘어 불어오는 매서운 겨울바람은 얼굴의 살갗이 벗겨질 것처럼 따갑게 몰아쳤다.
나는 템플 선생님이 축 늘어진 우리 대열을 따라 가볍고 빠른 걸음으로 오가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선생님은 차가운 바람에 펄럭이는 체크무늬 망토를 단단히 여미고, 말과 행동으로 우리를 격려하며 기운을 잃지 말고 ‘씩씩한 병사들’처럼 앞으로 걸어가자고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안타깝게도 지쳐서 남을 격려할 여유가 없었다.
학교에 돌아오면 우리는 활활 타오르는 난로의 열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그러나 어린아이들에게는 그것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교실의 벽난로마다 상급생들이 두 겹으로 둘러섰고, 어린아이들은 그 뒤에 웅크린 채 앞치마 속으로 앙상한 팔을 집어넣고 몸을 녹여야 했다.
차 시간이 되면 작은 위안이 찾아왔다. 평소에는 반쪽이던 빵이 이날만큼은 한 조각 통째로 나왔고, 거기에 아주 얇게 버터까지 발라져 있었다. 이것은 매주 일요일에 주는 특별한 대접이었고, 우리는 모두 다음 안식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빵을 몰래 남겨 두고 싶었지만, 남기면 결국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거나 나누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일요일 저녁은 교회의 교리문답과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을 암송하며 보냈고, 이어서 밀러 선생님이 읽어 주는 긴 설교를 들어야 했다. 그녀는 피곤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하품을 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설교보다 더 기억에 남았다.
이런 시간에는 종종 뜻밖의 작은 소동도 일어나곤 했다. 졸음을 참지 못한 어린아이 대여섯 명이 마치 성경 속 유두고★처럼 졸다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삼층 창문에서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네 번째 줄 의자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져 거의 정신을 잃은 채 부축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의 처방은 간단했다. 아이들을 교실 한가운데로 끌고 나와 설교가 끝날 때까지 서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졸린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면 반장들이 쓰는 높은 의자를 받쳐 겨우 세워 두었다.
아직 나는 브로클허스트 씨가 학교를 방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로우드에 도착한 뒤 첫 한 달 동안 그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친한 대주교를 만나는 일이 길어진 모양이었다. 그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왜 그의 방문을 두려워하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돌아오고 말았다.
어느 날 오후였다. 내가 로우드에 온 지 꼭 3주쯤 되었을 때였다. 나는 석판을 손에 들고 긴 나눗셈 문제를 풀려고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 야위고 길쭉한 윤곽을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2분쯤 뒤, 선생님들까지 포함해 학교 전체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나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가 입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긴 걸음으로 교실을 가로질러 온 그는, 자리에서 일어난 템플 선생님 곁에 멈춰 섰다. 게이츠헤드의 벽난로 앞 양탄자 위에서 나를 불길하게 내려다보던 바로 그 검은 기둥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슬쩍 곁눈질로 그 ‘기둥’을 바라보았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단정하게 외투를 여민 브로클허스트 씨였다. 그는 이전보다도 더 길고, 더 마르고, 더 딱딱하고 엄숙해 보였다.
그가 나타난 것을 보고 내가 겁을 먹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리드 부인이 내 성격에 대해 교묘하게 흘려놓았던 악의적인 말들과, 브로클허스트 씨가 템플 선생님과 선생님들에게 내 사악한 본성을 알려 주겠다고 약속했던 일이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약속이 실행될 날만을 두려워하며 지내왔다. 매일같이 ‘그 사람’이 나타나 내 과거와 행실을 들춰내어 나를 영원히 나쁜 아이로 낙인찍을 것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그가 정말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템플 선생님 곁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가 틀림없이 내 악행을 폭로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템플 선생님의 눈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짙은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혐오와 경멸을 담아 나를 향할 것만 같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귀를 기울였다. 마침 내가 교실 맨 앞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대부분 들을 수 있었는데, 다행히도 나를 험담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템플 선생, 제가 로우턴에서 사온 실이면 충분하겠지요? 무명 속옷을 만드는 데 알맞은 품질인 것 같아서 바늘도 거기에 맞게 골라 두었습니다. 스미스 선생에게 말씀해 주세요. 꿰매는 바늘을 적어 두는 것을 깜빡했지만, 다음 주에는 몇 꾸러미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절대로 한 번에 한 개 이상 나누어 주지 마세요. 많이 주면 부주의해서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선생님. 모직 양말을 좀 더 철저히 관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 채소밭을 지나가다가 빨랫줄에 널린 옷들을 살펴보았는데, 검은 양말들이 너무 많이 해져 있더군요. 구멍의 크기를 보니 제때 제대로 꿰매지 않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선생님.”
