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환한 대낮이었다.
파란 꽃무늬 면 커튼 사이로 햇살이 방 안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벽에는 벽지가 발라져 있었고,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로우드의 널빤지 그대로의 바닥과 얼룩진 회반죽 벽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는 저절로 마음이 밝아졌다.
젊은 사람은 주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나에게 더 아름다운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가시와 고난뿐인 삶이 아니라 꽃과 기쁨도 함께하는 삶 말이다.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새로운 무대와 환경은 내 모든 능력과 감각을 다시 일깨워 주었다. 어떤 기대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즐거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당장 오늘이나 이번 달에 찾아오지 않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것만 같은 희망이 있었다.
나는 일어나 정성껏 옷을 입었다. 가진 옷이라고는 하나같이 소박하게 만들어진 것뿐이라 화려하게 차려입을 수는 없었다. 원래부터 나는 단정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외모를 소홀히 하거나 남에게 비치는 인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내 성격이 아니다. 오히려 언제나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정갈하게 보이려 했고, 타고난 미모가 부족한 만큼이라도 호감을 주려 했다. 가끔 외모가 조금만 더 아름다웠으면 하고 아쉬워할 때도 있었다. 혈색 좋은 장밋빛 뺨과 오뚝한 코, 앵두처럼 작은 입을 갖고 싶었고, 키도 크고 품위 있으며 균형 잡힌 몸매였으면 하고 바랐다. 작고 창백한 데다 이목구비마저 고르지 않고 억척스럽다는 것이 불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바람과 아쉬움은 왜 생겨났던 것일까? 그때의 나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지만, 분명한 이유는 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이유였다.
어쨌든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퀘이커 교도의 옷차림처럼 수수하기는 했지만, 몸에 꼭 맞게 재단된 검은 드레스를 입은 뒤, 깨끗한 흰 가슴 장식을 단정히 여미고 나니, 적어도 페어팩스 부인 앞에 나서는 데는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새 제자가 적어도 나를 보자마자 반감을 품고 뒷걸음치는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방 창문을 열어 두고 화장대 위가 모두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조심스레 방을 나섰다.
카펫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고 매끄럽게 윤이 나는 참나무 계단을 내려가 현관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벽에 걸린 그림들을 보았다. 하나는 흉갑을 입은 엄숙한 표정의 남자를, 다른 하나는 머리에 흰 분을 바르고 진주 목걸이를 한 숙녀를 그린 초상화였다. 천장에는 청동 램프가 매달려 있었고, 오랜 세월 손길이 닿아 검게 윤이 난 정교한 참나무 장식의 커다란 괘종시계도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이 장엄하고 위엄 있었지만, 나는 그런 화려함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반은 유리로 된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어 나는 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아름다운 가을 아침이었다. 이른 햇살이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숲과 아직 푸른빛을 간직한 들판을 평온하게 비추고 있었다. 잔디밭으로 걸어 나가 저택의 정면을 올려다보았다. 저택은 3층 높이였으며, 규모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지만, 결코 작지도 않았다. 귀족의 성이라기보다는 지방 영주의 영지에 어울리는 저택이었다. 지붕 가장자리를 둘러싼 흉벽 덕분에 한층 더 아름답고 운치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회색빛 정면은 뒤편의 떼까마귀 숲을 배경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까악까악 울어대던 까마귀들은 마침 날아올라 잔디밭과 정원을 가로질러 넓은 초원으로 향했다. 그 초원은 땅을 파서 만든 낮은 도랑으로 경계가 나뉘어 있었고, 그곳에는 참나무만큼이나 크고 굵으며 울퉁불퉁한 오래된 가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 저택의 이름이 왜 ‘손필드(가시밭)’인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더 멀리에는 언덕들이 이어져 있었다. 로우드를 둘러싼 언덕들만큼 높지도 험준하지도 않았고, 세상과 완전히 단절시키는 장벽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언덕들 역시 충분히 고요하고 외로웠다. 밀코트처럼 활기찬 마을 가까이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깊은 은둔의 분위기로 손필드를 포근히 감싸안고 있는 듯했다.
