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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9장

by 행만이99 2026. 7. 25.

 

<AI로 번역하고 교정 전문가가 다듬은 쉬운 고전 시리즈 1 제인 에어 9장>

 

8장 보기

 

헬렌과의 이별

 

로우드에서 겪는 궁핍이나 고난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이미 봄은 찾아와 있었다. 겨울의 서리는 사라졌고, 눈은 녹았으며, 살을 에던 바람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내 발은 1월의 매서운 찬 공기에 살갗이 벗겨지고 부어올라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4월의 온화한 바람을 맞으며 차츰 아물고 부기가 빠져 갔다. 밤낮의 기온도 올라 더 이상 캐나다의 혹한을 방불케 하는 추위로 우리의 핏줄까지 얼려 버리지는 않았다. 이제 쉬는 시간에 정원에서 지낼 수도 있었고, 햇살 좋은 날이면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히려 더 즐겁고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갈색뿐이던 화단에는 푸른빛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날마다 싱그러움을 더해 가는 그 모습은 마치 희망이 밤마다 그 위를 지나가며 아침마다 발자국을 더욱 선명하게 남기는 것 같았다.


잎새 사이로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스노드롭, 크로커스, 보랏빛 오리큘라,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팬지들이 피어났다. 목요일 오후, 반나절 휴일이 되면 우리는 산책을 나갔고, 길가와 산울타리 아래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난 들꽃들을 발견하곤 했다.

높은 담장과 뾰족한 쇠창살로 둘러싸인 정원 밖에는 끝없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즐거움이란 시야 끝까지 펼쳐진 풍경이었다. 푸른 숲과 짙은 그늘을 품고 넓은 계곡을 감싸안은 웅장한 산봉우리들, 검은 바위와 반짝이는 소용돌이로 가득한 맑은 시냇물…. 겨울철 납빛 하늘 아래에서 보았던 풍경과 얼마나 다른지!


겨울에는 모든 것이 얼음처럼 굳어 있었고 눈에 덮여 있었다. 죽음처럼 차가운 안개가 동풍에 밀려 자줏빛 산등성이를 떠돌다가 언덕과 숲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다시 시냇가를 뒤덮은 얼어붙은 안개와 하나가 되곤 했다. 그 시냇물은 탁하고 거침없는 급류가 되어 숲을 갈라놓고, 거센 비나 휘몰아치는 진눈깨비 속으로 광란에 가까운 굉음을 울렸다. 강가의 숲 또한 앙상한 해골 같은 나무들만 줄지어 서 있을 뿐이었다.

 

4월이 지나 5월이 되었다. 그해의 5월은 맑고 평화로운 계절이었다. 푸른 하늘과 잔잔한 햇살, 부드러운 남풍과 서풍이 날마다 이어졌다. 식물들은 왕성한 생명력으로 무성하게 자라났고, 로우드는 긴 겨울의 굴레를 벗어던졌다. 온통 초록으로 물들고 꽃으로 뒤덮였다. 거대한 느릅나무와 물푸레나무, 참나무는 앙상한 해골 같은 모습을 벗고 다시 장엄한 생명을 되찾았으며, 숲속 그늘마다 온갖 야생식물이 무성하게 돋아났다. 셀 수 없이 다양한 이끼가 움푹한 땅을 덮었고, 들앵초가 무리 지어 피어나 마치 땅 위에 햇살을 흩뿌려 놓은 듯한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연한 황금빛 꽃들이 나무 그늘 아래에서 가장 부드러운 빛의 조각처럼 반짝이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고, 이 모든 것을 자주, 마음껏 누렸다. 자유롭게, 감시받지 않은 채, 거의 혼자서 말이다.

전에 없던 이런 자유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산과 숲에 포근히 안겨 있고, 시냇가를 따라 자리 잡은 집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거처라고 생각한다.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건강한 곳인지는 또 다른 이야기다.
로우드가 자리 잡은 그 숲속 골짜기는 안개의 소굴이었고, 안개가 퍼뜨리는 역병의 온상이기도 했다. 봄기운이 무르익자 그 독기는 함께 살아나 로우드를 서서히 잠식했다. 그리고 붐비는 교실과 기숙사에 발진티푸스를 퍼뜨려, 5월이 채 되기도 전에 그 학교를 병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반쯤 굶주린 생활과 제대로 치료하지 않은 감기는 전염병에 취약하게 만들었다. 80명의 학생 가운데 45명이 한꺼번에 병상에 누웠다. 수업은 중단되었고 규칙도 느슨해졌다. 병에 걸리지 않은 소수의 아이들은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렸다. 담당 의사가 건강을 유지하려면 자주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이들을 일일이 돌보거나 통제할 선생님이 없었다.

