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활기 있고 움직임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밀코트는 A강 기슭에 자리한 큰 공업 도시였다. 틀림없이 매우 번화한 곳일 것이다. 그럴수록 더욱 좋았다.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 될 테니까.
물론 높이 솟은 굴뚝과 자욱한 연기의 풍경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손필드는 아마도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겠지.’
바로 그때 촛농받이가 내려앉으며 심지가 꺼져 버렸다.
다음 날부터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했다. 이제 더 이상 내 계획을 혼자만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계획을 이루려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털어놓아야 했다.
점심시간에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청한 뒤, 나는 지금보다 두 배의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씀드렸다.(로우드에서 내가 받았던 연봉은 겨우 15파운드였다.) 그리고 브로클허스트 씨나 위원회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말씀드려 그분들을 추천인으로 적어도 되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교장 선생님은 기꺼이 중간에서 도와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교장 선생님은 브로클허스트 씨에게 이 일을 전했다. 그는 먼저 리드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가 법적으로 나의 후견인이었기 때문이다. 편지는 곧 리드 부인에게 부쳐졌고, 며칠 뒤 답장이 왔다.
“그 아이는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나는 오래전에 그 아이의 일에는 더 이상 간섭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편지는 위원회 사람들에게 차례로 전달되었다.
내게는 끝도 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기다림 끝에 마침내 형식적인 허가가 내려졌다. 지금보다 처우가 좋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도 좋다는 것이다. 더불어 로우드에서 학생으로서도 교사로서도 언제나 성실하게 생활해 왔으므로 학교 감독관들이 인품과 능력에 관한 추천서에 서명하여 즉시 발급해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약 한 달 뒤, 나는 그 추천서를 받았다. 곧바로 사본을 페어팩스 부인에게 보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답장이 도착했다. 추천서에 만족한다는 내용과 함께, 2주 후부터 그녀의 집에서 가정 교사로 일을 시작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떠날 준비에 바빠졌다.
2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내 옷은 많지 않았지만, 필요한 만큼은 충분했다. 마지막 하루면 짐을 꾸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나는 8년 전 게이츠헤드에서 가져왔던 바로 그 여행용 트렁크에 짐을 모두 넣었다. 트렁크는 끈으로 단단히 묶었고, 이름표도 못으로 고정해 붙였다. 30분 뒤면 짐꾼이 와서 그것을 로우턴까지 실어 갈 예정이었다. 나는 다음 날 이른 아침 로우턴으로 가서 역마차를 타야 했다.
검은 여행복은 솔질해 두었고, 모자와 장갑, 털토시도 모두 준비했다. 서랍마다 다시 한 번 살펴 빠뜨린 물건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제 더 할 일은 없었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 보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종일 걸어다녔는데도 단 한순간도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마음이 너무 들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으로 내 삶의 한 시기가 끝나고, 내일이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 사이에서 잠이 올 리 없었다. 변화가 이루어지는 그 시간을, 들뜬 마음으로 꼬박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불안한 영혼처럼 현관을 서성이고 있던 내게 하녀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아래층에서 선생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분이 와 계십니다.”
‘분명 짐꾼이 왔겠지.’
더 묻지도 않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달려갔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문이 반쯤 열려 있던 뒤쪽 응접실, 곧 교사들의 휴게실 앞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누군가가 방에서 뛰쳐나왔다.
“바로 이분이야! 틀림없어! 어디서든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
그 사람이 내 앞을 가로막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단정한 하녀 차림을 한 여인이었다. 제법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겼지만 아직 젊었고, 검은 머리와 검은 눈, 혈색 좋은 얼굴을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자, 누구인지 맞혀 보세요.”
그녀는 내가 어렴풋이 기억하는 목소리와 미소로 말했다.
“설마 절 완전히 잊어버리신 건 아니겠죠, 제인 아가씨?”
다음 순간 나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고 연거푸 입을 맞추고 있었다.