그 언덕들 가운데 어떤 비탈에는 지붕들 사이로 나무들이 많은 작은 마을이 듬성듬성 자리 잡고 있었다. 교구 교회는 손필드에 좀 더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오래된 교회 탑은 저택과 정문 사이의 완만한 언덕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나는 평화로운 풍경과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까마귀들의 까악까악 우는 소리를 즐겁게 들으며, 넓고도 세월의 흔적이 밴 저택의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페어팩스 부인처럼 홀로 사는 작은 체구의 부인이 살기에는 참으로 큰 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그 부인이 현관문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머, 벌써 나와 계셨군요? 아침 일찍 일어나는 분인가 봐요.”
부인이 말했다.
나는 부인에게 다가갔고, 부인은 다정하게 입을 맞추고 손을 잡아 주며 나를 맞아 주었다.
“손필드가 마음에 드나요?”
나는 아주 마음에 든다고 대답했다.
“그래요. 참 아름다운 곳이지요. 하지만 로체스터 씨가 이곳에 아예 살기로 마음먹거나, 적어도 지금보다 더 자주 들러야지, 그렇지 않으면 점점 관리가 소홀해질 거예요. 이렇게 큰 저택과 넓은 영지는 주인이 직접 있어야 제대로 유지되거든요.”
“로체스터 씨요? 그분은 누구죠?”
나는 놀라 되물었다.
“손필드의 주인이에요. 혹시 성이 로체스터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나요?”
부인은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 몰랐다. 그 이름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노부인은 마치 그의 존재가 누구나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상식인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저는… 손필드가 부인 소유인 줄 알았어요.”
“내 소유라고요? 아이고, 선생님도.”
부인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셨지요? 내가 주인이라니! 나는 그저 이 집을 관리하는 집사일 뿐이에요. 물론 로체스터 집안과는 어머니 쪽으로 먼 친척이기는 하지요. 정확히 말하면 내 남편이 그랬어요. 남편은 저기 언덕 위에 있는 작은 마을 헤이의 교구 목사였고, 정문 근처에 있는 저 교회가 바로 남편의 교회였답니다. 지금의 로체스터 씨 어머니는 페어팩스 가문 출신으로, 내 남편과는 육촌쯤 되는 사이였어요. 하지만 나는 그런 인연을 내세우지 않아요. 사실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으니까요. 나는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가정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로체스터 씨도 언제나 예의 바르게 대해 주시니 그것으로 충분해요.”
“그럼 그 어린 여자아이, 그러니까 저의 제자는요?”
“그 아이는 로체스터 씨의 피후견인이에요. 로체스터 씨가 직접 나에게 가정 교사를 구해 달라고 부탁하셨지요. 원래는 그 아이를 ○○○주에 데려가서 교육할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아, 마침 오네요. 늘 ‘본느’라고 부르는 자기 유모와 함께요.”
그제야 모든 의문이 풀렸다.
이 친절하고 상냥한 작은 체구의 노부인은 대단한 귀부인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나처럼 이 댁에 의지해 살아가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 사실 때문에 부인이 덜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전보다 더 마음이 놓였다. 부인과 나 사이의 평등은 상대가 일부러 베푸는 호의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실제 평등한 관계였던 것이다. 그것이 훨씬 좋았다. 덕분에 나 역시 보다 더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곳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실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어린 소녀가 유모와 함께 잔디밭을 달려왔다. 나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나를 알아채지 못한 듯했다. 제자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아마 일곱 살이나 여덟 살쯤 되었을 것이다. 몸집은 작고 가늘었으며, 창백한 얼굴에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풍성한 곱슬머리는 허리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구나, 아델 양.”
페어팩스 부인이 말했다.
“이리 와서 앞으로 너를 가르쳐 훌륭한 숙녀로 자라게 해 주실 선생님께 인사드리렴.”
아델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세 라 마 구베르낭트?(저분이 제 가정 교사예요?)”
아델이 나를 가리키며 유모에게 말했다.
“메 위, 세르텐망.(네, 맞아요.)”
유모가 대답했다.
“두 사람 다 외국인인가요?”
나는 프랑스어가 들려와 놀란 나머지 물었다.