 

템플 선생님의 모든 관심은 환자들에게 쏠려 있었다. 선생님은 병실에서 생활했고, 밤에 몇 시간 눈을 붙일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교사들도 가족이나 친척이 있어서 이곳에서 떠날 수 있는 학생들의 짐을 꾸리고 떠날 준비를 시키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나 이미 병에 걸린 많은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들은 병의 특성상 장례를 미룰 수 없어 조용히 서둘러 묻혔다.


질병이 로우드의 주인이 되고 죽음이 그곳을 자주 찾는 손님이 되었을 때, 학교 안에는 어둠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복도와 방마다 병원 냄새가 배어 있었고, 약품과 향은 죽음의 냄새를 없애 보려 애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학교 밖에서는 찬란한 5월의 햇살이 드높은 산과 아름다운 숲을 아무런 구름도 없이 비추고 있었다. 정원 역시 꽃들로 찬란했다. 접시꽃은 나무처럼 높이 자랐고, 백합은 활짝 피어났으며, 튤립과 장미도 만개했다. 작은 화단 가장자리에는 분홍빛 스리프트와 진홍색 겹데이지가 화사하게 피어 있었고, 스위트브라이어는 아침저녁으로 사과와 향신료를 닮은 향기를 내뿜었다. 그러나 이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선물은 로우드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아무런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가끔 관 속에 함께 넣을 꽃과 풀 한 줌을 마련해 줄 뿐이었다.

 

그러나 나와 끝까지 병에 걸리지 않은 아이들은 그 계절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누렸다.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치 집시들처럼 숲속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갔다. 먹는 것도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브로클허스트 씨와 그의 가족은 이제 더 이상 로우드에 발길을 하지 않았고, 학교 운영도 이전처럼 까다롭게 감시받지 않았다. 성미가 고약했던 관리인은 전염병이 두려워 학교를 떠났고, 그녀를 대신해 로우턴 진료소에서 사감으로 일하던 여성이 새로 왔다. 그녀는 아직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우리를 이전보다 훨씬 넉넉하게 대했다.

게다가 먹여야 할 아이들의 수도 줄어 있었다. 병든 아이들은 거의 먹지 못했으므로 우리의 아침 식사 그릇에는 죽이 훨씬 푸짐하게 담겼다. 점심을 준비할 시간이 없는 날도 자주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녀는 우리에게 큼직한 차가운 파이 조각이나 두툼한 빵과 치즈를 나누어 주었다. 우리는 그것을 들고 숲으로 가서 각자 마음에 드는 자리를 골라 호화로운 만찬이라도 되는 듯 즐겁게 점심을 먹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자리는 시냇물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넓고 매끄러운 흰 바위였다. 그곳에 가려면 물속을 걸어 건너야 했는데, 나는 맨발로 어렵지 않게 갔다. 그 바위는 나와 다른 여자아이 한 명이 나란히 앉기에 꼭 알맞은 크기였다. 그 무렵 내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는 메리 앤 윌슨이라는 아이였다. 메리 앤은 눈치가 빠르고 관찰력이 뛰어났다. 나는 메리 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메리 앤이 재치와 개성이 있고,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품성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메리 앤은 나보다 몇 살 위였고 세상일도 훨씬 많이 알고 있어서, 내가 흥미롭게 들을 만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곤 했다. 메리 앤과 함께 있으면 나의 호기심은 늘 채워졌다.
또한 메리 앤은 내 단점도 너그럽게 받아들여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억누르거나 타이르려 하지 않았다. 메리 앤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재능이 있었고, 나는 분석하기를 좋아했다. 메리 앤은 알려주기를 즐겼고, 나는 질문하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아주 잘 어울렸다. 서로 대화하면 크게 배우는 것은 없지만, 무척 즐겁고 신났다.

 

그동안 헬렌 번스는 어디에 있었을까? 왜 나는 그 달콤한 자유를 헬렌과 함께 보내지 않았을까? 헬렌을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면 헬렌의 맑고 고결한 벗이 되는 일에 싫증이 날 만큼 내가 형편없는 인간이었던 걸까? 물론 방금 말한 메리 앤은, 처음 사귀었던 헬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메리 앤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내가 즐겨 하는 신랄하고 짓궂은 뒷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줄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왜 헬렌을 좋아했는지 이야기해주었더라면 메리 앤은 대화에서 훨씬 더 고귀하고 깊은 세계를 보여주었을 아이였다.