“베시! 베시! 베시!”
내 입에서는 그 이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반은 웃고 반은 울 듯한 얼굴이 되었고, 우리는 함께 응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난로 곁에는 체크무늬 원피스와 바지를 입은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제 아들이에요.”
베시가 곧바로 말했다.
“그럼 베시, 결혼했구나?”
“네. 거의 다섯 해 전에 마부였던 로버트 리븐과 결혼했어요. 그리고 저 바비 말고도 딸 하나가 더 있는데, 이름을 제인이라고 지었답니다.”
“그럼 이제는 게이츠헤드에서 살지 않는 거야?”
“아니요. 정문 문지기가 그만두는 바람에 지금은 문지기 집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 그 집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지내? 베시, 하나도 빼놓지 말고 다 이야기해 줘. 우선 앉고. 바비, 이리 와서 내 무릎에 앉을래?”
그러나 바비는 내게 오기보다 엄마 곁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제인 아가씨는 그렇게 많이 크지도 않았고, 살도 별로 찌지 않았네요.”
베시가 말을 이었다.
“학교에서 아주 잘 돌봐 주지는 않았던 모양이에요. 엘리자 리드양은 아가씨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요, 조지애나는 몸집이 아가씨 두 배 정도 될 거예요.”
“조지애나는 여전히 예쁘겠지, 베시?”
“아주 예뻐요. 지난겨울에는 부인과 함께 런던에 갔는데, 그곳에서 모두가 조지애나를 칭찬했어요. 심지어 젊은 귀족 한 분이 사랑에 빠지기까지 했죠. 하지만 그분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했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그 청년과 조지애나 아가씨가 함께 달아나기로 약속했던 거예요. 하지만 들켜 버려서 결국 실행하지 못했죠. 그 일을 알아낸 사람이 바로 엘리자였어요. 아마 질투가 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자매끼리도 개와 고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지내요. 늘 싸우기만 한다니까요.”
“그럼 존 리드는 어떻게 지내?”
“아, 그분은 부인이 바라시는 만큼 잘되지는 않았어요. 대학에 갔는데 시험에 떨어졌어요. 뭐라고 하더라… 학위를 박탈당했다고 하던데요. 그 뒤 외삼촌들이 변호사가 되라고 법률 공부를 시키려 했지만, 워낙 방탕한 청년이라 앞으로도 크게 성공할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은 어떻게 생겼어?”
“키가 아주 커요. 어떤 사람들은 잘생긴 청년이라고도 하지만, 입술이 너무 두툼해요.”
“리드 부인은?”
“부인은 얼굴도 건강해 보이고 살도 제법 올랐어요.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은 것 같아요. 존 도련님의 행실을 영 마음에 들어하지 않거든요. 돈도 너무 많이 써 대고요.”
“베시, 혹시 리드 부인이 널 여기 보낸 거야?”
“아니에요, 절대로요. 그냥 오래전부터 아가씨를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가씨에게 편지가 왔고, 이제 다른 지방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는 더 멀리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베시, 나를 보고 실망했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베시의 눈길에는 애정이 담겨 있었지만, 감탄이나 찬사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에요, 제인 아가씨. 꼭 그렇지는 않아요. 지금은 충분히 점잖고 품위 있는 숙녀처럼 보여요. 솔직히 말하면 그 정도면 제가 기대했던 만큼이에요.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미인은 아니었잖아요.”
베시의 솔직한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전혀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열여덟 살 무렵이면 누구나 남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 한다. 그런데 자신의 외모가 그리 예쁘지 않다고 말한다면 결코 즐겁지는 않다.
“그래도 아가씨는 아주 영리하실 거예요.”
베시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말을 이었다.
“무엇을 하실 줄 아세요? 피아노는 치실 줄 아세요?”
“조금은.”