템플 선생님이 차분히 대답했다.
“그리고 선생님.”
브로클허스트 씨가 다시 말을 이었다.
“세탁 담당자가 말하기를 어떤 학생들은 일주일에 깨끗한 목깃을 두 장씩 받는다고 하더군요. 그건 안 됩니다. 규정에는 한 장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라면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템플 선생님이 말했다.
“지난 목요일 아그네스 존스턴과 캐서린 존스턴이 로우턴에 있는 친구 집에 차를 마시러 초대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날만큼은 깨끗한 목깃으로 갈아입도록 허락했습니다.”
브로클허스트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한 번은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회계 장부를 살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지난 2주 동안 학생들에게 빵과 치즈로 된 간식이 두 번이나 지급되었더군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규정을 아무리 살펴봐도 간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새로운 관행을 만들었으며,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했습니까?”
“그 일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템플 선생님이 대답했다.
“아침 식사가 너무 형편없이 조리되어 아이들이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로 점심까지 굶게 둘 수는 없었습니다.”
브로클허스트 씨는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잠깐만요, 선생님. 제가 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목적은 사치와 안락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인하고 인내심 있으며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사람으로 기르는 것입니다. 가끔 식사를 준비하다 보면 덜 익거나 너무 익어서 맛이 없을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더 맛있는 음식으로 대신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육체를 지나치게 만족시키게 되어 이 학교의 교육 목적을 해치게 됩니다. 오히려 그런 일은 아이들의 영적 성장을 위한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잠시의 궁핍을 참고 견디는 용기를 가르쳐야지요. 그럴 때 현명한 교사는 짧은 훈화를 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순교자들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우리 주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시키며,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가르침을 전하지요. 또 ‘나를 위하여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는 위로의 말씀도 들려주지요. 아, 선생님. 선생님은 탄 죽 대신 빵과 치즈를 아이들의 입에 넣어 주면서 그 비천한 육체는 먹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불멸의 영혼은 얼마나 굶기고 있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시는군요.”
브로클허스트 씨는 다시 말을 멈추었다. 아마도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북받친 모양이었다. 템플 선생님은 그가 말을 시작했을 때부터 줄곧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선생님은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원래도 대리석처럼 창백했던 그녀의 얼굴은 이제 마치 대리석 그 자체처럼 차갑고 움직임이 없었다. 특히 입술은 조각가가 정이라도 대지 않으면 열리지 않을 것처럼 굳게 다물려 있었고, 이마에는 돌처럼 굳은 표정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한편 브로클허스트 씨는 두 손을 등 뒤로 깍지 낀 채 벽난로 앞에 위엄 있게 서서 학교 전체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을 번쩍 움직였다. 무언가 눈부시거나 충격적인 것을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깜박이더니, 몸을 돌려 이전보다 훨씬 빠른 말투로 외쳤다.
“템플 선생, 템플 선생! 저-저게 무엇입니까? 저 곱슬머리 소녀 말입니다! 붉은 머리가 온통 곱슬곱슬하지 않습니까?”
브로클허스트 씨는 지팡이를 뻗어 마치 엄청난 죄악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소녀를 가리켰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줄리아 세번입니다.”
템플 선생님은 아주 차분하게 대답했다.