 

나는 결점투성이지만, 헬렌 번스에게 싫증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헬렌을 향한 애정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껏 누구에게 품어 본 감정 못지않게 강하고 다정하며 존경심이 깃든 것이었다. 헬렌은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조용하고 성실한 우정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녀의 우정은 나쁜 기분 때문에 흐려지는 법도 없었고, 짜증 때문에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그 무렵 헬렌은 병을 앓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헬렌은 위층의 어느 방으로 옮겨졌고, 나는 그 방이 어디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사람들은 헬렌이 열병 환자들이 있는 병실에는 없다고 말했다. 헬렌이 앓는 병은 발진티푸스가 아니라 폐결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무지해서 폐결핵이란 그저 시간이 지나고 잘 돌보기만 하면 낫는 비교적 가벼운 병쯤으로 알았다. 가끔 아주 따뜻하고 화창한 오후가 되면 헬렌이 한두 번 아래층으로 내려와 템플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정원에 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럴 때도 헬렌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는 교실 창문 너머로 헬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도 뚜렷이 볼 수는 없었다. 헬렌은 두꺼운 옷에 단단히 싸여 있었고, 현관 차양 아래 먼 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6월 초 어느 저녁, 나는 메리 앤과 함께 숲속에서 너무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우리는 늘 그렇듯 다른 아이들과 떨어져 따로 돌아다녔고, 너무 멀리까지 가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다행히 외딴 오두막을 만났다. 거기에는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야생 돼지 떼를 돌보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부부에게 길을 물어 겨우 돌아왔다.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달이 떠오른 뒤였다. 정원 입구에는 의사의 조랑말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메리 앤은 이렇게 늦은 저녁에 베이츠 선생님이 불려온 것을 보니 누군가 매우 위독한 모양이라고 말했다. 메리 앤이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숲에서 캐 온 뿌리 식물 한 줌을 내 작은 화단에 심기 위해 얼마 더 남아 있었다. 다음 날까지 두면 시들어 버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식물을 다 심고도 나는 한동안 더 밖에 있었다.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자 꽃향기는 더욱 짙어졌고, 저녁은 너무도 평화롭고 따뜻했다. 아직 붉은빛이 남아 있는 서쪽 하늘은 내일도 맑은 날씨가 이어질 것임을 약속하는 듯했고, 동쪽에서는 엄숙한 위엄을 품은 달이 천천히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아이답게 그 모든 것을 바라보며 즐기고 있었다. 그때 문득 이전에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지금 병상에 누워 죽을 위험에 처해 있다니, 얼마나 슬픈 일일까! 이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여기서 불려 나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한다니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천국과 지옥에 대해 그동안 들어 온 모든 것에 대해 진지하게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이 순간, 내가 서 있는 현재뿐이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형체 없는 구름과 끝없는 공허뿐이었다. 나는 그 혼돈 속으로 비틀거리며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를 쳤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베이츠 선생님이 밖으로 나오고 있었고, 간호사 한 사람이 그를 배웅했다. 간호사는 의사가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뒤 문을 닫으려 했다. 나는 재빨리 그녀에게 달려갔다.