마침 방 안에 피아노가 한 대 있었다. 베시는 다가가 뚜껑을 열더니 내게 앉아서 한 곡 연주해 달라고 했다.
나는 왈츠를 두 곡쯤 연주했고, 베시는 크게 감탄했다.
“리드 아가씨들은 이렇게는 못 쳐요!”
그녀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전 늘 아가씨가 공부만큼은 그 아가씨들보다 훨씬 뛰어날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림도 그리세요?”
“벽난로 위에 걸린 저 그림이 내가 그린 거야.”
그것은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였다. 그 그림은 위원회에서 나를 위해 힘써 준 교장 선생님께 감사의 뜻으로 선물한 것이었고, 교장 선생님은 액자를 맞추고 유리까지 씌워 벽에 걸어 두셨다.
“어머, 정말 아름다워요, 제인 아가씨! 저건 리드 아가씨들의 그림 선생님이 그린 그림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겠어요. 리드 아가씨들은 저런 그림에는 근처에도 못 가죠. 그리고 프랑스어도 배우셨나요?”
“응, 베시. 읽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어.”
“그럼 모슬린이나 캔버스에 자수도 놓을 줄 아세요?”
“그럼.”
“아이고, 제인 아가씨는 이제 정말 훌륭한 숙녀가 되셨네요! 전 원래 그럴 줄 알았어요. 친척들이 아가씨를 돌보든 말든 아가씨는 어디서든 잘해 나가실 거예요. 아,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혹시 아버지 쪽 친척인 에어 집안 사람들에게서 연락받은 적은 없으세요?”
“태어나서 한 번도.”
“그렇군요. 부인은 늘 그 사람들이 가난하고 아주 보잘것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물론 정말 가난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생각에는 리드 집안 못지않은 신분의 사람들이에요. 거의 7년쯤 전에 에어 씨라는 분이 게이츠헤드에 찾아와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하신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부인이 아가씨는 50마일이나 떨어진 학교에 있다고 말씀드렸죠. 그분은 무척 실망하셨어요. 하지만 오래 머물 수는 없었어요. 곧 외국으로 배를 타고 떠날 예정이었고, 배도 하루이틀 안에 런던에서 출항한다고 했거든요. 정말 신사다운 분이셨는데…. 제 생각에는 아가씨 아버지의 친동생이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나라로 가신다고 했는데, 베시?”
“수천 마일이나 떨어진 섬이었어요. 거기서는 포도주를 만든다고 집사 아저씨가 말해 줬는데….”
“마데이라섬?” 하고 내가 물었다.
“네, 맞아요. 바로 그 이름이었어요.”
“그분은 결국 떠나셨구나?”
“네. 집에는 몇 분밖에 머물지 않으셨어요. 부인은 그분에게 아주 냉담하게 대하셨죠. 나중에는 그분을 두고 ‘비열한 장사꾼’이라고까지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우리 로버트 말로는 그분은 포도주 상인이었던 것 같대요.”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면 포도주 상인의 점원이나 대리인이었을 수도 있고. ” 내가 대답했다.베시와 나는 한 시간 넘게 지난날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떠나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역마차를 기다리며 로우턴에 있을 때 우리는 다시 몇 분 동안 더 만났다.
마침내 우리는 로우턴의 브로클허스트 암스 여관 문 앞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각자는 서로 다른 길을 떠났다.
베시는 게이츠헤드로 돌아가는 마차를 타기 위해 로우드 언덕 정상 쪽으로 향했고, 나는 밀코트 근교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역마차에 올랐다.
교정 후기
새로운 일을 앞두고 설렐 때가 있고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제인처럼 마음이 들떠서 잠시도 앉아 있지 못하는 설렘이 있었던가 되돌아보게 됩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선다면 좋은 일이 일어날 징조가 아닐까요? 오랜만에 만난 베시는 정이 깊은 사람이네요. 멀리서 제인을 찾아왔는데, 빈말이라도 예쁘다고 말을 해주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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