“줄리아 세번이라고요? 그런데 왜 저 아이는, 아니 왜 다른 아이들까지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이 학교의 모든 규율과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면서, 복음주의 자선 교육 기관인 이곳에서 저렇게 노골적으로 세속을 따르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저렇게 머리를 온통 곱슬로 꾸미다니요!”
“줄리아의 머리는 원래 타고난 곱슬머리입니다.”
템플 선생님은 더욱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고났다고요! 그렇겠죠. 하지만 우리는 본성을 따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은혜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저 무성한 머리카락은 또 무엇입니까? 나는 여러 번 머리는 단정하고, 소박하고, 검소하게 정리하라고 분명히 지시했습니다. 템플 선생, 저 아이의 머리는 전부 잘라야 합니다. 내일 이발사를 보내겠습니다. 게다가 저기 다른 아이들도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길군요. 저 키 큰 아이를 돌아서게 하세요. 그리고 1반 학생들 모두 일어나 벽을 향하게 하십시오.”
템플 선생님은 어이없는 웃음을 감추려는 듯 손수건으로 입술을 살짝 눌렀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그의 지시를 전달했다.
1반 학생들은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곧 지시를 알아듣고 모두 벽을 향해 돌아섰다. 나는 벤치에 약간 기대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은 서로 눈짓을 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 우스꽝스러운 명령을 조용히 비웃고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씨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그는 컵과 접시의 겉면은 마음대로 닦을 수 있어도 그 속까지는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은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 있는 메달이라도 감정하듯 학생들의 뒤통수를 약 5분 동안 유심히 살펴보더니 마침내 판결을 내렸다. 그 말은 마치 사형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저 머리 땋은 것들은 모두 잘라 버려야 합니다.”
템플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하려는 기색을 보였다. 그러자 브로클허스트 씨는 말을 이었다.
“선생님,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나의 사명은 이 소녀들의 육체적 정욕을 죽이는 것입니다. 화려하게 땋은 머리나 값비싼 옷이 아니라 겸손과 절제를 몸에 입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 어린 학생들은 허영심이 손수 땋아준 것 같은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군요. 다시 말하지만, 저것들은 모두 잘라야 합니다. 그 머리를 손질하느라 낭비되는 시간이며….”
바로 그때 브로클허스트 씨의 연설은 중단되었다. 세 명의 여자가 교실 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그의 검소한 복장에 관한 설교를 직접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정작 여자들은 벨벳과 비단, 모피로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이었다.
그중 두 젊은 아가씨는 열여섯 살과 열일곱 살쯤 되어 보였는데, 당시 유행하던 회색 비버 모자에 타조 깃털 장식을 꽂고 있었고, 모자 아래로는 정성껏 말아 올린 금발 곱슬머리가 풍성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부인은 담비털 장식이 둘러진 값비싼 벨벳 숄을 두르고 있었으며, 곱슬한 프랑스식 가짜 앞머리까지 붙이고 있었다.
템플 선생님은 그들, 곧 브로클허스트의 부인과 딸들을 정중하게 맞이한 뒤 교실 맨 앞의 귀빈석으로 안내했다. 보아하니 그들은 브로클허스트 씨와 함께 마차를 타고 온 것 같았다. 이들은 브로클허스트 씨가 관리원과 업무를 논의하고, 세탁실을 취조하고, 교장을 훈계하는 동안 위층 방들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그들은 침구 관리와 기숙사 감독을 맡은 스미스 선생님에게 이것저것 지적하고 꾸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말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내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는 다른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브로클허스트 씨와 템플 선생님의 대화를 듣는 동안에도 내 모습을 들키지 않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눈에 띄지만 않으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긴 의자의 가장 뒤쪽에 몸을 숨기듯 앉아 계산 문제를 푸는 척하면서, 얼굴이 가려지도록 석판을 들고 있었다. 아마도 그대로라면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배신자 같은 석판이 갑자기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요란한 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고, 모든 시선이 한꺼번에 나를 향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깨진 석판 조각 두 개를 주우려고 몸을 굽히면서도 다가올 최악의 순간을 견딜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결국 그 순간이 찾아왔다.