“헬렌 번스는 어떤가요?”
“아주 위독해.”
그녀가 대답했다.
“베이츠 선생님이 진찰하신 사람이 헬렌인가요?”
“그래.”
“헬렌에 대해 뭐라고 하셨나요?”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하셨어.”
불과 어제만 해도 내가 이 말을 들었다면, 헬렌이 그저 곧 노섬벌랜드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만 이해했을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의미한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그 말은 헬렌 번스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날들을 보내고 있고, 정말로 영혼의 세계가 존재한다면 그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뜻임을 분명히 이해했다.
나는 공포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고, 곧바로 깊은 슬픔이 밀려왔다. 바로 헬렌을 만나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 아니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이 솟구쳤다. 그래서 헬렌이 어느 방에 있는지 물었다.
“템플 선생님 방에 있어.”
간호사가 대답했다.
“올라가서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안 돼, 그럴 수는 없단다. 이제 너도 안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야. 이슬이 내리는 시간까지 밖에 있으면 열병에 걸릴 수도 있어.”
간호사는 현관문을 닫았다. 나는 교실로 이어지는 옆문으로 들어갔다. 시간은 정확히 아홉 시였고, 밀러 선생님이 학생들을 불러 잠자리에 들도록 하고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아마 열한 시 가까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끝내 잠들지 못했다. 기숙사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고, 아이들은 모두 깊이 잠든 듯했다. 나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잠옷 위에 원피스를 걸쳐 입고 맨발인 채 방을 빠져나와 템플 선생님 방을 찾아 나섰다.
선생님의 방은 거의 반대편 끝에 있었지만, 나는 길을 알고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여름밤의 달빛이 복도 창문마다 스며들어 길을 밝혀 주었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열병 환자들이 있는 병실 가까이에 이르자 장뇌와 식초를 태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는 밤새 병실을 지키는 간호사에게 들킬까 두려워 그 문 앞을 재빨리 지나쳤다. 붙잡히면 다시 돌아가야 할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반드시 헬렌을 만나야 했다. 헬렌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안아 보아야 했다. 마지막 입맞춤을 해야 했고, 마지막 말을 나누어야 했다.


계단 하나를 내려가 아래층의 복도를 지나 문 두 개를 소리 없이 여닫는 데 성공한 뒤 다시 다른 계단을 발견했다. 그 계단을 올라가자 바로 맞은편에 템플 선생님의 방이 있었다. 열쇠 구멍과 문틈 아래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주변은 숨이 멎을 듯한 정적에 잠겨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문은 약간 열려 있었다. 방 안으로 신선한 공기를 들이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해 둔 듯했다.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조바심에 사로잡혀 마음과 온 감각이 떨릴 만큼 긴장한 채 문을 조금 더 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내 눈은 오직 헬렌을 찾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다.


템플 선생님의 침대 바로 곁, 하얀 커튼에 반쯤 가려진 곳에 작은 간이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불 아래 누워 있는 사람의 윤곽은 보였지만, 얼굴은 커튼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아까 정원에서 만났던 간호사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고, 심지를 다듬지 않은 촛불 하나가 탁자 위에서 희미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템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열병 병자가 있는 병실에서 헛소리를 하는 환자를 돌보러 간 것이었다.
나는 앞으로 다가가 간이침대 곁에 멈춰 섰다. 손은 이미 커튼을 잡고 있었지만, 먼저 말을 건넨 뒤에 커튼을 걷기로 했다. 나는 여전히 시신을 마주하게 될까 두려웠다.
“헬렌! 깨어 있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헬렌이 몸을 조금 움직이더니 커튼을 젖혔다. 그제야 헬렌의 얼굴을 보았다. 창백하고 몹시 야위어 있었지만, 얼굴에는 평온함이 어려 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달라진 것이 없어서 내 두려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제인, 정말 네가 왔니?”
헬렌이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 죽는다고 하더니 다 틀린 말이었어. 다들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정말 죽어 가는 사람이라면 저렇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고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 리 없어.’
나는 침대 위로 올라가 헬렌에게 입을 맞추었다. 헬렌의 이마는 차가웠고, 볼도 차갑고 몹시 야위어 있었다. 손과 손목도 마찬가지였다. 헬렌은 예전처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왜 여기까지 왔니, 제인? 벌써 열한 시가 넘었어. 조금 전에 시계 소리를 들었어.”
“널 보러 왔어, 헬렌. 네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 너와 이야기하기 전에는 도저히 잠들 수가 없었어.”
“그럼 나와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구나. 그러면 정말 제때 온 것 같아.”
“어디 가는 거야, 헬렌? 집에 가는 거야?”
“그래. 아주 오래 머물 집으로. 내 마지막 집으로.”
“안 돼, 헬렌!”
나는 괴로운 마음에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사이 헬렌이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간호사는 깨어나지 않았다. 기침이 멎자 헬렌은 몇 분 동안 기진맥진한 채 누워 있다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인, 네 작은 발이 맨발이구나. 이리 누워서 내 이불을 덮어.”
나는 헬렌의 말대로 했다. 헬렌은 팔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았고, 나는 헬렌의 곁으로 다가가 바싹 몸을 기댔다.