“유모는 외국인이에요. 그리고 아델도 유럽 대륙에서 태어났어요. 제 생각에는 반년 전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한 번도 잉글랜드에 와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처음 왔을 때는 영어를 전혀 못했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조금은 말할 수 있게 되었지요. 다만 프랑스어를 너무 많이 섞어 말해서 나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선생님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을 거예요.”
다행히 나는 프랑스인 선생님에게 프랑스어를 배운 적이 있었다. 가능한 한 자주 피에로 선생님과 프랑스어로 대화하려고 애썼고, 지난 7년 동안에는 매일 프랑스어 문장을 일정 분량씩 암기했다. 또한 발음을 정확히 하려고 꾸준히 노력하면서 선생님의 발음을 가능한 한 그대로 따라 하려고 애썼다. 그 덕분에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유창하고 정확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아델 양과 의사소통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델은 내가 자신의 가정 교사라는 말을 듣자 다가와 악수했다. 나는 아델을 데리고 아침 식사를 하러 들어가면서 프랑스어로 몇 마디 말을 건넸다. 처음에는 짧게만 대답하던 아델이 식탁에 앉아 큰 담갈색 눈으로 나를 십여 분쯤 유심히 살펴보더니 갑자기 거침없이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아!” 하고 외치더니 아델이 프랑스어로 말했다.
“선생님은 로체스터 씨만큼이나 프랑스어를 잘하시네요! 그러면 로체스터 씨에게 말하듯이 선생님께도 이야기할 수 있겠어요. 소피도 그럴 수 있고요. 소피도 아주 기뻐할 거예요. 여기서는 아무도 소피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든요. 페어팩스 부인도 프랑스어를 전혀 못하세요. 소피는 제 유모예요. 소피는 저와 함께 굴뚝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오던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어요. 그 배에서는 연기가 정말 엄청나게 났어요! 저는 배멀미를 했고, 소피도 했고, 로체스터 씨도 하셨어요. 로체스터 씨는 살롱이라고 부르는 예쁜 방의 소파에 누워 계셨고, 소피와 저는 다른 곳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잤어요. 저는 거의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어요. 선반처럼 좁았거든요. 그런데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
“에어, 제인 에어란다.”
“에르? 아, 발음이 어려워요. 아무튼 우리 배는 아침 일찍,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아주 큰 도시에 도착했어요. 집들이 모두 새까맣고 연기로 가득한 거대한 도시였죠. 제가 살던 예쁘고 깨끗한 마을과는 전혀 달랐어요. 로체스터 씨는 저를 안고 널빤지 다리를 건너 육지로 데려가셨고, 소피도 뒤따라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마차를 타고 아주 아름답고 큰 집으로 갔어요. 여기보다 훨씬 크고 훨씬 멋진 곳이었는데, 호텔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거기에서 거의 일주일을 지냈어요. 소피와 저는 매일 나무가 가득한 넓은 푸른 공원에서 산책했는데, 그곳을 파크라고 불렀어요. 거기에는 저 말고도 아이들이 많이 있었고, 아름다운 새들이 있는 연못도 있었어요. 저는 빵 부스러기를 새들에게 먹이로 주곤 했답니다.”
“저렇게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데도 다 알아듣겠어요?” 하고 페어팩스 부인이 물었다.
나는 아델의 말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피에로 선생님의 유창한 프랑스어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탁인데, 그 아이 부모님에 대해 한두 가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혹시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상냥한 부인이 다시 말했다.
나는 아델에게 물었다.
“아델, 네가 말한 그 예쁘고 깨끗한 마을에 살 때는 누구와 함께 지냈니?”
“오래전에는 엄마와 함께 살았어요. 그런데 엄마는 성모 마리아께 가셨어요. 엄마는 저에게 춤추는 법과 노래하는 법, 시를 낭송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신사들과 숙녀들이 아주 많이 엄마를 찾아왔고, 저는 그분들 앞에서 춤을 추거나 무릎에 앉아 노래를 불러 드리곤 했어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선생님, 지금 제 노래를 한번 들어보실래요?”
아델은 이미 아침 식사를 마쳤기에, 나는 보여달라고 했다.