“참 덤벙대는 아이군!”
브로클허스트 씨가 말했다.
곧이어 그는 나를 알아보고 덧붙였다.
“아, 새로 들어온 학생이군.”
나는 숨을 돌릴 틈도 없었다.
“그래, 이 아이에 대해서도 내가 할 말이 있었지.”
그러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소리가 내게는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석판을 떨어뜨린 아이는 앞으로 나오너라!”
나는 스스로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마비된 듯 굳어 버렸기 때문이다. 양옆에 앉아 있던 두 명의 큰 학생이 나를 억지로 일으켜 세워 무서운 심판관 앞으로 밀어 보냈다. 그리고 템플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나를 그의 바로 앞까지 이끌어 주었다. 그때 나는 그녀가 낮게 속삭이는 말을 들었다.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단다, 제인. 실수하는 걸 보았어. 너는 벌받지 않을 거야.”
그 다정한 속삭임은 오히려 내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조금만 지나면 선생님도 나를 위선자라고 경멸하시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리드 부인과 브로클허스트, 그리고 그들과 한패인 사람들을 향한 분노가 온몸의 피를 들끓게 했다. 나는 결코 헬렌 번스 같은 아이가 아니었다.
“저 의자를 가져오너라.”
브로클허스트 씨가 아주 높은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곧 의자가 옮겨졌다.
“그 아이를 그 위에 세워라.”
누가 나를 올려놓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나는 주변을 살필 정신이 전혀 없었다. 다만 사람들이 나를 브로클허스트 씨의 코 높이만큼 되는 곳까지 들어 올렸고, 그가 내 앞에서 채 1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내 아래로는 주황색과 보랏빛 비단 망토들이 넓게 펼쳐져 있고 은빛 깃털 장식이 물결치고 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한다.
브로클허스트 씨는 헛기침을 했다.
“부인!”
그는 가족들을 향해 몸을 돌린 뒤 말을 이었다.
“템플 선생, 그 외 선생님들, 그리고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이 아이를 보고 있지요?”
물론 모두가 보고 있었다. 마치 돋보기를 통해 모은 햇빛처럼 수많은 시선이 내 달아오른 피부를 태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이 아이는 아직 어립니다. 겉모습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셨듯 이 아이에게도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허락하셨습니다. 특별한 기형도 없고, 외모만으로는 어떤 문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아이가 악마의 하수인이자 앞잡이가 되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이 사실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사이 나는 떨리던 몸을 가까스로 진정시켰다. 이미 루비콘강은 건넜다. 이제 이 시련은 피할 수 없으며, 끝까지 견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대리석 조각상처럼 보이는 목사는 비통한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슬프고도 비통한 날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 아이를 경계하라고 말해야 하는 안타까운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이 아이는 하나님의 어린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버림받은 아이입니다. 참된 양 떼의 일원이 아니라 그 무리에 몰래 끼어든 침입자이며 이방인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이 아이를 조심해야 합니다. 이 아이를 본받아서는 안 됩니다. 필요하다면 가까이하지 말고, 함께 놀지도 말며, 대화도 나누지 마세요. 선생님들, 이 아이를 잘 살펴보십시오.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말 한마디 한마디를 저울질하며, 모든 행실을 면밀히 살피십시오. 그리고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육신을 벌하는 것도 마다하지 마십시오. 물론 그런 구원이 가능하다면 말입니다. 이 말을 하려니 혀가 떨리는군요. 이 아이는, 이 기독교 국가에서 태어난 아이는, 브라흐마★에게 기도하고 자거너트★ 앞에 무릎 꿇는 어린 이교도들보다도 더한 아이입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약 10분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는 완전히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브로클허스트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손수건을 꺼내 눈가에 갖다 대고 있었고, 나이 많은 부인은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두 젊은 아가씨는 서로를 향해 속삭였다.
“정말 끔찍해!”