오랫동안 침묵이 흐른 뒤, 헬렌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제인, 나는 아주 행복해. 그리고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너무 슬퍼하지는 마. 슬퍼할 이유는 하나도 없어.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어. 나를 데려가는 이 병도 괴로운 병이 아니야.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나를 데려갈 뿐이야. 내 마음은 평안하단다. 나를 위해 오래 슬퍼해 줄 사람도 없어. 내게는 아버지 한 분뿐인데, 아버지는 얼마 전에 재혼하셔서 내가 없어도 크게 그리워하지 않으실 거야. 나는 어린 나이에 죽음으로써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고통을 피하게 됐어. 나는 세상에서 성공할 만한 재능도, 뛰어난 자질도 없었어. 아마 살아 있다면 늘 실수하면서 부족한 사람으로 지냈을 거야.”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야, 헬렌? 보이는 거야? 정말 알고 있는 거야?”
“나는 믿어. 내게는 믿음이 있어. 나는 하나님께 가는 거야.”
“하나님은 어디 계셔? 하나님은 어떤 분이셔?”
“나와 너를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결코 멸하지 않으시는 분이야. 나는 그분의 능력을 온전히 믿고, 그분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해. 나를 그분께 데려다주고 그분을 직접 만나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해줄 결정적인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그럼 헬렌, 천국이라는 곳이 정말 있고, 우리가 죽으면 영혼이 그곳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거야?”
“그래, 나는 죽음 이후의 삶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고 믿어. 그래서 아무런 의심도 두려움도 없이 내 영혼을 그분께 맡길 수 있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시고, 나의 친구셔. 나는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도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어.”
“헬렌, 나도 죽으면 다시 널 만날 수 있을까?”
“물론이지, 제인. 너도 같은 행복의 나라에 가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를 품으시는 위대하고 전능하신 아버지께 똑같이 영접받을 거야.”
나는 다시 질문하고 싶었지만,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그 행복의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정말 그런 곳이 존재할까?’
나는 헬렌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헬렌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졌고, 영원히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얼굴을 헬렌의 목에 묻은 채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시 후 헬렌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참 편안하구나. 방금 기침을 심하게 해서 조금 지치긴 했지만, 이제는 잠이 올 것 같아. 하지만 제인,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 줘. 네가 가까이 있는 게 좋아.”
“있을게, 사랑하는 헬렌. 아무도 날 데려가지 못하게 할 거야.”
“따뜻하니, 사랑하는 제인?”
“응.”
“잘 자, 제인.”
“잘 자, 헬렌.”
헬렌이 내게 입을 맞추었고, 나도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내 함께 잠이 들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평소와 다른 분주한 움직임에 잠에서 깨어 고개를 들었더니, 나는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를 안고 있는 사람은 간호사였다. 그녀는 나를 복도를 지나 기숙사로 데려가고 있었다.
밤중에 침대를 빠져나온 일로 꾸중을 듣지는 않았다. 그때 사람들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에 마음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쏟아낸 수많은 질문에도 그 자리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2~3일 뒤, 나는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벽 무렵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템플 선생님은 작은 간이침대 위에서 잠든 나를 발견했다. 내 얼굴은 헬렌 번스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고, 두 팔은 그녀의 목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잠들어 있었고, 헬렌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헬렌의 무덤은 브로클브리지 교회 묘지에 있다.

헬렌이 세상을 떠난 뒤 15년 동안 그 무덤은 풀이 덮인 작은 봉분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회색 대리석 비석 하나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비석에는 그녀의 이름과 함께 ‘나는 다시 살아나리라’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surgam’이라는 한 단어가 새겨져 있다.

 

 

10-1장 보기

 

1장부터 보기

 

교정 후기

 

기침을 하던 헬렌은 결국 하나님 곁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죽음에 관대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아래 문장은 '외딴 오두막'을 수식하는 말이 너무 길어서 짧은 문장으로 수정해 보았습니다.

너무 멀리 가서 길을 잃을 정도였기에, 숲속의 도토리를 먹고사는 반야생 돼지 떼를 돌보는 남자와 여자가 사는 외딴 오두막에서 길을 물어야만 했다.

▶ 다행히 외딴 오두막을 만났다. 거기에는 도토리를 먹고 자라는 야생 돼지 떼를 돌보는 부부가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부부에게 길을 물어 겨우 돌아왔다.

 

typhus를 AI가 처음에는 장티푸스로 번역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기는 발진티푸스로 번역해주어 확인해 보니 발진티푸스가 맞더군요. 장티푸스는 typhoid였고요. 이렇듯 AI 번역은 두 개 이상의 번역기를 돌려서 교차 검증하면서 번역해 나가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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