아델은 의자에서 내려와 내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고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곱슬머리를 뒤로 넘긴 뒤, 천장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는 어떤 오페라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은 여인의 이야기였다.
여인은 먼저 연인의 배신을 슬퍼하며 한탄하다가, 곧 자존심을 되찾아 시녀에게 가장 화려한 보석과 가장 값비싼 옷으로 자신을 꾸며 달라고 명한다. 그리고 그날 밤 무도회에서 변심한 연인을 만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명랑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그의 배신이 자신에게 아무런 상처도 남기지 않았음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다.
어린아이가 부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아마도 이 공연의 묘미는 사랑과 질투의 노래를 어린아이의 혀 짧은 목소리로 듣는 데 있었던 모양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몹시 저속한 취향이었다.
아델은 그 짧은 노래를 제법 음정에 맞게 불렀고, 나이답게 천진난만한 순수함도 잃지 않았다. 노래를 마치자 아델은 내 무릎에서 뛰어내리며 말했다.
“이제 선생님께 시를 들려드릴게요.”
자세를 바로잡은 아델은 선언하듯 말했다.
“라 퐁텐 우화 중 쥐들의 동맹이예요.”
그러고는 그 짧은 작품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쉼표와 마침표까지 세심하게 살려 읽었고, 강세와 억양은 물론 목소리의 높낮이 변화와 몸짓까지 적절했다. 그 어린 나이에 그런 표현력은 누군가에게 아주 세심한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그 작품도 네 어머니가 가르쳐 주셨니?” 내가 물었다.
“네. 엄마는 항상 이렇게 읽으셨어요. ‘캬베 부 동? 뤼 디 앙 드 세라, 파를레!(‘무슨 일이냐? 그 쥐들 가운데 하나가 말했습니다. 말해 보세요!)’ 이 대목에서는 이렇게 손을 들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아델은 손을 들어 보였다.
“질문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라는 뜻이었어요. 이제 춤도 보여 드릴까요?”
“아니, 그 정도면 충분하단다. 그런데 네 말대로 어머니가 성모 마리아 곁으로 가신 뒤에는 누구와 함께 살았니?”
“프레데릭 부인과 그 남편이요. 부인이 저를 돌봐 주셨어요. 하지만 친척은 아니에요. 그분은 가난했던 것 같아요. 엄마 집만큼 좋은 집에서 살지 않았거든요. 거기에도 오래 있지는 않았어요. 로체스터 씨가 잉글랜드에 함께 가서 살겠느냐고 물어서 저는 좋다고 했어요. 프레데릭 부인을 알기 전부터 로체스터 씨를 알고 있었거든요. 그분은 언제나 저에게 친절하셨고 예쁜 옷과 장난감도 많이 사 주셨어요. 그런데 약속은 지키지 않았요. 저를 잉글랜로 데려와 놓고는 다시 떠나 버리셨거든요. 저는 그분을 전혀 볼 수가 없어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아델과 나는 서재로 갔다. 알고 보니 그 방은 로체스터 씨의 지시에 따라 공부방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부분의 책은 유리문이 달린 책장 안에 있고 잠겨 있었지만, 한쪽 책장은 열려 있었다. 그 안에는 초급 학습서들이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고, 가벼운 읽을거리와 시집, 전기, 여행기, 몇 권의 소설 등도 꽂혀 있었다. 아마도 로체스터 씨는 가정 교사가 개인적으로 읽기에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실제, 당분간은 그것만으로 충분하고도 남았다. 로우드에서의 얼마 되지 않는 책들과 비교하면, 이곳의 책들은 마치 풍성한 수확을 한 것처럼 오락과 지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보물창고였다.
그 방에는 새것이나 다름없는 캐비닛 피아노도 한 대 있었는데, 음색이 매우 훌륭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이젤과 한 쌍의 지구본도 갖춰져 있었다.
나는 아델이 비교적 순종적인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공부에 열심인 편은 아니었다. 이제껏 규칙적으로 공부하거나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몰두하는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너무 엄격하게 붙잡아 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약간의 공부를 시킨 뒤, 정오가 되어서야 다시 유모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될 때까지 아델이 공부할 때 사용할 간단한 삽화 몇 장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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