브로클허스트 씨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사실은 이 아이의 은인에게 직접 들은 것입니다. 부모를 잃은 이 아이를 거두어 친딸처럼 길러 준 독실하고 자애로운 부인에게서 말입니다. 그 훌륭한 부인의 친절과 관용에 대해 이 불행한 아이가 보답한 것은 너무도 끔찍하고 참담한 배은망덕뿐이었습니다. 결국 그 훌륭한 후원자는 자신의 자녀들이 이 아이의 사악한 본을 따라 타락할까 두려워 이 아이를 곁에서 떼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치 옛날 유대인들이 병든 자들을 베데스다 연못★으로 보냈던 것처럼, 이 아이를 치유받도록 이곳에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선생님들과 교장 선생님께 간청드립니다. 이 아이 주위의 물이 고여 썩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장엄한 결론을 끝으로 브로클허스트 씨는 외투의 맨 윗단추를 잠그고, 가족들에게 무어라 낮게 말한 뒤 함께 일어섰다. 그들은 템플 선생님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마치 귀족 행렬처럼 위엄을 갖춘 채 교실을 빠져나갔다.
문 앞에 이르러 나의 심판관은 몸을 돌려 마지막으로 말했다.
“저 아이는 앞으로 30분 더 저 의자 위에 서 있게 하세요. 그리고 오늘 하루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저 아이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나는 높은 곳에 세워져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에서 내 두 발로 서 있는 수치조차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는 불명예의 받침대 위에 올라선 채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숨이 막히고 목이 죄어 오는 듯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바로 그 순간, 헬렌이 내 곁을 지나갔다. 그녀는 지나가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은 얼마나 신비로운 빛으로 가득 차 있었던가! 그 한 줄기 시선이 내 마음에 얼마나 놀라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던가! 그 새로운 감정은 얼마나 큰 힘이 되어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던가! 마치 순교자나 영웅이 노예나 희생자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자신의 용기를 나누어 준 것만 같았다.
나는 치밀어 오르던 울분과 화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들고 의자 위에 당당히 섰다.
헬렌 번스는 자신의 과제와 관련된 사소한 질문 하나를 스미스 선생님에게 했다. 그러다 하찮은 질문을 했다는 이유로 꾸중을 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고, 다시 내 곁을 지나며 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는 지금도 그 미소를 기억한다. 그것은 뛰어난 지성과 진정한 용기에서 흘러나온 빛이었다. 그 미소는 또렷한 윤곽의 얼굴과 수척한 뺨, 움푹 들어간 회색 눈을, 마치 천사의 얼굴에서 나오는 빛처럼 환하게 밝혀 주었다.
바로 그 순간 헬렌 번스의 팔에는 ‘지저분한 아이’라는 표식이 달려 있었다. 불과 한 시간 전, 나는 헬렌이 받아쓰기 과제를 베껴 쓰다가 잉크를 번지게 했다는 이유로 스캐처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듣고, 다음 날 점심을 빵과 물만 먹는 벌을 받았다는 것을 직접 들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
가장 맑고 밝은 별에도 작은 흠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스캐처드 선생님 같은 사람의 눈에는 그런 미세한 흠만 보일 뿐, 그 별이 지닌 찬란한 빛은 끝내 보이지 않는가 보다.
★ 유두고: 성경 신약전서 사도행전 20장에 등장하는 유두고는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다가 졸아서 창밖으로 떨어졌던 청년이다.
★브라흐마: 브라만교에서 창조를 주재하는 신
★자거너트: 힌두교에 속한 특정 신의 이름이자, 그 신을 섬기는 신앙 전통
★베데스다 연못: 예루살렘에 있던 연못으로, 예수가 38년 된 병자를 고친 장소
교정 후기
브로클허스트 씨의 말을 들으면 화가 나야 하는데, 웃음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마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아무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것은 현실에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템플 선생님은 저절로 입가에 번진 미소를 감추려는 듯 손수건으로 입술을 살며시 쓸어내렸다.
▶ 템플 선생님은 어이없는 웃음을 감추려는 듯 손수건으로 입술을 살짝 눌렀다.
♣ 원문을 번역하면 위와 같지만, 템플 선생이 웃은 이유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서 아래와 같이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